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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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수가 적다. 희귀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 오른손잡이들이 있는 곳에서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다. 그러나 왼손잡이만 있는 곳에서도 오른손잡이가 정상일까. 거기서는 당연히 오른손잡이가 비정상이다. 사실 정상과 비정상을 그렇게 구분 짓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다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인데 나누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색다른 사유를 하는 책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자폐'라는 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이 주된 등장인물이다. 시대는 임신 중 자폐라고 진단이 되면 치료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루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다. 루는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어느 대기업의 한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의 소통은 쉽지 않지만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기반으로 회사에 큰 이익을 주고 있다. 그래서 회사는 이들을 위한 여러가지 전용 시설을 제공하면서 괜찮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복지 헤택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새롭게 이들의 상사로 부임한 진 크렌쇼는 이들에게 들어가는 복지가 경제적 낭비라고 생각하고 이들을 '정상화' 시키면 그 혜택을 없앨 수 있다고 여긴다. 그에게는 '자폐'가 비정상인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에게 돈을 들이는 것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그 특수 부서에서 회사에 큰 이익을 주고 있는 것도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중세 시대 무조건 신만을 강조하던 시대 분위기가 생각난다. 그냥 극단적인 사고 방식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폐인들에게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 일지도 모른다. 정상이지 못해서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였겠는가. 그러나 루는 그것을 거부한다. 자폐는 그 자신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자폐가 있는 나 자신이 좋다. 루가 정상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요된 정상인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 루는 자신만의 의지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정상인뿐만 아니라 비정상인들에게도.


살면서 장애를 비하하거나 동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표현은 하지 않았을 뿐 내가 정상이고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겠다 싶다. 너무나 당연하게 장애는 정상인에 비해서 여러 모로 불편한 것이 많으니까.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도 엄연한 주체성이 있고 의지가 있음을 왜 생각하지 않을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렇게 보는 우리들이 '비정상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장애와 차별에 관해서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해준다. 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이란 것인가. 신체적인 불편이 비정상이라면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정상인들은 정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자폐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던 인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성을 가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인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그 내면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SF 소설로 그려냈지만 주제 의식을 아주 고급스럽게 잘 표현한 이 시대의 명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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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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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공포 장르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져서 그의 이름을 몰라도 영화의 원작자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많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아주 황당무계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바닥에 깔려있는 공포심을 아주 잘 자극한다. 그래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설정이라도 곰곰히 생각하면 아주 무서운 느낌을 들게 하는 내용을 잘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가의 잘 만들어진 공포물에 열광하는 사이 정작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이 작가가'글을 참 잘 쓴다' 라는 것이다. 사실 여러가지 설정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야 책의 완성도가 높아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면에서 이번 책은 글쟁이로써의 스티븐 킹의 능력을 확실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장편은 내용에 몰입하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잘 못할 수가 있는데 단편이나 중편은 실력이 금방 드러난다. 못하면 바로 느낌이 오는 것이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이 쓴 4편의 중편을 실었는데 역시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잘 느끼게 해준다. 단순히 미스터리나 공포 같은 장르 소설로써가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이나 에세이도 잘 쓰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실린 작품 중에서 처음에 나온 '해리건 씨의 전화기'가 제일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작품은 일종의 성장 소설이면서 노인과 어린 소년과의 우정을 그려냈는데 그리 신선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몰입하게 한 것은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아이의 시점에서 어른들의 모습도 잘 그려냈고 아이와 대비되면 노인의 모습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글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과 휴대폰의 초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오늘날 최고의 회사가 된 기업들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주인공은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과 노인을 염려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었고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되었기에 결국 큰 복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내용은 끝에 가서 약간 으스스하게 진행되는데 죽은 사람의 휴대폰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신호가 간다는 설정이 별것 아닌거 같아도 두 세번 생각해보면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게 한다. 주인공을 헤치려는 공포가 아니라서 금방 끝나게 되었지만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서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나머지 작품들도 전체적인 것은 비슷하게 전개가 되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잔잔하게 어떤 일이 진행이 되다가 작은 부분에서 슬쩍 어떤 설정을 하더니 곧 그것이 이야기를 지배하게 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매끄러워서 어느 순간 공포물로 전환이 된다. '쥐' 에서도 주인공은 갑자기 나타난 어떤 존재와 거래를 하게 된다.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선선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딱 맞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럴싸한 설정에 들어간다. 그게 이 작가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비록 중편이라서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스티븐 킹의 주된 장기를 맛보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장편도 재미있지만 중편도 잘 쓰면 참 재미있다. 오히려 상상력을 더 극대화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 감질맛을 나게 하는 것 같다. '해리건 씨의 전화기'에서 주인공이 전화기를 계속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하고 그것이 과연 해리건씨의 영향력으로 일어난 일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마 장편이었다면 그런 생각의 과정 없이 쭉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약간 긴 중편도 작가가 가진 기본적인 글쓰기 역량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서 좋았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생각하는 것. 역시 글쟁이는 글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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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12-2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미국에 이민 왔던 80년대 후반,
Stephen King 의 소설과 영화가 압도적으로 넘쳐날 때
Mass Market Paperback 싼 책으로 사서 영어 공부할 겸 읽고
영화들마저도 빼놓지 않고 보곤 했는데

