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
곽재식 지음 / 구픽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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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장르의 글들을 많이 써온 독특한 사람이다. 고등 학교 때는 중국어를 익혔다니 인문과 과학이 결합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과학자란 특성으로 SF와 관련된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진정한 실력은 정말 글 쓰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이 몇 년에 한 번 책을 낸다면 곽작가는 금세 책을 뚝딱 만들어낸다. 솔직히 그가 쓴 책들 중에서 '명작'이라고 부를만한 책은 없다. 하지만 졸작도 없다. 전체적으로 수준작을 꾸준히 펴내는데 그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없는 능력이다.


무엇보다 곽작가 글의 가장 큰 미덕은 쉽게 잘 읽힌다는 것이다.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심심하다고 여길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쓴다. 외국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직업을 택해도 잘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도 아니고 나름 곱씹을 이야기꺼리가 많다. 가끔 TV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재미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남들은 별 것 아니고 넘어가는 것에서 생각 못한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아이디어 뱅크라고 해야 하나. 창의력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의 글쓰기 능력을 잘 발휘한 내용이다. 이른바 '엽편 모음집'. 엽편은 아주 짧은 글을 말하는데 보통 단편보다 짧은 글들이다. 읽어 보니 기존에 알고 있던 엽편 보다는 좀 긴 것 같지만 나름 완결까지 무리 없이 잘 쓰여진 글들이다. 사실 장편보다 단편이 글을 쓰기 어렵다. 짦은 분량 이내에 기승전결을 다 넣으려면 적당하게 내용을 안배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잘못하면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그런 면에서 여기 실린 작품들은 어느 정도 완성도가 괜찮은 글들을 모은 것 같다.


표제작인 '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를 보면 해장국에서 외계인을 연상시킨 것이 참 창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 어디서 해장국 먹다가 문득 생각 난 것 같다. 긴 장편도 아니니 부담 없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짧은 글로 만든 것 같은데 제일 인상적인 작품이다. 내용이 그렇게 흘러갈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역시 난 상상력이 부족한가 하는 느낌도 들게 했다.


'인공지능 때문에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는 인공지능에 관한 기존의 생각들에서 벗어난 작품인데 역시 생각 못했던 내용이다. 이미 많은 영화나 소설에 나왔던 고도로 발달한 기계에 의한 인류 멸망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방향을 돌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책 내용대로 인공지능에 빠진 인류보다는 인류보다 진화한 인공지능에 의한 지구 멸망이 더 그럴싸한 것 같다. 


총 13개의 작품이 있는데 엽편모음집 이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금방 읽을 수 있다. 짧게 시작해서 짧게 끝나기 때문에 하나하나 논평하기도 힘들지만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참 생각이 다양하고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 눈여겨 두지 않는 것들에서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낸다. 그래서 곽재식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며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깝게 느끼는 대상을 소재로 쓰기에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생각의 신선함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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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 빌런
존 스칼지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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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존 스칼지' 는 '노인의 전쟁' 을 통해서 처음 접했는데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책을 많이 펴낸 유명 작가다. 그런데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실 SF 소설이라고 해도 쉽게 잘 안 읽히는 책들도 많다. 그런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쉽게 잘 읽히는 책이 좋다. 어차피 재미 있으라고 읽는데. 그런 면에서 존 스칼지 작가는 SF 본연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흥미롭게 글을 잘 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나온 책은 기본에 많이 봤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뭔가 소품 같기도 한데 읽어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데 처음에는 다른 작가가 썼나 싶을 정도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통찰이 나타나긴 하지만 기존의 배경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잘 쓴다는 그 특성이 이 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주인공인 찰리는 거의 반 백수의 신세로 하루하루를 대출금을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길 고양이다. 그러던 어느날 TV를 통해 외삼촌이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어릴 때 이후로 본 적도 없고 연락도 거의 안하고 살았던 거의 남이나 다른 없는 사람이다. 당연히 별 다른 감정도 없을 터. 그런 그에게 삼촌의 비서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마틸다 모리슨. 그녀는 삼촌의 장례식 유족 대표자를 맡아 주면 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그 집은 찰리가 살고 있지만 아버지가 그의 배다른 형제 세 명과 공동 상속을 해 놔서 언제든지 쫓겨날 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장례식을 조금 도와주면 이 집을 내가 가지게 해 주겠다고? 안 하면 손해지. 찰리는 수락하지만 정작 장례식장에 가니 분위기가 좀 묘하다.


