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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장수 엄기둥, 한양을 누비다 - 조선 후기 ㅣ 사계절 역사 일기 8
이영서.이욱 글, 김창희.김병하 그림 / 사계절 / 2012년 6월
평점 :
역사 일기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민중이다. 엄기둥은 조선후기의 농민의 아이.
소작농 아버지가 조선후기 농법(모내기)의 발달로 광작이 이루어지자 농토를 빼앗기고 한양으로 짐을 싸 들고 온다는 것에서부터 출발이다.
1797년에 쓰여진 이 이야기는 1796년 정조 화성 완공 1년 뒤의 이야기이니 정조시대! 왕권이 비교적 안정(?)되었다는 정조 시대라 할지라도 백성들을 위한 세심한 마음씀씀이는 아쉽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민초들의 삶은 아픔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엄기둥의 소망, 제주도의 김만덕이 사람들에게 베푼 온정을 베풀 수 있도록 자신도 거상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엄기둥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버지를 닮은 좋은 체격과 성실성. 요즘이야 성실성이 자신을 일궈낼 수 있는 좋은 재산이지만, 조선시대야 그러했겠는가. 그래도 조선 후기에는 신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으니 기둥이의 꿈이 실현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리라 생각해본다.
한양땅을 밟았지만, 꿈을 키워 나갈 그곳에서의 어려운 삶은 고향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아니, 낯선 곳에서 먼저 와 있는 이들의 텃세와, 험악한 이웃들 때문에 이런저런 맘 고생까지 겹쳐서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한다.
이전편의 역사 일기들과 달리 기둥이의 이야기는 읽는데 긴장감이 많이 인다. 기둥이 처한 처지도 가슴 아프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도 아슬아슬하고,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힘내라 응원하고 있기까지 한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참 글을 잘 구성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는 <<책과 노니는 집>>의 작가 이영서님의 작품.
험악한 세상에서도 이웃의 온정이 있기에 기둥이네가 좀 더 나은 환경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거지라 놀림 받으며 살아야 햇던 청계천 다리 밑의 움막을 벗어나 추씨 아저씨네가 살던 마포나루로 이사가는 장면에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갈퀴패에게 쫓길 때 도와 주었던 백사아저씨, 소리는 버럭버럭 지르셨지만 배고파하는 밑둥이에게 팥죽을 긁어주시던 팥죽할미의 따뜻한 마음도 고맙다.
한강의 얼음을 떠서 강가에 마련된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봄이 되면 꺼내어 궁궐에서 쓰고 관리나 양반들에게 나누어 주게했다고 하니,삼복더위의 얼음구경은 정말 신기하고도 신기했겠다. "굶어 죽으나 얼어 죽으나. 한겨울에 품을 팔 일이 그것 말고 뭐가 있어."라는 아버지의 말은 가슴 아프지만 가족을 부양하려는 깊은 사랑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음 배달꾼에서 얼음 장수로 거듭난 엄기둥. 쪼잔한 상인이 아닌 베풀고 나눌 줄 아는 거상이 되기를 응원한다. 엄기둥이 마음 먹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