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수의 -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황제를 만난 소년의 이야기
질 패튼 월시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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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로마는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서 세계를 이끄는 대제국으로 발돋움한 나라이다. 오늘날에도 서양의 정치,문화,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인데 그만큼 오래되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로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방대한 영토는 통치의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동과 서의 로마로 나누어졌지만 그 영광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지만 그 뒤로 1000년 이상 동로마 제국이 굳건히 서양의 방패가 되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 때가 있는 법.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동로마 제국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영국 출신인 그는 상선이 난파 되어 혼자 살아 남았다. 여기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이 하나의 운명을 알려준다. 그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콘스탄티노스였다. 그리고 그와 최후를 맞이할 인물로 이 소년이 지목이 된다. 다른 사람이 다 죽는데 혼자 살아 남았고 대제국 황제의 최측근이 되는 것도 모자라 황제가 죽을 때 그의 옆에 있는 인물로 지정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인생의 곡예나 다름없다. 아직 어린 나이의 소년인데 그런 것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그에게는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 소년은 행운의 발견이라는 뜻의 '브레티키'라고 불린다. 이 책은 이 브레티키의 눈으로 본 동로마 제국 멸망기 정도 되겠다. 황제의 곁에 있었기에 당시 동로마 제국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황제의 행동이나 생각은 물론 당대의 건축물이나 풍습 등도 잘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황제와 그 주위 인물들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 지를 소년의 눈으로 잘 이야기 해준다. 


책은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일어난 지리한 공방전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보다는 황제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 브레티키가 여러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처음에 내키지 않았던 일종의 부적 같은 존재를 나중에는 중요하게 여기고 황제에 대한 마음이 진실하게 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아직 소년인데다가 황제의 최후를 지킬 한 사람으로 지정되었기에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낱낱이 볼 수가 있었고 그런 시간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로마 최후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책이 있어서 당대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황제의 입장에서 혹은 상대인 오스만 술탄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은 많은데 이 책은 황제의 곁에 있던 한 소년의 시선으로 당시를 바라보고 있어서 색다른 관점의 이야기였다. 딱딱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소설이라서 이야기도 술술 잘 읽힌다. 천 년을 이어온 제국의 마지막에 그 최후를 지키는 황제와 주위 신하, 장군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과 함께 당대를 설명하는 역사책을 읽으면 더 입체감 있게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겠지만 그런 예상을 하고 읽어도 흥미있게 잘 읽을 수 있었고 한 국가의 흥망성쇠야 늘 있는 일이지만 괜히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슬퍼 보이고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11세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듯 해서 잘 쓰여진 역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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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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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섞어서 만든 소설을 팩션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도 관련된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베니스의 개성 상인' 이라는 소설로 큰 인기를 얻었던 오세영 작가가 꾸준히 수준급의 작품을 내고 있다. 역사를 전공했기에 역사의 비어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홍경래의 난과 나폴레옹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내용이다. 홍경래 난은 1812년에 일어났고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두각을 나타내서 1804년 황제가 되고 1821년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 대체 어디서 이 두 사건이 접점이 있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묘한 장치를 통해서 두 이야기를 이어주고 있다.


우선 전체적인 이야기는 홍경래의 난이다. 이 난은 오랫동안 이어진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과 당시 기근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시대상으로 더 이상 양반을 기반으로 한 사회가 지속되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반란이라는 형식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책은 그런 배경의 난을 뒤에 두고 '안지경' 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반란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안지경은 무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지역 차별이라는 굴레 때문에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인물이다.여러 모로 재능이 있는 그는 홍경래 군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고 결국 홍경래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반란군의 최고 수뇌를 호위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임을 받고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조선의 해가 지고 있긴 해도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초기에 평안도를 휩쓸듯했던 반란군의 기세가 곧 꺾이고 관군이 상황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실패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결국 마지막 거점이 함락하고 홍경래와 도주를 했던 안지경은 바다에 떠돌다가 우여곡절끝에 프랑스 군함에 승선하게 되고 이 군함이 중간 기착지로 삼았던 세인트 헬레나 섬에 남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나폴레옹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황제가 되어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 저 변방의 조선에서 민중에 의한 혁명을 도모했던 안지경. 내용과 형식을 달라도 두 사람이 품었던 이상과 기상은 비슷했기에 마음을 나누게 된다. 나폴레옹에게서 진정한 혁명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얻게 되는 안지경은 실패한 홍경래의 난을 잇기 위해 다시 조선으로 향한다. 그가 꿈꾸는 혁명은 성공할 수 잇을까.


