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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 주고 베트남도 역시 빨간 봉투에 소액의 새 돈을 넣어 주는 ‘리시’라는 관습이 행해진다.

일본도 예전에는 도시에서만 행해지다 1960년대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치러졌는데, 그게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널리 유포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현재에는 북한에서도 새뱃돈을 준다고 한다.

그럼 연령에 따른 세뱃돈 적정 금액이라도 있는 걸까? (본인의 능력껏이면 되지 않는가?!)

인터넷에 유포돼 있는 ‘세뱃돈’ 관련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90년대후반부터 경기가 나빠지면서 세뱃돈 액수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

평균 금액?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많을수록 좋겠지만 대략 초등학생은 5,000~1만원, 중학생은 1만~2만원, 고등학생은 2만~3만원이 적정선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러나 본인의 능력 껏, 또는 성의 차원에서 소액을 주는 게 좋다. 많은 돈을 주어 나쁜 영향을 주기보다는 적은 돈으로 올바른 지출을 가르치는게 중요!

덧붙여 보자면 최근에는 새 5000원짜리 지폐가 설을 맞아 쟁탈전(예약까지 한다고 한다)을 방불할만큼 대단하다고 한다. 설마...내년에 새 1000원권, 10000원권 지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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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한 수입이 생겼다...^^

그래서 곰곰히 고민해 보았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결론은...통장 만들기!!

장장 두시간을 이자 비교부터 은행 비교하다보니 머리가 뱅뱅...

사실 통장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2개나 있는 통장이 입출금 자유라서 이자가 거의 전무.

뿐만 아니라 이미 액수가 어무이에게 들통난 상태.

그러니 나의 비자금 통장이 필요하다.

플러스로 이자도 짭짤하면 더 좋고.

펀드는 해볼려 했지만... 원래 그런데 머리 쓸만큼 좋지가 않다.

흑흑... 통장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아무래도 설날 기간동안 고민 좀 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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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부르(Cherbourg)





프랑스 바스노르망디주(州) 망슈현(縣)에 있는 도시.
인구는 2만 8773명(1990)이다. 파리 북서쪽 344km, 코탕탱 반도의 북단에 위치하며 영국해협에 면한다. 대안의 사우샘프턴까지의 거리는 약 145km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대서양 항로의 중요한 기항지였으나, 지금은 주로 영국과의 무역을 위한 상항(商港)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조선․선구(船具)․보일러․볼트 등의 제조공업이 활발하다. 또 군항이기도 하며, 해군공창(工廠)과 원자력연구소가 있다. 1686년 S.보방이 축항을 시작했으며, 7년전쟁 때에는 영국군에게 유린당하였다. 1783년 루이 16세가 3,712m에 이르는 제방공사를 착수하게 했으며, 1858년 나폴레옹 3세 때 완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의 점령(1940~44)으로 폭격․파괴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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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멜른(Hameln) >

11세기에 세워진 타운으로, 하노버 남서쪽 베저 강에 면해있는 매력적인 작은 항구도시.

 



< 쥐잡이 피리부는 사나이(Pied Piper of Hamelin) >

독일의 전설로 전설에 따르면 1284년, 약13세기 경 하멜른은 쥐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얼마 후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 보수를 요구하면서 신비한 피리 소리로 쥐떼를 유혹해 내어 베저 강 속으로 몰아넣어 익사시켜 죽였다. 그런데 쥐들을 성공적으로 퇴치하였음에도 인색한 하멜른의 시 당국에서는 약속한 보수를 지불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난 사나이는 다음 일요일에 다시 나타나 피리를 불어 이번엔 절름발이 한 소년을 제외한 타운의 모든 아이들(약 130명 가량)을 이끌고 산 속의 지하동굴로 데리고 가버렸다. 그 후로 다시는 누구도 어린이들과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보지 못했다.

이 전설은 16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독일 젊은이들이 동부를 개척하기 위하여 떠난 사실과 결부시키기도 하며, 1212년 수천 명의 독일 소년들을 이끌고 소년 십자군 원정에 나섰던 쾰른의 소년 니콜라스가 바로 피리 부는 사람이었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 두 개의 이야기를 결합한 전설이라고득 한다.

해마다 6월 26일이면 피리부는 사나이는 험상스러운 모습과 불가사의한 빨간 모자를 쓴 사냥꾼의 복장을 하고 돌아 와 도시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드는 동안 그는 다시 한번 거리에서 피리를 분다.

 

< 쥐 잡는 사람의 집(Rattenfangerhaus) >

1603년에 지워진 거대한 건물인 이 집은 쥐잡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설을 묘사해 놓은 프레스코화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 1층은 현재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쥐꼬리 요리, 쥐꼬리 스프, 그리고 쥐 모양의 빵 등 유독 쥐에 관한 메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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