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환은 1960년 대 초반의 개발주의적 권위주의 국가로의 전환이었으며, 두 번째 전환은 198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제도적 민주주의의 제한적 도입이었다. 세 번째 대전환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주식회사형’ 국가로의 재탄생이었다.
이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대한민국의 주주가 아니다. 소액주주라도 되려면 적어도 뭔가를 가져야 한다. 빼앗길 가능성이 낮은 정규직 일자리, 약간의 땅이나 집 내지 아파트, 주식 등 이런저런 형태의 자산, 이들 중 무엇이라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국민의 태생적 권리로 국가로부터 각종 형태의 사회임금(무상의료, 무상교육, 연금, 실업수당, 생계보조비 등0을 받을 자격이라도 가져야 ‘소액’이긴 하지만 ‘주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실업수당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임금에만 의존하면서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국민의 상식’이다.
그렇기에 보다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 체제를 궁극적인 목적지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 길 위에서만, 밑으로부터의 압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현재의 세계체제가 낳은 한 마리 괴물을 다소 순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예산 비율은 10.4%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14년 기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그래도 2년에 1%씩 오르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프랑스(31.9%)나 핀란드(31%)와 비교하는 거야 무리라고 해도, 경제력이 한국보다 훨씬 약한 에스토니아(16.3%)와도 격차가 꽤 크다.
가장 큰 요인은 ‘성장 신화’의 지속이 아닌가 싶다. 여태까지 성장 속에서 어느 정도의 생계 안정을 이룩한 부모 세대의 지원에 힘입어 실업자가 돼도 굶을 일은 없는 많은 젊은이들은, 한편으론 ‘헬조선 지옥도’를 그리면서도, 한편으론 경제성장과 각자의 노력이 결국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자기 탓’으로 쉽게 돌린다.
재벌경제가 아무리 수출을 잘해도 다수의 삶이 나빠지기만 하는 경험을 앞으로 몇 년은 더 해야,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이 사회를 연대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살 길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인가. (26)
삼성 노동자 중에는 이미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이 56명에 이르고, 적어도 1명(14년동안 방독마스크나 보호구없이 위험물질을 다루었다가 2011년에 사망한 김진기 씨)의 경우에는 산재사망이라는 공식 판정까지도 나와 있지만, 이는 대다수 언론에서 ‘뉴스’도 되지 못하고 ‘주류’ 사회에서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몇 해 전 서울대 학생들이 ‘기업 살인’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으리라고 판단되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초빙교수 임용에 반대해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사건화도 잘 되지 않는 기업의 탐욕에 의한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서 관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몇 해 전, 조선대에서 13년이나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해온 서정민 박사가 자살했다. 그의 유서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의 지도교수가 정규직 임용을 미끼로 그로 하여금 54편이나 되는 논문을 대필하게 하는 등 문자 그대로 ‘논문 제작 기계’삼아 이용해왔다는 사실이었다.
노엄 촘스키의 명언 중 이 말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최악의 학살자는 현장에서 직접 살인을 벌이는 졸개들이라기보다는,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학력자 출신의 지휘자다.”
그러나 관피아와 함께 이 학살이 일어나도록 공을 들였으면서도, 관피아보다 훨씬 더 그늘에 가려 있는 초대형 조직은 바로 학피아, 즉 정부, 기업들과 긴밀히 유착돼 있는 대학가 내지 학계다.
이미 1969년에 촘스키는 베트남 침략의 원흉으로 아서 슐레진저나 새뮤얼 헌팅턴처럼 ‘효율적인 제 3세계 개입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어용 ‘정치학자’들을 지목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라는 세 대통령의 하나의 공통점을 지적하자면, 그들 누구도 감히 ‘서울대 마피아’라고 호칭할 수 있는 학벌조직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대학들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지만, 그 일부 (성균관대, 중앙대 등)를 아예 재벌기업이 소유하는 한국만큼 천박한 신자유주의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세월호에서 수장당한 아이들에게, 시장주의와 순응주의가 당연시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 온 고등교육기관 교원인 우리가 속죄하자면, 이제라도 학피아의 테두리를 안으로부터 과감히 부숴야 한다.
전교조의 전국 평균 가입률은 20% 정도이며, 보수적인 교총에 비해 인적 규모는 약 3분의 1밖에 안된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자면, 전교조와 흡사한 진보적 성격의 일본교직원조합의 전국 가입률은 약 28%이며, 미국 같은 경우에는 교육 부문 전체에서 조합 가입률이 35%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들먹이지만, 복지의 모범국인 스웨덴은 교사사회의 노조 가입률이 80%를 넘는다.
