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끝나는 곳
온다 리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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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이 책 단독으로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독특하다고 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을 실제로 쓴 것이다. 작가의 '둔색환시행' 이라는 책에서 저주 받은 책으로 소개하는 바로 그 문제의 책이다. 작가는 일부분의 책 내용과 제목만 언급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실제로 그 책을 따로 펴냈는데 바로 이 책이다.


둔색환시행과 짝으로 읽으면 좋긴 하지만 이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느낌이라서 꼭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냥 독립된 다른 책으로 읽어도 된다. 특정 책에 언급된 책을 독립적으로 펴내는 형식이 참 독특한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완성도는 높고 온다 리쿠라는 작가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특이한 상황의 이야기가 잘 펼쳐진다.


책의 열 두 살 아이인 '비짱' 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름에서 보듯 딱 정해진 이름이 없다. 비짱은 일종의 별명같은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하다. 비짱이 사는 곳은 외딴 곳에 있는 '추월장' 이라는 곳이다. 유곽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이 입장에선 이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시종일관 아이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아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바로 아이에게는 세 명의 엄마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를 낳은 엄마 가즈에. 그리고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키워주는 선생님이자 엄마인 사야코. 또 추월장의 카운터를 보는 표면상의 엄마 후미코. 친엄마는 가즈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적인 엄마의 역할은 사야코라고 하겠다. 후미코는 그냥 서류상의 엄마이고. 세 명의 엄마가 있지만 한 명의 엄마만 있는 것과 같은 상황.


'사야코' 엄마는 비짱에게 창문 너머 어느 어두운 곳을 '밤이 끝나는 곳' 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곳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비짱과 엄마나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만날 수만 있다면.


책은 나인 '비짱'의 시점에서 모호하면서 애매한 분위기의 그 상황을 잘 묘사하면서 전개가 된다. 처음에 모든 것이 비밀에 쌓여 있는 듯한 내용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밝혀진다. 성별도 정체도 끝에 가서는 알려지는데 일본 근대사의 어떤 특정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것에 따르면 비짱은 그냥 '아무나'가 아니라 '존귀한 신분' 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실패하면서 비짱의 존재도 잊혀진다. 비짱은 평범하게 자라지만 과연 그 때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났는지 진짜 내 자신이 그런 신분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둔색환시행'의 액자 소설인 이 책은 작가 특유의 글쓰기가 잘 느껴지는 책이다. 온다 리쿠 작가는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도 잘 쓰는데 거기에 잘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책 전개가 좀 불친절한 면이 있긴 하지만 독특한 설정과 전개가 쉽게 잘 읽힌다. 이 책과 짝인 소설 '둔색환시행'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소설은 영화보다는 연극이 낫겠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 공감이 간다. 연극화하기에 딱 좋은 전개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화가 안되게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나? 읽는 순서는 상관없지만 둔색환시행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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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색환시행
온다 리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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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는 '히가시노 게이고' 와 함께 여러 장르의 책들을 그야말로 공장 처럼 많이 펴내는 대표적인 장르 전문 작가다.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많긴 하지만 SF나 공포 문학의 책들도 종종 쓰는데 전체적으로 작품의 질이 균일한 편이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그 이름값 만으로도 읽고 싶어지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작가의 필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 내용인데 무려 15년 만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 있었던 어떤 일을 실마리 삼아 오랫동안 내용을 숙성 시켜 서 쓴 글인데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서 분량이 길다. 내용도 특이하다기 보다는 있을 법한 내용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새삼 작가의 글쓰기 능력을 다시 보게 할 정도로 밀도 있게 쓴 책이었다.


책의 주된 소재는 소설 '밤이 끝나는 곳' 이다. 이 소설은 영상화를 시도했는데 세 번이나 중단되었다고 한다. 모두 의심스러운 사고가 일어나서 계속 이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를 찍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보니 계속해서 영상화를 시도할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저주 받았다고 느껴져서 더 이상의 진척이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 것인가. 주인공인 소설가 '후키야 고즈에' 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하는데 마침 이 상황의 관계자가 모두 모이는 크루즈 여행에 함께 갈 기회가 생긴다. 


