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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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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승리를 하면서 세계는 더욱 평화로와질꺼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지역적인 분쟁은 더욱더 늘어나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을 향한 이슬람과격파의 테러다.
이미 세계는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문화를 대표하는 미국과 이슬람문화와의 충돌은 그 연원이 하루이틀이 된게 아닐뿐더러 하필 이슬람국가들이 있는곳이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 직접적으로는 석유가 나오는 곳이라서 문제가 보통 복잡하게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두 진영은 서로 싸워야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단순히 석유나 이스라엘과 이슬람국가간의 문제가 아닌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서방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기에 관련되는 많은 책들이 나왔다.
이책도 그런 문제인식을 출발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데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 근원을 기원전의 대전쟁이었던 페르시아 전쟁까지 올려놓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은 서양 고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최초의 동서문명의 격돌인 전쟁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동서문명의 충돌에 착안하여 역사적으로 최초의 문명전쟁이자 세계 대전을 소개한 책이다.

사실 페르시아 전쟁은 오늘날에도 중대한 의미가 있는 전쟁이다.
서양문명의 토대라고 할수있는 그리스 문명이 전해지지 않을수도 있었던 전쟁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도 쓰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를 비롯하여 예술,문화,자연 등등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수많은 것들이
이 그리스에서 연유하고 있는것인데 결과적으로 그리스가 이겼기때문에 이것의 보존이 가능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것이다.

페르시아전쟁은 당시의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와 수십개의 독립국가연합체였던 그리스와의 전쟁이었다.
그럼 페르시아는 어떤 나라였을까.
역사적으로는 지구상에서 최초로 나타난 '세계 제국'이었다.
이 세계 제국이란 뜻은 한 지역이나 한 국가를 지배한것이 아니라 두 국가나 지역 이상을 지배했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볼수있다.
페르시아는 4대 고대문명이라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아울렀던 제국이다.
그때까지 볼수없었던 광대한 영토와 탁월한 정치 제도등은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그에 비해 전쟁의 다른 한쪽인 그리스는 수십개의 작은 도시국가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그리스라는 공통의 분모가 있긴했으되 페르시아처럼 강력한 통일국가는 아니고 서로 대립하기도 반목하기도 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중에서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로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있었고 결국 이 전쟁도 이 두 국가를 중심으로 치루게 된다.

이 책은 이런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데 제목과는 달리 바로 전쟁사로 들어가는건 아니다.
두 주인공인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성립과 발달등을 설명하면서 전쟁을 하게되는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페르시아가 어떻게 성립되어 발달했는지가 먼저 나오고 그리스중에서도 스파르타와 그리스의 발달 상황과 특징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을 보면 페르시아가 결코 그냥 생긴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에서 차근차근 발전한것임을 알수가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국가체제가 결코 그리스보다 못했던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발달한 체제였음을 알수 있었다.
또한 스파르타나 아테네의 모습들도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것보다 더 자세히 알수 있었다.
어찌보면 물과 기름같이 달랐고 다윗과 골리앗같이 국력의 차이가 났던 두 진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결국 어떻게 전쟁을 하게되었는지 잘 나타내어주고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에 관해 관심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건 아니었다.
양 국가의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이 익숙치 않아서 바로 읽지 않으면 누군지 몰라서 흐름을 방해하고 여러 지명이나 정치체제에 관한 낱말들도 역시 어려워서 진도가 잘 안나기도 했다.
책 뒤에 찾아보기가 있지만 따로 주요인물이나 지명,관직등을 정리한 것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글의 흐름을 위해서 주는 책끝에 한꺼번에 수록했는데 여러모로 사전 지식이 부족한 독자를 위해서 본문 아래에 배치를 했으면 더 좋았을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사실 번역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조금 쉽게 우리말로 옮길수있는데 글을 조금 꼬는 경향도 있어서 글읽기가 더 수월치 않았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긴했지만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최초의 문명전쟁에 대한 흥미를 풀어주기에는 이만한
책도 없을꺼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쭉쭉 읽어내려간다면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다만, 이 책의 지은이가 이 전쟁을 9.11 테러의 바탕이 되는 문명충돌의 한 뿌리로 여기는것 같은데 그런 관점은 좀 억지로 갖다붙인거 같다. 이슬람과 페르시아가 비슷한 점이 있긴 하지만 종교로서의 이슬람문명과 함께 이야기 할수는 없지 않나 싶다.

