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가 여성의 선택 문제로 환원되면 순전히 개인적인 결정처럼 보일 수 있다. 여성이 임신해 엄마가 되든 임신중지를 하든, 그런 일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임신과 양육에 대해 내리는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는, 젠더ㆍ계급ㆍ인종 같은 요인 때문에 그 여성이 어떤 선택에 다가갈 수 있으며 어떤 선택에서 멀어지는지, 더 넓게는 선택이 사회ㆍ문화적으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선택의 자유로 축소해 버리면 임신중지를 우리 시대의 도덕적ㆍ사회적ㆍ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사회ㆍ정치의 요인이 흐릿해진다.

오로지 여성의 선택권과 임파워링nempoweringn의 측면에서 피임과 임신중지를 외치면, 인종ㆍ계급ㆍ장애를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은 양육자로 여겨진 여성들의 생식력을 통제하는 데 임신중지가 어떻게 이용돼 왔는지를 알기 어렵게 된다. 임신중지에 대한 규제는 재생산과 관련해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이며, "아이를 갖지 않을" 권리는 "아이를 가질 권리 그리고 출산을 조절할 권리, 낳은 아이를 기를 권리"와 함께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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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1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이거 맨 앞 <들어가며>에 멈춰있는데요, 곧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1 08:45   좋아요 0 | URL
<들어가며>가 생각보다 많이 길더라구요. 저도 여전히 앞부분이라...ㅠ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다락방님도 화이팅입니다!
 

<차가운 손가락>
읽고 나서도 얼떨떨했다. 뭘 말하고 싶은거지? 차에 갇힌 여자가 빠져나오려하고, 어떤 여자가 돕는데… 그 여자의 정체는?
내가 보고 듣는 걸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걸 말하는 듯 싶긴 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비극적인 감정에 매몰되면 주변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몸하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뜩이나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난 그런 경험이 없지만 이건 그냥 느낌으로 다 알 수 있었다. 임신이라는 상황에 부딪치고, 그것도 처음 임신이라면 누구라도 허둥대는 건 당연할 것 같은데.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너무 억울했다.
기껏 아이의 아빠를 구한다는 방법이 신문에 내는 거라니… 요즘 세상에 정보는 순식간인데…
마지막 장면은 처참했다.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것 같아서…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얼마 전 읽었던 여성괴물에 나온 여성의 자궁에 대해 이야기한 -브루드-를 떠올렸다.

산다는 거, 정말 불공평하지 않아요? 똑같이 태어났는데,
누구는 남의 남자 채 가서 결혼도 하고, 누구는 단물만 빨다 껌 뱉듯이 버려지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다시 말을이었다.
"재미있지 않아요? 똑같이 차 사고를 당해도, 누구는 끈질기게 살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
"당신, 누구예요?"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이제 억누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억울할 것 같지 않아요? 살아 있을 때도 혼자였는데, 죽어버리고 나서도 계속 혼자면.…."
"여기, 어디예요? 난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계속 소리쳤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왼쪽에서 가느다랗게 킥킥 웃었다.
"사람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불안하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믿고…."
"당신, 뭐예요?" - P78

"엄마가 되겠다는 분이 자기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배 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한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태아가 발육하는 단계에서 벌써 이렇게 나 몰라라 하시면 나중에 낳아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 P95

자칭 ‘로미오‘는 그녀가 호출에 응하지 않자 직접 전화하기시작했다. 매일같이 전화하여 갖가지 문학 작품에서 남자가여자에게 구애하는 장면만 골라 읽으며 꼭 한 번 만나줄 것을간청했다. 꼬마들의 장난 전화도 자주 걸려왔고 자신의 오빠나 남동생, 아버지, 아들, 심지어 남편을 소개해 주겠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협박성 전화도 있었다. - P100