그 당시 제가 정말 뭣도 모르고 시건방지게
Stephen King 을 그저 시류에 편승하고 대중의 구미에 영합하는
인기.통속 소설 작가, 쯤이라고 성급한 오류를 저지르고
잘못된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십대 후반, 이십대 때 읽었던 Stephen King 의 예전 작품들 중,
그야말로 Classics 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을
다시 Paperback 으로 사서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인데
50 대에 새삼 감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소설집,˝If It Bleeds˝ 도 Paperback 으로 출간되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오랜만에 책을 내려 놓을 수 없는 재미에 빨려들어가서
단편이나 중편들은 천천히 한 편씩 끊어 있는다는
평소의 습관무시, 주말동안 다 읽어버렸답니다.


살리에르 2021-12-23 22:08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장르소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던 것이 사실이지요. 미국에서도 그랬었군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장르 소설은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순수 소설이 더 가치가 있다고 해봐야 뭐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데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킹의 소설은 본격 문학으로도 손색이 없는 글 잘쓰기의 표본 같아요. 저도 이 책 한번에 읽었는데 비슷하셨네요..^^
 
아르테미스 - 스페셜 에디션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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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마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앤디 위어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과학 소설을 갖고 왔는데 바로 이 책 아르테미스다. 이 작가는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전함이나 우주비행선이 나오는 등의 완전 허구적인 과학소설에 비해서 실제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그래서 더 이야기에 빠르게 빠져드는것이 아닐까 싶다.

 

화성이라는 뭔가 눈에 잡히지 않는 공간을 배경으로 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달을 배경으로 했다. 이미 달은 수 십 년 전에 인간이 다녀온 공간. 지금도 얼마든지 갈수 있지만 가봐야 더 이상 유익한 일이 아니기에 안 간다는 그 달. 사실 달은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수많은 상상력의 원천이었던 존재다. 우리에게도 달 나라 토끼 이야기가 익숙할 정도로 달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아마 언젠가 인류가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실제로 산다면 달이 아닐까 싶은데 지은이는 그런 달에 인간이 산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책을 보면 커다란 둥근 원형의 공간을 여러 개 두고 그것을 각각 연결하는 통로로 해서 하나의 도시가 달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른바 달 나라다. 완벽하게 계산된 공기와 중력 속에서 지구의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인종들이 평화롭게 사는 달의 도시다. 여기도 잘사는 사람은 잘 살고 있고 못사는 사람은 자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겨우 발 정도 뻗고 살고 있다. 하지만 지구처럼 아주 복잡하고 범죄가 많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곳이다.

