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손가락>
읽고 나서도 얼떨떨했다. 뭘 말하고 싶은거지? 차에 갇힌 여자가 빠져나오려하고, 어떤 여자가 돕는데… 그 여자의 정체는?
내가 보고 듣는 걸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걸 말하는 듯 싶긴 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비극적인 감정에 매몰되면 주변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몸하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뜩이나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난 그런 경험이 없지만 이건 그냥 느낌으로 다 알 수 있었다. 임신이라는 상황에 부딪치고, 그것도 처음 임신이라면 누구라도 허둥대는 건 당연할 것 같은데.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너무 억울했다.
기껏 아이의 아빠를 구한다는 방법이 신문에 내는 거라니… 요즘 세상에 정보는 순식간인데…
마지막 장면은 처참했다.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것 같아서…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얼마 전 읽었던 여성괴물에 나온 여성의 자궁에 대해 이야기한 -브루드-를 떠올렸다.

산다는 거, 정말 불공평하지 않아요? 똑같이 태어났는데, 누구는 남의 남자 채 가서 결혼도 하고, 누구는 단물만 빨다 껌 뱉듯이 버려지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다시 말을이었다. "재미있지 않아요? 똑같이 차 사고를 당해도, 누구는 끈질기게 살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 "당신, 누구예요?"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이제 억누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억울할 것 같지 않아요? 살아 있을 때도 혼자였는데, 죽어버리고 나서도 계속 혼자면.…." "여기, 어디예요? 난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계속 소리쳤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왼쪽에서 가느다랗게 킥킥 웃었다. "사람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불안하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믿고…." "당신, 뭐예요?" - P78
"엄마가 되겠다는 분이 자기 아이에 대해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배 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한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태아가 발육하는 단계에서 벌써 이렇게 나 몰라라 하시면 나중에 낳아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 P95
자칭 ‘로미오‘는 그녀가 호출에 응하지 않자 직접 전화하기시작했다. 매일같이 전화하여 갖가지 문학 작품에서 남자가여자에게 구애하는 장면만 골라 읽으며 꼭 한 번 만나줄 것을간청했다. 꼬마들의 장난 전화도 자주 걸려왔고 자신의 오빠나 남동생, 아버지, 아들, 심지어 남편을 소개해 주겠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협박성 전화도 있었다. - P100
‘아기‘는 계속 꿈틀거리다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검붉은덩어리는 아주 잠깐, 핏빛 보석처럼 더없이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기‘는 혈액으로 와해되어버렸다. 그녀는 팔과 가슴이 피에 흠뻑 젖은채, 여전히 아기를 안은 모양대로 한쪽 팔을 둥글게 구부려 치켜들고, 피투성이가된 가운 앞섶과 분만대 가장자리에 고인 피 웅덩이를 멍하니내려다보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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