그냥 그런것과 관계없이 동서문명의 충돌이나 전쟁자체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읽는것이 좋을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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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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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선 대체 무슨 말을 할려는 책인지 모르는 책이다. 제목이 그리 눈길을 끄는건 아니지만 내용도
그런건 아니다.

어느 여성이 있었다. 그녀 스스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꽤 좋은 직장에서 괜찮은 액수의 돈을 벌면서 살다가 어느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가정 주부로서의 삶을 사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이혼을 당한다.
한푼도 없는 빈털털이 상태로.

미국의 어느 여성이 쓴 실화인데 사실 뭐 특별날꺼도 없다. 바로 우리네 삶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권신장이 좀더 되어있는 미국에서도 우리나라랑 별반 다를께 없다는것이 좀 이채로울뿐.

이 책은 그런 경험을 겪은 한 여성이, 비슷한 처지의 여성 수백명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다.
한마디로 여성도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음...당연한거 아닌가? 그럼 남자만 알아야 하나? 남자인 나로선 그냥 쉽게 생각할수 있는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나 왜 여성이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외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일단 교육에서부터 여성은 경제와는 어느정도 차단되는 모습을 보인다.
경제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경제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사회적인 진출이 많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일이 일어나는거 아닐까.
그저 조신하게 커서 좋은곳에 시집 잘 가는것으로 여성의 미래가 정해져있다면 그것이 바로 문제일것이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다고는 해도 아직 그건 소수에 불과할 따름일것이다.

직장에서의 월급의 차별이나 임신이나 출산을 했을때의 차별, 승진의 차별, 그리고 오래 근무할수 없는것도
하나의 차별이고 그런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여성이 과연 얼마나 경제에 관심을 가질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여성이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일은 또 많이 일어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혼이라는 상태를 전제하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꼭 이혼이 아니라도 미혼모의 경우나, 갑자기 남편이 돌아갔을경우도 있을수 있을것이다.
어느것이나 여성이 경제를 알아야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인 진출이 남성에 비해 막혀있는 상태에서 그게 과연 쉬운 일인가.

이 책은 어떤 상태에서도 여성이 경제에 대해서 알고 돈을 벌라고 하고 있다.
스스로 돈을 버는 상태가 되어야 좀더 자유스러워지고 주체가 살아난다는 뜻일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돈 버는것에 대해서 관심을 끊게 된다. 더불어 경제 자체에 대해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도 경제를 남편에게만 맡겨놓을 일인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 경제에 대한 관심을 놓친 말아야 할것이다.

미국 사람이 쓴거고 미국의 상황이라서 우리나라에는 큰 관련이 없을것이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여성의 입장에서 참고할만한 내용이었다. 딱딱한 내용일꺼란 생각과는 달리 내용도 술술 잘 읽혔다.

다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밑바탕으로 쓴것이 아니라서 현실감이 좀 부족하고 '이혼'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한것이라서 상황 설정이 좀 보편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경제를 알라고 하지만 방법에 대해서 쓰여진것도 아니라서 실용성면에서도 그리 좋은 점수를 줄수있진 않다.

하지만 여성이 왜 경제에 대해서 알아야하고 돈에 대한 자립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선 설득력있게 글을 쓰고 있으니 거기에 대한 자각을 할수있다면 이 책이 가치는 빛을 발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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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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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온 나라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난리가 났던 사건. 아직도 생생하게 그때가 생각난다.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큰 자랑이었뿐 아니라 수많은 불치병 환자에게 하나의 등불이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됐던 그 사건.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았었고 사실이 밝혀져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사건.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이 바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이다.

