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몸의 감옥에 갇혔다. 한 달이 다 되어간다. 9월 30일에 산성 오리불고기 집에 모시고 갔을 때만해도 잘 드시고 걸음도 걷고 하셨다. 가을 햇살 좋던 찻집에서 산 풍경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산길을 차로 내려와 수목원도 조금 걸었는데 이제도 다시 못 일어날 것만 같아 믿기지 않는다. 2019년 7월에 동생과 같이 모시고 간 일본여행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때 내가 스케줄 짜고 배 기사 자청해 벳부와 유후인을 모시고 다녔는데 그 때를 참 좋았다고 표현해 주시니 그 마음이 읽혀서 짠하다. 어제도 집에 가 뵙고 오면서 눈앞이 흐려져 길가에 차를 세웠다. 집에 돌아와 지난 사진들을 찾아 보며 일상의 소중한 순간만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간을 이동해 다른 시간을 선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러고는 몸의 감옥에 갇혀 수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서평을 쓴 그이, 물만두 님이 생각났다. 이 책은 지금도 알라딘에서 팔린다. 1주년 동영상 트레일러가 책소개 아래에 뜨는데 검색하여 함께 보시길. 나는 이 책을 10년 전에 녹음하며 웃고 울고 가슴 뜨거워지는 귀한 시간을 선물받았다. 여러분에게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별 다섯 인생』 홍윤
2011년 12월 20일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책이 그해 마지막으로 낭독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어쩐지 소리 내어 읽고 싶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힘이 되는 내용이라는 확신도 들었기에 내가 갖고 있는 책을 추천했고 승낙되었다. 최대한 담담하고 편안하게 읽으려 했는데 부록에 있는 낯익은 알라디너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안녕의 인사는 기어이 나를 목메이게 했다. 우느라 웃느라 정지버튼을 누르기를 여러 번 하며 완료했다.
아마 오랜 알라디너를 비롯해 그리 오래지 않은 분들까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마음의 빚과 선물을 동시에 지고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당시에 생일이면 서로 책선물을 주고 받고 이벤트도 자주 열어 헌 책 나누기도 하였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부제가 깜찍하게 달린 이 귀한 책의 저자는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2000년부터 추리소설 리뷰를 꾸준히 올렸다. 내가 이곳에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게 큰아이 7살 적이었으니까 그 시점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아마 그 비슷하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인터넷 서재 시스템이 운용되기 전이다. 2004년 8월 지금의 서재가 마련되어 우리는 뜻밖에 작은 집 하나씩을 분양받고 알라딘마을의 주민이 되어 본격적으로 리뷰를 쓰고 소소한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물만두 님의 추리소설 리뷰도 좋았지만 단란한 가족의 소소하고 유쾌한 일상 이야기와 댓글로 간명하게 주시는 좋은 말씀이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땐 그런 것들이 그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별 다섯 인생』를 읽으며 우리가 어쩌면 쉽게 나누는 댓글 한 줄과 몇 마디 안부가 물만두 님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였던지 알 수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한 리뷰를 올린 블로그는 세상 밖을 바라보고 세상에 인사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그녀의 유일한 창이었다. 나는 그녀가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감옥에 갇혀있는 줄 몰랐고 그해 추석 끝에 그녀가 올린 글에서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뭔가 심각한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10년 전이다. 나의 사람살이가 그토록 껍데기였나 싶어 나중에야 마음 한 귀퉁이가 쿵 내려앉았다. 혹여나 그동안 내 한심한 투정과 일상사 불만의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부끄럽기도 했다.
나,
너,
그 리 고
사 랑 에
대 하 여.
나, 너, 그리고 사랑이 있다가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와 너는 남았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나와 네가 사라지고 사랑이 남는다 해도 그 사랑 또한 좋은 것이니 족하다.
나, 너, 그리고 사랑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
슬픔은 남지 않아 좋지 않을까.