‘아기‘는 계속 꿈틀거리다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검붉은덩어리는 아주 잠깐, 핏빛 보석처럼 더없이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기‘는 혈액으로 와해되어버렸다.
그녀는 팔과 가슴이 피에 흠뻑 젖은채, 여전히 아기를 안은 모양대로 한쪽 팔을 둥글게 구부려 치켜들고, 피투성이가된 가운 앞섶과 분만대 가장자리에 고인 피 웅덩이를 멍하니내려다보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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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가 된 것 같다.
이틀 연속 폭우로 퇴근길은 최악이었다.
월요일 퇴근 때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일부러 검은색 바지를 입기는 했으나 소용 없었다. 온 몸이 다 젖은 채로 버스에 탔다.
올 여름 들어 벌써 두 번째 이런 사태였다.
어제는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서 불편하지만 샌들을 신었고 평소 입지도 않는 치마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퇴근에 때맞춰 미친 듯이 쏟아붓는 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차가 막혀서 퇴근 버스가 원래 오기로 한 시간보다 5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비를 맞고 에어컨 냉기를 쐬니 춥기도 했는데 어찌저찌 집에 도착했다.
온 몸이 두드려맞듯 욱신거렸다. 백팩 안에 책이 혹시라도 젖을까봐 사수하느라 팔에 힘을 잔뜩 주고 1시간 가까이 서 있었던 탓이었던 것 같다.
보도 뉴스에는 온통 흙탕물과 물바다가 된 도심의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기후 위기가 재난 수준이 된 것 같다.
1년에 내려야 할 비 양의 1/3 정도가 내렸다고 하니 말 다했다.
부디 이번주 더는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


#2

힘이 빠져 저녁은 대충 먹고 <저주토끼>를 읽기 시작했다.
괜히 읽었나 생각했다. 머릿속에 장면들을 떠올리면 불쾌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머리- 같은 경우^^;
좀 작위적인 설정들도 보이기는 했지만 저주토끼 단편은 두둔할 만한 메시지도 있었다. 계급과 자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정직이라는 단어는 사회에 통하지 않고 사기가 더 잘 통하는 세상이었다.


오늘 출근해서는 두 개의 단편을 더 읽었다.



- 추가


#3


고민하다가 <하얼빈>을 주문했다. 안중근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이라 사야겠다고 결심을 굳힌 것이다.


정희진 글쓰기 시리즈는 1~3번째 1권 초반만 읽고 방치한 상태인데  5번째 책을 샀다. 좀 더 잘 읽힌다는 이야기를 듣고^^;

1권을 읽다 만 것은 방치라기보다는 한 편의 글을 읽고 나면 관련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려둔 것이다. 



8월의 커피를 포함시켰고~ 난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지라 고소한 맛으로 샀다.




<헤어질 결심> 각본이 열풍인 와중에 나는 <동주> 각본집을 보자마자 설레서 결국 주문에 포함시켰다.

당시 좋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관에서는 한 번만 봤지만 이후 개인적으로 몇 번 더 보았던 기억이 난다.

두 배우의 연기도 참 좋았고... 보고 있으면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이 아스라히 내 마음에 와 닿았었다. 

이 영화야말로 큰 화면으로 봐야 더 좋은 영화이다.

밤하늘의 별. 암흑 속에서 빛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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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0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폭우때문에 다들 비피해 입으신건 없는지 걱정이네요. 퇴근길이 정말 힘들었겠습니다. 저러고 집에 오면 정말 기진맥진이잖아요. 에휴....
여기 남쪽은 또 비 구경 하기 힘드네요. 아직 가뭄 해소도 제대로 안된지라 그는 또 그대로 걱정입니다.
저주토끼 처음에 좀 찜찜했는데, 특히 말씀하신 머리요. 근데 뒤로 갈수록 저는 좋아졌습니다. 부디 화가님도 좋아지시기를요. 뭐 아니어도 좋구요. 세상에 취향에ㅠ맞고도 좋은 책들은 널려있으니 말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0 10:04   좋아요 3 | URL
저주토끼는 어차피 대출한 책이라 저도 가볍게 생각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여러 단편이 실려 있어서 그 중 마음에 드는 단편 하나 건지면 되겠다 생각하고 읽고 있어요^^;

비 구름떼가 충청 이남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뭄은 해갈되어야겠지만 비가 단시간 내에 마구 쏟아지는지라 그럴까봐 또 걱정이네요~ㅠㅠ 한쪽은 폭염과 가뭄, 다른 한쪽은 폭우 이래 저래 기후위기가 맞나봅니다.

