<빠담 빠담, 파리>를 리뷰해주세요.
-
-
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여행에세이를 읽고 나면 뭔가 더 갈증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 저자의 과감한 선택과 모험심에 대한 부러움이 그 책을 집어들게 만들었지만 읽고 나면 대리만족을 한 만큼이나 허허로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건 주관적인 것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과 독특한 정서에 기반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한번도 그 장소에 가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이질감을 부추기고 공감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리하여 그 책에 나온 여행지들은 내게 더욱 멀고도 먼 세상이 되는 것이다.
파리에 대한 여행담을 담은 책은 이미 여럿 있지만, 이 책, 양나연 개그작가의 여행기는 조금 다르다. 그냥 여행객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행가이드로서 보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불어는 전혀 못하고 영어도 능통한 수준이 아닌 그녀, 여행을 그리 많이 해본 것도 아니고 가이드라는 일도 해본 적 없고 유럽사나 미술과는 전혀 무관했던 사람, 웃찾사 인기작가로 제법 유명한 그녀가 어느 날 국경을 넘어설 기회를 선택한 건 분명 자기혁명이다. 그녀는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우선 남미를 택했다. 그중에서도 페루를 선택했다. 모든 건 그녀의 선택에 달려있었고 그녀의 선택으로 시작되었다. 운명을 만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롭고 확고하게 선택을 했다는 점이 가장 높이 보였다. 서른을 얼마 앞둔 나이의 활달하고 유머러스한 우리나라 전문직 미혼여성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른은 조금 넘겼다.
그녀의 길은 모두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우연을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놀라울 정도로 명쾌한 선택을 해나간 그녀가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대개 우연인듯 찾아온 기회들은 모두 놓치고 세월이 지나, 그때의 다소 안이했던 사고보다는 운명이 자신을 그냥 지나쳤다는 변명으로 외부요인을 탓하기 일쑤다. 모든 문제는 자신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양나연 작가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부딪혀보겠다는 자신감과 적극성으로 자신을 버리고 온몸으로 도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무한히 긍정할 수 있는 힘이 가장 부러운 미덕이었다.
우선 표지부터 참 산뜻한 이 책은 미려한 문장이나 과장된 감상, 자기연민이나 자의식과잉 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경쾌하고 수월하게 읽히는 문장은 마치 옆에서 들려오는 수다처럼 재미나다. 개그작가다운 좋은 점이다. 몸으로 부대끼며 터득한 체험담이 아주 진솔하게 읽힌다. 군데군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천연덕스레 상황을 뚫고 나아가는 모습, 자신의 강점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힘도 잃지 않고 있다. 파리여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팁이 되는 내용도 많고 파리와 관련한 갖가지 소소한 이야기들도 곁들어있다. 파리를 찾게되면 꼭 가보라고 권하는 덜 알려진 장소와 저자 자신이 주관적으로 마음을 홀리게 된 장소와 특별한 화가에 대한 소개도 흥미있다. 사진도 적절히 소박하게 보기좋다.
'양가이드'가 배운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내가 할 일은 손님과 소통하고 그들을 안전하게 모시고, 즐겁게 대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이었다." (86쪽)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해설을 하는 건 하면 할수록 늘게 되어 있지만, 많은 일행을 리드하며 손님을 안전하게 모시는 마음은 할수록 느는 게 아니라 늘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여기서도 역시 일보다 지식보다 우선하는 건 '사람'이었다. 사람냄새 물씬 나는 여행가이드!
파리에 있으면서 가이드 연수차 또는 특별보너스로 다녀온 유럽의 몇몇 다른 나라에서의 에피소드도 양념으로 맛있다. 그 중 스페인의 어느 길에서 우연히 보겐 된 장애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 선입견과 편견을 한 방 때리는 것이다. 자신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눈에 보이는 칭찬 하나로 의기양양해진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데서도 진정 최선을 다하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꾸미지 않은 글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그녀는 지금 파리의 가이드로 돈도 잘 벌고 잘 살고 있을까? 그녀가 그길을 선택하여 온몸을 던져 최선을 다했듯, 그녀는 지금 또다른 선택을 하여 아주 행복해보인다. 이 리뷰를 보는 분은 그게 무얼지 궁금할 것이다.^^ 그녀더러 친구들이 묻는단다.
"왜 이렇게 행복해 보여?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한 번 떠나 봐. 다 잊고 말야! 어쩌면 그곳에서 네가 원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을 거야. 그게 일이든, 사랑이든, 또 다른 행복이든? (283쪽)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그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막연히 꿈꾸고 있는 파리가 내 마음 속에서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걸 찾기 위해서라도 다 잊고 떠나보라고 스스로 권하기엔 뭐 이리 걸리는 게 많은지.. 소소한 떠남부터 조금씩 연습이 필요할까. 아니면 그런 것 필요없이 과감하게 떠나보는 게 맞을까. 어느 쪽이든 쉽지 않으니 이런 책의 저자가 부럽단 말밖에.. 빠담, 빠담~ (Padam, Padam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프랑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