그당시 나는 황박사의 그 존재만으로도 흐뭇하게 생각했었고 끝까지 믿어보고자 했던 많은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인가.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과 허탈감뿐이었다.
사실 아직도 왜 그가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는가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정도의 실력과 그 정도의 열의라면 좀더 천천히 가도 되지 않았을까. 세상에 비밀이 어디있다고 그렇게 끝까지
속일수 있다고 믿었던 것인가.
지금도 그런면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가 의도적이었던 실수였던 국민을 속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상을 다 속였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사회전반에 걸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것도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광복이후에 가난한 국가에서 오늘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무역 국가가 된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영웅을 얻지 못했다.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는 지도자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황박사의 등장은 그런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는 예사 영웅이 아니었다. 유사 이래로 우리나라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다른 나라에, 인류 문명사에 큰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황박사의 연구로 인해 세계 질병사에 큰 도움을 줄수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어찌보면 그런 국민적인 성원과 기대와 관심에서 불행의 씨앗이 잉태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엄청난 지지가 나중에는 결과물로 나와야한다는 강한 압박감에서 그런 조작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런 행동을 하라고 떠민적이 없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정당화될수 없을것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의 연구가 아니라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간 국가적인 연구였는데 그것이 한갖 신기루로 변해버린 이 사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것일까.

어쩌면 이 사건은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쌓여있던 우리 나라의 여러 난맥상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검증도 안하는 시스템, 진실을 호도하는 언론들의 무책임한 행태, 잘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 등등 우리 사회가 문제점으로 인식하는 것들이 전부다 드러났다고도 볼수있다.

가장 큰 책임은 물론 황박사에게 있다. 물론 조작사건에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다 관여한건 아닐것이다.
그러나 줄기 세포 연구에 있어서 모든 것을 총괄하는 대표자로 그 책임을 피할수는 없다. 그 아래에 있는 연구원이 어떤 조작을 했던 과학자로서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하는데 그런것을 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조작을 지시한건 명백한 잘못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고 처음에 하나씩 둘씩 조금씩 했던 잘못들이 나중에 쌓이고 쌓여서 겉잡을수 없는 커다란 사태로 몰고 간것이다.
그 사건 중에 그가 보여준 말바꾸기 등은 그동안에 보냈던 큰 신뢰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것은 아직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으니...

다음으로 가장 큰 책임은 언론이다.
사실 황박사 사건이 이렇게 커진데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에 다름아니다.
언론의 사명이 진실을 파헤치는것인데 황박사의 처음 등장부터 사건이 터지기전까지 그 누구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이 없었던 것이 이 사건의 비극이다.
얼마든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또, 다른 과학자를 동원해서 사실들을 검증할 수 있었는데 그런걸 하지 않은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겁한것은 결국 사실이 밝혀져서 그동안의 보도가 모두 오보로 판명이 났는데도 그것을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 언론의 태도다.
사실 멀쩡한 사실도 왜곡해서 보도하는 언론이 있는 현실에서 반성을 할것이라고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마져도 아직 못믿겠다는 투로 일관하는 모습에선 분노의 모습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태를 키운건 정부다.
국민의 막대한 세금이 줄기 세포 연구로 들어가고 있는 마당에 당연하게 그 결과를 검증하고 전반에 대해서 파악을 했어야 하는데 대통령에게까지 제대로된 정보가 올라가지 못했었다. 결국 국민의 피같은 돈 수십억이 어떻게 날아갔는가.
정부의 무능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가를 볼수 있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한편, 이미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권력화되고 신화화된 황박사의 줄기 세포 연구의 진위를 가린다는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것이다.
비록 윤리상의 논란은 있었다고 해도 줄기 세포가 수립된 사실 자체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때 그것이 가짜라고 한다면 그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우리 나라에는 잘 되는 사람에 대한 모함이나 시기 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것도 사실이다.
잘하는 사람 어떡하던지 깎아 내릴려는 못된 심보를 가진 사람이 그런 거짓 제보를 했다고 생각할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난관을 뚫고 결국 진실을 찾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한 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은 최초로 줄기 세포 조작 사건을 보도했던 의 담당 피디가 그때의 일들을 책으로 남긴 기록이다.
처음의 제보에서부터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일들을 상세히 쓰고 있는데 마치 스릴러 소설을 읽는듯이 빠른 속도로 읽혀진다.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어제일처럼 선명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명심할것은 이책도 완전한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은이 또한 진실을 100% 알고 있지 않을수도 있고 취재 윤리 부분이나 여러가지 실수를 저지른것도 사실이다.
황박사를 지지하는 사람이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나 비판적으로 봐야 할것이다.
곁가지가 아닌 이 사태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실을 봐야할것이다.

