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고려거란전쟁 : 구주대첩 세트 - 전2권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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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나라를 일으킬 때부터 고구려를 계승하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나라 이름도 고려라고 칭했다.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을 제 2의 수도로 삼으면서 서경이라고 이름 짓고 잃어버린 옛 영토를 다시 되찾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런 고려의 움직임은 옛 고구려 땅인 만주를 장악한 세력에게는 현실적인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고려가 막 건국해서 후삼국을 통일 할 때는 중국의 혼란기여서 괜찮았지만 대륙이 안정적이 되면서 중국 본토는 송나라가, 만주는 거란이 장악하게 되면서 우리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거란이 부상하게 된다. 특히 거란은 고구려의 후신이었던 발해를 멸망시켜서 고려에게는 적대적인 나라였다. 거란이 점점 강성해지고 고려의 체계로 단단해지면서 어찌 보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을 정복하려는 거란에게는 후방의 고려를 두고 송나라를 침공할 수가 없었다. 고려가 적당히 거란에게 고개를 숙였으면 큰 일이 안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고려가 어디 그럴 나라인가. 결국 고려와 거란은 일전을 불사하는 전쟁을 하게 된다.


거란의 군대는 당대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였다. 5대 10국의 혼란기를 잠재우고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를 궁지로 몰아서 멸망을 시킬뻔했다. 이미 발해라는 동북아 강국을 멸망시킨터였다. 그랬기에 고려에도 분명히 화친파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외교로 상황을 무마 시켰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 계승 의식이 강했던 당시 고려로서는 거란에게 미리 항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결국 거란의 침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총 3차에 걸쳐 장장 25년간 거란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고려거란전쟁' 이다.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동북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패한 거란은 물론 승리한 고려도 여러가지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고려의 완전한 복속을 고집한 거란은 계속해서 고려를 침략했지만 끝끝내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그 영향으로 중국 송나라를 더 압박하지 못 한데다가 국력을 소진해서 나중에 여진에게 당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고려는 이 장대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문물 특히 많은 역사 책들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역경을 극복했기에 이후에 이어지는 이 백 년의 평화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다. 고려에게는 나라의 기틀을 정비하고 튼튼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책은 이런 고려거란전쟁의 전 과정을 소설로 나타낸 것이다. 전작은 1차,2차 전쟁을 잘 이야기했다면 이번 편은 마지막 3차 전쟁으로 귀주대첩으로 많이 알려진 그 유명한 구주대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은 바로 구주대첩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이 1권이다. 2차 전쟁에서 몽진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결국 거란을 물러나게 했던 고려는 당시 약조했던 고려 현종의 거란 친조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거란은 강동6주를 내 놓으라고 했고 고려로서는 당연히 그것도 들어주지 않았다.


