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인 캄보디아 고대 유적도시를 가다 1
유목민루트 지음 / 두르가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철저하게 고대유적 도시 '앙코르'에 대한 견해이다.
사진은 글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함이고, 글은 낯선 길에 대한 이정표이다.

무작정 캄보디아로 너머 갈 때(2008년, 5월에 베트남 쩌우록에서 메콩강을 거슬러 캄보디아로 너머갔음), 배낭에 이 책 하나 들고 들어갔다. 앙코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무했고, 난 씨엠립의 G.H에서 몇 번이고 책을 펼치고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고민을 했다.

앙코르는 흰두교의 신화가 숨은 왕국이다. 흰두교의 전설, 혹은 라마야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게 책은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사진과 동선(지도)은 길을 나서기에 아주 충분하게 했다. 난 가방에 책을 넣고, 어깨에 사진기를 든 체 그가 들려준 것 처럼 롤루스를 먼저 보고, 반테이 스레이를 달려가고, 앙코를 톰을 본 다음, 가장 나중에 앙코르 왓을 경배했다. -그곳에서 배낭 여행객이, 나와 같이, 같은 책을 들고서 다니는 것을 두 어 번 보았다.

누군가 앙코르를 다녀오겠다면, 난 이 책을 들려줄런지 모른다. 어쩜 이 책은 도서관이나 서재에서 보기 보다 낯선 나라의 G.H에서 보는 맛이 더 감칠 날 듯 하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동선을 그러보면 다음과 같다. (지은이는 한 자리 한 번을 보는 것으로 끝냈지만, 난 중요한 부분은 두 번 봐도 좋다고 한다)

1주일 짜리 패스를 끊고,
첫날은 롤루스 그룹을 구경간다. 오후에는 씨엠립으로 든 다음 강 건너 마을을 보고
둘째는 반테이 스레이를 본다. 밤에는 야시장에 가도 좋겠다.
셋째는 앙코르 톰을 구경간다. (동쪽과 북쪽, 자전거타면 많이 힘들고 지칠 듯)
넷째는 다시 반테이 스레이를 보고, 돌아오면서 앙코르 톰을 본다.
다섯은 이른 아침 앙코르를 보러간다. 바욘과 코끼리 테라스도 좋겠다. 오후에는 푹 쉰다.
여섯도 쉰다. 내가 본 것을 정리한다. 오후에 해넘이를 보러 앙코르로 나선다.
일곱은 앙코를 왓을 보고, 바욘을 다시 본다.

너무 빨리 걷지 말지어다. 아주 느리게, 그리고 그네들과 눈길 한 번 마주치고, 흥정 한 번 하고, 어린 아이 손 한 번 잡아주고.

책은 전체적으로 자세한 알림글이 실려있지만 제본이 상당히 좋지 않다. 또한 사진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회랑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는 배치되게, 모서리에 새겨진 신화의 이야기는 빼버린 점도 아쉽다. 하지만 앙코르를 처음 만나는 이에게, 이 책이 좋은 벗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규식
트레블게릴라.

아래는 2008년 5월에 본 캄보디아의 어떤 하루 풍경입니다.

05, 30 -앙코르 왓을 경배하다.

이른 아침에 그곳을 찾으려 했는데, 쉽게 눈꺼풀이 벗겨지지 않았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다 7시 쯤 안되어 일어나 씻고서 나섰다. 아침 해는 5시 30분 쯤에 떠올라  8시쯤이면 엄청 나게 뜨거워진다. 그러다 점심을 넘기면 서서히 구름이 몰려드는데, 이로 인해 그늘이 생기기도 하고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도 한다.

아침 일찍 부터 찾아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곳은 앙코르 왓(Angkor Wat)이다. 소문으로 무성하게 들어왔지만 난 아직 그 실체를 대면하지 못했고, 며칠 동안 앙코르를 둘러보았지만 앙코르 왓은 이제서야 들어서려 한다.


