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제 - 중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카와 고지로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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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나라는 역사도 오래되고 땅도 넓고 우리와 이웃해 있으면서 긴 세월 동안 큰 영향을 미친 나라다. 그런 나라가 언제부터 그렇게 커졌는지 언제부터 발전을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사실 고대 문명으로써의 중국은 작은 나라들의 연합체였기에 오늘날 관점에서 '국가' 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의 큰 나라는 아니었다. 그것이 진시황이 춘추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하나의 나라가 되면서 오늘날 중국의 판도의 기본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기는 했지만 오래되지 않아 멸망을 했기에 통일이라는 큰 일을 해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하나의 완전한 나라로 만들고 중국의 기본을 쌓은 인물이 바로 한나라의 무제다. 무제는 중국의 판도를 넓혔을뿐만 아니라 모든 문물과 제도, 문화 등을 '중국화'한 사람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정말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이때의 중국은 세계 최강의 대제국이었고 이때 완성된 기본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토대를 이룩한 사람이다. 중국 역사에서 많은 위인들이 있지만 중국의 건설자이자 완성가로써의 한 무제의 위치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그런 한 무제가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 시대별로 이야기하는 책인데 지은이의 평이 들어간 평전 형식이다. 우선 무제는 그리 쉽게 황위에 올랐는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황제가 된 것이 아니라 관도 장공주라는 당시 황실의 실력자에게 '선택'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즉위 초에는 뜻대로 정사를 펼칠 수가 없었다. 장공주도 장공주지만 태후인 두 태후도 그에게는 쉽지 않은 상대였고 황후조차도 마냥 우호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이 여인들이 황제를 압박하고 아주 허수아비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무제는 참고 기다리면서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두 태후와 장공주가 차례로 세상을 뜨면서 황실의 모든 권력은 무제가 갖게 되었다. 비로서 그의 완전한 친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내실을 다지면서도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한의 북방, 남방, 서방, 동방을 정벌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 흉노 정벌은 그의 역점 사업이었다.


다른 지역의 세력은 한나라를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흉노는 이미 전대에부터 중국을 괴롭혀왔다. 중국을 통일한 그 진시황 조차 흉노를 어쩌지 못해서 침입을 막기 위한 장성 쌓는 걸로 세월을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도움이 안되었고 무제가 즉위하기까지 굴욕적인 협상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것이 무제에게는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무제는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흉노를 정벌하기로 한다. 여기서 위청과 곽거병이라는 큰 장수가 등장한다. 그들은 무제의 두번째 황후인 위황후의 일족인데 이들의 활약으로 흉노에 큰 승리를 이룬다.


그리고 흉노에 같이 고생하던 월지국에 협공을 제안하기 위해서 장건을 파견한다. 장건은 흉노에 오랫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탈출해서 기어코 월지에 다다르지만 이때 그들은 원거주지에서 더 서쪽으로 옮긴 터였다. 협공에 대한 소득은 별로 없었으나 서방의 여러 나라를 알게 되었고 서양과 동양을 잇는 교류의 장을 열게 되었다. 장건이 개척한 서역은 동과 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길이 되었던 것이다.


무제가 오랫동안 군사를 일으켜서 호전적인 인물로만 보는데 사실 그는 유학을 크게 일으킨 유학자였다. 유학이 가진 이념이 중국을 다스리는데 중요하다고 본 그는 유학자를 가까이하고 많은 유학자를 관리로 등용을 했다. 그래서 국가의 체계를 더 짜임새있게 만들고 정치,문화,사상등에서 큰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때의 틀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흉노정벌등 해외 원정이 오랫동안 성사된 것은 이렇게 내치가 탄탄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영명하던 무제도 나이가 드니까 총기가 흐려지게 된다. 큰 토목공사를 벌이고 신비주의에 빠져서 정사를 게을리하고 결국 자신이 만든 황태자를 죽게 만든다. 흉노와의 평화 시절에 선대 황제들이 쌓아 놓은 막대한 재정도 전쟁과 토목공사를 통해서 다 달려버려서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많은 세금을 부과하게 되고 따라서 백성들의 원성도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책은 무제의 일생을 중요한 사건순으로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면 무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이 책을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최신의 관점이 아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이 정의라는 등의 중국중심적인 기술이 있어서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무제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이어서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권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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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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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보면 여러 나라가 참전한 국제 전쟁이 많다. 우리는 그 중에서 특히 많은 나라가 관련된 전쟁을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대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은 2차 대전이 아닐까 싶다. 미주 대륙과 유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일본 등 아시아까지 전 지구적으로 관련된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상해 임시 정부가 적은 수지만 참전했으니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전쟁이기 때문에 관련되어서 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전쟁은 싫지만 이런 전쟁 이야기에는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주로 남자들)이 많은데 2차 대전은 그런 점에서 이야기의 보고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번에 나온 책은 2차 대전의 여러 중요한 전투 중에서 그야말로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격렬한 전투였던 아르덴 대공세를 상세히 그린 내용이다.