장차 송을 멸망시키고 대륙을 통일할 꿈을 꾸었던 거란이 말 안 듣는 고려를 이쁘게 볼 리가 없었다. 몇 번에 걸친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든 것을 거절한 고려에게 거란은 전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상권에서 점점 짙어가는 전쟁의 그림자를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2차 전쟁에서 몽진까지 하면서 권위가 땅에 떨어진 고려 현종이 차츰차츰 문물을 정비하고 국력을 기르면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초반부는 '하공진' 이라는 이름이 빛난다. 현종이 직접 고려에 오라는 압박을 뒤로 하고 대신 거란으로 갔던 하공진은 노련하게 여러 정보를 고려에 알려주면서 애국심을 발휘한다. 거란의 황제는 그 충심과 능력을 높이 사서 거란으로 귀순하라고 하지만 고려를 저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고 순국한다. 3차 전쟁 승리의 큰 원동력은 하공진 같은 충신이 있었기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권 중후반부부터 강감찬이 등장한다. 사실 구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은 문신 출신인데 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그 활약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라의 명운을 걸 전쟁이 다가오면서 그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작은 직책에서 시작해서 실제 전투를 치르고 점점 능력을 발휘하는 강감찬의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그것이 하권에 이르러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고 대첩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상황을 복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당대 최강의 군대를 맞서 싸워 승리로 이끈 최고 지휘관인 강감찬에게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없었다면 그의 빛나는 전략이 없었다면 고려가 승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전투를 치룬 여러 인물들이 없었다면 역시 고려가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은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던 구주대첩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잊혀진 주요 인물들의 활약상을 다시 되살리고 있다. 특히 강민첨과 김종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강감찬과 함께 최소한으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이들과 함께 고려의 국운을 건 대전쟁을 치룬 고려 현종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약했던 즉위초의 모습에서 한 나라를 강건하게 경영하면서 결국 외적으로부터 고려를 지켜낸 당시 고려 황제의 위상이 어떻게 보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책에서는 점차 성장하는 현종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조선에 세종이 있다면 고려에는 현종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고려 시대는 조선에 비해서 사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고려의 역사도 단순한 내용들이 많다. 구주대첩 강감찬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한 줄로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이다. 고려 중기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25년간이나 분투한 고려인들의 불굴의 의지를 엿 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인데 그 전개 과정에 대해서 잘 알기 어려웠다. 이번에 나온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편을 통해서 어떻게 이런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1차 전쟁부터 나오는 지은이의 전작을 함께 읽으면 고려와 거란간의 거대한 전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이 소설로 아주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격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적인 재미는 덜한 편이다. 하지만 딱딱한 역사책을 보기 보다는 이런 소설화된 책을 보는게 당대를 알아가는데 더 쉽고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고려거란전쟁의 실체를 알아가기에는 딱 적격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소문만 무성했던 고려거란전쟁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컸는데 관련되는 책도 나왔으니 좀 더 세밀하고 재미있게 극본을 써서 드라마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선의 임진왜란만큼이나 중요하면서 드라마틱한 내용이 이 전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거란전쟁을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책이라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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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수의 -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황제를 만난 소년의 이야기
질 패튼 월시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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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로마는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서 세계를 이끄는 대제국으로 발돋움한 나라이다. 오늘날에도 서양의 정치,문화,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인데 그만큼 오래되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로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방대한 영토는 통치의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동과 서의 로마로 나누어졌지만 그 영광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지만 그 뒤로 1000년 이상 동로마 제국이 굳건히 서양의 방패가 되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 때가 있는 법.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동로마 제국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영국 출신인 그는 상선이 난파 되어 혼자 살아 남았다. 여기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이 하나의 운명을 알려준다. 그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콘스탄티노스였다. 그리고 그와 최후를 맞이할 인물로 이 소년이 지목이 된다. 다른 사람이 다 죽는데 혼자 살아 남았고 대제국 황제의 최측근이 되는 것도 모자라 황제가 죽을 때 그의 옆에 있는 인물로 지정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인생의 곡예나 다름없다. 아직 어린 나이의 소년인데 그런 것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그에게는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 소년은 행운의 발견이라는 뜻의 '브레티키'라고 불린다. 이 책은 이 브레티키의 눈으로 본 동로마 제국 멸망기 정도 되겠다. 황제의 곁에 있었기에 당시 동로마 제국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황제의 행동이나 생각은 물론 당대의 건축물이나 풍습 등도 잘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황제와 그 주위 인물들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 지를 소년의 눈으로 잘 이야기 해준다. 


책은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일어난 지리한 공방전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보다는 황제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 브레티키가 여러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처음에 내키지 않았던 일종의 부적 같은 존재를 나중에는 중요하게 여기고 황제에 대한 마음이 진실하게 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아직 소년인데다가 황제의 최후를 지킬 한 사람으로 지정되었기에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낱낱이 볼 수가 있었고 그런 시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로마 최후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책이 있어서 당대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황제의 입장에서 혹은 상대인 오스만 술탄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은 많은데 이 책은 황제의 곁에 있던 한 소년의 시선으로 당시를 바라보고 있어서 색다른 관점의 이야기였다. 딱딱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소설이라서 이야기도 술술 잘 읽힌다. 천 년을 이어온 제국의 마지막에 그 최후를 지키는 황제와 주위 신하, 장군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과 함께 당대를 설명하는 역사책을 읽으면 더 입체감 있게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겠지만 그런 예상을 하고 읽어도 흥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고 한 국가의 흥망성쇠야 늘 있는 일이지만 괜히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슬퍼 보이고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11세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듯 해서 잘 쓰여진 역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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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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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섞어서 만든 소설을 팩션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도 관련된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베니스의 개성 상인' 이라는 소설로 큰 인기를 얻었던 오세영 작가가 꾸준히 수준급의 작품을 내고 있다. 역사를 전공했기에 역사의 비어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홍경래의 난과 나폴레옹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내용이다. 홍경래 난은 1812년에 일어났고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두각을 나타내서 1804년 황제가 되고 1821년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 대체 어디서 이 두 사건이 접점이 있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묘한 장치를 통해서 두 이야기를 이어주고 있다.