서울대의 조사에 이어서 검찰의 강도높은 조사로 대부분 밝혀졌다고는 해도 이 사건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재판결과가 나오지 않은 탓도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황박사측과 또다른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의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
혹시나 하는 국민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마지막 무언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사태를 겪으면서 과연 우리나라가 얻은것이 무엇인지 잃은것이 무엇인지 냉정히 돌아보는 것도 필요할꺼 같다.
사건에서 불거진 연구실의 여러 불합리한 것들이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고 있다는 말도 있는거 보면 그 난리를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나하는 안타까움도 생긴다.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음모설부터 시작해서 온갖 그럴싸한 이론들이 판을 친다.
말을 들어보면 수긍가는 면도 있고 참고할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진실은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줄기 세포는 조작되었고 황박사는 국민을 기만했다는 것. 다른 논란은 놔두고서라도 그 진실은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정말 알고 싶지는 않지만 꼭 받아들어야 할 그 진실을.

[리더스 가이드에서 이벤트 도서로 받아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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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테나 1 -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서양 고전 문명의 아프리카.아시아적 뿌리 블랙 아테나 1
마틴 버낼 지음, 오흥식 옮김 / 소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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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개봉했다.
예수가 결혼했고 그 후손이 어디엔가 살고 있으며 그것을 숨기기 위해 기존 교회가
갖은 행동을 한다는, 일종의 음모론 비슷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대중은 기존관념에 대해서 반기를 들거나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주장에
귀를 잘 귀울인다.
마술이 사람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술 기술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것처럼, 이면에
또다른 진실이 감춰져 있는건 아닌가하는 지적인 호기심이 발동하는것 같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근거가 부족할땐 바로 그 관심을 거두어버리는
냉정함을 보인다.
다빈치코드는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긴하나 그 논리적 타당성이 미약해서 대중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하는거 같다. 그저 잘쓰여진 '픽션 소설'로 생각을 할뿐 기존
관념을 허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 오랫동안 교육받아온 기존 사실을 뒤엎는, 그야말로 깜짝놀랄 사실을 전하는
전하는 책이 있다.
바로 '블랙 아테나'이다.
알다시피 아테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의 수호신이다.
고대 그리스는 현대 서구문화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만큼 그때 사람들도 백인이었다고 생각할
수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호신도 '흰색'이라고 예측할수있는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화이트'가 아닌 '블랙'이라니!
지은이는 제목에서부터 본래 그리스 문명이란것이 아프리카의 이집트 문명이나
페니키아같은 동방문명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수백년동안 진실이었는데 비교적 최근 1-200년사이에 진실이 은폐되고
사실이 조작되어 완전히 다른것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구사회가 찬양해 마지않는 고대 그리스 문화가 그 독창성은 별로 없고 이집트 문화의
영향아래 발전해왔다는 주장은 기존의 관념에 빠져있던 나로선 큰 놀라움이었다.
마치 '서양 고대사판 다빈치코드'의 이야기 같이 들릴 정도였던 것이다.