사실 아르덴 대공세라고 하면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벌지 대전투'라고 하면 알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같은 이름의 영화로 유명한데 기본적으로는 아르덴 지역으로 독일군이 대규모 공격을 해서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것을 말한다. 벌지 전투는 미군에서 이름 붙였는데 벌지라는 말은 영어로 '주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의 전략 지도를 보면 꼭 주머니처럼 쭉 삐져 나온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벌지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실 당시 연합군의 주축은 미군이었고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나온 것도 미군이기 때문에 미군이 부른 것처럼 벌지 전투라고 정식 명명해도 맞지 싶다.


그럼 이 아르덴이라는 지역이 어딘지를 알아야 한다. 이 곳은 프랑스의 북동부와 벨기에의 남동부, 룩셈부르크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전체적으로 평탄하지만 깊은 삼림이 있어서 외부의 감시에 대응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래서 1차 대전때도 독일이 여기를 통해 프랑스군을 이겼고 2차 세계 대전때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때 승리의 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때의 영광을 되살리려고 했으나 몰락의 길이 되고 말았다.


전투가 일어난 1944년 12월은 이미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던 때였다. 개전 초기 파죽지세로 유럽을 점령했던 독일은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동부전선의 소련은 점령하기가 어려웠고 서부 전선은 각지에서 저항이 일어나는데다가 세계 최강의 생산력을 가진 미국이 참전하면서 점차 독일이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미국은 영국,프랑스,소련등 연합군에게 강력한 무장을 하게 했고 병참 지원도 무지막지하게 했다. 그야말로 초물량 공세를 펼쳤지만 독일은 점차 여러면에서 전력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차 대전의 향방을 연합군으로 바꾼 결정적인 작전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통해서 프랑스 파리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격을 하던 연합군은 승세를 잡긴 했으나 생각보다 독일군을 많이 밀어붙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바로 보급 문제였는데 이 때문에 전선은 잠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동부 전선에서의 소련군도 아직 폴란드 서부로 진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황은 독일군에게 잠시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 때 히틀러가 다시 한번 아르덴으로 총공격을 할 계획을 세운다. 여기를 통과해서 연합군을 남북으로 갈라 놓고 북부의 연합군을 괴멸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러고 나서 연합군과 강화 협상을 하고 그 틈을 타서 동부 전선에 집중해서 소련을 물리친다는 원대한 계획. 그럴싸하게 보이는 작전이긴 하지만 이미 전쟁의 방향이 독일의 패망쪽으로 돌아섰는데 성공할 리가 없다. 최후의 발악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전투였다. 


전쟁에 관련된 나라가 한 두 개가 아니고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이 수 없이 많은데 이 전범 국가과 협상을 한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히틀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협력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방과 독일이 힘을 합쳐서 소련을 물리쳐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사실 아르덴 대공세가 성공했다고 해도 연합군과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그게 이루어질려면 자신보다 한참 힘이 낮은 상대와의 대결시 한 대 때리고 협상하는 형식이 되어야 하는데 일시적으로 전투에 졌다고 해서 물러날 미국이겠는가. 유럽과 아시아의 두 전선에 동시에 전쟁을 할 수 있는 그 미국이? 무엇보다 당시 독일의 전력은 그런 대 전투를 치를 형편이 못되었다. 히틀러의 작전은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대로 실행된다. 이 전투를 위해서 동부 전선의 군대를 서부로 옮기고 온갖 물자를 총동원해서 그야말로 최후의 공세를 편다.