크루즈 선상에는 이 소설의 첫 번째 감독이었던 쓰노가에와 프로듀서 신도, 편집자 시마자키 그리고 만화가 콤비인 마나베 자매가 타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소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또 소설 자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의뭉스러운 것은 고즈에의 남편인 마사하루다. 사실 이 두 사람은 각기 결혼을 하고 이번에 재혼을 한 사이인데 마사하루의 전처가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사쿠라 이즈미' 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이즈미는 시나리오를 쓰고 자살을 했기에 나중에 고즈에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왜 남편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뭔가 다른 내막이 있는 것인가. 고즈에는 묘한 느낌을 가지면서 크루즈 배를 타게 된다. 


책은 크루즈 여행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다는 점에서 '밀실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지만 아주 긴장감 높은 상태는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저주 받은 소설에 관한 여러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사건의 진실을 맞춰 갈려고 한다. 작품과 관련해서 새로운 해석도 해 보고 각 인물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 보면서 작가의 실체에 접근하려고 한다. '밤이 끝나는 곳' 을 쓴 작가 '메시아이 아즈사'는 이 작품을 끝으로 사라졌기에 더 의아한 상태다. 


원작자는 사라져서 생사를 알 수가 없고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자살했고 영화를 찍는 도중에 배우나 스태프가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니까 영상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와중에 세 번이나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이쯤 되면 대체 이 소설이 무엇이길래 또 작가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질 법도 하다. 책은 그런 수수께끼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서 그 속의 숨은 의미를 찾는 과정을 가진다.


책 분량이 좀 많긴 하지만 아주 복잡한 내용은 아니기에 술술 잘 읽힌다. 등장 인물의 처음에는 좀 헷갈리지만 이들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어서 나중에는 잘 구분이 된다. 책의 제목에 '둔색' 이라는 단어는 검은 바다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모호함'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책 내용 역시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영상화 제작이 세 번이나 중단된 것 자체가 뭔가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책은 미스터리의 형실을 취하지만 뭔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있고 판타지적인 면도 있다. 이 모든 장르에서 실력 발휘하는 작가가 자연스럽게 내용 속에 잘 녹여낸 것 같다.


책은 복잡하지 않고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꽤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이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어느 한 부분이 처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고르게 전개가 되고 있고 어렵지 않게 쓰여 져서 읽기가 좋다. 작가의 다른 작품 보다 쉽게 잘 읽힌다. 결말은 책 제목이 내포한 것처럼 약간 애매하면서 열린 결말같은 느낌도 나는데 대체 책 속 원작이 뭐였길래 이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는 소설 속 저주 받은 소설도 따로 독립해서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밤이 끝나는 곳'과 함께 세트로 읽으면 더 좋다. 두 작품 모두 작가 스타일을 확실히 느끼게 한 책이었다. 흔한데 흔하지 않은 묘한 느낌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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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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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추리 소설 중에서는 상당히 고급 스런 책이라고 생각된다. 12세기 중세를 배경으로 수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여러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그 과정이 현대 배경의 이야기 못지 않게 짜임새 있고 스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느릿한 것 같기도 한데 그 느림 속에서 빠른 느낌을 갖게 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옛날 배경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다른 시리즈와 비교해서 배경이 좀 더 다양해지고 확대된 느낌이다. 기존의 주인공 수도원 근처에서 일어난 것과는 달리 다른 수도원으로 가서 사건을 조사하는 것도 있지만 끝 부분에 민란과 납치 탈출 등 나름의 스팩타클한 모습을 보여서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배경은 여전히 내전이 진행 중인 12세기 초 영국. 한 귀족 남매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행한 수녀가 캐드펠 수사의 수도원에 오다가 사라진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른 길로 샜는지 알 수가 없다. 시대가 흉흉한 시절이라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그들은 내전을 벌이고 있는 왕후 측근의 조카들이라서 수색팀이 꾸려지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한편 캐드펠 수사는 강도로 추정되는 무리들에게 폭행 당하고 거의 나체로 길가에 버려져서 사경을 헤메는 한 수사를 치료하기 위해 다른 수도원으로 파견된다. 때는 눈도 많이 내리고 춥기도 엄청 추운 날씨라서 살아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러가지 의술에 지식이 있던 캐드펠에 의해서 목숨은 건지게 된다. 그러나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기억을 잃어버리고 만다.


