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바쁘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3월이 바쁘고 (요즘은 이를 준비하는 2월 중순, 발령 이후, 학반 배정부터 바쁘긴 하지만...), 학년을 마무리 하는 2월이 특히 바쁘다. 게다가 6학년은 졸업까지 겹쳐 더욱 바쁘다.
이 바쁜 때에 나는 정신없는 일을 한 가지 벌렸다. 나 혼자 벌린 것이 아니라, 옆반을 쑤시기까지.
그건, 바로바로 문집 만들기.
계획은 방학 때 완성하는 거였는데, 성적처리도 겨우겨우 한 지라, 방학 때는 손도 대지 못했다.
등 안 붙이고 자려는 찬이 때문에 알라를 등에 업고 타자를 쳤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 이 일은 횟수로 12년째를 접어들고 있다. 희망이 낳고 2학기부터 맡았던 아이들에게도 해 주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년에는 절대 안 해야지~ 하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다가 좋은 글을 만나면, 이걸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 또 시작을 하는 거다. 정말 묘한 중독증세다.
책 만든다고, 지금 아이들 4학년 때 맡았을 때는 다음 해 5월이 되어서야 문집을 완성해 줄 수 있었고,
어떤 해에는 열심히 만든 문집에 막 낙서를 해 대서 빼앗아서 돌려 준다는 것이, 까먹고 챙겨 와 버려서 그 아이에게 주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하고 (룡*야, 문집 찾아가라~)
어떤 해에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한 소녀가 그림을 그려줘서 너무 감사했고,
또 어떤 해는 2학년 꼬맹이가 열심히 타자를 쳐 주어 무척 도움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문집 만드는 돈을 아이들에게 부담 시켰는데, 요즘은 쿨하게 내가 부담한다.
내 돈 쓰고, 내 시간 쓰고, 정말 뭐지?
이 문집 만드느라 수험생마냥 잠을 못 잤다.
새벽 5시에도 일어나고, 새벽 4시에도 일어났다.
몸이 슬슬 아프기 시작했고, 아무도 안 시킨 일을 하는 내가 비정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학교에는 문집 만드는 비용이 학교 예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잠시 부러워했다가 자발적이 아닌 문집 만들기는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그것도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옆 반 부장님은 아이들 작품을 표지로 하고, 그걸 칼라로 만들어 주기로 햇다고 약속하셨다 해서, 앞뒤표지값만 6만원 든다고 하시길래, 그럴 필요 절대 없다고 겨우겨우 뜯어 말렸다. 아이들이 문집 받고 투덜투덜 하면 어쩌냐고 걱정하시길래, 그런 개념없는 아이들 쳐다 보지도 마시라고 했다.
사실 문집 준비하면서 맘도 많이 상한다.
좋은 글이 많은 아이들은 걱정없지만, 아무리 살펴도 글이 없는 아이들은 문제다. 매월 내 주는 학급홈에 일기 옮겨쓰기도 하지 않았고, 일기장을 내면 대신 쳐 주겠다 해도 일기장 잃어 버려서 없다 그러고... 편집 막바지에 글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아침 일찍 일기장 좀 챙겨 오라고 학교 출발하기 전 시간에 전화 했더니 잠 자는데 깨웠다고 투정이다. "야, 이녀석아. 아무 것도 안 하고 급기야 이 아이 일기장 들고 오지 않고 학교 오면 오늘 완성 어렵다는 생각에 신경써서 시간까지 따져 전화하느라 머리 아팠을 선생님께 죄송한 줄 알아라." 하고 말았다. 그래도 살짝 미안해는 하길래 용서 해 주었다.
후배는 아무래도 도저히 완성 못 하겠다고, 중학교 가서 스승의 날 찾아오면 그 때 주던지 해야겠다고 이야기 한다. 아이들 보고, 너희들이 글을 안 내니까 일이 완성이 안 된다고, 이 다음에 받으라 하니 아이 하는 말 "선생님 우리 주소 다 알잖아요. 우리 집 우편함에 좀 꽂아 두세요."하더란다. 화가 나서 "그럼 너는 문집 값 내라."하면서 씁쓸했다는...
몇 년 전만 해도 6학년 졸업시키면 교실 청소 해 주겠다고 찾아오고, 교실 짐 옮겨준다고 자발적으로 찾아 왔는데, 이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도 힘든 시절이 되어 버렸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이 아이들 보면서, 무작정 퍼 주는 것이 참 씁쓸할 때가 많아, 내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데, 너희의 태도는 뭐냐고 자꾸 말하게 되는데... 이러면서 나도 나이 들어 잔소리가 느나 보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마음을 내려 놓아야해. 하면서도 쉽지 않다. 그래도 개념 어린이들은 이 마음 잘 이해할 거야~ 하며 위로한다.

문집 한 거 자랑할려고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결말은 푸념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네.
문집 제본 맡기러 가면서 지인의 차를 얻어 타려고 기다리던 중 땅바닥에 자료 놓고 찰칵 한 방 박았다.
금요일까지 가지고 와야 해 주신다 해서 부랴부랴 하느라, 선생님 글도 못 넣었고, 페이지도 손으로 적었고, 머리말 꼬리말도 예전처럼 달지 못했고, 글의 차례도 싣지 못했다. 라벨지에 출력해서 붙여줘야 할 듯하다.
문집이 제 때만 나와 주면 롤링 페이퍼까지 해서 졸업식 날 줄 생각인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을 짓누르던 일 하나 마무리 해서 홀가분하다.
이러는 중에 내 주위의 많은 일들이 밀려 있다.
바쁜 것은 여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