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한때 대중가요로 불려진 김광섭의 '저녁에'에라는 시이다. 시 속에서 지은이는 '밤은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라고 말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밤이 깊다는 것은 어둠에 짙다는 것인데, 지은이는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적 나는 어둠속에 묻힌다. 서로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 할 수가 있다. 어쩌면 시인은 힘겨운 일상을 노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하면 억측일까?

하루 만큼 산다는 것은 하루 만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며, 이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부터 멀어짐을 나타낸다. 또한 죽음이라는 먼발치 한 발 발 짝 다가가고 있음을 기록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리 교수가 말하는 것 처럼 죽음에 대해서 인지를 하지 않는다. '절대로 돈 때문에 일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시절이 있었는데, 평사 봉사단에 가입하겠다고,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곳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때(44쪽)'는 일기장 속 추억에 먼지에 쌓인체 세월과 함께 지워져가고 있을 뿐이며, '하루에 8시간씩 컴퓨터 앞에서 보내며(53쪽)', 잠시의 여유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굴러 간다. 즉 죽음에 대한 인지는 삶에 대한 성찰을 동반할 때에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짧다. 남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일'을 하여 더 낳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전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예순을 넘은 교수를 통해, 과연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인가에 대한 성찰을 내린다. 모리 교수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94쪽)'도 이야기 한다.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미치(미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서 진정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는가 그려보라! 자신에게 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치보다는 한 발 짝 더 나아간 사람이 될 것이다)는 비로소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한다. 죽음과 사는 것에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모리 교수는 교수직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병으로 인하여 집안에 머무른다. 또한 혼자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항상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제서야 '내가 고통을 당하고 보니, 이전보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61쪽)'진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한다. 그리고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는 방법은 관계 맺는 것이라고 한다.(이는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한 말과 일맥상통하며, 엠마누엘 수녀가 세상을 보듬는 방식과 동일하다. 참고서적 [어린왕자], [풍요로운 가난]) 정신병자가 슬펐던 것은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는(121쪽)'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정신병자가 구분을 짓는다. 하지만 자기의 정체성을 위해서 쉼 없이 발로 뛰는 사람과 힘이 없어 단지 고함을 지르지 못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모리 교수가 말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62쪽)'게 된다면 누리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어느 노교수가 죽음의 문턱에서 깨닭은 것은 다른 것과 구분을 짓지말고 '관계 맺기'를, 관계 속에서 '사랑'을 엮어 가기를 바라고 있다.

모리 교수와 상반되는 지은이의 이야기와 옛날을 오고가는 글 구성이 조금은 어지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던진 점에서 필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진실로 사랑을 하게 되다면, 시인의 외로운 싯구절은 더 이상 가슴 아련하게, 우리의 마음속 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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