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의상(古風衣裳)

조지훈



하늘을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 저고리
호장 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도라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추운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춰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를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이냥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지어다.

 

[문장 3호 1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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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과 관련한 이야기를 찾다가 오랜만에 읽게 된 시. 그 안에 '부연'이 있다.

며느리서까래, 부연에서 생각을 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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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10-1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이 시 우리 국어책에 나왔었지요? 아닌가...

바람결 2007-10-1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아름다울 수 가요. 몇 번이나 소리내어 읽다보면 이 밤에 두견이 소리 들리는 듯 하고, 눈 앞에 '기인 치마' 물결치듯 아른거려요. 참 좋으네요.

혜경님, 행복한 주일 보내셨어요?^^

프레이야 2007-10-14 22:1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녁에 잠시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차고 날이 많이 쌀쌀해졌어요. 느긋하게 보냈습니다.^^

hnine 2007-10-1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비슷한 제목의 다른 시가 국어 책에 나왔었는데, 이 시 제목을 국어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면서 비교해보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이 시가 더 수작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젠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그 시가 어떤 시였는지 생각이 안 나네요. 이거 생각나야 잠이 올텐데...ㅋㅋ

프레이야 2007-10-14 22:12   좋아요 0 | URL
님, 저도 오락가락하지만 '승무'가 아닌가 싶어요.
님의 편안한 잠을 위해 혹시나 드려요^^

승 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紗)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2007-10-14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0-15 08:54   좋아요 0 | URL
신석초의 고풍, 찾아봐야겠어요. 저도 반가워요^^
시를 좋아하시는 님, 어젯밤 결국 생각해 내셨군요^^

2007-10-1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요.

프레이야 2007-10-15 17:11   좋아요 0 | URL
뉘신지요? 모습 보여주시면 더 좋을텐데요^^

소나무집 2007-10-1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신경숙의 <리진>이 생각나네요.
신경숙도 이 시를 읽고는 리진이 춘앵무를 추는 장면을 묘사한 건 아닐까 싶은데요.

홍수맘 2007-10-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학교 다닐적 배웠던 시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
"조지훈 = 청록파" 하면서 외워던 기억도 새삼 떠오르네요.

향기로운 2007-10-1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네요^^*

비로그인 2007-10-1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춤을 추는 여인의 치마 끝의 버선 발은
매력적입니다. 하하


프레이야 2007-10-1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리진 사두고 아직 안 읽었네요. 리진이 춘앵무를 추는 장면에서
천천히 씹어 읽어볼게요.

홍수맘님/ 그러게요.ㅎㅎ 전, 학교 다닐 적엔 시를 그저 도구로 읽었던 것 같아 아쉬워요.

향기로운님/ 백조로 완전 거듭나면 자주 놀기에요.^^

한사님/ 살짝 치켜든 하얀 버선발, 매력적이에요.^^
언젠가 살풀이춤을 봤는데 참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