책에서도 나오지만 홍경래 난은 각종 사회적인 모순이 표출되어 반란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났지만 그 대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조차 없던 시절에 백성이 우선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그 자체가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상이 전국으로 고르게 퍼지지 않았고 세상을 뒤엎을만한 전력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난을 일으켜서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당시 난이 성공해서 혁명으로 이어졌다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인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책은 홍경래 난이 실패하게 되는 요인들을 여러 인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책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큰 뜻을 품은 안지경의 활약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나폴레옹을 만나게 되는 과정은 좀 무리수 인것 같아도 시대적인 상황으로 있을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데 안지경이 홍경래 난이 실패한 이유를 깨달았으면서도 개선된 책략을 내 놓지 못하고 비슷한 실수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쉽다. 사실 홍경래 난은 실패로 끝났음이 역사적 사실이어서 다르게 결말을 만들 수 없었겠지만 어떤 미세한 흐름으로 구한말의 개혁에 영향을 줬다 식의 이야기가 전개가 되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잘 엮어내는 오세영 작가의 팩션 소설답게 쓰여진 책이다.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던 홍경래 난과 프랑스 혁명과의 연결을 잘 연결시킨 것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겠다.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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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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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가상 현실에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돌아간 사람의 정보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재현해서 보여준 것인데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도 눈물이 났었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좀 거칠게 구현이 된 면도 있지만 실제 당사자가 느끼는 것은 아마 100%가 아니었을까.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 삶의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예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서 가상 현실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 그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 까도 생각해 봤다. 사실 그런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당장 내 가족의 한 사람을 그렇게 잃고 보고 싶어진다면 어떤 수단인들 솔깃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미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죽은 사람을 산 것처럼 재현하는 수단을 표현했는데 그것이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 책도 그런 가상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미 10여년 전에 나왔던 작품이지만 지금 대입해도 손색 없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기술들이 상용화되어 편한 삶을 살고 있는 미래에 아내를 잃은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느 사람들처럼 그도 한 동안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뭐라도 일을 하려고 하는데 메일이 온다. 그것은 자신을 초대하는 돌아간 아내의 메일. 어디 어디로 접속하라고 한다.


거기는 가상의 현실 속. 아내는 거기에 있었다. '욘더'라는 공간. 여기에서는 계약자가 제공하는 기억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인물을 재현해낸다. 이미 아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이런 식으로 가상 공간에서 남편이 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고 방명록을 작성하게 하는 다른 사이트와는 달리 이 욘더에서는 실제로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방문이 오래될 수록 실제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치원 다니던 아이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는 식이다. 말하자면 같이 성장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그것은 욘더 속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함께 살고 싶다고. 욘더에서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뜻. 이 사이트는 원래 그런식으로 설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식의 초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인이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욘더에서 보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 과연 욘더는 무엇일까. 살아 있는 생명체인가 아니면 어떤 흑막이 있을까. 아니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오싹한 설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제같이 볼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그 가상 공간에서 같이 살자고 부른다니. 인간의 감각이란 것은 단순해서 외부에서 가짜로 자극을 줘도 반응이 일어난다. 실제 성행위를 안 하고 가상 현실의 영상만 봐도 우리 몸은 실제로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실제인가 가상인가. 우리는 이런 경우 가짜인 것을 인지하지만 죽도록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 관련이 되었을 때 이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식의 만남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의 내용은 흥미로왔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의 일을 잘 조화시켜서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상 현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현재도 가상 현실이 실용화되어서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데 소설 속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SF는 단순히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현실감 있게 잘 그려냈고 앞으로 도래할 일들을 미리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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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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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가 놓친게 있었나 하고 다시 앞으로 읽기도 했다. 문든 지은이를 떠올리니 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편의점 인간' 으로 아쿠타가와상을 탄 무라타 사야카는 독특한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다.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듯한 생각이 남다른 사람들이 주된 요소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인.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면서 그 이면에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를 남겨 둔다.


이번에 책의 등장 인물들도 예사롭지가 않다. 생각 자체가 흥미롭다. 자기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쓰키는 외계인인데 '포하피핀포보피아별' 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자신은 모종의 이유로 지구라는 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친게 아닌가? 아니면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인가? 사실 나쓰키는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람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 왔다. 그런 억눌린 상탱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서 지구별에 사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하게 된 것이다.