어릴 적,맛난 것이 있으면, 가장 나중에 먹으려는 버릇이 있었다. 앙코르 왓 방문을 아껴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앙코르 왓이 단번에 땅위에 쏫아난 것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쌓이고 쌓여온 크메르 양식의 결정체. 그 과정에 있었던 사원을 먼저 접하고 오는 길이다.

8시 쯤에, 아주 경건한 마음과 신비스러움, 어떤 모습일까하며 조심스레 발을 들여 놓는다. 몇 몇 엽서를 보고서 눈을 먼저 길들였지만, 한 장의 엽서 사진과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크게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해자 위에 놓인 곧은 참배의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들문이 우뚝 서 있다. 높다란 담장 중앙에 문이 3개, 끝자리에 하나씩 2개가 있는데 -그 문(門)을 너머서면 앙코르 왓의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참배의 길에 마주하는 앙코르 왓은 연꽃 같은 봉우리가 쌓이고 쌓인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불교관에 토대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난간은 수 없이 보아온 '나가'가 받치고 있다. 롤루스 그룹 바콩 사원에서는 땅에 누운 체 였다면, 이곳에서는 공중에 뜬 체, 난간의 상징을 더 잘 들어내며, 등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양 옆 도서관(추정건물)을 지나고, 연못을 지나면 십자형 테라스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아마도 성역화하기 위한 표시가 아닐까? 계단을 올라가면 나란히 겹쳐지는 왼편, 오른편의 두 쌍의 탑 그리고 가운데 성소가 우뚝 선 체 맞이한다.

앙코르 왓에서 가장 가슴 벅차게 만나는게, 벽면에 새겨진 조각예술이 아닐까 한다. 1층 3회랑에는 8개로 나뉘어진 길다란 벽면에는, 쿠루 평원의 전투(서남쪽), 왕의 행진(남서쪽), 천국과 지옥(남동쪽), 우유바다젖기(동남쪽), 비슈누신과 아수라(동북쪽), 크리슈나와 아수라바나의 전투(북동쪽), 21명의 신과 21명의 아수라(북서쪽), 랑카의 전투(서북쪽) 그리고 모서리에느 시바신과 그에 과련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또한 3회랑 안으로 들어가면, 수 많은 전설이 벽면에 새겨져 있는데, 앞서의 웅장하고, 세밀함, 역동적인 모습과는 조금 서툰 조각이며 많이 지워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쿠루 평원의 전투를 보면 천천히 걷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곳으로 가 보니, 야외 수업이 펼쳐진다. 22살의 남자 선생님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모아서 홀로 가르키고 있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말을 옮기면, 어린 아이들은 모두 고아이며,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 공부를 할 수 없고, 자기도 대학교를 가고 싶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다고 한다. 또한 누구하나 후원자가 없기에 밥이며, 노트, 볼펜 등이 필요한데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나처럼, 이렇게 지나가다 오는 이가 있으면 그가 직접 짧은 영어로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편에는 천년의 비밀, 그 웅장함에 매료되어 수 많은 이들이 드나 드는데, 밀림 숲 어느 자리에는 밥 세끼 제대로 해결 못하고 낡은 칠판에서 낮은 목소리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간간히 내게 호기심을 보이지만 저희끼리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한 아이는 연주를 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간간히 너무 덥다는 말을 내게 들려준다. 난 앙코르 왓에 들렀다가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그곳에서 한 시간을 앉았다 일어나니 그제서야 선생님이 종을 울린다. 저 너머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주 가냘프게 들려온다.

앙코르 왓을 4시간 가까이 둘러보고 -지쳐버렸다. 11시 너머서 해자를 건넌 다음,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 바욘 사원이 보고 싶어 억지로 자전거를 끌고 간다. 어제 두 번이나 스쳐 지나 간 길이기에, 길은 아주 익숙하다.

앙코르 톰 남문을 지날 때면, 난 신들의 힘찬 기운을 느끼곤 한다. 그네들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살아서 힘차게 -우유바다젖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 순간에 굳어져 버렸다. 시바신이 내려와 숨길을 불어넣어주면 그네들은 다시 힘차게 '바수카'를 잡아 당기지 않을까.