프레이야 2022-08-10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뉴스에 알게 된, 폭우로 숨진 반지하방 가족 생각했습니다.
남쪽은 폭염이라 실감이 나지 않고 뉴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동주 각본집 사셨군요. 그 영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0 13:13   좋아요 2 | URL
재난과 위기는 어려운 이들에게 더 가혹한 상황이 되니 마음이 아픕니다. 자본과 계급이라는 단어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고요.
동주 영화 좋죠. <하얼빈> 출고일이 좀 늦어져서 주말에나 받게 되겠지만 영화의 대사들이 제 가슴을 치고 들어올 것을 생각하니 설레입니다^^

mini74 2022-08-10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화가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ㅠㅠ 동주. 저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저 어리고 고운 청년들이 왜. 라며 훌쩍이게 되는 영화네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8-10 16:53   좋아요 1 | URL
어제 퇴근 무렵 많이 추웠는데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잤더니 그나마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코로나가 사무실에도 들이닥쳐서 다시 조심해야 하는;;;
동주 보면 매번 뭉클해요~ 각본을 소장할 수 있어 좋습니다^^*

레삭매냐 2022-08-10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얼빈 읽고는 싶으나 왠지
제 돈 주고 사서 읽기에는 -

그리하야 아마도 가을이나 겨울
쯤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21:12   좋아요 2 | URL
저도 고민고민하다가 주문했어요~ 별로일수도 있을텐데 일단 이야기의 구성이나 문장력에 중점을 두고 읽어보려고 합니다.
날씨 서늘할 때 읽으면 더 좋을 듯도 싶네요. 레삭매냐님의 후일 감상도 기대해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2-08-10 2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정하는 김훈작가의 하얼빈 기대됩니다^^
이문열의 불멸과 어떤 차별을 두고 썼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주토끼는 별 기대없이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빨려들어 단숨에 읽어 버렸어요.
기시감이 느껴지면서도 색다른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아직 동주, 영화 보지 못했는데 봐야 하는데도 맘이 아플까봐 보지 못하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2-08-11 08:57   좋아요 2 | URL
김훈 작가님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저는 사실 아직 깊게 빠져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필생 사업이라고 작가가 이야기한 안중근에 대한 것인 만큼 더 좋을 거라고 기대중입니다.
저주토끼 읽으면 읽을수록 다양한 주제와 묘한 분위기에 끌려 흡입력 있게 읽고 있습니다. 단편이라 주중에 읽기에도 좋네요ㅎㅎ
동주 영화로는 보지 못하셨군요. 한 번쯤은 꼭 보셔요. 큰 스크린으로 보면 더 좋은데~^^ 맘은 아프지만 참 잘 그려낸 수작입니다.

희선 2022-08-11 0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가 많이 와서 힘드셨겠네요 물바다가 된 곳 보니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 한번 겪기는 했는데... 그 뒤부터 여름 오고 비 온다고 하면 걱정합니다 기후변화가 심하네요 위기가 맞네요 지금부터라도 좀 나아지게 해야 할 텐데... 다음주에도 온다고 하던데 그때는 그렇게 많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영화보다 책으로 만나는군요 《동주》도 책으로 봤습니다 몇해 전에...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1 08:59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물을 무서워하는데 이번 비는 진짜 너무 무섭게 내려서 공포 수준이었습니다. 이제는 한반도도 기후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영화와 책은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이건 각본집이니까 영화를 보는 것처럼 볼 수 있는 맛이 있을 것 같아요. 희선님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2-08-11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폭우때문에 난리였군요 ㅜㅜ 그래도 출근해서 단편 읽고 좋은시간을 보내셨군요~!!
저도 하얼빈 읽고 싶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11 13:06   좋아요 2 | URL
수도권 전체적으로 난리였죠ㅠㅠ 이곳 다시 비가 옵니다. 이젠 비가 무섭고 지겹네요ㅜㅜ 주중에는 단편을 읽을까봐요. <저주토끼>는 기괴한 이야기와 묘사가 있어서 오싹해하며 읽었습니다ㅎㅎㅎ
<하얼빈> 새파랑님도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2022-08-11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2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주토끼]