박근혜가 광적인 증오심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양심’의 문제다. 조합의 힘이나 조합원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한국 교직 사회에서 전교조는 ‘양심’을 대표한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한국적 교육 체제의 특징인 고질적인 사학 비리에 맞서왔고, 또 촌지와 같은 악질적 관행의 근절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체벌과 같은, 병영화된 학교에서 만연한 억압과 하급자에 대한 인격말살에 저항해오거나 비판적이었다.
한국에서 약간이라도 ‘출세’하려면 어디까지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2013년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문건이다.
‘문제 인력’은 과연 누구인가? 삼성어에서 일반적인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이들은 ‘친사’(어용)노조가 아닌 진짜 노조를 설립하려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회사의 충견이 해야 할 일은? 일차적으로는 수시로 감시하면서 “유사시 징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은 잔혹성과 냉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문건의 텍스트에는 수십 명의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고, 앞으로 또 수십,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낼지도 모를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 사고 문제는 단지 ‘이슈화’가 되어서 ‘화사 이미지 관리’에 어려움을 줄 수 있는 ‘악재’ 정도로 다루어진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동감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 SK그룹 창업주의 조카인 최철원 (M&M 회장)이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감히’ 일인시위를 벌이던 훨씬 연상의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려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힌 일이 있는데,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봉사시간 120시간이었다.
‘능력, 능률’ 이데올로기를 관통하는 심성적 코드는 크게 봐서는 세 가지다. 첫째, 타자들과의 부단한 비교를 통해 자율적 자아 발전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둘째, 무한 경쟁인만큼 무한 공포를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다. ‘무능력자’로 지목돼 낙오될까 봐 유아기부터 눈칫밥 먹으면서 내심 부들부들 떠는 것은 능력주의 사회의 일상이다.
셋째, 외부 권력자가 하급자에게 심어준 열등감의 내면화, 즉 권력이 지정한 ‘나’의 위치에 대한 수치심이 섞인 순응이다.
세 번째 코드는 대타적 비교에서 늘 자신에게 ‘나쁜 점수’를 준 사람은 결국 ‘모든 게 내 무능력 탓이오’로 일관하며 자신에 대한 배제와 억압과 착취에 맞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저항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주된 기능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 시대’를 떠들면서 “개인의 경쟁력 갖추라”고 설교하는 어용 ‘지식인’들은 바로 이와 같은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저성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남유럽 수준의 경제 파탄에는 이르지 않은 한국의 자살율이 이미 세계 최악의 경제 참사를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의 자살률보다 10배나 높은 이유는 과연무엇인가?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들처럼 능력주의는 사실상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스트레스, 열등감, 자책을 안고 불안 속에서 떨어야 하는 사회는 단기 수익은 더 올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침몰로 간다. 인간의 진정한 능력은 남들과의 경쟁적 비교가 아닌 남들과의 연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창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성적순’으로 재단되는 ‘실력’의 저주에서 벗어나 남들과 연대하면서 자기만의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간이 살길이다!
국내 보수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비용 저효율’을 탓하지만 통계적으로 봐서 한국은 고임금 사회가 전혀 아니다. 근로자 평균 연봉(약 3000만원)은 일본의 약 80%, 독일이나 프랑스의 60%, 미국이나 캐나다의 50%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다 고학력자들의 취직 경쟁은 더 치열할 때가 많고 노동시간은 훨씬 길고 노동강도도 훨씬 세다.
신자유주의는 어디에서나 노동자에게 잔혹하지만 박근혜 시대의 한국만큼 노동자를 구조적으로 쥐어짜고 조직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사회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사용자가 직장 내 공포 분위기 조성에 이용해 먹을 것이 불 보듯 뻔한 고용노동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 같은 문서를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읽는다면 19세기 말 착취공장의 이야기로 오인할지도 모른다.
한상균이라는 전국 노동자 조직의 대표자를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서 구속하는 국가를, 과연 한국 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가?
한데 국정원이 엿들었던 이야기들이 정말 그들의 주장대로 ‘전시의 시절 파괴’와 같은 허언장담이라 해도, 이를 ‘내란예비 음모’라고 말한다는 것은 무리수에 속한다. 형법 87조의 ‘내란’의 정의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인데, 대한민국 일부 영토를 떼어서 불법적 정권을 만들거나(국토 참절), 국헌을 문란케 할 만큼 전국적인 폭동을 일으키려면 130여 명 (게다가 그 중의 상당수는 무기도 다룰 줄 모르는)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간첩 단체’에 대한 소설 격의 이야기를 제조하는 것이 국정원의 특기인 셈인데, 이 정도면 ‘비과학 판타지 소설’로 봐야 할 듯하다.