처음에는 이 공격이 먹히는 듯 했다. 사실 연합군은 독일군이 이런 식의 공세를 할 능력이 안된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허를 찔린 셈이었다. 그래서 초기 며칠 동안은 독일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며칠 안 지나서 연합군의 맹렬한 반격을 받게 된다. 히틀러는 연합군이라는 특성상 명령을 하나로 모으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여겼지만 신속하게 대응을 한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는 신속하게 군대를 재편해서 공격하게 했고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패튼이 빠르게 독일군을 무찔러 나간다. 무엇보다 독일군에게는 연료와 탄약이 부족했다. 그들의 계획은 연합군을 공격해서 군수품을 뺏어서 진격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만큼 독일군에게는 마지막으로 쥐어짜도 물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제공권은 완전히 연합군에 있었기에 계속되는 공습으로 독일군은 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한달 조금 지난 기간 동안의 이 전투를 통해서 연합군은 라인강으로의 진격이 6주 늦어졌지만 독일은 패망이 6개월 빨라졌다. 그야말로 독일 최후, 최대의 공격이었지만 그대로 실패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때 100만명의 군대가 충돌을 했고 수 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 대전을 실질적으로 끝내게 하는 서유럽 최대의 전투였던 것이다.


책은 아주 흥미롭게 당대를 잘 그려내고 있다. 아르덴 대공세를 바로 시작하지 않고 그 전에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해서 이 전투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미 기운 상황이지만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히틀러와 연합군의 오판으로 인한 전투 초기의 혼란상, 각 지휘관들의 상황에 따른 판단 등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서 한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사실 이 전투가 벌어질때 독일은 진지하게 퇴장의 핑계를 찾았어야 했다. 많은 독일 지휘관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광기에 휩싸인 히틀러는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전쟁은 히틀러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었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몇몇 실책이 있긴 했지만 아이젠하워의 지휘력은 좋았고 특히 패튼의 전쟁광 다운 '닥공' 즉 닥치고 공격은 시원한 느낌을 들게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연합군 사령관이 될려는 영국의 몽고메리는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아이젠하워가 몽고메리를 저 멀리 야전 지휘관으로 쫓아버리지 않은 것이 대단하다 싶었다.


이 책은 두 번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워낙 방대한 내용이고 상세하게 관련된 전투와 작전을 그려내고 있기에 한 번 더 읽으면 전체적인 상황이 그려지면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에 중요한 전투가 여럿 있지만 이 아르덴 대공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희생도 많았고 복잡한 양상을 띄는 사건이었다. 결국 이 전투로 독일은 껍데기만 남았고 전쟁이 끝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참으로 중요한 전투라고 하겠다. 이런 전투를 시작 전부터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수 많은 인물과 작전, 각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듯이 상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이 책은 그야말로 벌지 전투의 완성판이라고 할 만하다. 지은이는 전쟁 사학자로서 그 이름이 드높은 '엔터니 비버'다. 작가의 이름만 듣고도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전쟁사나 2차 대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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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비스마르크 -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에버하르트 콜브 지음, 김희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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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일컬을때 흔히 쓰는 수사다. 피도 눈물도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을 쓴 사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틀린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추구한 정책이 무엇을 할려고 했던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모른다. 비스마르크는 힘을 비축했지만 힘 자체를 위해서 정책을 폈던 것이 아니다. 비스마르크가 팽창주의로 주위 나라를 침략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위 나라에 침략을 안 당할려고 한 것이다.


