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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려거란전쟁 : 구주대첩 세트 - 전2권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5년 6월
평점 :
고려는 나라를 일으킬 때부터 고구려를 계승하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나라 이름도 고려라고 칭했다.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을 제 2의 수도로 삼으면서 서경이라고 이름 짓고 잃어버린 옛 영토를 다시 되찾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런 고려의 움직임은 옛 고구려 땅인 만주를 장악한 세력에게는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고려가 막 건국해서 후삼국을 통일 할 때는 중국의 혼란기여서 괜찮았지만 대륙이 안정적이 되면서 중국 본토는 송나라가, 만주는 거란이 장악하게 되면서 우리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거란이 부상하게 된다. 특히 거란은 고구려의 후신이었던 발해를 멸망시켜서 고려에게는 적대적인 나라였다. 거란이 점점 강성해지고 고려의 체계로 단단해지면서 어찌 보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을 정복하려는 거란에게는 후방의 고려를 두고 송나라를 침공할 수가 없었다. 고려가 적당히 거란에게 고개를 숙였으면 큰 일이 안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고려가 어디 그럴 나라인가. 결국 고려와 거란은 일전을 불사하는 전쟁을 하게 된다.
거란의 군대는 당대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였다. 5대 10국의 혼란기를 잠재우고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를 궁지로 몰아서 멸망을 시킬뻔했다. 이미 발해라는 동북아 강국을 멸망시킨터였다. 그랬기에 고려에도 분명히 화친파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외교로 상황을 무마 시켰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 계승 의식이 강했던 당시 고려로서는 거란에게 미리 항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결국 거란의 침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총 3차에 걸쳐 장장 25년간 거란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고려거란전쟁' 이다.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동북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패한 거란은 물론 승리한 고려도 여러가지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고려의 완전한 복속을 고집한 거란은 계속해서 고려를 침략했지만 끝끝내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그 영향으로 중국 송나라를 더 압박하지 못 한데다가 국력을 소진해서 나중에 여진에게 당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고려는 이 장대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문물 특히 많은 역사 책들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역경을 극복했기에 이후에 이어지는 이 백 년의 평화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다. 고려에게는 나라의 기틀을 정비하고 튼튼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책은 이런 고려거란전쟁의 전 과정을 소설로 나타낸 것이다. 전작은 1차,2차 전쟁을 잘 이야기했다면 이번 편은 마지막 3차 전쟁으로 귀주대첩으로 많이 알려진 그 유명한 구주대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은 바로 구주대첩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이 1권이다. 2차 전쟁에서 몽진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결국 거란을 물러나게 했던 고려는 당시 약조했던 고려 현종의 거란 친조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거란은 강동6주를 내 놓으라고 했고 고려로서는 당연히 그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장차 송을 멸망시키고 대륙을 통일할 꿈을 꾸었던 거란이 말 안 듣는 고려를 이쁘게 볼 리가 없었다. 몇 번에 걸친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든 것을 거절한 고려에게 거란은 전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상권에서 점점 짙어가는 전쟁의 그림자를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2차 전쟁에서 몽진까지 하면서 권위가 땅에 떨어진 고려 현종이 차츰차츰 문물을 정비하고 국력을 기르면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초반부는 '하공진' 이라는 이름이 빛난다. 현종이 직접 고려에 오라는 압박을 뒤로 하고 대신 거란으로 갔던 하공진은 노련하게 여러 정보를 고려에 알려주면서 애국심을 발휘한다. 거란의 황제는 그 충심과 능력을 높이 사서 거란으로 귀순하라고 하지만 고려를 저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고 순국한다. 3차 전쟁 승리의 큰 원동력은 하공진 같은 충신이 있었기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권 중후반부부터 강감찬이 등장한다. 사실 구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은 문신 출신인데 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그 활약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라의 명운을 걸 전쟁이 다가오면서 그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작은 직책에서 시작해서 실제 전투를 치르고 점점 능력을 발휘하는 강감찬의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그것이 하권에 이르러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고 대첩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상황을 복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당대 최강의 군대를 맞서 싸워 승리로 이끈 최고 지휘관인 강감찬에게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없었다면 그의 빛나는 전략이 없었다면 고려가 승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전투를 치룬 여러 인물들이 없었다면 역시 고려가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은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던 구주대첩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잊혀진 주요 인물들의 활약상을 다시 되살리고 있다. 특히 강민첨과 김종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강감찬과 함께 최소한으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이들과 함께 고려의 국운을 건 대전쟁을 치룬 고려 현종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약했던 즉위초의 모습에서 한 나라를 강건하게 경영하면서 결국 외적으로부터 고려를 지켜낸 당시 고려 황제의 위상이 어떻게 보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책에서는 점차 성장하는 현종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조선에 세종이 있다면 고려에는 현종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고려 시대는 조선에 비해서 사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고려의 역사도 단순한 내용들이 많다. 구주대첩 강감찬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한 줄로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이다. 고려 중기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25년간이나 분투한 고려인들의 불굴의 의지를 엿 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인데 그 전개 과정에 대해서 잘 알기 어려웠다. 이번에 나온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편을 통해서 어떻게 이런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1차 전쟁부터 나오는 지은이의 전작을 함께 읽으면 고려와 거란간의 거대한 전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이 소설로 아주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격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적인 재미는 덜한 편이다. 하지만 딱딱한 역사책을 보기 보다는 이런 소설화된 책을 보는게 당대를 알아가는데 더 쉽고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고려거란전쟁의 실체를 알아가기에는 딱 적격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소문만 무성했던 고려거란전쟁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컸는데 관련되는 책도 나왔으니 좀 더 세밀하고 재미있게 극본을 써서 드라마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선의 임진왜란만큼이나 중요하면서 드라마틱한 내용이 이 전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거란전쟁을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책이라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