토끼 모양을 한 전등이 저주토끼다. 저주의 방법을 보면서 예전에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이 중전을 저주하며 사람 모양을 한 인형에 저주를 걸어 비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에게 그렇게 앙심을 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의 방법은 잘못되었으나 할아버지 친구는 억울할 만했다. 이 사회는 약삭빠르고 남의 등을 쳐먹는 사기꾼들은 잘만 살아남는데 반대로 어리숙하거나 순진하거나 열심히 사는 이들은 바보되기 십상 아닌가. 생각해보면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


[머리]
내가 버린 머리카락, 배설물, 생리대, 오물 등이 머리가 되어 변기에서 나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면?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오싹하긴 했는데 내가 사용하는 것들에 과한 것이 없나 생각해보게 됐다. 낭비에 대한 것들. 배설물도 먹는 대로 나오는 것이다. 먹는 양이 적으면 배설물도 적어지지 않을까. 환경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나에게서 나온 피조물이 나를 공격해서 나를 밀어낸다는 마지막 결말은 충격적이기는 했다. 이는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만들어낸 산물이 결국 나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결코 내 몸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

할아버지의 친구는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술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다. 정부 인사와의 친분, 인맥, 접대, 필요에 따라서는 뇌물이나 뒷거래가 제품과 기술보다 중요한 시대라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친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해버린 술 시장을 넘보는 더 큰 회사가 있었다. 인맥과 연줄에 강하고 접대에 능한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알코올에 물과 감미료를 섞은 액체가 ‘서민들이 선호하는‘, ‘정통의 그 맛‘이라 광고했다. 앞에서는 정당하게 언론매체에 광고했지만, - P13

등 뒤로는 할아버지의 친구 회사에서 만든 술에 ‘공업용 알코올을 섞는다‘고, 그 술을 마시면 눈이 멀고 불구가 되며 많이 마시면 죽는다고 비방했다.
매출이 뚝뚝 떨어졌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다. 아니라고아무리 해명해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자기 공장에서만든 술을 직접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려 해도 그 어느 방송에서도 상대해 주려 하지 않았다. - P14

토끼들은 계속 보이는 대로 갉아댔고 그러면서 계속 번식했다.
서랍 속과 철제캐비닛 속에서 주문서와 계약서와 영업실적 보고서와 회계장부와 재무제표 등등 모든 서류가 밤마다조각조각 씹히고 밝히고 찢겼다. 서류를 추려서 금고로 옮기자 금고 안에 있던 현금과 수표,
어음까지 밝히고 씹히기 시작했다. - P23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업은 그 어 - P33

느 때보다 호황이다.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산다면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죽어도 죽지 못한 채 달 없는 밤 어느 거실의 어둠 속에서 나를 이승에 붙들어두는 닻과 같은 물건 옆에 영원히 앉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창가의 안락의자에 앉게 될 때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자식도, 손자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문을 닫고 완전한 어둠 속에 홀로 선다.
이 뒤틀린 세상에서, 그것만이 내게 유일한 위안이다. - P34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리곤 했던 빠진 머리카락과 당신의 배설물과 뒤를 닦은 휴지 등,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린 것들로 인하여 제가 생겨났기에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P39

그녀는 젊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은 자신의 몸을바라보았다. 자궁과 탯줄이 아닌 대장과 배설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어엿한 성체를 이룬 존재를 바라보았다. 순백의도기 속에 가려진 그 검은 구멍에 숨어 그렇게도 오랫동안 그렇게도 지겹게 자신을 괴롭혔지만 이제 떠나겠다는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작별하는 마당이라면, 정말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옷 한 벌쯤 주어도 무방할 터였다.
젊은 그녀가 수건으로 몸을 닦는 동안 늙은 그녀는 옷을 벗었다. 별로 화사한 입성은 아니었다. 카디건 하나와 원피스,
브래지어와 팬티, 양말, 그것으로 전부였다. 그녀는 알몸이되어 젊은 그녀가 늙은 그녀의 옷을 하나하나 천천히 주워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팬티, 브래지어, 원피스, 카디건, 젊은그녀는 공들여 하나하나 음미하듯이 옷을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신고 카디건의 앞섶을 여몄다. 늙은 그녀는벗은 몸에 문득 으스스 한기를 느꼈다. - P55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
말을 마치고 젊은 그녀는 늙은 그녀에게 다가섰다. 젊고 억센 손이 늙은 어깨와 목을 붙잡았다. 젊은 그녀는 늙은 머리를 변기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늙은 발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늙은 몸을 가볍게 변기 속에 거꾸로 처넣고나서 젊은 그녀는 변기의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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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어느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계속 꾸준히 독자를 유입하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 자체의 흥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주로 나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과거 이 땅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을 선조들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토지 1권을 오디오북을 통해서 완청(!)했다. 처음에는 집중도 어렵고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듣다보니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빠져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치수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처음에는 좀 으스스하고 기괴하다 생각했다. 나중에는 날카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에 있는 화를 분출하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어린아이의 못된 심보 같은 것도 보인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사건 및 인물들에 주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따라서 소설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하고 거기에 사견을 붙이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하려 한다. 앞으로 읽어나갈 이야기도 그렇게 진행할 것이다.


