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작업할 때마다 외롭다고 느끼곤 한다. 첫번째 책이 유독 그랬고, 두번째는 좀 나았고, 이번 세번째는 좀 더 나았다. 그래도 와인셀러가 텅텅 비어버릴 정도로 자주 외로웠던 것 같다. 딱히 외로울 일도 없는데 생각해보니 모든 걸 혼자 선택하고 혼자 해결하며 나아가야 하는 일이기에 그런 것 같다. 시월부터 두어달 동안 내 책까지 4권을 냈고 문학행사 두어 가지 신경쓰고 점자도서관 강의도 9주간 이어가며 12월 5일 종강하고 그외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수적인 일들까지 모두, 신경이 전방위로 뻗어 있었다. 

 

책이 나온 후에 밀려오는 만감, 사람에 대한 재발견 같은 게 또 가만히 느껴볼 만한 것이다. 12월 6일에는 나와 같은 시기, 같은 출판사에서 첫 수필집을 발간한 글벗과 합동 출간기념 '2인다색 에세이톡'을 잘 마쳤다. 마음이 통해 서로 동시에 제의하고 구상하였다. 티타임을 이용해 가까운 카페에서 밝고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으로 박수와 칭찬을 들었다. 서로 맞기도 좀 다르기도 하여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적절히 조율하며 진행했고 결과는 좋았다. 고마웠고 좋은 인연 나누는 글벗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각자 15명씩, 총 35명 정도 초대했다. 친구들, 문우들, 물류창고 화재로 정신 없고 타격이 크실 텐데 화분까지 보내준 지식과감성사 대표님 마음, 감사하다. 특히 내 글을 낭독해준 친구와 문우, 감동이었다. 모두 글 속 주인공들이었다.

 

초집중적으로 에너지를 너무 쓴 건지 중요한 일들을 90% 끝내고 나니 감기몸살이 제대로 찾아왔다. 13일 저녁, 마지막 문학행사를 마치고 와락 정신없이 몸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예정대로 가보고 싶었던 낯선 공간을 열에 들뜬 몸으로 헤매고 다니고 일몰의 명대성벽에 작은 나를 세웠다. 시간이 내 몸을 거슬러 지나가는 기이한 느낌, 혼몽함 같은 게 기분좋게 몰려왔다. 몸이 힘들어 날카로워질 때마다 무던히 받아준 동반자와 분리불안을 참고 견뎌준 냥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가엾은 녀석, 자주 꼬옥 안아주고 있다.

 

12, 13일 양일간 총 5시간 정도, 부산점자도서관에서 낭독봉사자 특별교육이 있었다. 외부 강사로 성우 김필진 님을 모셔서 실제 낭독녹음에 도움이 되는 알토란같은 팁을 많이 얻었다. 점자도서관 낭독봉사자들 중 10명만 신청을 받아 진행하였는데 특히 소설 낭독에 적용하여 도움이 될 것 같다. 김필진 성우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낭독봉사일도 같이 해온 분이라 현실적인 팁을 많이 주셨다. 10명 모두 개별 녹음파일을 1분30초 정도씩 음성지원실에서 미리 받아 듣고 장단점과 고칠 점을 분석해 주셨다. 내 파일은 더글러스 케네디의 <픽업> 초반부였다. 외부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없이 스스로 모니터링하는 수밖에 없는 봉사자들이라 이런 시간이 참 유용하다. 내 녹음 목소리는 살짝 비음이 들어가 있고 색기가 있다는 의외의 말을 들었다. 그런가? 모르겠다. 마이크 앞과 일상에서가 다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쁘지 않다. 보이스컬러와 어울리는 장르와 분위기의 도서를 골라 녹음하는 것도 요령이고 듣는 이에게도 그게 좋다는 말씀. 그러지 않아도 남녀 캐릭터가 분명한 소설이 부쩍 마음에 당겨온 지 좀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녹음했던 소설 중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가 부쩍 괜찮았던 도서로 기억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소설을 애호하니 앞으로 더 잘하자.^^ 목관리도 평소 잘해야 한다는 소중한 팁은 덤. 지금은 완전 허스키하다. 어서 나아야지.

 

<화영시경>의 5부 '책들려주는시간'에서는 낭독녹음 관련 글 13편을 실었다. 13년의 그 시간은 더없이 보람있고 충만한 시간이었기에 기꺼이. <화영시경>은  '꽃그림자 드리운 시간풍경'이라는 뜻을 담아 만든 제목이다. 스마트에세이 60편과 포토포에지 15편을 골조로 지은 집이다. 길고 짧은 글을 리드미컬하게 배치해 사진과 함께 변주하면서 독자가 감상하기에 편안하면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의도다. 글의 내용에 맞는 사진을 고르기는 즐거운 작업이었고 좋은 사진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기도 했다. '작가의말'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마음을 오롯이 실었다. 어여삐 봐 주시길 기대하며 벌거벗는 기분으로 또 집을 내어보인다. 이 집에는 내 삶의 이야기를 이루는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 대상들이 등장한다. 집의 어느 구석에 앉아서 또는 따라다니며 그들만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나는 또 그들을 본다. 생각하면 마음 뭉근한 대상들. 글을 쓰며 기억하고, 사랑하고, 또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감사한 것들과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또 잔잔하게 알라딘마을 이야기도 이어가길 바란다.

