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걷는 옛길
안치운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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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산 좋아하시나요?

 

초등학교 때 까지는 열심히 뒷동산에 올랐다. 겨울에는 난로감을, 학교 산에 가서 땔감을 주워오기도 했지요. 나고 자란 곳이 농촌이고, 우리나라 농촌은 배산임수라는 말 한마디면 다 통한다. 우리 동네 역시 뒷동산이 있었기에, 뒷동산은 놀이터다. 무덤을 오고 가며 묏등잡기 놀이를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집을 짓는다. 가을이면 밤 따러 가고, 겨울이면 밤나무 가지를 잘라 새총을 만들기도 했다. 갈비가 많이 쌓이면 자루를 가지고 가서 한 포대 담아와 부뚜막에 쑤셔넣고. 이렇게 내게 산은 어린시절 추억의 뒷동산이지만, 학교를 졸업하면서 점점 멀리했다. 내가 학교를 시내로, 도시로 나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산과는 점점 멀어졌다. 그런 내가 산을 찾은 것은, 돌아오기 위한 길였는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부터 같이 뛰어 논 놀이터이기에, 그 발걸음도 당연히 가벼웠다. 하지만 어릴 때 그냥 오르던 산을 이제는 오를 때 마다 묻곤한 다.

 

어쩜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물음이 늘 가로막고 서 있다. 흔한 말로 땀을 흘리며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며, 자동차로 부지런히 다녀도 참 볼 것이 많은데 굳이 산으로 가느냐는 물음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산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부터, 뒷동산에서 한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내가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그리고 알았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한결 같다는 것을.

 

산, 여행을 하면서 산은 내게 하나의 화두이다.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산에 볼 것이 많아서 혹은 욕심을 비운다는 선문답을 찾기 위해. 아니다. 그냥 걷는 걸음에 불과하다. 조금 좋은 풍경이 나오면, 보상심리로써 네 걸음걸이와 맞바꾸려 하곤 한다. 즉 그곳에 가는 것은 산이 나에게 '특별한 무엇을 줄 것이다'라는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철 따라 철쭉을 보고, 단풍을 보러 길을 나선다.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왜 오르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고 나는 내 아닌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우린다. 그네들은 무엇 하러 오르는 것일까? 지리산에 가보지 않은 내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읽은 것도, 우리 조선들은 지리산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어디로 갔다 오면 부족한 글을 남기곤 한다.

 

나는 안치운이라는 이를 모른다. 연극을 공부했다더라. 하지만 내가 그의 책을 읽는건, 『지리산에 가련다』를 읽을 때 처럼, 그에게 산은 어떤 의미인가를 훔쳐보기 위함이다. 내가 갔다 온 주왕산 응봉산을 보고, 가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해남을 읽어본다. 두번째이다.

 

소설책이랑 인문사회과학서적은 한번 읽고서는 두 번 잡지를 않는데, 입맛이 끌리는 기행문은 두 서번 되내여 본다. 『풍경의 발견』을 시간 나면 한 산씩 타고 오르는 것이 그의 글맛은 어떤 맛일까'라고 간을 보기 위해서처럼. 『그림움으로 걷는 옛길』역시 맛을 음미하기 위한 읽기이다. 그가 걷는 길이 옳다 그르다는 시시비비가 아니라, 나보다 먼저 걷은 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혹시 내가 놓치고 지나치는 걷은 무엇일까라는. 신영복씨는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는 언어를 놓지 않았던가.

 

추적추적 창문 밖에는 밤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고 하지만 일주일째 낮게 드리운 구름이 강아지 오줌 마냥 찔금찔금 뿌린다. 나는 어디를 가지 못하고 안치운의 산길을 걷는다.

 

산길은 감상과 사변에 녹아있다. 어디를 어떻게 갔다는 식의 나열을 숫자 세워가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구름에 달 가듯이 걸어간다. 걸음 걸이는 가벼운 듯 하지만 진중한 느낌이다. 문득 내가 쓴 글을 불러온다. 어디를 어떻게 갔는지가 먼저 와서 나를 끌고, 그가 본 것을 들려준다. 걸음걸이는 꼭 꼭 눌러서 걷고 있으며, 무거운 듯 하면서 어딘지 가벼워 보인다. 그렇기 때문일까. 문체는 뛰다 걷다, 뛰다 걷는 듯하고 본 것을 말하며, 어린아이가 소풍을 가 듯 들뜬 느낌이다. 안치운은 사뿐사뿐 내딛는 문체이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발걸음은 녹녹한 연륜이 베어있다. 대체로 그의 걸음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기에, 어디를 간 듯 안 간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어디를 꼭 갔다 왔다고 들려주며, 나랑 같이 나서자고 꼬시는 중이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비를 맞고 걷는 이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면 이 비속에라도 나서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가려서 배낭을 꾸린다. 가을비가 걷히면 단풍이 짙어지리라. 단풍이 짙어지면 붉게 물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산에 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리라. 그라면 어떤 생각일까? 나는 왜 그곳에 가보고 싶은 걸까. 책을 덮고서 톡 톡 때리는 창밖의 비를 바라본다. 어둠이 살살 내려온다.

 

바람부면 날이면, 그 카페가 그립다.  http://naca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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