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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마음 -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아래의 글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메모하고, 다시 정리하지 않은 체 올린 글입니다. 어떠한 감상에 예찬이 아닌,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기에 글이 험하거나 아집이 짙을 수가 있습니다.
1.
" 원형의 구속력과 구체성과의 긴밀한 관계가 회화의 주제와 기법의 유연성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다."(21쪽)
세밀한 묘사를 추구하는 기법으로 인해, 원근법은 기이한 형상을 불러와 물러서야 할 이물이 된다. 그림은 오직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어야 하며, 여기에는 왜곡-눈에 의한 착시조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근거를 '동양화 전통의 단조로움은 산수화의 규범적 성격(19쪽)'이라고 애매모호하게 이야기 한다. '동양화, 규범적 성격' 나는 솔직히 두 언어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지은이의 많은 암시와 내 이해력 사이에는 깊은 강이 흐르나 보다. 나는 지은이가 말하는 그림의 구체성 근거를 '역사적 사실성'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기록문화는 대대손손 전해 내려와 어느 바위에 자기 이름을 새기지 않은 경우가 없으며, 동시에 후손에게 귀감이 되길 바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하늘 우이ㅔ 사관 있다는 말처럼, 임금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이가 '사관'이였으며, 이런 전통은 '낙서'라 의미로 변용되어 널리 애용되기도 한다. 사관의 기록은 헛튼 글을 덜하고 더했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조선의 그림이 사실성을 추구하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내 주관적 상념이기에 어떠한 논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덧붙입니다. 잠시 지은이와 내 생각이, 엇나는 부분이 있어 전통을 잇는 기록으로 여기 몇 자 적어 두고 다시 읽어간다.
2.
" 이러한 사상들은 사상이라는 관념의 자체에서 시작한 것이라기보다는 원초적인 삶의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정한 방식으로 개념화되고 체계화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36쪽)
이상 국가 조선에 대한 조선조의 사상을 말 할 때, '원초적인 삶의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이견이 있음을 몇 자 덧붙여 본다. 조선의 건국이념 및 이상을 추구한 주체가 누구이며, 그들의 사상적 토대가 자생적인가, 역사적 기원과 얼마만큼 흐른 뒤에 놓여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가 민족 국의 기원이라는 설명은, 시민혁명을 바탕에 된 지국의 근대국가를 말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존재한 '상상된 공동체'라는 이상향에 대해, 나는 기우뚱거려진다. 진경산수화가 그려진 시기가 조선 전기가 아님은, 그들의 예술, 삶이 원초적인 체험과는 유리된 한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기본 구도에서 명백한 것은 명당이 아늑하게 보호된 곳이라는 점이다."(50쪽)
이는 명당의 개념을 그림으로 이해한 경우라고 생각되어진다. 옛날 사람들이 단순히 아늑한 자리를 찾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달에 해가 기리면 불길한 징조이며, 전쟁에서 연에 불을 붙여 놓게 날린 다음 끌어당긴 전략은 그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가 얇을 때에는 신적인 외부적 힘에 의지하고, 그에게 기대게 된다. 이러한 기댐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신비함과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로 변이된다. 우리나라의 풍수사상 역시, 어떠한 상징체제를 가지고 있지 마당에 그림을 그린 다음 아늑한 장소를 명당으로 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은이는 '조산(祖山) 주산(主山) 조산(朝山)'을 '천자와 왕(51쪽)'의 상징체계로 읽어내지만, 더 들어 가지는 않는다. 그는 '민주의 원리' 즉 '어머니의 자궁에 의하여 예시되었던 보호된 생존의 상태로 숨어들어가려는 사람의 충동(52쪽)'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의 사유체계를 지배한 것이, '음양오행'이라 할 때에, 음은 죽은 사람이고 양은 산 사람이 된다. 음이 하늘 높이 닿기 위해 윗산을 찾아 올라가는 풍습을 담고 있다.(죽은 사람, 음 + 하늘, 양 = 조화) 이는 티벳의 조장에 담겨진 그들의 바람과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볼 때에 명당의 요건도 음양오행에 토대를 둔 상징적 의미로 찾아야 할 것이다.
3.
" 조화가 깨진 것은 사람의 삶과 자연의 균형이 깨어졌다." (129쪽)
" 사실 우리는 계속적인 생각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을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전통예술을 되살리면서도 생활 자체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144쪽)
이에 충분히 공감하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나는 그 문제를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교육의 문제로 본다.)
그림에서 평상심을 얻는 것은 앞서 말한 심리적 위안에서 한 발 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지은이가 바라보는 동양화는 '마음의 평화'에 기대 있으며 이는 자연의 사실적 회고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인식하는 자연, 즉 나와 자연의 일체-물아일체의 경지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동양의 수많은 그림을 통해 총체적 시선을 얻은 다음에 글을 풀어내었겠지만……. 인용되는 글귀는 너무나 한정되어 믿음성이 부족하다. 이는 사실 논거를 뒷받침하는 자료의 부족과 동일시된다. 그는 동양에 대한 시선을 어떤 특정시기와 특정 나라에 한정하고 있으며(-동야이라는 언어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음) 그림은 몇 몇 작품에 불과하다. 또한 동양의 그림을 서구의 눈을 계속 읽어가려 한다.
언어의 힘겨움, 낯선 시선 등은 글 읽기를 부담스럽게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면, 지은이의 글은 다듬어지지 않은 구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