1권의 시대적 배경은 1896년에서 1897년까지다.

동학농민들이 주장했던 폐정 개혁안으로 노비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책에는 동학농민운동과 을미사변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1894년부터 1895년까지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면서 들불처럼 민중이 일어났고 1895년 을미사변까지 발생하면서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두 사건은 국내 정치 뿐 아니라 주변국의 정세까지 바꾸어놓는 결과를 낳는다.


동학은 당시 사회의 기층민중과 불만에 찬 백성들을 결집시키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동학은 자신들을 포라고 했는데 법포와 서포가 있었다. 법포는 최시형을 받들었는데 시형의 호가 법헌이었기 때문이다. 서포는 서장옥을 받들었는데 수원 사람이었다. 서장옥과 최시형은 모두 최제우의 학문을 따랐고 최제우가 사망하자 각각 도당을 세워 이어가면서 이름하기를 포덕(布德)이라 했다. 


동학교도들은 산 아래 평지에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냈으며, 그 안에 모여 깃발을 내걸고 대오를 정비했다. 큰 기에는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라 씌어 있었으며 그 아래 중앙에 황색기를 꽂고 사방에 각각 방위를 나타내는 색깔의 기(色旗)를 내걸었다. 포접과 지역을 나타내는 작은 기도 무수히 많았다. 이들은 양곡을 조달하기 위해 더러 부자를 잡아다 결박하기도 했고 돈을 거두어 쌀을 무더기로 사오기도 했으며 새로운 방문과 통문을 내기도 했다. 이때에 모인 각지의 대접주는 손병희, 임규호, 손천민, 김덕명, 손화중, 김기범(김개남), 김낙삼, 김방서 등이었다. 이들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중심의 접주들이었다.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8권 P167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 이후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의 실정으로 동학 교도들이 봉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소요로 판단하여 홍계훈을 초토사로 파견하였으나 동학도들은 계속 유입되면서 마침내 전주성을 함락시켰다. 동학농민군은 전주에서 물러난 후 전라도에서 반봉건 투쟁을 이어간다. 


"지금의 형세를 살피건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 ... 권력을 쥐고 있는 대신들은 모두가 외척이고, 밤새도록 하는 일은 단지 자기를 살찌우는 방법만을 궁리할 뿐이다. 자기 당파의 무리를 각 고을에 나누어 퍼뜨려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짓을 일삼케 했으니, 백성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초토사 홍계훈은 사람됨이 무식할 뿐만 아니라, 동학의 위세에 겁을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출병하였다. ... 가장 애석한 일은 3년 안에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 동학이 대대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백성들을 편안케 하려 한다." - 대한계년사 2권 P26~27


