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 국민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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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정으로 발행되었다. 국사교과서가 원래부터 국정도서였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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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2월 16일에 문교부는 중학교 국사 교과서 11종에 대해 개편을 지시했다. '①유신정신의 반영, ② 새마을, 수출증대, 교육재료 보강, ③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적응, ④변동된 교재 및 통계 보완 ⑤ 국사교육 강화'내용을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정책을 선전, 홍보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라는 노골적인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208-209쪽)

 

국사교과서가 국정화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바로 박정희가 종신독재를 꿈꾼 유신정권의 시점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검인정 체제였지만, 국정화까지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역사는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다. 해방후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육자들은 식민사학의 극복을 위해 싸웠다. 조선은 어쩔 수 없이 식민지가 되었다는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조선후기를 연구해 조선후기 '자본주의의 맹아' 등의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당파성론' 등 시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인식까지 바꾸기는 힘들다.

붕당정치는, 국왕이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으로 한정되기는 하지만 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립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정치이며 집단 간의 경쟁으로 올바른 정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다고 해서 역사인식 자체가 정말로 달라지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붕당정치는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당쟁으로 다가온다. 권력을 잡기 위한 다툼은 추하고,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선한 편과 악한 편을 가린다. 숙종조에 있었던 서인과 남인의 대립에서,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비교하면서 여전히 '인현왕후는 선, 장희빈은 악'으로 다가온다. 서인과 남인의 정책, 정치적·경제적 기반 등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은 역사지식이지 역사의식의 내면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169쪽)

 

역사교육의 거대한 걸림돌은 식민사학 뿐만 아니라 일제가 그랬던 것 처럼 지배층은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교육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해 역사에 깊숙히 개입한다. 삼별초의 몽골항쟁이나 충무공 이순신 등에 대한 무인들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역사학계는 민중사학이 등장한다. 민중사학은 역사 주체를 지배층이 아닌 민중으로 보고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 성과를 보였다. 민중사학 덕에 사회동요 등으로 설명되던 역사교육이 사회구조의 변동 등으로 바뀌었고, 일제시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기술은 경제성장 논리로만 설명되었다. 하지만 보수지배층은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거부감을 갖게 되고 1990년대 국사교육 준거와 관련된 파동이 일어난다.

 

1980년대 특징중의 다른 하나는 재야사학자라 불리는 사이비사학자들의 영향력 확대이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한단고기 등 상고사 내용을 바탕으로 위대한 한민족을 이야기하는데, 박정희 정권에 이어 무력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과 결탁한다. 이들은 강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보여 12,12 군사정변과 5,18광주항쟁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전두환정권에 의해 역사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한사군 등과 관련해 여전히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중사학에 의한 근현대사 연구결과가 미미하게나마 교과서에 반영되기 시작한 건 보수우익에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국정교과서 비판을 그대로 보아 넘길 경우, 앞으로 더 큰 폭의 개정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민중사관에 대한 비판과 국사 교과서 개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과정 개정이나 국사 교과서 개편을 둘러싸고 장차 겪게 될 대립을 예고하는 것이었다.(292쪽)

 

1990년대에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한 '국사교육 내용 준거안'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준거안은 먼저 용어의 변경을 시도하였다. 5·16은 쿠데타로 제주4·3항쟁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냉전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자 했다. 모스크바3상회나 한국전쟁 중 민간인학살 등에 기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준거안에 대한 보수언론들은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국사교과서 내용 자체도 아니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준거안 시안을 놓고 언론은 왜 이처럼 극렬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단지 국사 교과서 내용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사회상황과 정치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준거안 파동은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역사학계의 진보적 움직임과 역사 교과서 비판의 반작용이었다. 일부 정치·사회 세력은, 준거안과 같이 국사교과서가 서술될 경우에 자신들의 존립근거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반탁운동은, 우익 세력이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세운 정통 세력임을 주장하는 근거였다. '반탁=우익=애국, 친탁=좌익=매국'이 오랫동안 이들의 존재가치를 뒷받침해주었다. 이들에게 모스크바 3상회의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5·16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5·16은 당시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선전되었다.그러기에 5·16을 '군사혁명' 또는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준거안 시안대로 서술하면 5·16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이는 5·16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하던 사람들에게는 존재를 위협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330~331쪽)