지은이의 전체적인 주장의 틀은 이렇다.
고대 이집트는 그리스에 식민지를 건설, 수백년을 통치하면서 훗날의 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와 동방문명을 수용하여 그리스 문화를 건설했다는 것이 이른바
'고대 모델'이고 고대 그리스는 스스로으 힘으로 문화를 꽃피웠고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을 부정하는 것이 '아리안 모델'이다.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고대 모델의 입장을 따르면서도 아리안모델과 양립하지 못하는건 아니라
는 측면에서 '수정 고대 모델'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수정된 이론이긴 하나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대전제는 그대로 받아들
이면서 그 주장의 근거를 고고학,언어학,상징학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서 논증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재미있는것은 서구문명이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라고 일컫는 그리스 문명의 역사가나 작가들이
다양한 자료를 통해 그리스 문화의 근원은 이집트 문화라고 명백히 밝힌 점이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도 그리스 문명의 뿌리는 이집트와 함께 동방문명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외 많은 고대 그리스 작가들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 그리스
문화를 추종하고 계승한다는 서구문화는 그 사실을 철저히 부정하고 기피하고 조작까지 하고
있다는것은 정말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1820년대 이전까지는 유럽사람들조차 동방문명의 영향으로 그리스문명이 발달했다는 것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럼 왜 수백년간이나 이해되어왔던 사실들이 왜곡되고 조작되고 날조된것일까?
지은이는 서로 연관된 4가지의 힘을 들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반발, '진보'관념의 대두, 인종주의의 성장, 낭만주의의 헬레니즘이 그것들이다.
과도한 민족주의는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는 인종주의로 발전했고, 앞선 민족인 유럽인의
문화의 뿌리가 '열등'한 민족인 아프리카인의 고대문명에 그것을 두고있다는 사실을 그들로
서는 받아들일수가 없었을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이슬람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반발과, 18세기 낭만주의적 열정에 잘 부합하는
그리스 문화의 특성등이 이 역사 조작이라는 거대한 음모에 뒷배경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과도한 민족주의에 의한 역사왜곡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것이 바로 일제 강점기에
강요당한 식민 사학에서 볼 수 있다. 그 식민 사학에서 아직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는 평가를 받는 마당에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역사를 조작해온 서구 문명사에 대해서 우리가
의문을 가질 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한 것이었다.
근대화의 혁명이 시작되면서 그 성과물을 세계로 전파한 서구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역사관도
함께 수출하면서 직접 당사자가 아닌 우리들로서는 그것이 조작되었다는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송곳을 주머니에 넣어 감춘다고 해서 다 감춰지는건 아니다.
그 끝이 끝내 옷을 찌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서구 사학이 감추려고 했어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수많은 실증자료를 모두 폐기
할수는 없었을것이다. 그것들은 어쨌거나 자신들이 뿌리라고 여기는 선조들의 유산이었을꺼
니깐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 용기를 가지고, 학계에서 매장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책을 펴낸 '마타 버넬'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수 없다. 주류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능히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전투적으로 이 문제를 펼쳐보인 것이다.
발표당시 예상대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수많은 비난과 비판에 대한 반론을
하기위해 계획했던 책의 출간도 미룬채 내용을 더 보강한 책을 서술했다고 하니 그 논란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간접적이나마 느낄수 있다.

물론 철옹성처럼 단단한 기존 학설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큰 둑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버넬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자극을 받아 더 많은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진행한다면 거대한 물줄기를 언젠가는
바꿀수 있지 않을까?

이책은 전체적으로 서론과 10장의 본문, 결론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개괄적인 내용을 담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10장의 내용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 진실들이
어떻게 변용되고 왜곡되고 조작되는지를 연대기순으로 설명하고 있다.
3장까지는 이집트 문명을 받아들였던 진실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고, 4장부터 10장까지는
이집트 문화에 대해 점차 왜곡되고 각색되고 통째로 바뀌는 과정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책읽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선 책의 쪽수만 880쪽이어서 그 두께에 읽을 엄두가
안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부분의 서론과 부록,주석,해설,미니사전,참고문헌등을 제외하면
본문은 거의 500여쪽으로 줄어든다. 웬만한 장편소설 두세권 정도의 분량밖에 안된다.
할 수 있다.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라.
진실의 문으로 들어설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학술적인 글이라 딱딱한 문체라서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번역 자체는
깔끔하게 잘 된거 같다.
다만 좀더 쉽게 의미전달이 될수 있게 옮길수있는 문장이 더러 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밖에 책의 장정도 튼튼하고 편집도 잘 되어 있다. 주석도 상세하고 옮긴이의 시작에서 본
자세한 해설은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고 그 기록들이란것이 취사선택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쓰여진 것에 대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우리의 태도에 이 책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
한다.
역사란 상대적인것이고 진정한 진실은 어떤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없으면 그 이면을
알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책에서는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서구 유럽 사회의 문화적 오만을 깨우치고 문화의
참된 모습과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이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같은 것은 이런 문화적인 오만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최근 외국인 노동자나 농촌으로 시집을 오는 외국인 신부의 증가로 점차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나라에게도 생각할꺼리를 준다고 하겠다.
이런 진실찾기를 통해서 문명과 문명, 문화와 문화간의 진정한 소통을 통한 인류의 평화가
지은이가 바라는 가장 큰 바램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버넬이 쓰고 있는 이 저작물을 전체가 4부작이라고 하는데 이제 1부이다.
나머지 3부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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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 - 악의 역사 4, 근대세계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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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어쩌면 인류가 시작되고 끝날때까지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얽히고 ˜鰕耽?될
두가지 대조되는 개념이다.
동양사상에서는 인간은 날때부터 선하다는 성선설과 날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설이 있을 정도로
일찍 부터 선과 악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하는,무시무시한 괴물같은 존재로서 개념을 발전시켜온것은 서양이다.
특히 기독교에서의 하나님과 대비되는 존재로 악마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고대에서 지금까지 악,악마에 대해서 그 의미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석되었는가에 대한
개념서라고 할수 있다.
이른바 '악의 역사' 4부작 시리즈인데 인간이 가진 악의 모습이 옛날부터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 4부작중 마지막권인 이 책은 비교적 근현대사에서 나타난 악의 모습을 그려서 좀더 현실감
있게 읽을수 있다.