그럼 비스마르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평화였다. 평화? 군국주의자 비스마르크가 평화주의라니. 그렇다 비스마르크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왜 훗날 철혈재상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강력한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힘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독일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가질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힘만 가진다고 평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힘을 써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럴러면 외교를 해야 한다. 외교로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끝없는 협의를 해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 밑바탕이 되는 게 힘이니 외교와 힘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독일의 상황을 이해해야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독일은 하나의 강력한 나라지만 당시 독일은 많은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겨우 조금씩 통일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주위는 강대국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라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독일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국력을 키운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수는 없는 법. 기본적으로는 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했지만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비스마르크가 전쟁을 불사하긴 했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었을 뿐 전쟁부터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책은 비스마르크가 젊은 나이에 의회에 진출했을때부터 그가 프로이센의 수상이 되어서 각종 정책을 펼칠때 그리고 수상에서 물러나서의 일대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는 능란하게 정국을 주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이해를 가진 여러 세력들을 어르고 달래서 충돌을 방지했던 것이다. 주위 강대국과 여차하면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군대를 길러놨지만 그것은 상대로 하여금 이성을 갖게 하는 일종의 제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센이 약했다면 주위에서 바로 침략을 했을지도 모른다. 강했기에 섣불리 침략하지 않고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자고 한 것이 아닐까. 


비스마르크의 일생의 목표는 조국의 부국강병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평화. 그가 꿈꾸는 그런 세상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긴장하면서 갈등을 조절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군사력을 동원하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같은 독일권인 오스트리아와의 통일도 분명 그의 생각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북부 독일의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평화적으로 지내게 함으로써 균형있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가 강력한 힘과 유연한 외교력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시켰지만 그것만 한 것은 아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국내가 안정되고 발전이 되어야 하는데 국내 정책에서도 일관되면서도 상황에 맞게 대처해서 그만큼의 국력을 쌓았다. 그가 단순히 독재자에 군국주의자가 아니었음은 나중에 일련의 사회 복지 정책의 입안을 보면 알 수 있다. 1880년대에 그는 벌써 의료보험, 재해보험, 상해와 노년 보장 보험등을 도입해서 서민들에게 최소한의 버틸 힘을 주게 된다. 당시는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던 시기인데 이로인해 빈부격차는 커지고 이 틈을 노려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있던 때였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커지고 있는 그때 적절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독일은 제국이 공고해지기도 전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분명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정책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을 했고 그의 정책을 잘 시행하기 위해서 의회를 잘 조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20여년동안 수상에 있었다고 해서 독재자로 할 수는 없다. 왕정국가에서 관직은 자신이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의 신임이 절대적인데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의 믿음이 그만큼 강했고 또 그만큼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수상직에서 내려와서 말년을 보내는 비스마르크의 모습도 보여준다. 자기에게 믿음을 보이던 황제가 죽고 새로운 젊은 황제는 그를 크게 신임하지 않았다. 그래도 독일 국민들은 비스마르크에게 큰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여러 신문 기고 등을 통해서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영향력을 행사 했다. 한번은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됨으로써 묘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족했을뿐 다시 권력의 중앙에 들어갈려고는 안했는것을 보면 선은 잘 지킨것 같기도 하다.


책은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잘 읽힌다. 오늘날 우리에게 비스마르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주위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초강대국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우리의 국력도 어디가서 약하다는 소리 들을 정도가 아니지만 주위에 워낙 깡패같은 나라들이 있어서 참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우리는 분단국이 아닌가. 북한이라는 시한 폭탄을 터트리지 않으면서 주위 나라들을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 현실은 비스마르크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에게도 냉철한 사고로 유연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외교 정책과 그것을 받쳐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길러야 하는데 군사력은 북한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 어느 정도 힘이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외교력은 어떨런지 모르겠다. 어쩌면 비스마르크보다 더 어려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생각했던 평화가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다르지 않다. 그가 추구했던 것도 평화로운 독일 통일이고 우리도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이다. 최대한 전쟁을 억제하면서 전쟁이 나면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비스마르크의 정책이 우리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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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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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역사학에서 파도 파도 또 연구할꺼리가 많은 사건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세계 대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라가 관련되었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사실 1차 세계 대전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전에 있었던 큰 전쟁에서 전선이 좀 더 확장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가 관련된 진짜 세계 대전이라면 역시 2차 대전이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갈린 이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고 전개가 되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이런 끔찍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나 중요하다고 여겼던 세계 대전에서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학살'에 의해서 수백만명이 죽어간 사실을 사람들은 많이 모른다. 아마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알 것이다. 유대인의 학살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도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은 숨겼고 그것을 알아야 할 사람들은 학살의 일부만 알았다. 


