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둘 수 없는 영혼 - 어느 티베트 라마승의 자서전
팔덴 갸초 지음, 정희재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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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야기가 한 나라의 역사가 된다.

티벳,
카일라스산을 보았다. 엽서 사진 속에 찍힌 전설의 산을 보고 그곳에 가는 길이 전설이라 생각했는데.. 몇 몇 이들이 다녀왓다며,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갈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하며 가슴 설레며,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직 티벳이라는 나라가 낯설다. 그냥 어깨너머로 듣은 이야기로는 지난해에 하늘길이 열렸다는 것 뿐.

칭짱철도가 열리고 나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다. 티빗에 더욱 발전할 것이다. 혹은 티벳의 지하자원이 중국으로 유출될 것이다라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들려온다. 백 여 년 전 일본이 우리나라에 경부선을 놓은 시절과 겹쳐지니, 내 생각은 아무래도 티벳이 동정적인 듯 하다.

많은 이들이 티벳을 다녀오고, 많은 이야기와 사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무엇이 있어, 책을 듣어보니 그곳에는 한 승려의 아픔이 티벳의 역사가 되어 숨죽혀 흐르고 있다.

팔덴 가쵸.
티벳에서 자라, 어느 사원의 승려되어 할머니가 사원 대법당에서 빌었던-'마음이 있는 존재들이 모두 평안하기를 , 그리고 아픈 사람이 없기를 기도한단다(46쪽)'-이야기를 되풀이 하며, 별 탈 없이 지낼이가 외부적 침입에 의해 몸이 산산조각 나지만 영혼만은 오롯히 지켜내려는 삶의 투쟁기가 그려져 있다. 이 삶속에는 티벳의 역사가 흐른다.

1959년, 중국 정부의 본격적인 탄압, 자율적 문화에 대한 존중과 경외감 없이 오직 '인민을 위한다'는 계급 투쟁을 구실삼아 한나라의 정체성을 흔들며, 스스로 계급 위에 굴림하는 모순, 문화 대혁명이라는 미명아래 문화 유산의 소멸, 중국이 그토록 티벳을 위한다는 말이 티벳에 의한 티벳인가 아니면, 중국에 의한 재창조된 티벳인가라는 점은 어려운 물음이 아니다. 지은이는 중국이 티벳이 가하는 온갖 고통을 몸으로 겪어낸다. 삶에 오롯히 새긴다.

한 사람의 아픔이 한 나라의 아픔이 되며, 한 나라의 아픔이 다른 별나라가 아닌 내 이웃의 아픔이길 나는 간절히 바란다.

중국은 티벳을 또다른 관공지로 둔갑시켜, 돈을 벌려고 한다면 유흥업소나 도박 장소로 '라싸'를 만들지 말고, 티벳이 지닌 문화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티벳에 반한 이유는 값싼 아가씨를 찾는게 아니라 '마음이 있는 존재들이 모두 평안하기를' 비는 순수한 마음과 자연 때문이다. 티벳 전체를 세계자연문화유산이 되길 바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읽는 내내, 한 승려의 삶이 힘들이 보이고, 힘으로 문화를 지배하는 이성이 불쌍하고, 티벳이라는 나라의 존엄성이 안타깝다. 하루 빨리 티벳이 제자리에 돌아오길 비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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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 사랑을 가장 먼저 배우는 티베트 아이들 이야기
정희재 지음 / 샘터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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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읽을 때, 긴가민가했다.
『다람살라의 선물』을 읽으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행복해지기를 기도 했어요(49쪽)"할 때 조금 놀라웠다. 내 기도는 나와 우리집 식구의 안녕쯤에 머무르기에....

『오래된 미래』에는 서구의 합리주의와 교육이 한 공동체의 삶과 자연관을 통째로 황폐화-바꾸어버리는 전이보다 더 무서운 의미가 실현되었기에, 두번 다시 그들의 전통삶을 세우기 힘들 듯 하기에-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라다크만이 아닌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물질적 풍요와 문명이 가져다 주는 편리 속에, 과연 나는 행복한가. 이 물질 문명이 우리와 함게 살아갈 벗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는 행복보다 가슴이 먼저 저며온다. 풍요와 편리라는 결승점을 향해 무수한 사람이 달려가지만 그 틈에 들 수 있는 이는 제한되어 있다. 그리하여 내가 그를 밀치지 않으면 그가 나를 밀치는 악순환의 구조속에 톱니바퀴처럼 엮겨간다. 주위를 둘러 볼 틈이 없다. 한눈 파는 사이 낙오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장승처러머 서서 나를 지켜보기 있기 때문이다.