앙코르 톰 문을 들어서니 아가씨가 원숭이를 옆에 앉히고는 빨간 열매를 건내 주는데, 그 녀석들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낼름 받아먹는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친숙하여 가다말고 멈춰선다. 난 바나나 몇 개를 사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니 원숭이가 그 바나나를 달라고 내 바지 가랑이를 붙잡았다는 말이 옳다.

점심 시간이여서인지 지나는 사람도 없고, 아가씨도 두 어 명 있는데 무엇을 악착같이 팔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난 아가씨와 원숭이 사이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원숭이는 배가 부른지 바나나에는 이제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다 이를 잡아주는 원숭이를 살짝 건드렸더니 뒷에 원숭이가 날카로운 이를 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원숭이는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아주 내곁에 붙어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같이 있는게 너무 신기하고 놀랍다. 바나나와 빨간 열매를 파는 묘령의 아가씨는 너무나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원숭이랑 잠시 놀고, 다시 바욘 사원을 찾아간다. 엽서에 두툼한 입술로 미소짓고 있는 사람, 자야바르만 7세라고도 하고, 미륵불이라고도 불리는, 수 많은 탑돌 위에 사면 얼굴을 취하고서 미소 가득이다. 이곳은 앙코르 왓 보다 뒤늦게 지어졌기에, 벽면에는 사람사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미로같은 바욘 사원으로 걸어들어가 천년의 숨결을 더듬어 본다. -바욘 사원 오래도록 내 가슴에 머물면서, 반테이 스레이처럼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 더 어울리지 못했을까라고. 왜 천천히 바라보지 못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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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 하늘과 맞닿은 바람의 나라 - 대구 MBC HD 기획 10부작
이른아침 편집부 엮음 / 이른아침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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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들려온다.
그 초원의 바람맛이 좋다 하고, 그 사막에서 느껴지는 곡선이 아름답다고. 언젠가 그곳에 갈 것이라고.

몇 해 전이라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던 곳이였겠지만 두 어 번의 낯선 길과 그곳에서 만난 이야기를 통해, 난 다시 낯선 길을 꿈꺼어본다. 내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이며, 동경의 자리이다. 첫 번 째 여행을 떠날 때, 무작정 길을 나섰고, 두 번 째에도 그리하여, 다음에는 앞선 길을 밟지 않겠다고 열심히 이것저것 수박 겉핧기식으로 잡아가며, 읽어간다.

내게 그곳은 유목민으로 다가오고, 초원과 사막으로 하지만 너무나 낯설다. [몽골, 하늘과 맞닿은 바람의 나라]는 영상을 글로 옳긴 책이다. 10부작이라는 대서사극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었기에...

영상을 통해 보면서 들려오는 나래이션의 목소리와
영상을 빼버리고 내가 읽어가는 책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하나 같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깊이'이다.

전체적인 목차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담아냈는지는 알겠으나, 영상이 없으니 조금 부족한 느낌이고, 책에서 들어난 깊이와 묘사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저 오늘날의 몽골 모습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행위만 읊어간다는 느낌이 강렬하다.

다큐멘타리로 담아내는 영상은, T.V를 통해 온 시민들이 본다는 전제를 깔고 간다. 이렇다면, 그 깊이는... 책을 읽으면서, MBC에서 본 [갠지스]라는 다큐멘타리가 겹쳐지니, 몽골 역시, 책 대신에 영상 -대구MBC-을 찾아봐야 할 듯 하다.

서로서로는 자리가 있는가 보다.
내 발걸음으로 기록한 몽골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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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 End of Pacific Series 2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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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럽습니다.

여행이 끝난지 5개월이 지난, 책을 읽은지 6개월이 지난 어느날, 난 내 책상 위에 꽃힌 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듯 하여, 서투른 글을 주워담아 봅니다.