이 때 조정 대신 민영준은 동학의 위세가 커지자 위기를 느끼고 청에 구원 요청을 하게 된다. 청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이전에 청과 일본 간에 맺은 조약에 따라 일본도 조선에 들어오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5월 8일 관군이 동학군을 물리치고 전주성을 되찾은 후 궁궐 안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관제를 고쳐 2부 8아문으로 바꾸고 개혁 방침을 발표한다. 이것이 갑오개혁이다. 일본군은 청군을 성환에서 공격하여 청군이 평양으로 달아난다. 양국간의 충돌은 7월 1일 청나라가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는 조서를 내리고 일본도 전쟁 선포 선언을 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진다.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면서 고종과 민비를 연금하고 대원군을 앞세워 신정권을 수립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기존 청과의 조공 관계를 끊고 자주국임을 선포하고 일본군으로 하여금 청군을 몰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대조선국과 대일본국 정부는 조선개국 5백3년(1894) 6월 23일, 대일본 메이지 27년(1894) 7월 25일, 조선국 정부는 청나라 군대의 철수 사안을 조선국 서울 주재 일본국 특명전권공사에게 맡기고 그가 대신 힘을 다한다는 사항에 대해 진심으로 조약을 맺었다. 이후 두 나라 정부는 청나라에 대해 이미 서로 도와 공격과 수비를 함께 하기로 입장을 세웠다. 관련된 사실들의 원인을 분명히 드러내고 아울러 두 나라가 함께 하는 일이 분명히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뜻에 따라 아래의 두 나라 대신은 각각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조관을 의논하여 결정한다. ...  - 대한계년사 2권 P65


정부의 행태에 분개한 전봉준은 삼례에서 남접과 북접의 연합전선 형성을 모색한다. 마침내 10월 중순 농민군과 관군은 공주에서 맞붙었고 이곳에서는 농민군이 승리하였다. 그러나 11월 8일 우금재(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이 대패하면서 그들의 저항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전봉준과 김개남은 체포된 뒤 처형된다.


관군은 일본군 사이사이에서 총을 쏘아 댔다. 농민군은 끝내 우금재 너머 언덕으로 물러나 산등성이에서 쏘아 대는 대포와 총의 사격거리를 피했다. 이때 관군 수십 명이 산을 내려가 작은 언덕배기를 장애물로 삼고 총을 쏘았다. 패색이 짙어진 농민군은 보루를 버리고 달아났다. 일본군과 경리청군 50여 명은 달아나는 농민군을 남쪽으로 십여 리를 추격했다. 이 우금재의 싸움에서 "쌓인 시체가 산을 가득히 메웠다"고 할 만큼 농민군은 크게 패배했다. 11일, 능치를 지키던 관군은 빼앗은 농민군의 옷과 수건을 착용해 농민군 모습으로 위장했다. 관군은 산을 기어올라 농민군에 근접했다. 농민군은 위장한 관군을 동료로 오인하였는데 위장 관군이 근접해서 불의에 총을 쏘아 댔다. 기습을 받은 농민군은 놀라 흩어졌다. 관군은 대포를 노획했고 많은 연환을 빼앗았다. 이 능치전투를 끝으로 농민군은 12일부터 점차 흩어져 갔다.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8권 P276~277


10월 24일 일본은 청의 여순을 함락시키면서 청일전쟁의 기세는 일본으로 기울어지고 1895년 청일전쟁 종전의 결과로  4월 17일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전쟁의 과정과 결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조선의 백성들이었다.


"제1관 조선은 완전 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한다.

제2관 청나라는 봉천성 남쪽 지방 일대와 대만 전체 및 그에 부속한 섬 그리고 팽호열도를 일본에게 떼어 준다.

제4관 청나라는 일본에게 군비 배상금으로 고평 은 2억만 냥을 지불한다.

제6관 일본은 청나라 호북성 형주부 사시, 사천성 중경부, 강소성 소주부, 절강성 항주부에서 통상한다." - 대한계년사 2권 P87~88


토지에서 윤보와 용이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대국이 왜눔한테 항복을 했이니, 그게 망조라 말이다. 왜눔들이 개미떼맨쿠로 기어올 긴데, 벌써 항구에는 왜놈들 장사치들이 설친다 카는데, 허수애비 같은 임금 있으나 마나, 총포 든 놈이 제일 아니가." - P123 


민씨 일가는 친러배일정책을 추구하면서 친일파를 내각에서 배제했다. 10월 7일 밤 경복궁에서는 민영준의 궁내부대신 내정을 축하하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고 같은 시각 서울 남산 진고개에서는 일본인 검객과 낭인들과 일본어 신문 기자들이 파티를 벌이는 중이었다.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는 조선 왕후 시해 명령을 이미 내린 상태였다. 다음날 새벽 일본 낭인들은 훈련대 연대장 일행을 살해하고 근정전을 지나 건청궁으로 쳐들어갔고 고종의 침전에 난입하여 고종은 수모를 당했으며 왕세자는 일본군 장교복장을 한 자에게 상투를 잡혀서 칼등에 맞고 쓰러지기도 했다. 낭인들 중 한 무리가 왕비 침전으로 가서 궁내부대신 이경직을 사살하고 끝내 왕비를 시해한다.


