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스마르크 -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에버하르트 콜브 지음, 김희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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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일컬을때 흔히 쓰는 수사다. 피도 눈물도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을 쓴 사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틀린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추구한 정책이 무엇을 할려고 했던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모른다. 비스마르크는 힘을 비축했지만 힘 자체를 위해서 정책을 폈던 것이 아니다. 비스마르크가 팽창주의로 주위 나라를 침략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위 나라에 침략을 안 당할려고 한 것이다.


그럼 비스마르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평화였다. 평화? 군국주의자 비스마르크가 평화주의라니. 그렇다 비스마르크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왜 훗날 철혈재상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강력한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힘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독일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가질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힘만 가진다고 평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힘을 써야 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럴러면 외교를 해야 한다. 외교로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끝없는 협의를 해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 밑바탕이 되는 게 힘이니 외교와 힘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독일의 상황을 이해해야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독일은 하나의 강력한 나라지만 당시 독일은 많은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겨우 조금씩 통일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주위는 강대국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라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독일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국력을 키운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수는 없는 법. 기본적으로는 강한 군사력을 가져야 했지만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비스마르크가 전쟁을 불사하긴 했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었을 뿐 전쟁부터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책은 비스마르크가 젊은 나이에 의회에 진출했을때부터 그가 프로이센의 수상이 되어서 각종 정책을 펼칠때 그리고 수상에서 물러나서의 일대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는 능란하게 정국을 주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이해를 가진 여러 세력들을 어르고 달래서 충돌을 방지했던 것이다. 주위 강대국과 여차하면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군대를 길러놨지만 그것은 상대로 하여금 이성을 갖게 하는 일종의 제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센이 약했다면 주위에서 바로 침략을 했을지도 모른다. 강했기에 섣불리 침략하지 않고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자고 한 것이 아닐까. 


비스마르크의 일생의 목표는 조국의 부국강병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평화. 그가 꿈꾸는 그런 세상은 사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긴장하면서 갈등을 조절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군사력을 동원하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같은 독일권인 오스트리아와의 통일도 분명 그의 생각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북부 독일의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평화적으로 지내게 함으로써 균형있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가 강력한 힘과 유연한 외교력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시켰지만 그것만 한 것은 아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국내가 안정되고 발전이 되어야 하는데 국내 정책에서도 일관되면서도 상황에 맞게 대처해서 그만큼의 국력을 쌓았다. 그가 단순히 독재자에 군국주의자가 아니었음은 나중에 일련의 사회 복지 정책의 입안을 보면 알 수 있다. 1880년대에 그는 벌써 의료보험, 재해보험, 상해와 노년 보장 보험등을 도입해서 서민들에게 최소한의 버틸 힘을 주게 된다. 당시는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던 시기인데 이로인해 빈부격차는 커지고 이 틈을 노려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있던 때였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커지고 있는 그때 적절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독일은 제국이 공고해지기도 전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분명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정책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을 했고 그의 정책을 잘 시행하기 위해서 의회를 잘 조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20여년동안 수상에 있었다고 해서 독재자로 할 수는 없다. 왕정국가에서 관직은 자신이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의 신임이 절대적인데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의 믿음이 그만큼 강했고 또 그만큼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수상직에서 내려와서 말년을 보내는 비스마르크의 모습도 보여준다. 자기에게 믿음을 보이던 황제가 죽고 새로운 젊은 황제는 그를 크게 신임하지 않았다. 그래도 독일 국민들은 비스마르크에게 큰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여러 신문 기고 등을 통해서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영향력을 행사 했다. 한번은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됨으로써 묘한 상황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족했을뿐 다시 권력의 중앙에 들어갈려고는 안했는것을 보면 선은 잘 지킨것 같기도 하다.


책은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잘 읽힌다. 오늘날 우리에게 비스마르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주위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초강대국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우리의 국력도 어디가서 약하다는 소리 들을 정도가 아니지만 주위에 워낙 깡패같은 나라들이 있어서 참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우리는 분단국이 아닌가. 북한이라는 시한 폭탄을 터트리지 않으면서 주위 나라들을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 현실은 비스마르크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에게도 냉철한 사고로 유연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외교 정책과 그것을 받쳐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길러야 하는데 군사력은 북한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 어느 정도 힘이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외교력은 어떨런지 모르겠다. 어쩌면 비스마르크보다 더 어려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생각했던 평화가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다르지 않다. 그가 추구했던 것도 평화로운 독일 통일이고 우리도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이다. 최대한 전쟁을 억제하면서 전쟁이 나면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웠던 비스마르크의 정책이 우리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스마르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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