 

여기에 우리의 주인공 재즈가 살고 있다. 지구의 여러 지역을 고향으로 두고 달에 이주에 온 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재즈는 인생의 대부분을 달에서만 살고 있다. 말하자면 달이 고향이고 그녀에게는 달이 지구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녀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지금은 밀수꾼인 동시에 물건을 배달하는 포터로 살고 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악착 같이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거래하던 한 갑부에게서 엄청난 돈을 벌수 있는 큰 거래를 제안 받고 지긋지긋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 제안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쉽게 얻는 것은 뭔가 탈이 나게 마련.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평화롭던 달에 살인까지 일어나게 된다. 게다가 그 살인자는 재즈까지 노리게 되고 점점 일은 커져서 달도시 전체의 운명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작인 마션에서는 화성 기지에서 고군분투하는것은 주인공 혼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러사람이 어울려사는 도시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좀 더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구성이 된거 같다. 주인공 이외에도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는것 같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그중에서도 주인공인 재즈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한거지만 이 재즈라는 여인네 아무 마음에 든다. 캐릭터가 강온약이 적절하게 잘 조화가 되어서 기분 좋은 모습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이토록 매력 있는 여인이라니! 아마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캐스팅에 이 배역을 잘 소화시킬 배우를 찾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 작가의 이력답게 이 책도 각종 실제 과학을 응용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도 치밀한 자료 조사로 진짜로 가능한 과학적 지식들에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물론 과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허구일지 알겠지만 그런거 몰라도 그럴싸하게 자연스럽게 잘 전개가 된다.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적인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쉽게 쉽게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자칫 딱딱 할수있는 과학 이야기를 내용 속에 잘 녹여서 편하게 읽을수 있게 해놨다. 그래서 긴 이야기지만 진도가 금방 금방 나가면서 재미있게 잘 읽을수 있었다.

 

영화로 나온 마션에서는 극중 배역을 백인으로 바꾸는등의 인종 차별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지은이는 그런거 없이 인종적인 편견이 없는 사람인데 이번 작은 그런 마음이 더 활발하게 표출이 된거 같다. 바로 매력적인 주인공이 백인 소녀가 아니라 아랍출신의 아버지를 둔 사우디아라비아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백인주류의 소설속에서? 그리고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위 인물들도 흑인,동양인,백인 등이 다양하게 나오고 그 배경 나라들도 러시아, 케냐, 라틴아메리카 등 다양하다. 다양한 인물들을 폭넓게 쓰는 작가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책이 아닌가싶다.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이미 전작으로 인해서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특히 주인공 재즈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랑스럽다고 해야하나. 성격은 밝고 명랑하면서도 거친 면도 있고 속 깊은 면도 있으면서도 가볍기도 하고. 뭔가 보이시한 매력이 있으면서 예쁠 때는 예쁜 그런 캐릭터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캐릭터가 확실하게 잘 구축이 되어 있어서 이야기 전개의 큰 힘이 된다. 달의 여인 재즈의 흥미로운 대활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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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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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공포 문학의 대가다. 일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해서 책을 읽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간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스티븐 킹만 있는 것은 아닐터.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터 스트라우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재주꾼이 만나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나올까 싶은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 책 '부적'이다. 공동 저작인데 어떠한 협력 관계로 어느 만큼의 역할 분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두 작가의 스타일이 언뜻 언뜻 느껴지게 된다. 