그렇게 된 요인은 여러가지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전쟁 승전국인 소련이라는 사실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련의 스탈린. 독일은 패전국이었기에 히틀러가 저지른 사실이 훗날 알려졌지만 소련은 승전국이었고 패쇄적인 공산국가였기에 그 사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는 바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사 최악의 학살자로 히틀러를 꼽지만 그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진 않은 인물로 스탈린을 들 수가 있다. 그가 소련을 통치한 이래로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도 아닌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몇명도 아닌 수백만명을 죽였던 것이다. 히틀러의 초기 집권 6년간에는 유대인들에게 '떠날' 선택을 줬다고 한다. 살아나갈 기회 자체는 준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런 것도 없었다. 이미 1933년부터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그는 스탈린식 사회주의 산업화와 집단화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죽이고 강제 이주를 시켰다. 그 와중에 수백만명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스탈린의 집단화는 개인을 죽이는 정책이었기에 많은 농민들이 저항을 했고 스탈린은 그것을 죽음으로 대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히틀러에게 유대인 말살의 의지가 있었다면 스탈린에게는 우크라이나 박멸의 의지가 있었던 것인가. 


우크라이나가 대학살의 현장이 되었던 것은 대기근에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지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굶주리게 된 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고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 해괴한 논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이 논리로 수백만명이 굶어죽게 되었다. 


이 우크라이나에는 폴란드계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폴란드계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독일과 소련 사이의 폴란드는 소련에게는 하나의 적으로 간주가 되었기에 소련 영토안의 폴란드인은 잠재적인 적국 병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폴란드 부농 박멸' 정책을 통해서 많은 폴란드인들 학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폴란드 군사 조직'을 통해서 소련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죄로 또 총살을 당한다. 그야말로 이중 삼중으로 '폴란드인'이라면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1939년은 스탈린과 히틀러 이 두 미치광이가 악수를 나눈 해다. 바로 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폴란드에 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폴란드는 서방의 지원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은 불안하고 약한 신용의 말잔치였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 양쪽에서 침공하면서 폴란드 영토를 분할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학살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자였다. 하지만 히틀러가 곧장 스탈린의 뒷통수를 치고 소련을 침공하면서 세계 전쟁은 확대된다. 이 와중에 폴란드에서는 수십만명이 또 학살된다. 그리고 독잍군은 소련 전쟁포로들과 포위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굶겨서 400만명 이상을 죽였다. 또한 독일이 점령한 동부 유럽의 유대인들 540만명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였다.