처음 느낌,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라며, 가슴 설레이며, 여기가 어딜까라는 -책을 읽을 때 까지, 라오스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내게 아시아는 너무 먼 거리였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으며, 캄보디아에서 여행하며 형에게 들었습니다. 난 라오스를 '위,아래 다 둘러 볼 것이며, 아마 한 달 정도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렇게 내게 -라오스는 아름다운 곳이며, 그 아름다운 자리에 머물면 어디서나 웃음 띤 얼굴로 '사바이디'가 들려 올 것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참파싹을 거닐며 풍선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싸반나케의 공룡박물관의 상상력, 방비엥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픔저림,  루앙 프라방에서... 낯선 거리에서 낯선 나라를 떠올리며 마냥 가슴 설레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태국 방콕으로 든 다음, 아유타야를 보고 긴 밤기차를 타고, -아마 저녁 8시 쯤, 그리고 10시간 정도-우본 차라타니로 든 다음, 꽁지암을 보고, 총멕으로 다시 내려와 라오스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라오스.  빡세로 가기 위해, 난 국경에서 생태우 뒷자리에 앉아, 5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간간히 아주머니가 손바닥 보다 작은 오징어와 숯을 들고와서 팔면, 배고픈 나는 얼릉 쪼그리고 앉아 먹습니다.

태국에서 사람이 건너오면 운전 기사는 '빡세' '빡세'하며, 예닐곱의 손님은 안중에 없다는 듯이, 스무명은 태워야 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흥분된 마음은 라오스에 대한 은근한 설레임을.

사바이디 케스트하우스2의 도미토리에 배낭을 내리고, 무작정 거리를 걸어봅니다. 내 나라, 내 작은 방에서 책을 읽으며 꿈꾸었던 그 거리를 걷는다는 생각에, 메콩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옵니다. 비구름 앞에 무지개가 다리를 놓습니다. 구름이 건널 수 있도록.

우체국에 들러, 이쁜 우표를 달라합니다. 편지를 부치고, 빡세에서 이틀을 머무르고, 메콩강에 가서 물어봅니다. '참파싹으로 가는 배가 있나요?' 분명 여행책에는 적혀 있는데, 아저씨는 없다고 합니다. 다시 버스터미널로 와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태우에 배낭을 내립니다. 지은이가 '눈치 없는 뚝뚝기사 양반, 곱짜이'라 말한 그 자리. 나 역시 뚝뚝을 타고 왔는데, 아저씨는 친절하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태우를 가르켜 줍니다. 하지만 나는 국경에서 이 놈의 생태우 맛을 보았는지라. 역시 지은이처럼 사진기를 들고, 시장을 걷습니다. 그리고 두 어 시간이 지난 다음, 생태우에 스무다섯명이 닥지닥지 붙어 앉은 다음, 생태우는 떠납니다.

참파싹에서 시판돈으로 갈 때, 차가 멈춰서면 자연스레 생태우의 손님들은, 원시적이거나 자연스런 행위로 볼일을 봅니다. 여자분은 치마를 높이 올리고서는 칸막이를 만듭니다. 여기는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 라오스입니다.

다시 메콩강을 건너 만난 사 천 개(씨판돈)의 섬, 아무도 달려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어린이 몇 몇이 언덕에서 옷을 입은 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강이 어린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빡세, 참파싹, 씨 판 돈. 내게 라오스는 '심심함'과 '시간이 정지'한 두 개의 느낌으로 안겨옵니다. 난 다시 비엔티엔으로 24시간 버스를 타고 올라옵니다.

왕위앙에서 넘쳐나는 서양 배낭객과 메콩을 벗어난 건너 마을의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서양객들은 저희끼리 신이 나고, 건너마을 아이는 다 헤어진 옷을 입고 소쿠리로 고기를 잡습니다. 손가락만 한 고기를. 넘쳐나는 외국 배낭여행객은 강을 건너지 않고, 저희끼리 강을 따라 내려올 뿐입니다. 건너마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굴 앞에서 손전등을 빌려주며 입장료(1달러)를 받는 묘령의 아가씨는 헤픈 웃음을 나에게 날립니다. 어린 꼬마는 고기 대신에 가이드가 되어 나를 주선합니다.