우선 전체적인 이야기는 홍경래의 난이다. 이 난은 오랫동안 이어진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과 당시 기근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시대상으로 더 이상 양반을 기반으로 한 사회가 지속되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반란이라는 형식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책은 그런 배경의 난을 뒤에 두고 '안지경' 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반란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안지경은 무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지역 차별이라는 굴레 때문에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인물이다.여러 모로 재능이 있는 그는 홍경래 군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고 결국 홍경래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반란군의 최고 수뇌를 호위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임을 받고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조선의 해가 지고 있긴 해도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초기에 평안도를 휩쓸듯했던 반란군의 기세가 곧 꺾이고 관군이 상황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실패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결국 마지막 거점이 함락하고 홍경래와 도주를 했던 안지경은 바다에 떠돌다가 우여곡절끝에 프랑스 군함에 승선하게 되고 이 군함이 중간 기착지로 삼았던 세인트 헬레나 섬에 남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나폴레옹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황제가 되어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 저 변방의 조선에서 민중에 의한 혁명을 도모했던 안지경. 내용과 형식을 달라도 두 사람이 품었던 이상과 기상은 비슷했기에 마음을 나누게 된다. 나폴레옹에게서 진정한 혁명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얻게 되는 안지경은 실패한 홍경래의 난을 잇기 위해 다시 조선으로 향한다. 그가 꿈꾸는 혁명은 성공할 수 잇을까.


책에서도 나오지만 홍경래 난은 각종 사회적인 모순이 표출되어 반란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났지만 그 대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조차 없던 시절에 백성이 우선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그 자체가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상이 전국으로 고르게 퍼지지 않았고 세상을 뒤엎을만한 전력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난을 일으켜서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당시 난이 성공해서 혁명으로 이어졌다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인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책은 홍경래 난이 실패하게 되는 요인들을 여러 인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책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큰 뜻을 품은 안지경의 활약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나폴레옹을 만나게 되는 과정은 좀 무리수 인것 같아도 시대적인 상황으로 있을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데 안지경이 홍경래 난이 실패한 이유를 깨달았으면서도 개선된 책략을 내 놓지 못하고 비슷한 실수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쉽다. 사실 홍경래 난은 실패로 끝났음이 역사적 사실이어서 다르게 결말을 만들 수 없었겠지만 어떤 미세한 흐름으로 구한말의 개혁에 영향을 줬다 식의 이야기가 전개가 되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잘 엮어내는 오세영 작가의 팩션 소설답게 쓰여진 책이다.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던 홍경래 난과 프랑스 혁명과의 연결을 잘 연결시킨 것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겠다.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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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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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가상 현실에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돌아간 사람의 정보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재현해서 보여준 것인데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도 눈물이 났었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좀 거칠게 구현이 된 면도 있지만 실제 당사자가 느끼는 것은 아마 100%가 아니었을까.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삶의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예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서 가상 현실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 그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 까도 생각해 봤다. 사실 그런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당장 내 가족의 한 사람을 그렇게 잃고 보고 싶어진다면 어떤 수단인들 솔깃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미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죽은 사람을 산 것처럼 재현하는 수단을 표현했는데 그것이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 책도 그런 가상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미 10여년 전에 나왔던 작품이지만 지금 대입해도 손색 없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기술들이 상용화되어 편한 삶을 살고 있는 미래에 아내를 잃은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느 사람들처럼 그도 한 동안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뭐라도 일을 하려고 하는데 메일이 온다. 그것은 자신을 초대하는 돌아간 아내의 메일. 어디 어디로 접속하라고 한다.