나와 사랑만 남거나 너와 사랑만 남는다면
그 남은 한 자리는 슬픔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일 테니
2006. 11. 18
(별 다섯 인생, 중)
위의 글은 에필로그와 부록 앞, 마지막 페이지 바로 앞장에 있는 블로그 비공개글이다. 이 글을 읽고 책을 잠시 덮는데 잔잔한 물결이 밀려들어 온몸을 적시는 느낌이었다. 『별 다섯 인생』에는 인터넷 서재에서 본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비공개로 써둔 일기가 사이사이에 들어있는데, 나는 이 글들이 너무 좋아 베껴 두고 싶은 정도였다. 이 글들에서는 우울과 조증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하며 그녀가 깊이 사색하는 모습과 세상을 보고 읽는 정직하고 다정한 입김, 여리지만도 강하지만도 않은 감수성과 문학적 소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고 겸양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가 남긴 1800여 편의 추리소설 리뷰가 쉽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건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고 있는데, 하물며 몸이 성하지 않았던 그녀로서는 굉장한 노동이었을 것이다.
데미지를 입기 싫어 로맨스를 읽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무조건 삶에 강한 척만 하지는 않은 순수한 배짱을 볼 수 있다.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글은 영화 '청원'의 주인공을 떠올려 주는데, 단 60초만이라도 관에 들어가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순간을 체험해 보라던 말이 새삼 영화 속 대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뜨거움이 느껴진다.
삶은 몸으로 살아내는 것! 그녀는 온몸으로 견디고 싸우며 치열하게 살다가 레테의 강을 건넌 것이다. 머리로만 사는 나는 할 말이 없고 먹먹했다. 그녀의 삶은 내가 감히 연민하거나 안타까워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누구의 삶인들 별이 아닐까마는 물만두 님의 '별 다섯 인생'에는 별 하나 아니 두 개 더 드리고 싶다. 별 다섯은 우리가 리뷰에 주는 최고점이었고 그녀의 리뷰는 거의 다 별 다섯이었다.
2004년 9월 3일의 글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해 2003년 12월에서 2007년 1월까지의 글이 담긴 이 책은 주로 물만두 님의 가족사, 가족과의 일상, 인터넷서점 알라딘서재와 알라디너들의 이야기다. 언제든 창가로 가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세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우리와는 달랐던 그녀의 시간을 곱씹어보며 숙연해지길 여러 차례, 웃지 못할 기막힌 상황에서도 유머를 날려 깔깔깔 데굴데굴 구르게 만든다. 비공개 일기 속에 묻어둔 솔직한 회한과 갈망의 심정, 삶에 대한 동경과 무시로 찾아오는 우울, 삶을 긍정하는 포용과 용기가 대조적으로 더 귀하게 느껴진다.
이름도 예쁜 홍윤이 예기치 않은 희귀병으로 고통의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웃어넘길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뼈아픈 미안함과 고마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 두 동생들을 향한 맏이로서 갖는 책임감과 보살피려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있다. 다섯 식구가 알콩달콩 주거니 받거니 토닥거리며 사는 정경이 푸근하게 그려지는 장면들, 빨간 야구모자를 삐딱하게 쓴 꾸밈없이 말간 그녀의 얼굴처럼 참으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 읽다 보면 곳곳에 '우띠', '에헤라디야' 이런 추임새 덕에 나는 또 정지버튼을 눌러야 했다.
'에헤라디야'는 그냥 글자 '에헤라디야'가 아니고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곡조가 붙어져 '디'에서 최고음으로 가락을 붙여 녹음해놓고는 혼자 우스워 배꼽을 잡았다. 특히 욕실 앞에 엎어져 있는 딸을 보고 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엉덩이 상한 거 아니야?" 에 물만두 님이 넘어져 누워 있는 상태로 "어버버 아버버..." 뭐 이렇게 반응했던 대목을 읽을 때, 내가 빙의라도 된 듯 “어버버 아버버...” 이렇게 녹음되었다. 이 글은 예전에 물만두 님 서재 페이퍼에서 '상한 엉덩이'라는 제목으로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도 어찌나 웃기던지. 하하하! 참으로 유쾌한 분!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복지 문제를 비롯해 사회적 사안에도 늘 관심 두고 비판적 견해를 갖고 계셨던 분, 점점 근육량이 줄어들어 입부터 작아지고 나중엔 여섯 손가락의 힘으로 마지막 자판을 두드렸던 그녀, 이제는 평안한 곳에서 몸도 자유로이 지내시길, 그 감옥에서 풀려나셨길 바란다. 지금 당신들은 충분히 행복한 거라고, 힘주어 전한 말씀, 고맙습니다.