기독교가 초기의 박해를 딛고 서양 세계의 절대종교로 자리매김한 중세에서는 악마의 존재는
절대종교를 믿기 위한 하나의 무서운 장치였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바로 악에 떨어진다는 논리로 기독교에 절대복종하게 되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것이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개혁하기 위해 일어난 종교개혁에 이어, 계몽사상, 합리주의
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고 그 의미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절대 '선'인 하나님이 있는데 왜 악마가 존재해야 하고 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냐라는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물음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에 근거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
다. 거기에 더해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는 교회의 타락과 부정은 결국 그 종교의 궁극인 하나님에
대한 부정에 대한 반항으로 악마를 영웅시하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기독교도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그때 선이라고
생각했던 교회의 행동이 얼마나 악으로 도배되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의 결과를 위해 악의 수단을 이용했다고나 할까.

어찌보면 중세의 종교개혁이후로 악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할수도 있다.
그전에 악마의 개념에 대해서 악마앞에서의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하고 그 힘에 굴복당할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겼고 선의 상징이었던 교회에 대해서 절대복종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이후로는 여러가지 사상의 등장과도 관계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교회를 '개혁'했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거대악 이었던 존재와의 싸워서 이겼다고도 볼수 있지 않을까?
이젠 악마의 존재에 대해서 더이상 무서워하고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것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이나 증명되지 않는것은 현상으로 볼수없다는 과학사상들에 이르면
역시 같은 이유로 악의 존재도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은 어김없이 있는 법. 밖에 존재했던 악마가 이젠 개개인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고 또 그 마음을 통제 할수있으리라고 봤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과거보다 더 많은 악들이 생산되고 악한 행동이 행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정녕 인간의 선택이란 말인가에 대한 물음을 지은이는 던지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개념이었던 악이 시간이 갈수록, 역사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관점과 모습을 갖게 되고
근대이후에는 그 개념이 일부분 모호해지기까지 하고 있는 것은 악을 이용하는 인간의 의지때
문이다.
그 의지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인간의 욕심일것이다.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심. 그것이 악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끊임없
는 전쟁을 하고 있는것이다.
합리적이라고 할수있는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여전하며 악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더욱더 교묘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제목은 악의 역사이고 악의 개념의 변천사에 대해 기술한 책이지만 그 속에는 악을 제어하자는
지은이의 속마음이 들어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선과 악, 그 두가지를 선택하는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일테니깐 말이다.

비록 서양에 한정된 글이긴 하지만 고대로부터 근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악에 대한 개념의 변천
사를 기술한 이책은 굳이 악이라는 의미에서만 보는것이 아니라 서양 지성사를 보는것으로 봐도
좋을만큼 내용이 풍부하다.
악이라는 무거운 단어보다 그냥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좋을것이다.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서 악의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잘 설명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신학,철학,문학과 여러가지 예술속에서의 모습도 추적하고 있어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개념을 쉽게 이끌어 준다.
번역도 매끄러운 편이고 장정도 좋으나 4부 자체의 분량이 만만치 않고 전체 4부작을 다 읽는다면
더 큰 참을성을 요하는 책이다.
시대별로 독립된 것이라서 1,2,3,4부 중 어느것을 먼저 읽어도 읽어내려가기에는 어렵지 않다.
악에 대한 지적인 탐구. 흥미로운 책읽기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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