과연 서구식 합리주의의 패러다임이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유익한가. 나는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입을 벌려 결코 그러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지만 지금은 '나는 소유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정의되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내가 될 수있는 것은 내 가치관과 자아 정체성, 꿈, 희망, 믿음, 사랑, 나눔등의 존재론적 물음이 아닌 열쇠 몇 개로 가둬지는 물질 소유 척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작은 세계가 살고 있다. 그 세계는 너무 작아 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지만 강한 민족애의 자부심과 정체성, 포용성을 지닌체 살아가고 있다.

2.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는 전작 [티벳의 아이들] 개정판이다. 전작의 제목이 직설적이고 숨김이 없이 드러났다면 개정판에서는 티벳의 아이들이 지닌 미덕의 언어를 풀어 놓았다. 여기에 '당신'이 지칭되는 이는 무한정이다. 다시 『다람살라의 선물』의 말을 빌리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행운을 비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마 그네들은 삶은 안락함 속에 여유로움이 아닌 처절한 절규 속에서 세상을 보듬고 있기에 더욱 소중할런지도 모른다.

첫 장면, 지은이는 다람살라에 가서 '티벳 어린이 마을'에 유숙한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발을 벗지 않는 체링, 모든 아픔을 간직한 빼마, 종이 인형을 잡고 잡드는 하모, 지은이에게 설교하는 텐진, 모기와 이웃한 롭상, 운동장을 달려와 안기는 텔레-이 사진은 너무 귀엽고 좋다. 아이들은 티벳을 두고 히말라야를 너머온다. 그들은 성숙한 어른이 되어 히말라야를 넘어온게 아니라, 아주 어릴 때 산을 넘는다. 부모를 남겨두고... 아이의 눈이 티 없이 해맑아서, 웃는 표정이 마냥 좋아서 아이들이 내 머리를 떠돌아 다는게 아니다. 아이의 아픔과 간절함,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데, 세상을 향해 투덜되었던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책을 읽다말고,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눈물날 듯 하다.

3.
책 속에서 지은이는 많은 티벳인(人)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에게서 상처를 치유받곤한다. 자기 나라를 뺏겨 버리고, 긴 아픔과 고통을 너머온 이들에게서 지은이는 사랑받고, 위로받고, 상처의 치유를 받는다. 물질적 풍요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티벳인들은 간직하고 있음에분명하다. 또한 놀라운 것은 높은 교육열은 개인의 물질적 성공이 아닌 티벳의 아픔을 알리고, 다시 조국에 돌아오기 위한 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티벳인들이 부처인 냥 지은이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도 일자리와 경제적인 문제에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미래를 지은이가 만난 사람 속에서 엿본다.

4.
여행이라는 것은 우리 삶의 또다른 면이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단체로 우루루, 혹은 많은 돈으로 자동차를 타고 스쳐가며, 혹은 지은이처럼 발품팔며 그들 삶속으로. 어떠한 여행을 할 것인가는 개인적 몫이다. 그리고 떠남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도 자아가 챙겨야 할 선(禪)이다. 내가 떠난다면, 나는 그의 발걸음을 따르고 싶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고, 지은이가 어느 법당에서 절 하는 장면을 떠올린다.(339쪽)

미쳐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기 보다
이미 가진 것을 값지게 쓰는데 집중하기를,
내 가난함에 비통해하기 보다
세상의 헐벗음에, 어머니들의 고통에 깨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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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날의 벗 태학산문선 101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 태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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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놓았다가 어떤 미련 때문에 다시 든다.

박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그가 실학자이며 중국에 취해 [북학의]를 적었다고 했을 때, 시험문제 정답을 하나 더 맞추기 위해 외우는 정도였지, 그 알맹이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다음, 나는 그의 글을 읽었고 그의 진언을 들었다. [북학의]는 단순히 중국에 경도 된 이들의 중국예찬이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젊은 선비의 직언이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그의 사념과 세계관을 쫓았다. 그리고 다시, [궁핍한 날의 벗]이라는 산문선을 읽는다. 앞서보다 집중도는 떨어지는 듯 하지만 그의 일관된 세계관은 시 쓰기에 대한-다양한 견해를 읽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세계관과 크게 엇나가지 않아 동음중복되는 듯해 건성건성 읽는 듯 했는대, '개혁의 방안'에서는 두 눈 부릎뜨고 읽는다.


정조 10년에, 임금은 아랫사람에게 '진언'을 청했다. 이에 박제가는 나라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가난'이며 이를 극복할 대안을 '무역'으로 내어 놓는다. 그가 생각하는 무역은 '가진 것을 다른데로 옮기고, 없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160)'이라 말하고, 서양사람들이 비록 천주교를 믿지만 '기하학에 밝고 이용후생의 학문과 기술에 정통(162)'하기에 초빙을 건의한다. 그의 사고관은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일일이 앉아서 적었다면 어찌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으며, 시야가 어찌 이렇게 넓을 수가 있을까? 실로 읽고 읽고 또 읽지만 그저 감탄뿐이다. 나라를 걱정함에 있어, 누구보다 깊은 충정이 드러나고 넓은 세계관에 옷깃을 가다듬는다. 실로 나라에 이런 이가 맞지 않고, 천리마가 있어도 백락(伯樂)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박제가는 새치혀로, 그의 논의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견해까지 내어놓는다.

