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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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도 하지 않은 책이 허를 찌르며 다가올 때가 있다.   

아침독서 신문에 원고 쓴 댓가로 받았던 여러 책 속에 섞여 있던 <<완득이>>! 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별 관심 없다가 그저 한 번 펴 들었는데, 그만 놓지 못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읽기가 얼마만인가 하면서 신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작가를 만나고 도서관에 가서 작가의 또 다른 책이 있어서 반갑게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를 읽었다.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거야?'하면서 말이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뭐지? 천지가 이름인가? 그런데 죽었다고?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가 한 아이의 죽음과 관계되었듯이 이 이야기도 그 또래 아이의 죽음과 관계한 이야기다. 두 죽음의 차이라면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살만한 것이라는 걸 알아가던 아이의 뜻하지 않았던 죽음과는 달리 천지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라는 차이 정도.  

천지-죽은 아이 / 만지-천지의 언니 / 미란-만지의 친구 / 미라-미란의 동생이자 천지의 같은 반 친구, 천지의 죽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 화연-이 아이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먼저 가서  미안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 안 그러면 내가 속상하니까. 사랑해요, 엄마./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첫 번째  

항상 부러웠던 우리 언니. / 내가 멀리 떠나도 잊으면 안 돼. 사랑해, 언니. /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두번 째   

너 참 밉다. / 그래도 용서는 하고 갈게. 나는 가도 너는 남을 테니까. /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이제는 너도 힘들어 하지 말기를 /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세 번째 (교묘하고 집요하게 긴긴 시간을 괴롭힌 친구 화연에게)

알아도 가슴에 담아 둘 수는 없었을까? / 가끔은 네 입에서 나온 소리가 내 가슴에 너무 깊이 꽂혔어. / 그래도 용서하고 갈게. 처음 본 네 웃음을 기억하니까. / 다섯 개의 봉인실 중 그 네 번째 (고통을 주는 직접적인 대상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이가 더 미울 수 있겠다. 항상 화연의 괴롭힘을 옆에서 지켜 보았던 미라에게)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이 세상을 하직하려고 하는 자신에게! 

천지는 이렇게 다섯 장의 유언장을 실뭉치 속의 실패로 만들어 남겨 두고 떠난다. 마지막 사과까지 헌신짝 처럼 팽개쳐 버린 화연이 나도 참 밉다.   

만지가 실뭉치를 풀어가면서 실패를 찾아가는 것을 보며 미스터리물을 만나는 느낌이 들었고(다시 엉켜 버린 실뭉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딸과 동생을 보내고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남은 가족의 아픔에 짠하면서 이어지는 모녀의 복수극(?)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가해자인데, 갑자기 화연이 피해자로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야릇한 장난이란 말인가!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일으킨 이야기들은 죽고 싶은 아이의 머릿 속에서 그려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상상이었구나. 그래서 이 책이 '우아한 거짓말'이구나. 천지가 죽지 않아 정말 다행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되짚어 보니 미란의 아버지 곽만호와 천지 엄마와의 억지스러운 만남도 어색하지 않게 짜집기가 된다. 작가는 이렇게 나를 한방 먹이는구나! 했는데...  

이 글을 쓰며 끝장면을 한 번 더 읽어보니 천지는 가족품에 안기고 친구하고 화해 할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나 보다. (헷갈려~) 

천지가 고민스러운 친구 관계로 엄마와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사는 것이 고단한 엄마와 자기 앞길이 바쁜 언니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처 받은 영혼을 이해해 주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우울한 마음을 잘 이겨내면서 친구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을까?

4학년 어린 나이에 대응할 수 없었던 어떤 힘(아마도 성격적인 문제가 크게 좌우하겠지만) 앞에서, 끝까지 이겨내지 못한 어린 영혼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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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봐야 되는데 아직 주문도 안 했어요. 많은 분들이 칭찬하던데...김려령 작가라면 기대해도 될 듯.

희망찬샘 2010-01-06 05:40   좋아요 0 | URL
자살을 다룬 이야기라 읽기 그렇다는 분도 있던데요. 하지만, 제게는 작가를 한층 높게 보게 한 책이며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었어요. 꼭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