"조선국의 형세는 점점 불운해져가고 있다. 궁중이 날로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는 망령되이 국정에 간여하고, 우리 정부가 계도하여 개량한 헌정 체제를 문란시키고 있다. ... 이는 곧 우리나라가 여러 해 동안 노력과 재정을 들여가며 이 나라를 위해 경영해온 호의를 저버린 것이며, 내정의 개량을 방해하며 독립의 기초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 때마침 대원군은 궁중을 혁신하고 도와서 바르게 이끄는 책임을 스스로가 맡겠다고 하면서, 미우라 고로오에게 자신의 뜻을 암암리에 전달하고 도움을 구했다. - 대한계년사 2권 P102


일본 장교는 군사의 대오를 정렬하여 합문을 빙 에워싸 지키도록 명령하여. 흉악한 일본 자객들이 왕후를 수색하는 것을 도왔다. 이에 자객 20~30명이 그 우두머리의 인도로 칼을 빼어 들고 전당으로 불쑥 들어가 왕후를 찾았다. 밀실에까지 이르러 궁녀들을 만나자 함부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구타하며 왕후가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자객들은 여러 방을 샅샅이 조사하여 마침내 조금 더 깊은 방안에서 왕후를 찾아내고는, 칼날로 찍어내려 그 자리에서 시해했다. - 대한계년사 2권 P119


왕비 침전에서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폭도들은 궁녀와 왕세자 이탁(순종의 본명)을 통해 피살된 자 중의 한 사람이 민비임을 확인하고는 민비의 시신을 홑이불에 싸서 인근 녹원 솔밭에서 석유불에 태워버렸다. 

민비 시해의 음모 단계에서부터 가담한 조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1857~1903)이었다. 훈련대는 그해 친일정권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우범선은 민씨 정권의 훈련대 해산계획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포섭된 우범선이 이 사건에서 맡은 임무는 훈련대 병력동원과 민비의 시신 '처리'였다. 폭도들에 의해 시해된 후 불태워진 민비 시신의 타고 남은 재는 궁궐 내 우물에 버려졌고 유해 일부는 우범선의 지시로 휘하의 증거인멸을 위해 땅에 묻어버렸다. - 한국근대사산책 2권 P296


11월 26일 왕비가 복위되고 대원군은 은퇴하였지만 전국 곳곳에서 유림들은 자결을 하거나 단식을 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의병들은 친일내각 타도를 외치며 일어섰고 정부는 12월 1일에야 왕비 시해 사실과 국상을 공포한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단발령은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청일간의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외국의 입김이 강해진 조선을 바라보는 양반들의 시선은 점차 다양해졌다. 중인 계급인 역관의 중요성이 커지듯 시대는 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양반들은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허허 이 사람아, 할 수만 있으면 못할 건 또 뭐 있누. 그래 서울서는 변의장이나 단발이 어느 정도요?"

"양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은 아직 지극히 희소하오만 단발은 그보다는 많이 했지요."

"인심이 흉흉했었소. 게다가 민비를 살해한 뒤끝이어서."

"요즘도 서울 근교에서 의병들이 출몰한다고 들었는데."

"글쎄올시다. 서울 근교뿐이겠소. 도처에서 낭당을 이끌고 소란들 피우는 모양인데, 단발령 하나 가지고 나라 안이 벌컥 뒤집힌대서야 남들 보기에도 딱하고 어릿광대스럽지요."

...

"어차피 풍습이라는 것은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르게 마련인데 조만간에." - P200~201


"갑오년 공사노비 제도 혁파한 것부터가. 썩어빠지고 얼이 빠진 놈들! 천비한테 아양 떠는 사당 같은 놈들!"

"세상이 변했다 말씀이오. 아니지요. 양반 놈들 창자가 썩은 것뿐이오."

치수는 날카롭게 웃었다.