'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놀고먹는 자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이유는
사족이 날로 번성하는데 있습니다.(164쪽)'

놀고 먹는 자들에 대하늑의 경고에는 날이 서 있다. 진언을 청하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시대. 나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내 시선은 얼마만큼 열려 있는지 박제가를 통해 나를 뒤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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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나의 티베트
게일런 로웰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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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에게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그 병은 망상으로, 친구들은 제 정신을 놓게 하는 병이라 했다. 나는 망상을 현실로 끌어오게 되면 치유되지 않을까라고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던지다, 그 치유에 대한 깊은 갈망에 휩쌓여 있다. 내 병의 근원은 '그 곳에 가ㅏ보고 싶다'는 데에서 출발함을 안다.

나는 봄부터 차근차근, 그 나라에 관한 책을 읽어내려간다. 그리고 또 다시 책을 펼친다. 이번에는 사진과 글이 녹아 있다.

사진가는 달라이 라마님에게 티벳을 보여주고, 나아게도 보여준다. 달라이 라마님은 그의 조국에 대해 다시 사진가와 나에게 들려준다. 그가 어린시절 머물렀던 라싸의 포탈라궁, 티벳인이 지닌 가치관. 내 눈은 사진과 달라이 라마님의 글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한다. 보통 사진과 글이 있으면, 글이 먼저 드는데... 이번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가 보고 싶은 곳에 대한 동경이 짙기 때문일까? 그리고 달라이 라마님의 글은 어느 한 구절 놓치기 아까울 정도이고,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 대한 근원적인 선(禪)이라 생각된다.

칼을 쓰는자 칼로 베이고, 힘을 쓰는자 힘에 의해 멸할 것이다. 오직 행복을 추구하고 번영하는 길은 '마음의 안정'이며, '평온', '내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일 것이다.

오늘 나는, 내가 그리워하는 세계와 마음에 품어야 할 언어를 두 손에 꼭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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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다리 빛깔있는책들 - 민속 18
손영식 지음 / 대원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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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하면, 누구나 추억하나 가지고 있을라나...
적어도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앞서까지, 내게 다리는 잊어버리고 싶은 곳이였다.

동네 아주머니가 집앞을 지나가면 언제나 그냥 가시지 않고, '니 저 뱃다리껄에서 주서왔데이'하며 농담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울면서 엄마한테 달려가 그 말이 진짜인지 물어보곤 했다. 한번 두번 물어보는 것도 아닌데, 난 늘 아주머니가 지나가면 엄마한테 달려가곤 했다. 아주머니는 내 머리가 굵어지자 이제는 동생한테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어머니는 '그만 장난치라'하셨지만 두 사람이 건내는 말은 서로가 건성이 짙다. 어쩜 아주머니는 아이가 울 줄 알면서도 그 말을 건내는 건 지난 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하나 보태기 위함이 아니였는지 오늘에 들어 간혹 생각에 잠긴다.

초등학교 때에는, 집에 가는 길에 조그마한 다리 하나 건너야 했는데 우리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겨울이면 썰매를 타고 여름이면 두 시간이고 발가벗고 헤엄치며 물고기랑 놀았다. 열두시 쯤에 마치는 토요일 같은 경우에는, 집 마루에 가방을 던져 놓을 때에는 오후 서너시가 되기 일쑤였다. 다리는 어쩌면 내게 가장 친근한 놀이터였는지 모른다.

어릴때부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다리'는 나이를 들어도, 그 놀이터에 대한 추억만을 지워보낼 수가 없었다. 여름날이면 괜시리 어린시절에 뛰어놀았던 다리에도 가고, 비가 오면 현교과서를 찢어 종이배를 만들고 싶어진다.

[빛깔있는 책들]의 장점은 짧은 책 속에, 필요한 정보가 객관적으로 담겨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두꺼운 연구서나 해설서가 어려울 때 징검다리처럼 먼저 건너가기 쉽게 다리를 잇는 책이 [빗깔]시리즈 일 것이다. 나 또한 이 매력 때문에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리라.

[빛깔]시리즈의 『옛다리 』는 우리나라에 남은 다리를 여러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그는 재료(흙, 나무, 돌), 형식에 따라 크게 구분한다. 그리고 다리의 구성을 곁들인다.

너무나 객관적인 거리에 서서 다리를 건너다 보니, 조금은 답답하거나 정감이 들지 않게 한다. 지은이의 눈은 다리에 대한 명확한 분류와 설명만이 목적인 듯 하다. 이런 점에서 다리에 나온 사진 역시, 그 아름다움은 오직 건너기 위함에 둔게 분명하다.


    영주 무섬다리와 창원 주남새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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