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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 사랑을 가장 먼저 배우는 티베트 아이들 이야기
정희재 지음 / 샘터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1.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읽을 때, 긴가민가했다.
『다람살라의 선물』을 읽으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행복해지기를 기도 했어요(49쪽)"할 때 조금 놀라웠다. 내 기도는 나와 우리집 식구의 안녕쯤에 머무르기에....
『오래된 미래』에는 서구의 합리주의와 교육이 한 공동체의 삶과 자연관을 통째로 황폐화-바꾸어버리는 전이보다 더 무서운 의미가 실현되었기에, 두번 다시 그들의 전통삶을 세우기 힘들 듯 하기에-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라다크만이 아닌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물질적 풍요와 문명이 가져다 주는 편리 속에, 과연 나는 행복한가. 이 물질 문명이 우리와 함게 살아갈 벗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는 행복보다 가슴이 먼저 저며온다. 풍요와 편리라는 결승점을 향해 무수한 사람이 달려가지만 그 틈에 들 수 있는 이는 제한되어 있다. 그리하여 내가 그를 밀치지 않으면 그가 나를 밀치는 악순환의 구조속에 톱니바퀴처럼 엮겨간다. 주위를 둘러 볼 틈이 없다. 한눈 파는 사이 낙오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장승처러머 서서 나를 지켜보기 있기 때문이다.
과연 서구식 합리주의의 패러다임이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유익한가. 나는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입을 벌려 결코 그러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지만 지금은 '나는 소유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정의되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내가 될 수있는 것은 내 가치관과 자아 정체성, 꿈, 희망, 믿음, 사랑, 나눔등의 존재론적 물음이 아닌 열쇠 몇 개로 가둬지는 물질 소유 척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작은 세계가 살고 있다. 그 세계는 너무 작아 제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지만 강한 민족애의 자부심과 정체성, 포용성을 지닌체 살아가고 있다.
2.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는 전작 [티벳의 아이들] 개정판이다. 전작의 제목이 직설적이고 숨김이 없이 드러났다면 개정판에서는 티벳의 아이들이 지닌 미덕의 언어를 풀어 놓았다. 여기에 '당신'이 지칭되는 이는 무한정이다. 다시 『다람살라의 선물』의 말을 빌리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행운을 비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마 그네들은 삶은 안락함 속에 여유로움이 아닌 처절한 절규 속에서 세상을 보듬고 있기에 더욱 소중할런지도 모른다.
첫 장면, 지은이는 다람살라에 가서 '티벳 어린이 마을'에 유숙한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발을 벗지 않는 체링, 모든 아픔을 간직한 빼마, 종이 인형을 잡고 잡드는 하모, 지은이에게 설교하는 텐진, 모기와 이웃한 롭상, 운동장을 달려와 안기는 텔레-이 사진은 너무 귀엽고 좋다. 아이들은 티벳을 두고 히말라야를 너머온다. 그들은 성숙한 어른이 되어 히말라야를 넘어온게 아니라, 아주 어릴 때 산을 넘는다. 부모를 남겨두고... 아이의 눈이 티 없이 해맑아서, 웃는 표정이 마냥 좋아서 아이들이 내 머리를 떠돌아 다는게 아니다. 아이의 아픔과 간절함,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데, 세상을 향해 투덜되었던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책을 읽다말고,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눈물날 듯 하다.
3.
책 속에서 지은이는 많은 티벳인(人)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에게서 상처를 치유받곤한다. 자기 나라를 뺏겨 버리고, 긴 아픔과 고통을 너머온 이들에게서 지은이는 사랑받고, 위로받고, 상처의 치유를 받는다. 물질적 풍요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티벳인들은 간직하고 있음에분명하다. 또한 놀라운 것은 높은 교육열은 개인의 물질적 성공이 아닌 티벳의 아픔을 알리고, 다시 조국에 돌아오기 위한 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티벳인들이 부처인 냥 지은이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도 일자리와 경제적인 문제에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미래를 지은이가 만난 사람 속에서 엿본다.
4.
여행이라는 것은 우리 삶의 또다른 면이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단체로 우루루, 혹은 많은 돈으로 자동차를 타고 스쳐가며, 혹은 지은이처럼 발품팔며 그들 삶속으로. 어떠한 여행을 할 것인가는 개인적 몫이다. 그리고 떠남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도 자아가 챙겨야 할 선(禪)이다. 내가 떠난다면, 나는 그의 발걸음을 따르고 싶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고, 지은이가 어느 법당에서 절 하는 장면을 떠올린다.(339쪽)
미쳐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기 보다
이미 가진 것을 값지게 쓰는데 집중하기를,
내 가난함에 비통해하기 보다
세상의 헐벗음에, 어머니들의 고통에 깨어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