2012년 초까지 15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이 책을 녹음 완료했고 편집교정을 하며 일독을 더 하게 되니 나로선 감사하고 느꺼웠다. 물만두 홍윤 님의 깊고 진실된 사유와 온기있는 마음씀씀이, 쉽지 않은 생을 끌어안는 사랑과 여유, 재치와 유머, 무엇보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때로는 가슴앓이하며 솔직히 토로하는 글귀가 또다시 마음을 울린다. 입이 점점 작아지는(아, 나는 그녀의 입이 원래 작은 줄 알았다) 그녀에게 음식을 잘게 잘라 입에 넣어주는 만순이에 대해 고마움을 쓴 대목에서도 가슴이 찡해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만순이는 그녀의 여동생을 칭하는 닉이고 언니의 사후 이 책을 출간하였다. 그녀만큼 생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다 간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이 책을 녹음하며 진짜 노래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책 속에 나오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 가사를 시적으로 옮겨둔 대목이 있는데 낭독을 한다는 게 그만 자동으로 노래가 되어 나왔다. 1차 편집을 하며 듣다가 나도 놀랐다. 이왕이면 좀 더 잘 부를 걸. 그런데 최종편집에서 아무런 말씀이 없는 걸 보니 그대로 녹음도서로 완성된 것이다. 그녀에게 ‘보고 싶다’고 마음을 전한 게 되었다. 들으신 분들, 놀라셨다면 용서하시길...
계절이 선택의 여지 없이 가고 또 오듯, 물만두 님의 글귀대로 '삶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 것 같다. 한때는 내가 선택해서 살아왔다고 착각했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물밀듯 밀려오고 밀려가는 느낌. 강물에 흘러가는 꽃잎처럼 살자. 도서관 입구에서 보았다, 백목련화 꽃봉오리들을. 입을 앙다물고 야심 차게 열릴 희열의 순간을 예고하며 단단하게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었다. 폰카메라로 그걸 담고는, 어느 순간 열렸다 화르르 닫힐 그네들의 뽀얀 꽃이파리를 동시에 떠올렸다. 눈물이 새큰 났다. 하늘이 너무 새파래서만은 아니지.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그 입장이 되어 보면 또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살자. 어떤 삶이 더 낫다, 못하다 저울질 말고 그저 내 삶이 제일이려니 생각하고 살자. 누구든 살면서 남보다 우위에 놓이길 원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게 그리 중요한가. 내 삶은 이생에서 단 한 번뿐이고, 그 삶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스스로가 아름답게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중략) 살아 있어서 좋다는 건, 백 번의 불행이 닥쳐와도 단 한 번의 행복이 그 백 번의 불행보다 찬란하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 해피데이'라고 하는 건가. (별 다섯 인생 175쪽)
인터넷의 폐해도 크고 단점도 많지만 물만두님에겐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 거의 전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하다시피 한 창구가 인터넷, 윈도우였다. 수족관 물고기들에겐 그 크지 않은 세상이 세상의 전부이고 화분 속의 꽃은 그 얕은 흙밭이 세상의 전부이듯,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세상의 전부일 테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루미의 말처럼 우리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면서 동시에 거울 자체이기도 하다. 행위자이자 관찰자로서 '나'는 생이 몰아가는 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상하좌우 돌고 도는 어지러운 바퀴살이 아니라 바퀴의 굴대, 중심에서 살자.
세상에는 열 가지 보따리가 있다. 그중 아홉은 불행 보따리고 나머지 하나만 행복 보따리다.
아홉에 얽매일 것인가. 하나에 기뻐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별 다섯 인생 184쪽)
기장 마레 앞 밤바다 (2021.12.18 박유영 라이카 촬영)
밤바다처럼 알 수 없기도 알 것 같기도 한 인생.
손 (2021.12.18. 배혜경 아이폰12)
피부가 좋은 편이었던 아빠의 90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