박근혜 정권 시기에 접어들어 국가보안법 기소율은 노무현 시절에 비해 약 2~3배 뛰었다. 2007년에 86건, 2008년에 56건의 기소가 각각 집계됐지만, 2013년에 165건의 국가보안법 기소라는 ‘신기록’이 세워졌다. 미국의 국무부마저도 악법으로 인정한 법의 내용이야 그대로지만, 그만큼 그 ‘활용의 범위’가 넓어졌다.
수감 중인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약 600여 명)는, 세계 평화 수감자의 90% 정도를 이룬다. 국가보안법 사범, 수감된 노동자, 병역거부자, 밀양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강정마을 주인과 평화운동가.....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양심수들의 나라, 산업화되고 형식적 ‘자유민주주의’를 실행하는 나라들 중에서 양심수를 가장 많이 양산하는 전형적 인권유린국이다.
박근혜는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파업을 벌이는 노조의 지도부를 무조건 무더기로 구속하지 않는다. 대처마저 1984~1985년 광업 노동자 파업 투쟁을 탄압하면서도 그 지도부를 구속한 적은 없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되면서 3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20세기 후반기 유럽 역사상 가장 치열한 투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대체 남한 지배층이 ‘통일’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는 게 무엇일까? 답변은 간단하다. 남한 지배층은 사실 내부 동질성이 강한 하나의 배타적 집단이다. 주요 재벌과 관벌(전직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등) 그리고 언론재벌, 재벌언론들을 보면,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벼슬을 하거나 기업을 경영했던 그 조상들이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저들은 혼맥으로 철저히 이중 삼중 연결돼 있으며, 서울의 몇 군데 특정 동네에서 살며, 자녀들을 같은 학교나 같은 대학에 보낸다. 이들이 한국을 배타적으로 소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 서열 상위 1%가 개인 소유의 땅 50%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주식부자 1%가 시가총액의 63%를 소유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합의형 통일이란 결국 기원이 다른 북한 지배층과의 ‘권력 나누기’를 의미할텐데 , 저들은 그 누궁와도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다. 차라리 분단의 영구화가 저들에게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 ‘주류’의 살아있는 아이콘인 백선엽 장군이 항일운동가들을 ‘토벌’했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대한민국 지배층으로서 역사를 보는 기본 시각 자체를 본질적으로 바꿀 필요가 생겼다. 박근혜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바로 이 작업을 의미한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바탕으로 쓰여, 조선인이 일군에 입대해 장교가 되고 일군과 거래해서 이윤을 추구했던 것이 “우리나 발전을 위한 애국”이라는 식으로 서술되면 ‘친일파’는 바로 ‘애국자’가 돼 대한민국 지배층의 기원이 완벽하게 정당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머지않아 곧 닥쳐올 경제위기의 폭풍이 다수에게 생존의 마지막 희망을 빼앗아 십만 명이 아닌 백만 명이 광장으로 나가게 되면, 저들의 오산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전체 병원 중에서 공립병원은 병원 수 기준으로 6%에 불과하고 병상 수 기준으로도 10% 정도뿐이다. 참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은 73%다.
예컨대 2014년에 타이(태국)에서 군사정변이 일어나 헌정은 정지됐다. 현재 타이를 철권통치하는 사람은 그 군부의 실력자인 쁘라윳 짠오차 장군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바로 사법 처리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 자체가 금지됐지만 이 군사정권이 외국자본에 친화적인 만큼 서방 언론에서 거의 비판되지 않는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철폐시키지는 않았지만, 거의 무력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그 통치 기간인 13년 동안 해고를 당한 비판적 기자만 해도 1863명에 이르고 수십 명은 어용화된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로 영어의 몸이 됐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권은 ‘연성’ 권위주의로 불릴 만하다. 매체에서의 ‘불균형 보도(즉 정부에 대한 비판)를 사법 처벌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켜도, 대부분의 매체들이 순응주의적 태도를 보여 굳이 그 악법을 사용할 필요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파괴와 재권위주의화는 아마도 터키와 헝가리 사이의 중간적 수준에 해당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 같으면 국내외 재벌들의 정권이라 해도 어폐가 없으리라고 본다. 1930년대의 파시즘에서는 ‘아래로부터의 반동운동’으로서의 측면도 있었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신권위주의는 철저하게 ‘위로부터의 사회재편’에 해당한다.