캐드펠은 이 다친 수사가 귀족 남매와 수녀를 만났기 때문에 이 근처에서 단서를 찾기로 하는데 다행히 남자 아이는 찾지만 곧 이어 충격적인 것을 보고 만다. 바로 얼음 속에 한 여인이 죽은 채로 발견이 된 것이다. 그 귀족 여인인가 했는데 결국 수녀로 밝혀 진다. 이제 남매를 찾는 일과 살인자를 찾는 일이 생겼다. 모두 단서가 부족하지만 캐드펠은 하나씩 하나씩 작은 조각들을 이어서 사건의 본질을 찾아나간다.


당시는 내란 상태였기에 왕의 통제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려는 도적떼들이 있었는데 마을을 불사르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상당히 흉흉했다. 캐드펠과 함께 지역 장관의 보좌관인 휴 베링거가 이들을 잡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귀족 남매와 수녀를 헤친 장본인이 바로 이 도적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야기 후반부로 가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도적떼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할 수 있었나를 알 수 있게 하는데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을 선점해서 일종의 산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도적들은 남매의 어린 동생을 납치해서 자신들이 우위에 있으려고 한다. 이제 이야기는 특수 부대의 민간인 구출처럼 더 스팩타클한 이야기로 전개가 된다.


늘 그렇듯이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도 몰랐던. 그러나 결국 잡히게 되어 있다. 최고의 명탐정 캐스펠이 있으니 말이다. 책 끝에서는 추리력이 높고 의술에 뛰어나고 과거 전쟁에 참여했던 정도의 정보만 있던 캐스펠의 과거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결과가. 캐스펠은 결국 밝히지 않고 떠나보내지만 나중에 만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세기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역사와 허구를 적절하게 잘 섞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시리즈인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시리즈를 좋아하게 된다. 분명 현대물처럼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닌데 읽다 보면 어느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딱 읽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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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의 갈림길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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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인 마이클 코넬리는 여러 유명한 시리즈를 펴냈다. 형사, 변호사, 기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쫓는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데 모든 시리즈가 다 스릴감 있고 재미있다. 그중에서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가 제일 권 수도 많고 유명하고 그 뒤를 이어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별 접점이 없이 단독으로 시리즈를 이어갔는데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책을 펴내더니 이제는 한 팀이 되어서 나온다. 