왕위앙에서 루앙 프라방, 세계 문화유산 속에 하루살이를 하는 라오 사람들의 야시장. 루앙남타로 달려가는 산속길과 초가집.  스무 날 가까이 내가 본 것은 라오 사람들이였고, 그네들의 삶이였다. 난 라오스를 벗어날 때 쯤에 열이 올라,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독설만 줄줄이 외웠다.

그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삶으로, 라오 사람 깊숙이 들지 않고 오직 '쉬려고 이곳'에 왔을 뿐이고, 내게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다고 되씹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싫다하면서 차마 내리지 않고 내 책상 위 책들 속에 꽃힌 책을 보며 근래에는 '참 부럽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는 그가 본 모습을 내게 들려주었고, 난 그와 같이 못 보았기에 그가 과장되었거나 옳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그가 본 것을 들려주었고, 난 나를 버리고 그가 되려고했다.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나와 라오스 사람들과 관계, 즉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데에 기인한 문제이다. 이렇게 나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리를 만나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희재씨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는 책을 읽고, 티벳을 동경하여, 그가 걸은 자리를 걸을 때에도 나는 정희재가 될 수 없었고, 나였다. 그가 풍요롭게 들려준 이야기를 내가 그릴 수 없다고 그가 거짓믈을 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난 같은 잘못을 두 번이나 저질렀습니다.




내가 뒤돌아보아야 할 것은 그의 풍요로운 이야기와 내 여행 발걸음이다. 분명 라오스는 라오스이고, 같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 그의 걸음걸이와 마음씀씀이가 부럽고, 내 게으른 걸음걸이가 부끄럽습니다. 다시 라오스를 꿈꾸어도 될 까요?

한동안 책상에 놓아두고, 시비를 오래도록 걸며, 내가 걸은 지난 걸음을 오징어마냥 오래 곱씹어야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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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묻힌 태양 - 세계문화예술기행 4
최수철 지음 / 학고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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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와 비아의 소통이고, 꿈꾸는 행위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을 품고 낯선 길을 걸으면서, 낯선 공간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보면서 풍경과 마주하고 소통하게 된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행위와 같다. 소설은 화려한 옷으로 가려입을 수 있고, 수필은 짧은 사유로 사람 앞에 나설 수가 있고, 시는 몇 몇의 노래로 은유를 품을 수 있지만 여행기는 내 머릿속에 숨어 든 모든 지식과 낯선 거리에서 마주하는 경험이 우러나기에 무엇을 숨기거나 감출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여행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를 알몸으로 마주한 듯 한 느낌을 간혹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집트를 다녀온 이.
피라미드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적어도 내게는 동경의 자리이다. 그런 곳을 오늘 보다 10여 전에 다녀온 글쟁이의 글을 따라 읽다가 덮어 버린다.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으지고, 거짓이거나 자기를 들어내려는 여행기를 읽으면 괜시리 머리가 아파온다.

최수철이라는 이가 그려온 이집트의 이야기. 나는 어느 문사의 헌사를 다 지워버리고 여기에 내가 느낀 글을 몇 자 메모하는 것으로 긴 글을 생략한다.

+ 일반화 -길에서 아주치는 젊은 이집트 여인들은 대부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들에게는 강렬하게 활짝 폈다가 스러지는 열대의 꽃의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서양 여자들에게서 간간히 엿보이는 공격성은 전혀 없는 순박함을 지니고 있다.(56쪽)

+ 억지스런 의미부여 -그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여 일정한 나이에 있는 모든 여인들에게는 분명 나름대로 평균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동양인들, 혹은 한국인들은 그런 독자적이면서도 평균적인 미를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것일까.(56쪽)

+ 지례짐작 -방금 그는 상점 측으로부터 커미션을 받느나로 나를 기다리게 한 것이 분명했다(64쪽)

+ 거리감 -이탈리아 피자 식당에서, 피자를 먹으며 스텔라라는 이집트 맥주를 마시다.(55쪽)

그의 일반화 오류나 억지스런 의미 부여를 통해 깊은 성찰을 들어내려는 의도를 몇 번이고 참고 읽어왔고, 시장 한 구석의 장터보다 깔끔한 자리에서 밥을 먹거나 크루즈를 타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이 다음 부분에서 폭발해버렸다.