사실 삼촌은 주차장 관리와 관련한 회사를 가지고 있는 부자라는 정도밖에 아는 게 없다. 그런데 장례식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찾아 온 사람도 묘하다. 추모하러 온 것이 아니라 뭔가 확인하러 온 듯한?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장례는 치르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집이 폭발한다. 졸지에 살 곳이 없어진 찰리. 그런 그에게 마틸다는 누구를 따라가라고 한다. 누구를?

바로 그가 기르던 고양이 '헤라'를 따라 가란다. 헤라는 마치 사람처럼 그를 이끌어가는데 헤라를 따라가니 집이 나온다. 그 집에서 살란다. 그런데 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헤라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 같은 고양이라는 것이다! 바로 글을 쓸 줄 아는 생각하는 고양이.


헤라는 컴퓨터 자판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헤라가 그냥 길고양이가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하는 관리자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삼촌의 숨겨진 일이라고 한다. 단순한 주차장 관리 회사가 아니었나? 이제 삼촌의 일은 그의 일이 되었다. 삼촌 일을 정식으로 찰리가 대행하게 되는 것이었다.


놀랄 일은 또 이어진다. 바로 돌고래들. 돌고래가 지능이 높은 건 알겠지만 찰리가 본 돌고래는 거의 사람급이다. 돌고래의 울음 소리를 사람 말로 변환시켜주는 장치를 통해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지금 노동 쟁의 중이다. 돌고래가 노동 쟁의라니! 찰리는 점점 삼촌의 사업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대체 정체가 뭐야?


이제 찰리는 삼촌의 사업을 정식으로 운영한다. 그는 빌런들의 공갈과 협박에 대처해야 하고 고양이들을 돌봐야 하고 돌고래들과 노동 협상을 해야 한다. 그전에 빌빌거리며 살던 찰리가 아니다. 그런데 무능한 듯 보였던 찰리가 아니다. 주위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점점 상황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숨겨진 재능이 있었던가. 연락은 안 했지만 늘 주시하고 있었던 삼촌의 혜안이 맞았을 수도 있겠다. 소설 초반 약간 무기력했던 찰리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잘 펼쳐지는 내용이었다.


고양이나 돌고래가 사람과 같은 급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SF 소설이라고 해야 하긴 하겠지만 판타지적인 느낌도 있고 빌런을 처리한다는 점에서 액션 소설 같기도 하고 복합적이긴 하지만 암튼 뭐든 간에 재미가 있다. 역시 글도 잘 쓰고 상상력도 풍부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나름 현실을 풍자하고 여러 상황을 통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내용 자체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등장 인물과 내용 전개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접근성이 좋은 작품이다. 그냥 재미있는 책이란 생각으로 읽다 보면 존 칼리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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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녹취록 스토리콜렉터 11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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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호러 공포 작가들이 있지만 '미쓰다 신조' 만큼 하나의 '일가'를 이룬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그야말로 공포 장르에 특화된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스릴러 추리 장르에 비해서 공포 장르쪽의 작가는 상대적으로 적어서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대부분의 작품이 장르의 성격에 충실하고 잘 쓰여졌기에 유명한 것이다.