일단 이야기 구조를 보면 거대한 대서사시를 연상시킨다. 힘없는 작은 소년이 혼자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끝내 목적을 달성한다는 전체적인 이야기에 문학 작품처럼 단단한 배경 묘사와 설정으로 이야기가 두툼해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잭 소여'라는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모험 소설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따왔다고 한다. 어찌보면 모험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이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책은 주인공인 잭이 미국 동해안의 한 휴양지에서 어머니랑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단순하게 쉬러 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휴양하러 간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잭을 위로해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절친이자 잭의 보호자인 토미 삼촌도 죽고 그들에겐 기댈 곳이 없었다. 그들을 쫓아오는 것은 죽음뿐만이 아니라 소여 집안을 삼킬려는 아버지 동업자 모건까지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잭은 우연히 '스피디 파커'라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어렸을때 잭을 만난적이 있고 심지어 위험에서 구해준 적도 있는데 잭은 기억을 못한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데 이 세상에는 없는 새로운 세상이 있는데 '테러토리'라고 불리며 그곳에는 마법이 통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세상과 이 세상에는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데 '트위너'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트위너가 있는건 아닌데 일단 잭에게는 트위너가 없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트위너가 있는데 저 세상에서 어머니는 바로 여왕이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도 여왕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머니와 저 세상의 여왕을 모두 구하려면 잭이 저 세상으로 가서 여왕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소년이었던 잭으로써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저 세상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압박하던 모건도 저 세상을 알고 있고 트위너도 있다. 대체 어떤 이유로 그들을 그렇게 괴롭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모건의 검은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잭은 테러로리로 가서 '부적'을 찾아야 했다. 그 부적을 찾아서 여왕을 살리면 어머니도 살릴 수 있고 모건의 음모에서도 살아날 수가 있는 것이다.


스피디는 잭이 저 세상으로 가서 조력자를 찾아 부적을 쫓으라고 말한다. 잭은 저 세상으로 통하는 약물을 먹고 조력자인 '캡틴'을 찾지만 거기서 모건의 일당을 마주하게 된다. 알고 봤더니 어렸을때 잭을 납치할려고 했던 모건의 수하이자 살인자였다. 거기다가 모건까지 나타난다. 저 세상을 아는 사람은 몇명 없을줄 알았는데 모건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 세상의 세력을 이용해서 잭의 가족을 위협하고 제거할려고 한다.


모건의 일당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식인식물의 습겨까지 겪게 되지만 늑대인간 울프를 만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야기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 모건 때문임을 알려준다. 이쪽과 저쪽의 세상을 이용해서 큰 이익을 얻으려는 그의 욕심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울프와 함께 서쪽으로의 여정을 계속하던 잭은 경찰에 의해서 어느 교화 시설로 보내진다. 열악하면서도 착취를 하는 그 곳에서 둘은 고생을 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큰 어려움은 거기의 지배자인 가드너 목사가 사실은 저쪽 세상의 트위너였던 것이다. 저쪽 세상의 살인자는 이쪽 세상에서도 악한 존재라서 그들은 큰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 큰 일이 벌어진다. 


그 일 이후로 잭은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리처드'를 찾아가는데 그는 악당 모건의 아들이었다! 사실 모건은 이제 발톱을 드러냈지만 원래는 아버지의 중요한 동업자였다.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일으켜서 그때까지 키워왔던 것이었다. 그러기에 모건의 아들과도 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리처드와 함께 다시 저 세상으로 넘어가게 되고 거기서 여러 싸움을 통해서 결국 '부적'을 갖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는가 싶다가 모건과 그의 일당들에 의해서 다시 곤경에 처하게 되고 잭의 모험은 끝을 향해 치닫게 된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84년도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평행 세상 이론은 여러 장르에서 많이 쓰고 있는 소재여서 크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배경이었을 것이다. 책은 내용이 길지만 배경 묘사가 길어서 실제 이야기 전개 부분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진도는 빨리 나간 편이었다. 단순히 모험을 하는 이야기만 쓴 것이 아니라 심리 묘사나 배경 설명등을 상세하게 함으로써 이야기 구조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끝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잭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톰 소여의 모험'에서 보였던 톰의 모습이 연상이 된다. 하지만 아직 '부적'에 대해서 다 알려진 것도 아니다. 그리고 톰은 집에 왔지만 모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책은 모험의 뒷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고 실제로 17년 후에 후속편이 나왔고 3편도 준비중이라고 한다. 1편에서 모험을 통해 성장한 잭이 2편에서는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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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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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졌을 때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영원히 사랑해' 다. 죽을 때 까지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주가 끝나는 그때까지 사랑하겠다 뭐 그런 뜻인데 영원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꼭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소설 속 구미호나 뱀파이어처럼 수 백 년을 산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잘 안 간다. 지금의 인간은 100년만 살아도 오래 살았다고 하니.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역사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강렬하게 이어오고 있는 원초적인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사는 것. 사실 이것이 실현하기 힘든 것이기에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현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조금씩 그 꿈에 다가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평균 수명도 길어지고 있고 질병에 안 걸리고 노화 방지하는 기술도 늘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100년 넘게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오래된 욕망을 기본 배경으로 전개되는 내용이다. 배경은 근 미래의 미국 뉴욕. 이미 세상은 평균 수명이 300세에 이르렀고 과학 기술의 발달로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한 몸을 갖게 하는 시술이 행해지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자 말자 유전자 검사에 의해서 남은 수명이 얼마인가를 평가 당하게 되는데 이때 긴 수명을 가진 우수한 유전자는 '라이퍼'로 분류되어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건강 관리나 먹는 것, 직장 등 삶을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 받게 되는 것이다. 대신 정부의 지시를 모두 따라야 한다.