이 둘은 잇는 강력한 줄은 배다른 형제라는 것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정의를 쫓는 마음이 비슷한 것을 보면 반쪽의 피라도 나눈 형제긴 형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슈가 더 나이 많은 형인데 이제 해리 보슈 시리즈는 나올 것 같지 않다. 보슈가 나이도 들었지만 암에 걸려서 경찰에서 은퇴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변호사인 동생 할러의 공식적인 조사관이다. 하루 종일 일하기 보단 파트 타임에 가깝긴 해도 경찰이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 앞으로는 둘이 함께 일하는 시리즈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인 할러는 초기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냥 전형적인 미국 변호사였는데 점점 정의에 눈을 뜨더니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사람들을 재심을 통해 구해주면서 진정한 사법 정의에 쾌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변호 할동도 하지만 정황상 무죄 가능성이 높은데 유죄로 판명된 사람들을 위해 '나만의 무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초아' 사건을 통해서 살인 누명을 쓰고 무기 징역으로 평생을 옥에서 썩어야 했던 의뢰인을 무죄로 만든 이후로 전국에서 수 많은 요청이 밀려왔다. 그 많은 변론 요청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형인 보슈가 맡게 된다. 오랜 기간 형사로 재직하면서 수 많은 범죄자를 봐온 전직 베테랑 형사에게 그 일은 딱 적당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사건이 '루신더 샌즈' 사건이다. 그녀는 남편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5년째 수감중이다. 남편은 경찰이었는데 여러가지 갈등을 빚던 어느 날 두 사람은 크게 싸우게 되고 샌즈가 집에 들어가고 얼마 뒤 총소리가 나면서 남편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당시 경찰을 샌즈를 혐의자로 체포하는데 문제는 자세한 수사를 하기도 전에 샌즈의 변호사가 형량 거래를 통해 살인을 인정하라고 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인정했던 샌즈는 5년을 옥살이를 하고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할러에게 요청을 한다. 샌즈에게는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아이가 사는 곳의 환경이 너무나 안 좋아서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자신이 무죄임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 많은 요청 중에서 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은 보슈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살인 사건 조사 중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재심이란 것은 정말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기각당하고 아주 극소수만 받아들여지는데 할러와 보슈는 그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경험 많은 보슈가 사건에서 먼가를 발견하고 조금씩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 사건이 진짜 무죄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진범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경찰에서 조사한 것들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정말 많은 증거와 논리를 찾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과정을 하나 하나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 보슈의 성실함과 함께 변론에 번뜩이는 재주가 있는 할러의 모습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책은 미국 사법 제도를 잘 드러내고 있어서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도 검찰의 안 좋은 모습으로 욕을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보다 더 많은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미국이니 그 중에 어리석거나 부패한 검사가 왜 없겠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검사의 모습을 보면 역시라는 생각도 들고. 논리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데도 자신들의 오류는 없다고 여기는 것이 참 화가 난다. 어떻게 보면 그런 막강한 자의식으로 무장한 사법 기관을 상대로 무죄를 이끌어내는 할러의 변론이 참 멋지다.


책은 보슈의 조사를 바탕으로 할러의 법정에서의 변론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다. 판사를 상대로 검사와의 치열한 논거 대결이 짜릿한 스릴감을 느끼게 한다. 책을 보면 검찰의 논리도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넘어갈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그러면서도 치사하고 비열한 방법도 쓰는 것 보면 어처구니 없기도 했다. 물론 이것을 우리의 주인공이 다 박살을 내지만.


마이클 코넬리의 책은 빠르게 전개하는 내용이 아니다. 호흡이 길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박진감 있다. 자료가 하나씩 수집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논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다. 법정에서의 할러의 말솜씨는 군계일학이다. 이 사건은 할러만이 만들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 


모든 추리 스릴러 소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 책도 쭉 찬찬히 읽어야 100%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논리를 구축해가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아서 띄엄띄엄 읽으면 앞에 부분을 잊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증거들이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번에 읽어야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마이클 코넬리는 모든 작품에서 등장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잘 그린다. 단순한 사람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런 면 저런 면 보여주면서 실제적인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주역인 할러와 보슈는 물론이고 조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잘 그리고 있어서 더 개연성 있게 느껴진다. 몇몇 인상적인 인물들은 나중에 새로운 시리즈로 나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조슈의 동료였던 '르네 발라드'를 주인공으로 한 책도 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책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법정 스릴러를 느낄 수 있는 최정상급 소설이다. 책 읽고 넷플릭스에 드라마화 된 것을 보면 더 좋겠다. 장르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어야 할 바로 그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책이다. 후회 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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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몬스터 1~2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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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이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끈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이 나왔다. 이 작가는 늘 인간 내면의 여러 모습과 사회 현실을 정밀하게 조합해서 현실성 있는 작품을 잘 만드는데 이번 책은 그 능력이 아주 원숙하게 드러난 것 같다. 감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있었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주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나 각 등장 인물의 복합적인 모습 그리고 소소한 반전 등이 잘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책이었다.


이 책은 독일의 소도시 '타우누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배경으로 '폰 보덴슈타인' 과 '피아 산더'라는 두 형사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타우누스와 그 인근에서 벌어지기에 타우누스 시리즈라고 한다. 책은 각각 단독의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형사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생이 누적된다. 그래서 시리즈 1편부터 읽으면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사건 해결이 중심이라서 각각 따로 읽어도 큰 상관은 없다.