이른마 '미쓰다 월드' 라는 수식어가 생길 정도로 이 작가는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한 사람이다. 말 그대로 미쓰다 식 글쓰기인데 딱 읽어 보면 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른 사람이 흉내 내기 힘든. 대놓고 피가 낭자 하는 그런 공포 보다는 약간 기묘한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면서 뒤끝이 오래 가는 이야기를 많이 쓴다.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 있는데 뭐지 하면서 내용을 곱씹어 보면 은근한 공포가 밀려 오는 것이다. 이 작가의 글은 대부분 현실 속에서 일어나기에 비교적 현실감이 있다. 진짜 일어 났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그 공포의 느낌이 은근하게 오래 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나온 작품도 첫장부터 끝장까지 현실 속의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듯한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성의 느낌을 주면서 더 은근하게 무엇인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에 실린 여섯 편의 괴담 이야기를 살펴 보면 기본적으로 우리 주위의 흔한 배경에 흔한 설정이 나온다. 그러니 별로 무서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나 하나 전개시키면서 어떤 장치를 심고 있는데 이것이 조금씩 작동하기 시작하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분위기를 으스스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섯 편 작품 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빈집을 지키던 밤' 과 '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였다. 빈집을 지키던 밤은 주위에서 볼 법한 아르바이트다. 나이든 노인이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신경 쓰인 의뢰자가 그냥 집에 있어달라는 것이었다. 돌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사는 집에 하루 있다가 별 일 없으면 고액의 사례금을 준다는 것인데 서로 마주 칠 일도 없다고 한다. 진짜 쉽고 어렵지 않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그 노인의 정체가 애매하다. 보지 못해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점점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일이 터진다는 전개인데 진짜 평범한 일에서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게 했다. 마지막 장면을 상상해보면 진짜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칠 것 같다.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는 제목처럼 노란 우비의 여자라는 존재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녀는 비도 내리니 않는데 노란 색의 우비를 입고 딱 정해진 위치에 고정해서 서 있다. 주인공의 남자 친구가 자주 목격하면서 주인공도 알게 되는데 이상하다고 느끼긴 해도 별 다른 피해는 없었기에 그려려니 했지만 나중에 남자 친구가 거기에 휘말리게 되면서 큰 일이 일어난다는 내용인데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내가 자주 지나가는 길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느낌이 이상할 듯 하겠다. 미친 사람인지 아니면 치매에 걸린 노인인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이 마주치거나 나한테 말을 걸기라도 하면 오싹할 것 같다.


이렇듯 이 책은 실제 흔히 있는 주위의 소재와 배경을 통해 현실성을 높여서 더 큰 공포의 느낌을 느끼게 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내용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오묘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도시괴담 같은 은근한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미쓰다 신조는 기억할 만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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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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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수가 적다.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 오른손잡이들이 있는 곳에서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다. 그러나 왼손잡이만 있는 곳에서도 오른손잡이가 정상일까. 거기서는 당연히 오른손잡이가 비정상이다. 사실 정상과 비정상을 그렇게 구분 짓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다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인데 나누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색다른 사유를 하는 책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자폐'라는 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이 주된 등장인물이다. 시대는 임신 중 자폐라고 진단이 되면 치료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루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다. 루는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어느 대기업의 한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의 소통은 쉽지 않지만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기반으로 회사에 큰 이익을 주고 있다. 그래서 회사는 이들을 위한 여러가지 전용 시설을 제공하면서 괜찮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복지 헤택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새롭게 이들의 상사로 부임한 진 크렌쇼는 이들에게 들어가는 복지가 경제적 낭비라고 생각하고 이들을 '정상화' 시키면 그 혜택을 없앨 수 있다고 여긴다. 그에게는 '자폐'가 비정상인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에게 돈을 들이는 것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그 특수 부서에서 회사에 큰 이익을 주고 있는 것도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중세 시대 무조건 신만을 강조하던 시대 분위기가 생각난다. 그냥 극단적인 사고 방식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폐인들에게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 일지도 모른다. 정상이지 못해서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였겠는가. 그러나 루는 그것을 거부한다. 자폐는 그 자신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자폐가 있는 나 자신이 좋다. 루가 정상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요된 정상인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 루는 자신만의 의지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정상인뿐만 아니라 비정상인들에게도.