그야말로 스탈린과 히틀러는 인류사 최악의 학살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이들이 저지른 잔학 행위는 하나의 땅에서 하나의 시대에 벌어졌고 그것은 '블러드랜드'라고 불린다. 이 블러드랜드는 대략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연안국에 이르는데 독일과 소련의 중간지대에 해당한다. 여기에 살던 수많은 사람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광기에 의해 희생들 당했건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등등 전혀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대량 학살을 당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이런 대학살에 대한 진실은 금방 드러나지 않았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것은 겨우 7~80년대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방쪽의 자료일뿐이다. 유대인은 서유럽에서만 산 것이 아니라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에서도 많이 살았고 거기서 수백만명이 죽었다. 그 자료가 누락이 된 것이다. 게다가 비유대인도 수백만명이 학살을 당했다. 스탈린이 죽은 이후에도 소련의 폐쇄적인 정책은 그대로 이어갔고 스탈린의 학살이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블러드랜드는 대부분 공산국가에 소련의 영향력이 있었다. 인류사 최악의 학살극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주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는 각각 극우와 극좌를 대표하는데 극과 극이 통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이념에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이 이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전체를 위해서 개인 한 명쯤은 없어도 되었고 그것이 수백만이 되었다고 해도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는. 이 극우와 극좌가 동시에 출연했다는 것이 천 만명이 넘게 학살당하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차분하게 이 대학살을 조명한다. 방대한 자료를 차근차근 끼워 맞춰서 그 끔찍한 시대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그동안 2차 세계 대전에 대해서 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그 시대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관련 없이' 죽었는 것에 대해서는 밝히는 책이 거의 없었다. 이제 이 책으로 인해 2차 세계 대전의 함몰된 한쪽을 복원한다는 의미와 함께 잊혀져서는 안되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읽히는 편이긴 한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과 독일, 스탈린과 히틀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쉽다.승자에 대한 역사도 역사지만 관심을 덜 가지는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역사도 역사다. 승자와 피해자 모두를 봐야 진정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닐까. 대담하면서도 묵직한 충격을 주는 대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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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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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는 단순 한국사의 영역에서 벗어나 세계사속에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느냐를 비교해서 알아보게 하는 시리즈이다. 만화로 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쉬운 내용으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서 역사 초보자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짧지 않다. 아주 세밀하게 나타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핵심 내용은 다 들어 있어서 이 책만 읽어도 당시의 시대상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이번 책은 '강화도 조약'이다. 우리가 일제에 치욕을 당하게 되는 그 처음 단계. 이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우리가 강화도 조약이 1876년에 일어났고 근대적 개항이다 이런식으로 암기해서는 부족하다. 왜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때 강화도 조약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조선의 개항을 위해서 안배되고 준비되어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음모의 설계자는 일본이고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일단 일본을 보면 개항이후에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분열과 대립도 극심했다. 난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할 정도로 외국 문물에 대해서 익숙했지만 전면적인 개항과는 또 달랐다. 그야말로 일본 사회 전체가 바뀌는 일이 일어났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세력, 그 기득권을 타파하려는 세력, 그 중간에 이득을 볼려는 세력 등등 일본의 개화가 그리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속에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서양을 배우기 위해서 2년간에 걸친 서양 열강 순방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자신들이 우물안 개구리이고 내실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절단. 그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을때 국내는 여러가지 개혁으로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다. 게다가 이때 대만과 한국을 정벌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다. 대만은 실제로 정벌을 강행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비록 대만 자체를 점령하거나 식민지화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당시 일본의 해군력은 중국 청나라를 압도했다는 사실은 훗날을 기약하게 했다.


하지만 조선 정벌, 즉 정한론은 일단 내실을 다져야한다는 집권 세력에 의해서 수면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나 혼란이 계속되자 해외 원정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한론이 새롭게 부상하게 된다. 참 이해가 안되는게 당시 조선은 일본을 무시하기는 했어도 군사적으로 적대하거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곧바로 정한론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쳐들어가는가? 임진왜란때의 침략의 DNA가 수백년이 흐른 19세기까지 이어졌나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 우선 청과 대만에서 충돌을 일으켜서 적어도 청이 일본의 조선 진출에 큰 간섭을 안하게 했다. 그리고 영토 분쟁이 있던 러시와와도 타협을 통해서 영토를 확정지었다. 일본의 대외 원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중국과 러시아를 주저앉힌 것이다. 그리고 영국,미국, 프랑스등 당시 열강들도 침묵시켜서 그야말로 조선을 상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던 것이다.


한편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10년 집권이 끝나고 말았다. 사실 고종의 나이도 20살이 지나서 친정할 때가 되었는데 흥선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여러 상황을 거쳐 흥선이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쇄국을 했던 대원군과 달리 적당하게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려고 했다. 그러다가 일본 외교관을 접대하던 동래부사의 무리한 고집으로 상황은 급변한다. 안그래도 뭔가 트집을 잡으려던 일본은 이것이 자신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여기고 곧바로 무력 충돌의 기운을 피운다. 바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이 군함으로 우리의 전통 수군진을 박살내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실 이때 대원군이 집권했거나 고종도 쇄국의지가 있었다면 수 많은 희생이 났다고 해도 일본과 전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함포의 위력에 눌린 것도 있었고 당시 고종이 근대적인 개항을 할 마음이 있었기에 일본과 결국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은 여러가지 조선에 불리한 점이 많았는데 근대적 조약에 무지했던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이 강화도 조약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때가 1876년.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만화긴 하지만 대사와 설명을 통해서 많은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안타깝고 분노를 일으키게 되는 일제 강점기의 서막을 여는 부분이라서 사실 한숨이 나온다. 이번 책에서는 이제 시작하는 부분이었지만 다음 책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개가 될터라서 우울해질것 같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한다. 당시 조선이 약하기만 해서 망한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이 어떠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또 다시 안 당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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