추운 12월의 어느 날에 리시라는 한 소녀가 목이 졸린 채 발견된다. 보덴슈타인과 피아를 중심으로 한 호프하임 경찰서의 강력11반은 바로 수사에 착수한다. 일단 피해자의 몸에 남아 있는 유전자 정보를 분석한 결과 특정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난민 출신의 '파바드 나흐무디'였다. 그는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리시와는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당연하게 그를 찾아봤지만 사건 이후 종적이 묘연하다. 결국 파바드의 신원이 언론에 공개가 되고 그는 살인자가 된다.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난민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사건의 본질과 관련 없이 사회는 들끓는다.


한편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한 남자가 숲에서 도망치다가 차에 치여 사망하는데 사건 자체가 이상하다. 남자가 맨발로 도망친 것도 이상한데 몸에서 여러 수상한 모습을 발견한다. 단순한 교통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건을 수사하면 수사할 수록 배후에 뭔가 거대한 것이 있음이 밝혀지고 더 복잡해진다. 이 하나의 사건에서 과거의 사건들의 연결 고리가 발견이 되고 사건은 점점 규모가 커진다. 그리고 리시 사건과도 연결이 되면서 엄청난 회오리가 되어 나타난다.


책은 그야말로 휘몰아치듯 전개가 된다. 처음에 한 소녀의 죽음은 많은 단순한 살인 사건 중의 하나라고 여겼지만 점점 파고 들수록 복잡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게다가 큰 단서도 없는데 여론은 난리를 치고 수사 팀원들의 피로도 높아진다. 하지만 결국 끈기 있게 단서들을 모으고 그것을 조합하고 그리고 오랜 수사 경험에서 오는 통찰력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간다. 책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수사를 따라가는 그 자체로 스릴감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건의 배경인 독일은 유럽에서 이민자와 난민이 많은 국가에 속한다. 70년대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가 일하러 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족한 일손을 외국 노동자의 수입을 통해서 해결했고 지금은 수 백 만의 외국 출신 이민자가 있다. 거기에 각종 내전과 관련한 난민들도 많다. 이민자나 난민이 규모가 작을 때는 통제가 되었지만 그 수가 엄청난 상태에서는 통제가 쉽지 않다. 독일은 지금 이들의 각종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전반적인 반이민, 반난민 정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극우파들이 계속해서 선동하고 있어서 사회 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다. 책은 그런 사회상을 잘 반영해서 하나의 배경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법 불신이 우리 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건의 중심은 '사적 제재'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결국 사법 체제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범죄에 대해서 적절한 벌을 내려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는 것에 대한 극단적인 행동이 사적 제재다. 우리 나라도 악질의 범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감형이 되고 또 전관 변호사를 써서 풀려나고 하는 일이 제법 있다. 돈이 없으면 작은 범죄에도 감옥 살이 하는 것이다. 옛날 한 범인이 말했던 '무전유죄 유전무죄' 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은 그만큼 사법 불신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책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사적 제재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열광한다. 죄를 지었으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 제재가 퍼지면 사회는 망한다. 그것은 오히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게다가 악질 범죄자만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 책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혐의가 없는데도 죽을 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에 의한 형벌이 아닌 사적인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다. 정의가 부족한 사법 행위에 실망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적 제제를 바라면 안된다. 내가 그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분 나쁘다고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책은 이런 사적 제재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 작가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늘 실망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다. 글쓰기 이력이 오래되면서 작품의 수준도 높아지는 것 같다. 시리즈 중에서 몰입도가 제일 좋았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11반 동료 형사들의 모습도 입체적으로 잘 그려졌다. 사건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개인적인 모습도 잘 묘사하면서 현실속에 있는 경찰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좋았다. 시리즈가 이어질 수록 여러 인물들의 서사가 쌓이면서 더 감정이입이 되고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책은 한번에 훅 읽는 것이 좋다. 등장 인물이 낯선 독일 이름이어서 좀 헷갈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좀 복잡해서 중간 중간 읽으면 내용 따라가는데 힘들다. 날 잡고 쭉 읽어야 이 책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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