살면서 장애를 비하하거나 동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표현은 하지 않았을 뿐 내가 정상이고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겠다 싶다. 너무나 당연하게 장애는 정상인에 비해서 여러 모로 불편한 것이 많으니까.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도 엄연한 주체성이 있고 의지가 있음을 왜 생각하지 않을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렇게 보는 우리들이 '비정상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장애와 차별에 관해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이란 것인가. 신체적인 불편이 비정상이라면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정상인들은 정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자폐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던 인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인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그 내면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SF 소설로 그려냈지만 주제 의식을 아주 고급스럽게 잘 표현한 이 시대의 명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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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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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공포 장르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져서 그의 이름을 몰라도 영화의 원작자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많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아주 황당무계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바닥에 깔려있는 공포심을 아주 잘 자극한다. 그래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설정이라도 곰곰히 생각하면 아주 무서운 느낌을 들게 하는 내용을 잘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가의 잘 만들어진 공포물에 열광하는 사이 정작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이 작가가'글을 참 잘 쓴다' 라는 것이다. 사실 여러가지 설정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야 책의 완성도가 높아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면에서 이번 책은 글쟁이로써의 스티븐 킹의 능력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장편은 내용에 몰입하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잘 못할 수가 있는데 단편이나 중편은 실력이 금방 드러난다. 못하면 바로 느낌이 오는 것이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이 쓴 4편의 중편을 실었는데 역시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잘 느끼게 해준다. 단순히 미스터리나 공포 같은 장르 소설로써가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이나 에세이도 잘 쓰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실린 작품 중에서 처음에 나온 '해리건 씨의 전화기'가 제일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작품은 일종의 성장 소설이면서 노인과 어린 소년과의 우정을 그려냈는데 그리 신선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몰입하게 한 것은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아이의 시점에서 어른들의 모습도 잘 그려냈고 아이와 대비되면 노인의 모습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글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휴대폰의 초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오늘날 최고의 회사가 된 기업들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주인공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과 노인을 염려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었고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되었기에 결국 큰 복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내용은 끝에 가서 약간 으스스하게 진행되는데 죽은 사람의 휴대폰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신호가 간다는 설정이 별것 아닌거 같아도 두 세번 생각해보면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게 한다. 주인공을 헤치려는 공포가 아니라서 금방 끝나게 되었지만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서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나머지 작품들도 전체적인 것은 비슷하게 전개가 되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잔잔하게 어떤 일이 진행이 되다가 작은 부분에서 슬쩍 어떤 설정을 하더니 곧 그것이 이야기를 지배하게 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매끄러워서 어느 순간 공포물로 전환이 된다. '쥐' 에서도 주인공은 갑자기 나타난 어떤 존재와 거래를 하게 된다.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선선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딱 맞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럴싸한 설정에 들어간다. 그게 이 작가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비록 중편이라서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스티븐 킹의 주된 장기를 맛보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장편도 재미있지만 중편도 잘 쓰면 참 재미있다. 오히려 상상력을 더 극대화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 감질맛을 나게 하는 것 같다. '해리건 씨의 전화기'에서 주인공이 전화기를 계속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하고 그것이 과연 해리건씨의 영향력으로 일어난 일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마 장편이었다면 그런 생각의 과정 없이 쭉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약간 긴 중편도 작가가 가진 기본적인 글쓰기 역량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서 좋았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생각하는 것. 역시 글쟁이는 글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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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12-2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미국에 이민 왔던 80년대 후반,
Stephen King 의 소설과 영화가 압도적으로 넘쳐날 때
Mass Market Paperback 싼 책으로 사서 영어 공부할 겸 읽고
영화들마저도 빼놓지 않고 보곤 했는데

그 당시 제가 정말 뭣도 모르고 시건방지게
Stephen King 을 그저 시류에 편승하고 대중의 구미에 영합하는
인기.통속 소설 작가, 쯤이라고 성급한 오류를 저지르고
잘못된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십대 후반, 이십대 때 읽었던 Stephen King 의 예전 작품들 중,
그야말로 Classics 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을
다시 Paperback 으로 사서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인데
50 대에 새삼 감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소설집,˝If It Bleeds˝ 도 Paperback 으로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오랜만에 책을 내려 놓을 수 없는 재미에 빨려들어가서
단편이나 중편들은 천천히 한 편씩 끊어 있는다는
평소의 습관무시, 주말동안 다 읽어버렸답니다.


살리에르 2021-12-23 22:08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장르소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던 것이 사실이지요. 미국에서도 그랬었군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장르 소설은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순수 소설이 더 가치가 있다고 해봐야 뭐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데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킹의 소설은 본격 문학으로도 손색이 없는 글 잘쓰기의 표본 같아요. 저도 이 책 한번에 읽었는데 비슷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