 

이런 보수우익의 반응은 2000년대 중반에 있었던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문제와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서는 더 이상 검인정 교과서 체제에서는 이런 역사적 연구결과들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논란은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되었다. 일제, 군사정권, MB, 박근헤 정부. 역사교과서를 대하는 태도가 어찌도 이렇게 똑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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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공동교재를 개발하고자 노력한 결과, 2005년 동아시아 공동의 근현대사 인식을 목표로 한·중·일 학자와 시민이 공동으로 펴낸 <미래를 여는 역사>가, 2012년에는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가 한국, 일본,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이들 책은 주변 나라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삼국의 관계사와 민중생할의 이해를 모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러 단체나 경로를 통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양한 공동역사교재들이 개발되었다. 한국의 서울시립대학교가 주축이 된 역사교과서연구회와 일본의 도쿄학예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교육연구회는 10년에 걸친 공동연구와 토론 끝에 <한일 교류의 역사>를 펴냈다. 한국의 전국역사교육모임과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에 속한 역사 교사들의 간의 교류는 <마주보는 한일사>로 결실을 보았다. 한국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일본 히로시마교직원조합 소속 역사교사들은 <조선통신사>에 이어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를 펴내면서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상당히 많은 공동의 역사 경험을 가지고 있다. 두나라가 함께 겪은 역사적 사실을 각 나라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갈등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어느 한 나라가 가해국이고 다른 나라가 피해국인 역사적 사실의 경우, 생각의 차이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역사 해석이나 서술 차이를 극복하고 역사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은, 통일적이고 획일적인 역사상을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성과 화해를 통해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413~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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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중사>의 간행은 1980년대 중반 사회민주화 움직임이 배경이 되었다. 사회민주화 분위기와 함께 학계에서도 진보적 학술운동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런 움직임은 과연 '학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지난날 연구실에서 안주하던 것을 반성하고 학문이 사회민주화를 촉진하고 사회변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역사학계도 마찬가지였다. 현실과 유리된 역사 연구를 극복하고 사회 현실의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변혁의 주체인 민중의 입장에 선 역사 연구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이른바 '민중사학'의 출현이었다. <한국민중사>의 집필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역사학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280쪽)

 

문학에서도 노동자나 농민, 도시 빈민 등 민중의 삶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나왔다. 개발의 열풍 속에서 삶의 막다른 길로 내몰린 철거민 이야기를 다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난쏘공'이라는 애칭과 함께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었다. 농촌의 현실을 다룬 이문구의 <우리 동네>, 도시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윤락녀를 통해 사회구조의 모순을 밝힌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나중에 원저자가 이동철로 밝혀짐), 도시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그린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이 발표되어 민중에 대한 관심을 높혔다. (282쪽)

         

 

 한국역사연구회는 1989년에 대학 교양과정 강의용 한국사 개설서인 <한국사강의>를 낸 데 이어, 1992년에 본격적인 한국사 통사인 <한국역사>를 펴냈다. <한국역사>는 사회구성체의 발전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의 사회구조와 변혁 세력의 형성·발전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구로역사연구소도 민중 주체의 민족사를 취지로 1990년에 <바로 보는 우리 역사>를 편찬하였다. 이 책의 취지는 집필자들이 스스로 '바보사'라고 부르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바로보는 우리 역사'를 약칭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지배층이 어리석고 무식하다고 깔보던 민중의 역사를 서술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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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는 자본주의와도 맞지 않는 것 같다. 다수의 출판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과서의 독점체제를 가져간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왜 MB정부나 박근혜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내세우는데 하는 짓은 정 반대인지.

 

1970년대 박정희정권은 교과서를 국정화로 바꾸는 과정역시 조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뒤 국정이라는 이름을 1종이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바꾼다.