"옳은 말씀이오. 편견임에 틀림이 없소. 허나 재물과 목숨 지키려고 상것들에게 허리 굽히는 짓은 아니하겠소. 두고 보시오. 이젠 상놈들은 양반 상투 움켜쥐고 올라앉아서 끝장까지 망하는 꼴 보려 할 게요."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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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07 2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전의 반열! 맞는것 같습니다.
토지 리뷰 올라오는거 보면 다시 읽고 싶어져요.^^

거리의화가 2022-08-08 09:00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은 역시 이미 다 읽으셨군요^^ 재독, 삼독할수록 더 의미가 다가올 책인 듯 싶어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8-07 2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시작하셨군요?
머나먼 대장정의 길입니다. 그래도 결국 완독하시겠죠?^^
예전에 나인님 토지 완독하시는 모습 보고 정말 멋져보이던데~이제 곧 화기님도??^^

거리의화가 2022-08-08 09:01   좋아요 3 | URL
머나먼 길의 시작^^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긴 해야겠죠. 읽을 책들 사이에 껴서 읽으려면 놓지 않고 꾸준히 들어야 할텐데 그 점이 걱정되긴 합니다ㅎㅎㅎ

프레이야 2022-08-07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 완청요 ^^.
대단한 집중력이에요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2-08-08 09:0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저도 오디오북 완청한 건 처음입니다!ㅋㅋㅋ 처음엔 좀 집중이 안되었어요. 토지 인물들도 많아서~ (아직 등장 안한 인물도 한가득일텐데~ㅎㅎ) 인간은 적응을 어떻게든 하나봅니다^^;

희선 2022-08-08 0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째 권을 다 들었으니 앞으로도 죽 들으시겠네요 듣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집중해야 하잖아요 듣다보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08 09:03   좋아요 3 | URL
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겠죠^^ 그래도 듣는 건 출퇴근길 이용하거나 점심시간에 산책하며 짬짬이 들으면 조금씩 듣게 되더군요~ 스토리가 재미나고 또 성우들의 연기도 좋아서 듣는데 무리는 없었어요. 응원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08-08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축하드립니다. 함께 토지 전권을 완청해보아요😆 저는 완전 인물중심, 줄거리중심인데 역시 역사를 잘 아시는 화가님은 역사의 줄기를 따라가시는군요!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8 11:34   좋아요 2 | URL
ㅎㅎ 완청의 길 멀고도 험하겠지만 함께 하는 분이 있어서 기운이 납니다~ㅎㅎ
저는 인물, 줄거리에 약하니 서로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속도내서 따라가겠습니다!ㅎㅎㅎ

페넬로페 2022-08-08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에 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오디오북으로 들으셨다니 넘 대단하세요.
토지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많은 것을 담고 있어 고전으로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완청의 길, 화이팅 하십시오^^

거리의화가 2022-08-08 17:05   좋아요 3 | URL
1권만 들었을 뿐인데 인물들이 넘 많아서 어질어질했어요. 조선의 근대를 간접 경험해보기 좋은 소설이란 생각이 듭니다. 응원 감사드려요^^*

mini74 2022-08-08 17: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투리며 인물들이며 오디오북으로 읽기 힘드셨을텐데 진짜 대단하세요 화가님!! 저도 응원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8 17:37   좋아요 1 | URL
사투리 할말 많습니다. 부모님 모두 경상도 분들이라 사투리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와서 그리 어렵지 않을줄 알았는데요. 막상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안 들리는 게 넘 많더라구요 그래도 이젠 조금 적응됐습니다ㅠㅠ 미니님 응원 감사드립니다*^^*

scott 2022-08-09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지
9권의 능선만 넘으면 됩니다

저는 토지 6학년때 부터 읽기 시작해서
여전히,,,
아직 까지 이지만

천천히 읽다 보니

한반도 현재의 정세랑 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어서
더더욱 집중해서 읽고 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09 09:16   좋아요 1 | URL
토지를 6학년때부터 읽으신 스콧님 대단하세요! 전 6학년 때 음~ 노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요ㅎㅎㅎ

네. 조선의 근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도 요즘 불안한 한반도 정세를 생각하게 만드니 놀랍습니다. 역사는 그러고 보면 반복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