 "부디 당신이 통과하는 시간풍경도 꽃그림자 만발한 나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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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1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1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1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1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1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9-12-25 10:30   좋아요 0 | URL
11월20일은 아무 날도 아니어요 ㅎㅎ 그냥 그 무렵이 자꾸 발행일이 되네요. 그 무렵 제가 속한 오랜 문학협회가 일년을 마무리하며 수필나무 라는 동인지 출판기념회 를 하는 시기에요. 그 수필나무 라는 책은 올해 16호를 맞이했고 2005년 창간호부터 제가 책임을 다해왔지요. 호호 기대하던 답변이 아니라... 에세이톡 행사는 90분간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화영시경의 글을 다 읽고 저의 내면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희선 2019-12-2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세번째 책이군요 축하드립니다 두해마다 한권 내셨군요 책 나온 날짜를 보니 세권이 다 같은 날이에요 이런 우연도 있다니... 처음에는 그렇게 될지 몰랐을 듯합니다 세번이 되니 그렇게 됐구나 하는 거네요 두해 뒤에는 네번째 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글을 늘 쓰시겠군요

벌써 여러 분과 만나시기도 했군요 그런 자리 즐거우셨겠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 감기 몸살이 찾아왔군요 쉴 때는 마음 편하게 푹 쉬세요 그래야 여러 가지 일 하지요

프레이야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19-12-22 10:21   좋아요 1 | URL
희선 님 따스한 말씀에 감기몸살이 나아질 듯해요. 감사합니다 😊 발행일이 같다는 걸 저도 어느 분이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되었어요. 우연인데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요. 이 무렵 모든 일년 일이 마무리되면서 날짜가 그리 된 것 같아요. 네번째도 같은 날짜로 해볼까 합니다 ^^ 책으로 이야기로 좋은 만남 이어가고 새해에는 나름 비슷하지만 또다른 계획과 만남으로 나아가길 소망해 봅니다. 희선님에게도 그러한 나날이길 바랄게요^^

水巖 2019-12-27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책을 받으면서 이틀만에 완독을 하면서 글 맵시가 달관된 자리에서 편안하게 쓰신것 같았고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문장실력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수필이면서 시같구 시 같으면서 자연 같은 프레이야 님과 박유영님의 은은하거 부드럽고 자연스런 세번째 만남에 감탄 했습니다. 이번에 무언가 한 줄이라도 남기려 했는데.....
덜컥, 나이는 어쩌지 못하는성곽인가봐여 지난 석달 동안의 과로일지 나 며칠을 고생하다 이제야 몇자 글 보냅니다.
책 제목부터 멋있고 마음까지 와 닿는 책 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19-12-25 10:29   좋아요 0 | URL
늘 마음 여여하듯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에 힘내고 또 나아가겠습니다. 수필이면서 시 같고 시 같으면서 자연 같은, 은은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세번째 만남이라는 글귀에 마음 포근해집니다. 독자에게 제 마음이 잘 전달되었구나 싶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판화전에 너무 에너지 쓰신 거죠 ㅠ 이제 좀 나아지셨는지요. 부디 건강 조심하시구요. 11월 초에 북촌에서의 판화전에서 뵈어서 정말 기뻤어요.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되었어요.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 나올 거에요. 환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moonnight 2019-12-2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많은 일들을 다 성실히 해 나가시다니@_@;; 존경합니다. 프레이야님♡
세번째 작품 축하드립니다. 와인셀러가 텅텅 빌 정도로 자주 외로웠단 말씀이 절절히 느껴져요(와인셀러는 없습니다만-_-;)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프레이야 2019-12-25 18:34   좋아요 0 | URL
아고 감사합니다 따스한 달밤님 말씀에 마음이 폭삭폭삭 금방 나을 듯해요.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즐겁게 한 일이라 힘들진 않았어요. 남은 올해 날들도 평안히 보내시고 환한 새해 맞이해요 우리^^

페크pek0501 2019-12-2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세 번째 책이라니, 프레이야 님은 능력자, 너무도 능력자이십니다.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이런 분과 알고 지내서 영광입니당.~~

프레이야 2019-12-26 12: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가 영광이지요. ^^
칼럼니스트보다 더, 발레리나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