라이퍼로 분류되지 못한, 별로 우수하지 않은 자원은 라이퍼에 비해서 정부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아마 그리 좋은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는 라이퍼를 분류하고 이들을 관리하면서 인구 감소의 문제를 벗어날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은 아무리 풍족해도 통제를 받는 상황을 계속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성격이다. 오래된 삶에 일종의 권태과 환멸을 느끼게 된 라이퍼들은 비밀 모임을 결성해서 먹지 말라는 것을 먹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서 삶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그 모임 이름이 바로 '수이사이드 클럽'.


주인공이자 라이퍼인 레아는 이 클럽에 다니면서 자신의 삶에 좀 더 여유를 두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라이퍼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얀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게 된다. 오래전에 헤어졌던 아빠도 만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자신이 자살을 할려는 신호를 냈다고 정부에 의해서 감시를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실제로는 자살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죽는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삶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뭔가 불편스럽다. 안락하지만 통제받는 삶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사는 삶이 충돌하면서 어느 것에 가치를 두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어렸을 때 막연히 오래 살아야지 했다. 100살 정도 살아서 TV 방송에 나오고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렸을때의 철부지같은 생각이었다. 나이 들어서는 적당히 살다가 아프지 죽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 속의 라이퍼처럼 오직 자신의 외모와 생명 연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기는 힘들꺼 같다. 인간의 희노애락은 다양한데 맛있는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가끔은 우울해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때(실제로 죽지는 않고) 감시를 당한다면 그것이 참된 삶일까. 인간이라는 것이 서로간에 섞여서 함께 사는 존재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다 죽고 혼자 살아서 계속 새로운 사람은 만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기본적인 수명을 갖고 있다. 어떤 동물이던 식물이던 어느 정도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 오직 인간만이 그 법칙을 깨고 더 오래 살려고 한다. 그것이 몇년이 아니라 수백년 궁극적으로는 영원 불멸에 이르러고 한다. 이것 자체가 자연을 거스르고 자신만 살겠다는 극이기주의가 아닐까.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이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라는 점에서 책 속의 영원이라는 것은 허무하면서도 참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수월하게 읽힌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주제로 삼아서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어서 재미있다. 다만 정부의 음모 이런 면도 약하고 스릴감도 뚜렷하지 않은 편이라서 그런면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있다. 이야기 전개로 봐서 뒤에 이야기가 더 나올꺼 같기도 한데 그러면 이야기 방향이 바뀔꺼 같아서 이대로 끝내도 좋을꺼 같다. 극의 갈등 구조를 더 키우고 정교하게 배치를 했다면 좀 더 흡입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소재를 훌륭하게 잘 엮어낸 상상력이었고 '영원'의 가치는 또 다른 문제임을 생각하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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