나쓰키에게 인간 세상은 그저 공장일뿐이었다. 아이를 나아서 정해진 틀대로 커서 공부하고 직장 잡고 아이를 또 낳고. 그저 아이 낳은 공장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이런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 나쓰키가 세상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사촌 유우만이 그 생각을 이해하고 그 자신도 외계인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그들 둘만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둘은 떨어지게 된다. 나쓰키는 인간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서 인간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른바 인간들에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


시간을 흘러 세상에 적응해서 살던 나쓰키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게 또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내용을 보면 계약 결혼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공동 공간을 같이 쓰는 동거인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부부지만 집 안에서는 그냥 남이나 다름없다. 남편인 도모오미도 독특한 사람이긴 하다. 도모오미 또한 폭력적인 부모에게서 벗어날려고 결혼을 했는데 여러 가지로 나쓰키와 조건이 맞아서 결혼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지구인들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번식 공장이라서 자신은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느 정도 지구별에 적응하는 나쓰키에 비해서 지구인에게 세뇌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유우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함께 살면서 기존 관념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그러다가 서서히 밝혀지는 사실들. 나쓰키는 외계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결국 지구별에 정착 할 것인다. 후반부는 좀 더 빠른 전개로 결말에 치닫는다.


주요 등장 인물 3명은 공통적으로 오랜 기간 폭력을 경험했다. 특히 나쓰키는 정서적 학대와 육체적 폭력을 강하게 받았다. 나쓰키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지구별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자신이 마법 소녀이고 외계인이라면서 그래도 지구에 적응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지구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폭력이 치유되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 아니겠는가. 정상과 비정상이 뒤틀려 버린 이야기 같다.


내용은 상당히 특이하면서 도발적이다. 느긋하게 읽다가 고쳐 앉아 읽게 한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여운이 길게 간다. 두 번은 읽어야 그 느낌이 밀려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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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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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많은 동화를 읽었는데 그 중에 하나 '백경' 이라는 책이 있었다. 고래를 잡으러 가는 모험 소설이었는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작품이 나중에 커서 보니 위대한 고전이었던 것이다. 원제는 모비 딕. 그것을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축약해서 동화 비슷하게 만들었었는데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지금에서 보니 너무 줄여놓은 것 같다. 단순 모험 소설이 아니라 상당히 깊이 있는 내용의 긴 소설이기 때문이다. 


축약된 어린이용 소설로 읽은 모비 딕. 동화책이 아닌 불멸의 고전으로써의 모비 딕을 읽을려고 했는데 깜짝 놀랬다. 이렇게나 원전이 방대할 줄이야. 이 책은 단순한 모험소설이 아니었다. 고래를 잡는다는 큰 주제아래 온갖 상징과 은유를 포함하고 있고 인간 의지의 위대함과 간절함 등을 표현한 아주 다채로운 성격의 책이다. 게다가 고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지식이 들어있는지. 일종의 고래백과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책의 큰 줄거리는 '모비 딕'이라는 고래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슈메일. 사실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이 대항해의 소개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이슈메일은 돈도 다 떨어지고 육지에 딱히 흥미로운 것들이 없는데 바다로 나아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해서 포경선을 타기도 한다. 고래잡이배를 탄 이유는 거대한 고래에 대한 강한 이끌림도 있었지만 머나먼 것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메일이 탄 배의 선장은 에이해브라고 하는데 다리가 한쪽 없다. 그것은 오래 전 고래가 그의 다리를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에이해브는 그 고래를 잡기 위해서 바다로 나아간다. 그의 삶을 바꾼 괴물 같은 고래를 잡아서 복수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선원들에게 고래를 발견하면 큰 상금을 보상으로 주겠다고까지 한다. 그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모비 딕을 잡는 것이었다. 책은 언뜻보기에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 보이는 광기와 서서히 미쳐가는 에이해브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책은 항해를 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단순하게 항해의 이야기를 말하기보다 종횡무진 이쪽의 이야기를 했다가 저쪽의 이야기를 했다가 이야기의 실타래가 수 많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인간 본연의 선악을 깊이 있게 전개시키고 있다. 이야기가 최고조로 올라온 것은 역시 모비 딕과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작은 배로 고래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엄청 크고 무서운 모비 딕을 만나기는. 그러나 선장 에이해브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졌는지 기어코 만나게 된다. 책은 그 과정을 세밀하면서도 처절하게 그린다.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다. 내용 자체가 어렵게 쓰인 것은 아닌데 일단 분량 자체가 방대하다. 그런데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다. 그렇다면 그 내용에 녹여 있는 것은 주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일텐데 이것이 엄청 세밀하면서 촘촘하게 이어진다. 그래서 잠시 한 눈 팔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훅 읽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머릿속에 기억되는 것도 아닌 것이 이 책에는 수 많은 상징과 은유가 있기 때문이다. 모비 딕 자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도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책 뒤에 옮긴이의 해설이 있는데 책을 읽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것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도 좋을 듯 싶다.


모비 딕. 그냥 한마디로 거대한 명작이다. 고래를 매개로 신화와 종교, 인간의 이야기가 어우러져서 엄청난 이야기가 된 책이다. 한번 봐서는 그 진가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두 번 이상은 읽어야 할 듯. 한 번 읽어도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데 두 번 이상 읽으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책이다. 물론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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