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 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2009년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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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쉽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내일이면 한살 더 먹게 되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 술이 한잔 두잔 늘어난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건 '꿈'이 아니라 어느 술집에서 만난 '허탈함'이다. 몇 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하지만 오늘은 조금 어깨가 늘어진 것 뿐이라고. 언제나 나를 위로하는건 지난 날의 나인가.

어느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몸이 근질근질하여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베개송사를 나누는 아저씨한테는 아무말도 않고 나선다. 가장 가까운 이의 걱정이 그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기우 때문이다. 그는 한달에 채 안되는 동안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안다. 그 길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겹고, 발 바닥이 아파오는지... 아픔을 이겨내고, 눈물을 머금고 그가 가려고 한 길에 다 왔을 때, 그는 어느 술집에서 '왕

년에' 대신에 '내년엔'이라는 희망과 꿈이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긴긴 설레임으로 추위를 떨쳐낸다. 술집에는 두 명이 사람이 앉아 있다. 한 분은 '왕년이'를 부르고, 한 분은 '내년이'를 부른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긴긴 겨울밤 동안 안주삼아 꼭 꼭 씹는다.

할머니는 무슨 일을 하기에, '사나흘'이 힘들다고 했다. 그러니깐 내가 처음으로 집을 벗어나 열흘정도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오늘은 이것을 보았구나, 이제 사흘 지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나는 낯선 자리의 풍경을 보고도 날을 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흘이 지나자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고 눈은 편안하다. 집은 먼먼 나라에 사는 외딴 섬이다. 나는 미지의 바다로 낯선 선장이 되어 있었다. 바다에서 나는 마음껏 향해를 하며, 더 넓은 세계를 품었다. 처음 책을 읽고 마주친, '사나흘'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그이 말이 진실로 옳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을까. 무엇을 하든 이 '사나흘'만 넘기면 된다. 그래서 지은이는 스무날이 넘는 동안 나라땅을 걸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국토 순례, 해남~통일 전망대"라는 깃발을 달고 걷는다. 길에 목적이 있으면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목적지에 닿느냐, 못닿느냐'하는. 그는 충분히 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시절,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오기와 자존심, 그리고 증요였다(82쪽) 그에게 중오도 삶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아래까지 내려갔고, 그곳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분명 길 위에서 서러지거나 발이 부러터지더라도 그는 툴툴 털며 일어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길에 나서지 못한다. 그의 가방이 무거워서이고, 걱정이 무거워서이다. 하지만 가방이 가벼운 이는 쉬이 길을 나선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국토 종단에 따른 자아성찰'이다. 지은이는 길에 '목적'을 던져 주었고, 옆길로 세지 않는다. 간간히 자기 삶을 들려주는데, 때론 이 이야기가 더 정감어리다.(목적에 따른 여유부족) 국토 종단은 이미 나에게, '박카스'처럼 식상한 음료인지 모른다. 길에 목적이 있으면 무조건 앞만 보며 걷게 된다. 너무 빨리 걸어서 다행이 아니라, 너무 늦게 들어와 행복하다고 해야 한다. 집을 나서는 순간 일탈이며, 벗어남이라면 길에서 집을 찾지 말고, '일탈'을 꿈꾸어야 한다. 어쩜 지은이는 스스로 걷지 못할까라는 두려움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걷게 된다면 분명 그의 걸음은 느릴 것이며, 깊은 혜안이 담겨질 것이다.

"그러니깐 왕복 4킬로미커, 십리를 헛걸음한거다. 누구를 타하랴(104쪽)"

『내 나이가 어때서』는 초등학생의 일기와 지난 삶에 대한 일기가 섞여 있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지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길인가 보다. 그는 길 위에서 '지난 그를 만나' 수 없이 혼자말을 한다. 길을 나서게 되면 나를 돌아보게 되나보다.

책을 읽고 나서 처음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당히 심어져 있는줄 알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내'라 적고 있지만 그의 걸음걸이를 들려주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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