“역사란 과거로 투영된 현재의 정치다” 소련시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자 미하일 포크롭스키의 이 말은, 특히 전통적으로 역사인식이 강한 동아시아에서 실감난다.
박정희 시대의 근본적 성격이란, 병영국가와 자본의 본격적 성장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성장을 박정희의 공로로 돌리면 안 된다. 세계 자본주의 황금기 (1950~1970년대) 시대인 박정희 시절에는 동아시아 전체가 세계시장과 연동돼 미증유의 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60~89년 사이 한국과 대만의 평균 연간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을 보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각각 6.82%와 6.17%)
한국의 고속 성장은 당시 자본주의적 동아시아 국가로서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뿐이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농업 경제에서 공업경제로 이동하고 있었던 핀란드는 이미 1950년대 후반에 보편적 국민연금을 창설하고 1970년에 무상의료를 도입했다. 굳이 북유럽이 아니더라도 1960~ 1970년대는 복지주의의 중요한 도약기였다. 한국과 여러모로 비교가 가능한 대만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험의 도입은 이미 1958년에 이루어졌다.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로 갔던 북한에서는 이미 1960년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도입됐다.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박정희라는 희대의 기회주의자가 당대의 세계적 경제흐름을 잘 타서, 태평양 전쟁 총동원기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종신집권을 꾀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다. 수출 의존과 군사주의적 국가, 재분배의 부족과 같은 박정희의 유산들은 우리 발목을 오랫동안 잡을 것이다.
한국 군인들이 베트콩을 두려워하는 베트남 농민들을 살려주는 구세주로 설정돼 있는 지점에서, 이는 어떤 이념적 입장인가를 넘어 특히 베트남에서 지금도 생존해 있는 한국군 잔혹행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2차 가해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서사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미군에 의한 흥남철수와 쌍을 이루는 것이 바로 한 베트남 마을의 부두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구출 및 철수 작전이다. 영화의 논리 차원에서는, 한국군이 미군의 ‘민간인 구제’를 본떠 행함으로써 한국이 일종의 ‘제2 미국’, 하나의 ‘아 제국’이 되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전쟁의 본질을 흐리고 국가범죄를 은폐시킬 뿐 아니라, 이 서사는 매우 강력한 ‘아 제국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역지사지의 차원에서 볼 때, 베트남 사람들이 이런 장면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국제시장>은 단순히 보수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한국 현대사라기보다는, ‘국익’과 ‘가족’의 신성한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경제적 ‘성취’를 무조건 우선시하는 만큼 개인의 독립적 개성이나 인권을 소거시켜 버리는 극우적 사고방식을 현대적으로 포장하여 다시 유포시키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김천해를 기억하는가? 울산 출신의 승려이자 계몽운동가로 1921년에 도쿄로 건너간 그는 거기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나아가서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일본 공산당으로 흡수되고 나서는 일본 공산당의 중앙 위원이 됐다.
‘친일’의 ‘일’은 결국 ‘일본’이라기 보다는 ‘일제’를 가리킨다. ‘친일파’는 정확히 말하면, 일제 식민당국이라는 정통성 없는 권력에 참여했거나 ‘부당한 거래’를 자발적으로 진행한, 특히 이미 광의의 지배자적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점하려 하는 피식민 사회 구성원을 일컫는다. 그들의 행위는 ‘민족적 배신’이라기보다는 ‘무법적 권력에 대한 부역’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최근에 새로이 각광받은 <게공선>으로 유명한 일본의 프로문학자 고바야시 다키지를 기억하는가? 공산당원인 그는 <1928년 3월 15일>이라는 소설에서 경찰들의 고문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공교롭게도 본인도 결국 검거당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그렇다면 ‘친일’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견제도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노골적인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 무법 권력에 대한 부역 행위다. ‘민족’을 떠나서 이런 행위는 근대적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곳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친일 행위는, 국내적으로도 토착사회 위에서 군림하는 폭력조직인 식민 당국의 일원이 되고 폭력 종범이 되는 것을 의미했지만, 국제적으로도 일제의 가해행위에 가담하여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민족 배신’보다는, 국내외적 권력형 폭력에의 가담이야말로 ‘친일파 문제’의 핵심이다.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민족정기를 되찾는’일이라기보다는, 폭력 사회에서 정상 사회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광복 70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일파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를 광복 100주년이 돼도 계속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절대적 보호 아래서 반공의 ‘보루’가 되어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친일파들이 구사해온 식민지적 대민 통치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경우를 보라. 그를 조준해서 물대포를 직사한 경찰의 행위를, 마땅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미수로 규정해야 한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그 의미가 불분명하고 억압적 느낌마저 강한 ‘민족 정기’가 아닌,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필요하다. 권력과 폭력이 거의 동의어가 된 이 사회에서 아이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한국 사회 폭력화의 한 주범인 친일파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결국 사회 전반의 탈폭력화의 한 출발점이 되기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뜨겁게 열망한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중국을 잠재적 주적으로 삼는 미-일-한 삼각 군사동맹의 공고화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미국의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실을, 2014년 7월에 체결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 –미-일 3자) 정보 공유 약정’이 잘 보여준다.