+ 살생 -그때 나는 우리 나라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생긴 작고 새카만 모기 한 마리가 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집중적으로 약 세례를 가했다. 그러자 그 모기는 약물에 젖은 날개를 한 번 부르르 떨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단순히 모기라는 이유 만으로 한 생명을 죽이면서, 그는 사디스트적인 희열을 느낀다. 글을 적는다는 이가, '존재의 본질'을 담으려는 이가 죽어 없어진 피라미드에서는 감격하고, 곁에 다가온 모기를 죽이면서 행복하다니. 난 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며 느끼는 어떤한 사유도 들지 않는다. 지식인은 얇은 펜대로 깊은 사유를 끓어내려 하지말고, 흙탕묻은 신발이나 다 헤어진 신발을 끓고 시장 바닥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다음에 그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 것이다. 마냥 이것이 나만의 아집이라면, 난 펜대를 사유하는 지식과는 영원히 결별할런지 모른다.

슬프다.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깊은 글을 쓴다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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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이산의 책 1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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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징조는 풍년이 드는 것과 만족해하는 백성이다." (111쪽)

다스림 부분에서 그의 말을 듣는다.
그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난을 어떻게 평정했는지 혼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을 읽으면서 나 또한 그의 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이는 그가 아주 세세한 이야기는 빼버리고, 그가 옳다고 믿었고, 그의 행위에 대한 일체 뒤돌아 봄(후회) 없이 들려준다.

황제라도 나라 안의 모든 관료를 다 알수는 없으므로, 이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관료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사악한 관료들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어사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96쪽)


모두가 아는 문제이다. 그는 아주 원론적이면서 이현령비현령식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아주 어려운 일이 지난 한참 뒤, 그냥 웃으면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열정은 뜨겁고, 내 자리는 그리 높은 자리가 아니기에 내 의지와 부딪히는 높다란 현실, 이 앞에 맞써 싸우는 문제에 난 하루하루 고민을 한다.

팔십 평생을 뒤돌아 보고, 그는 아주 간결하게, 하룻밤에 모든 이야기를 다 건내주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가 너무 넓으면 깊이가 없고, 이야기가 너무 세밀하면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이런 점에서 깊이와 재미를 추구하는, 내가 절대적 진리라 믿는 그 가치가 너무나 모호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한 '중용'을 어찌 담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난 너무도 그에 대해 모르고, 그가 수 없이 건내는 이름도 낯설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원론적이며 옳은 이야기이다.

황제는 지난 시절, 그가 겪은 무수한 일들을 통해 '지혜'를 들려준다. 이는 몸소 겪에서 얻어지는 것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곱씹고, 무수한 일 속에 절대 당황하지 않고, 그의 '지혜'를 빌리고, 내 '지식'을 더해 슬기롭게 일을 처리 함이 옳다.

난, 황제가 들려준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 아래의 몇 자를 여기에 적어둔다.

"우리의 삶은 운명이 좌우하지만, 그 운명이라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고, 행복은 우리 스스로가 추구하는 것이다." (120쪽)

이 책의 가장 의미깊고 내 가슴에 깊은 부분은 [상유(上諭)]이다. 그리고 앞 부분에 다가온 첫 느낌의 이현령비현령의 선입관이 앞선 메모에 자리잡고 있어, 호언을 할 수가 없어 부끄럽다.

어쩜 내가 그토록,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흠모하고 읽으려는 이유는, 내 부족함을 그들을 통해 배우고 일깨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참고로 강희제의 아들에 아들이 옹정제이던가. 그 분의 책이 같은 집에서 나왔는데, 다른 이가 적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상당히 다른 듯 한데... 두 사람의 생각은 항상 백성에 향해 있음에 놀랍고 존경스럽다.

어쩜 [강희제]를 만나는 이는 아랫사람보다 윗사람이 더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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