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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좋다
채인선 지음, 김은정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4월
평점 :
어느 님의 생일선물로 보내드리려고 주문한 그림책이다. 다른 것과 함께 보내려고 직배하지 않고 우선 집으로 주문했다. 우선 책표지의 수수한 그림이 방긋 웃음 짓게 했다. 채인선님의 글은 전부터도 워낙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고 거기에 김은정님의 그림이 마음에 쏙 들었다. 수수하고 소박한 색감과 섬세하고 나긋한 붓질이 느껴지는 그림이 추억의 사진처럼 풋풋하고 편안한 정감을 불러온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큰딸이 5살 적에 찍었던 사진과 흡사하다. 그때 여름날, 내 선글라스를 쓰고 원피스를 입고 그렇게 사진을 찍었던 아이가 10년이 흘러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 자랐으니...
딸은 좋다, 여기서 ‘딸은’이라는 말은 주어이기도 하고 목적어이기도 하다. 글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내용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아 기르신 내 어머니의 맏딸이고, 결혼하여 지금은 두 딸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가끔은 아들 하나쯤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딸이 둘이나 있는 내게 부족함은 없다. 이 그림책은 모든 어머니들에게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하는데 딸을 갖지 못한 어머니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나는 조분조분 이야기하는 채인선의 꾸밈없는 글에 상당 부분 공감되었다. 대부분이 내가 딸아이 둘을 기르며 구체적으로 경험하였던 보석같이 빛나는 자잘한 이야기들이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일들이라 무척 공감되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딸이 어릴 적에 (의도적이지 않았다해도) 엄마에게 베푼 갖가지 일들도 그렇지만 특히 사춘기에 있는 딸의 행동이 지금의 큰딸과 비슷하다. 엄마와 다툰 후 엄마의 화장대에 사과의 쪽지를 올려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건 작은딸과 큰딸 모두 잘 하는 짓인데 나는 이 책의 엄마처럼 아이들이 준 편지와 카드를 다 모아두었다. 그림 속에는 추억의 장면들이 많다. 제일 인상 깊은 건 엄마의 화장대인데, 그 위에 있는 물건들이 손때 묻은 추억을 불러온다. 나드리 코티 분과 탐스핀, 미로 화장품. 이런 제품들은 내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의 자개 화장대 위에서 본 것들이다. 특히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딸을 나무 옆에 세워두고 찍어대는 셔터소리처럼 그런 상큼한 장면을 그려놓은 그림과 글에서 눈이 반짝했다. 찍히고 있는 딸의 얼굴도 사랑스럽다. 딸은 그렇게 아빠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안다. 그런데 우리집 딸들은 하도 잦은 일이라 어떨 땐 오히려 짜증스러워하는 게 다른 점이랄까. 채인선의 눈은 어쩜 이리 소소한 일상의 포착을 잘 하였나 싶다. 성장하는 나무처럼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눈. 아빠가 딸을 바라보는 눈은 그렇게 그윽하고 안타까운, 섬세한 감정이 실린 눈이다. 딸은 파인더 안에 포근히 담아내어 간직하고 싶은 최고의 모델이다.
딸이 사랑하는 이성을 데려와 부모에게 소개하는 장면부터는 내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한다. 늑대같은 녀석, 곱게 키워놓은 내딸을 덥석 데려가겠다고? 그래도 어쩌겠어. 딸이 좋다는데. 그저 서로 잘 위해주고 보살펴주었으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과 포옹을 하는 한복 입은 어머니의 뒷모습과 가녀린 목덜미에 보이진 않지만 눈물이 서려있다. 18년 전 나는 결혼식장에서 유독 많이 울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어머니도 눈가가 젖어 나를 보고 계셨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때 어머니랑 포옹을 하진 않았지만 지금 나이 드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때의 감정들을 되살려볼 수 있다. 내가 지금의 남편을 처음 집에 데려가 소개하던 날의 부모님 심정도 내가 딸을 키워가면서 서서히 느껴볼 수 있다.
그림과 글의 충분한 미덕에도 나는 이 그림책이 조금 우려되는 면이 있다. ‘딸은 좋다’라는 말을 굳이 하는 건 딸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왠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공공연한 남아선호사상을 지레 짐작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남편은 성역할에 있어서 다소 보수적인 사람이었는데 두딸을 기르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부모 양 성씨를 쓰는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전에는 반감을 가졌지만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호주제 폐지도 적극 찬성이며 딸에게 자유연애를 바란다고까지 말한다. 어떤 면에서 나보다 더한 것 같아 가끔 놀랍다. 사람은 누구나 입장의 차이,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가 첨예하다는 걸 느낀다.
또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자리할까 우려되는 점이다. 성역할을 고정하는 것 같은 내용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 두 딸은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인다. 여성 특유의 성향인 모성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어찌 보면 철저히 이기적인 큰딸이 오히려 좋아보이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읽으려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작은딸보다 그런 것에 다소 무심하고 자기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큰딸이 굳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그림책에서도 그런 바람이 적혀있고 자아성취를 하고 있는 장면도 들어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딸은 모두 이럴 것이라는 혹은 이래야한다는 전제로 보이는 것 같은 구절들이 많아다소 조심스럽다.
그런 점에서 ‘딸은 좋은’ 이유의 하이라이트(마지막에 나옴)는 공감되면서도 어쩐지 모성의 미덕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아 시대착오적인 느낌이다. 딸, 아들의 성역할을 미리 규정짓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소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는 내용들이라 사실 내 딸에게 보여주기에는 조심스럽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인형을 데리고 엄마역할 하기를 좋아하는 작은딸을 보며 모성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라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아이에게 구속 같은 것으로 작용할까 염려되는 게 또 엄마인 나의 마음이다. 딸이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좀더 진취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앞서가는 글과 그림을 보고 싶은 건 나 혼자만의 바람일까.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도 드리는 그림책이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