중국을 겨냥하는 미-일의 공격적인 패권 전략에 말려들어 한반도의 전장화 위험까지 감수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길일까?
가장 무서운 것은, 식신민지적 상황이 미군의 총검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친미 지배 엘리트와 미국 사이의 이해관계의 일치와 밀접한 유착으로 유지. 심화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불법 정보 수집 행위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며, 미국의 제1호 가상 적도 바로 중국이다. .......평화가 지속되면 몇 년 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중국은 당연히 그 어떤 전쟁도 바라지 않겠지만, 중국보다 월등히 강한 부문이라고는 군사 부문밖에 없는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유혹을 느끼지 않겠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를 방불케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계속해서 잠재적 침략굮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영세중립등의 가능성들을 꼭 배제해야 하는가?
2014년 초 동남아시아로부터의 세 가지 소식이 많은 국내인들을 놀라게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최대의 의류업체로 통하는 영원무역에서 임금 삭감이 이루어지자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경찰의 실탄에 맞아 죽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약진통상의 저임금에 신음해온 노동자들의 시위에 군대가 실탄을 발포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냈는가 하면, 또 베트남 삼성전자 건설 현장에서 현지 노동자에 대한 경비 직원의 폭력이 결국 ‘봉기’를 방불케 하는 노동자들의 집단 저항을 유발했다.
‘대들기’만 하면 바로 무력 진압이 벌어지게끔 하는 식으로 군림하는 한국 자본은 임금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류업계인 반면, 베트남에서 현지 노동자에 대한 구타가 발생된 곳은 삼성전자의 공사장이었다. 삼성전자의 국외생산 비중은 이미 80%를 넘었는가 하면,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는 약 60% 정도다.
2008년에 대우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농지의 상당 부분을 헐값으로 임대하겠다는 ‘노예계약’을 체결했다가 그 여파로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정권이 아예 무너지고만 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 기업의 ‘개도국 농지 약탈’이 국제적으로 비판받은 일은 있었지만, 다른 나라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거래들은 대체로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는다.
2014년 여름, 제 3차 세계대전의 서곡을 목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치열한 전투들과 함께 2014년 8월에 그 서곡은 참혹함의 극에 달했다. 단, 세계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같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바로 일종의 제3차 세계대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뿐이다.
100년 전과 같은 정면충돌이 완충지대에서의 대리전 등의 형태로 바뀐 것이다. 지금 대리전이 휴전협정으로 잠깐 멈춘 우크라이나도 그런 완충 지대의 하나다. 실은 한반도도 바로 미국과 그 잠재적인 적대자인 중국 사이의 완충지대에 해당한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의 대리전이 꼭 최초도 아니었다. 시리아에서의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 이란의 대리전은 이미 수년째 접어들며 20만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시리아가 한국전쟁 직후의 한반도 이상으로 황폐해졌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황폐화하는 사이에 미국, 유럽, 러시아의 군수기업들은 치솟는 매출고로 쾌재를 불러왔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새로운 형태의 세계대전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계 지배자의 두 패인 구미권 자본과 준주변부 대국들의 자본 사이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 중 누구도 완충지대 민중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시리아나 우크라이나에서의 도살극이 저들에게 이익이 되는 이상 계속 이런 사태들의 장기화를 도모할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교훈 삼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반도 전장화 방지를 위한 노력이다. 중- 미 갈등이 앞으로 한반도의 전정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남북관계 개선부터 매우 시급하다. 일단 공동 군축 등을 할 만큼 남북한 사이의 신뢰를 쌓는 것부터 급선무다. 이것은 ‘정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정의도 생존도 건강도 노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피해자들에 의해서 그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배자들이 실감해야 비로소 오늘날보다 약간 더 살 만한 사회가 윤곽이라도 잡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