거기는 가상의 현실 속. 아내는 거기에 있었다. '욘더'라는 공간. 여기에서는 계약자가 제공하는 기억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인물을 재현해낸다. 이미 아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이런 식으로 가상 공간에서 남편이 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고 방명록을 작성하게 하는 다른 사이트와는 달리 이 욘더에서는 실제로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방문이 오래될 수록 실제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치원 다니던 아이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는 식이다. 말하자면 같이 성장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그것은 욘더 속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함께 살고 싶다고. 욘더에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뜻. 이 사이트는 원래 그런식으로 설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식의 초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인이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욘더에서 보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 과연 욘더는 무엇일까. 살아 있는 생명체인가 아니면 어떤 흑막이 있을까. 아니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오싹한 설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제같이 볼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그 가상 공간에서 같이 살자고 부른다니. 인간의 감각이란 것은 단순해서 외부에서 가짜로 자극을 줘도 반응이 일어난다. 실제 성행위를 안 하고 가상 현실의 영상만 봐도 우리 몸은 실제로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실제인가 가상인가. 우리는 이런 경우 가짜인 것을 인지하지만 죽도록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 관련이 되었을 때 이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식의 만남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의 내용은 흥미로왔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의 일을 잘 조화시켜서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상 현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현재도 가상 현실이 실용화되어서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데 소설 속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SF는 단순히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현실감 있게 잘 그려냈고 앞으로 도래할 일들을 미리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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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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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가 놓친게 있었나 하고 다시 앞으로 읽기도 했다. 문든 지은이를 떠올리니 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편의점 인간' 으로 아쿠타가와상을 탄 무라타 사야카는 독특한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다.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듯한 생각이 남다른 사람들이 주된 요소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인.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면서 그 이면에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를 남겨 둔다.


이번에 책의 등장 인물들도 예사롭지가 않다. 생각 자체가 흥미롭다. 자기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쓰키는 외계인인데 '포하피핀포보피아별' 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자신은 모종의 이유로 지구라는 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친게 아닌가? 아니면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인가? 사실 나쓰키는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람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 왔다. 그런 억눌린 상탱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서 지구별에 사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하게 된 것이다.


나쓰키에게 인간 세상은 그저 공장일뿐이었다. 아이를 나아서 정해진 틀대로 커서 공부하고 직장 잡고 아이를 또 낳고. 그저 아이 낳은 공장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이런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나쓰키가 세상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사촌 유우만이 그 생각을 이해하고 그 자신도 외계인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그들 둘만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둘은 떨어지게 된다. 나쓰키는 인간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서 인간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른바 인간들에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


시간을 흘러 세상에 적응해서 살던 나쓰키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게 또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내용을 보면 계약 결혼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공동 공간을 같이 쓰는 동거인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부부지만 집 안에서는 그냥 남이나 다름없다. 남편인 도모오미도 독특한 사람이긴 하다. 도모오미 또한 폭력적인 부모에게서 벗어날려고 결혼을 했는데 여러 가지로 나쓰키와 조건이 맞아서 결혼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구인들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번식 공장이라서 자신은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느 정도 지구별에 적응하는 나쓰키에 비해서 지구인에게 세뇌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유우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함께 살면서 기존 관념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그러다가 서서히 밝혀지는 사실들. 나쓰키는 외계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결국 지구별에 정착 할 것인다. 후반부는 좀 더 빠른 전개로 결말에 치닫는다.


주요 등장 인물 3명은 공통적으로 오랜 기간 폭력을 경험했다. 특히 나쓰키는 정서적 학대와 육체적 폭력을 강하게 받았다. 나쓰키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지구별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자신이 마법 소녀이고 외계인이라면서 그래도 지구에 적응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지구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폭력이 치유되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정상과 비정상이 뒤틀려 버린 이야기 같다.


내용은 상당히 특이하면서 도발적이다. 느긋하게 읽다가 고쳐 앉아 읽게 한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여운이 길게 간다. 두 번은 읽어야 그 느낌이 밀려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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