 

검인정교과서사건은 유신정책 등을 덮으려는 표적수사였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정희정부는 초·중·고 교과서의 발행제도를 바꾸면서, 상당수의 주요 과목 교과서를 국정제로 발행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다. 더구나 교과서 국정제와 함께 진행된 단이론 교과서 정책은 1977년에 '검인정교과서 사건'을 낳고 말아싸. 1977년 2월에 경찰과 국세청은,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가 1974년부터 문교부와 국세청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교과서의 가격 인상, 내용 수정, 성일법인 지정 등의 특혜를 받아 거액의 부당 이익을 올리고도 탈세를 했다는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24쪽) 

국정교과서를 급하게 만드려는 시도는 박정희정권때나 박근혜정부때나 똑같다. 급하게 만들려고 하는 태도가 그렇다.

국정 국사 교과서를 1974년부터 사용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문제는 이에 맞춰 교과서를 발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국정교과서 편찬은 시간을 다투는 매우 촉박한 작업이 되었다. 이에 문교부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 날짜를 디데이로 하고, 여기에 맞춰서 국사교과서 개발 일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디데이가 언제인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계획을 보면 당시 정부가 1974년부터 국정 국사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급히 국사교과서 개발을 추진하였는지 보여준다.(213쪽)

 

국정교과서는 독과점의 문제를 안고있다. 그래서 박정희정부는 국정교과서를 발행하는 회사를 만들기도 하는데, 지금의 미래앤인가 싶다. 아마도 그 과정에 수많은 것(?)들이 오고 갔을 거라 생각되지만.

정부는 국정 국사 교과서의 발행을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에 밑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는 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사들이 함께 출자하여 만든, 교과서의 생산과 공급을 주업무로 하는 회사였다. 국정 국사 교과서의 발행권을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에 맡긴 것은 교과서의 국정화에 따른 출판사와 검인정교과서 저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교과서 국정화 조치가 특정출판사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출판업계의 의심을 해소할 목적도 있었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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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전이긴 하지만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자본주의 맹아라는 부분을 공부한 기억이 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뉴라이트, 혹은 교과서 좌편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옛날 식민사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 연구의 과제는 여전히 여전히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숙사의 체계를 세우는 일이었다. 식민사학의 논리 중 사람들에게 가장 호소력이 강하고 영향이 큰 것은 당파성론과 타율성론이었지만, 식민사학의 뿌리는 일선동조론과 정체성론이었다. 일선동조론은 일보의 한국 병합이 두 나라 민족을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라는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선동조론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 들지 못하였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한국이 독립된 뒤로, 일선동조론은 더 이상 그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에 반해 정체성론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국제사호에서 통용되던 논리였다.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은 강국이 약소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너희는 세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발전한 국가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회 변화의 이치이다. 그러는 편이 너희도 발전을 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제국주의 논리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독립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며, 특히 조선은 정체된 사회라는 것이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이었다. 그 근거로 극심한 당쟁, 성리학만을 떠받드는 사상적 경직성, 봉건사회 결여론 등의 논리를 내세웠다. 한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 이런 논리들을 여러 측면에서 반박하였다.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깨뜨리는 것이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길이었으며, 한국사 연구의 핵심 과제였다. 이러한 과제의 실천은 실증적 연구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한국사 연구는 두 가지 측면을 밝혀야 했다. 하나는 한국사도 역사발전의 일반적 단계를 거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영향력 없이도 한국사가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55쪽)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더 적극적인 연구는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에 집중되었다. 한국사에도 자생적인 근대적 발전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연구는 조선후기 한국사회 내부에 자본주의 맹가가 존재하였음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

조선후기 농업에서는 이앙법(모내기)을 비롯하여 견종법(골뿌림법) 등 농법의 개선과 이모작 등 효율적인 농지 이용으로 농업생산력이 높아지고 노동력이 절감되어 광작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경영형 부농이 생겨났지만, 다른 한편으로 농지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상업에서는 사상(私商)이 성장하여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특권상인들의 경쟁하였다. 상인들중에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물품을 독점하는 도고상인들도 나타났다. 수공업에서도 점차 민영수공업이 성장하였다. 일부 대상인들은 선대제를 도입하여 수공업자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자유수공업도 마타났다. 상인들은 자본을 동원하여 광산경영에 손을 대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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