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전이긴 하지만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자본주의 맹아라는 부분을 공부한 기억이 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뉴라이트, 혹은 교과서 좌편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옛날 식민사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 연구의 과제는 여전히 여전히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숙사의 체계를 세우는 일이었다. 식민사학의 논리 중 사람들에게 가장 호소력이 강하고 영향이 큰 것은 당파성론과 타율성론이었지만, 식민사학의 뿌리는 일선동조론과 정체성론이었다. 일선동조론은 일보의 한국 병합이 두 나라 민족을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라는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선동조론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 들지 못하였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한국이 독립된 뒤로, 일선동조론은 더 이상 그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에 반해 정체성론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국제사호에서 통용되던 논리였다.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은 강국이 약소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너희는 세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발전한 국가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회 변화의 이치이다. 그러는 편이 너희도 발전을 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제국주의 논리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독립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며, 특히 조선은 정체된 사회라는 것이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이었다. 그 근거로 극심한 당쟁, 성리학만을 떠받드는 사상적 경직성, 봉건사회 결여론 등의 논리를 내세웠다. 한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 이런 논리들을 여러 측면에서 반박하였다.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깨뜨리는 것이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길이었으며, 한국사 연구의 핵심 과제였다. 이러한 과제의 실천은 실증적 연구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한국사 연구는 두 가지 측면을 밝혀야 했다. 하나는 한국사도 역사발전의 일반적 단계를 거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영향력 없이도 한국사가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55쪽)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더 적극적인 연구는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에 집중되었다. 한국사에도 자생적인 근대적 발전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연구는 조선후기 한국사회 내부에 자본주의 맹가가 존재하였음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

조선후기 농업에서는 이앙법(모내기)을 비롯하여 견종법(골뿌림법) 등 농법의 개선과 이모작 등 효율적인 농지 이용으로 농업생산력이 높아지고 노동력이 절감되어 광작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경영형 부농이 생겨났지만, 다른 한편으로 농지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상업에서는 사상(私商)이 성장하여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특권상인들의 경쟁하였다. 상인들중에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물품을 독점하는 도고상인들도 나타났다. 수공업에서도 점차 민영수공업이 성장하였다. 일부 대상인들은 선대제를 도입하여 수공업자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는 자유수공업도 마타났다. 상인들은 자본을 동원하여 광산경영에 손을 대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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