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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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의 인기가 상당히 지속되고 있다. 넛지마케팅이라는 후속책이 출간된 걸 보면 넛지를 활용하려는 경영계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넛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팔꿈치로 쿡 찌르다의 의미로 어떤 선택에 부드럽게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넛지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는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화장실 소변기이다. 사례로 사용하기에 좀 그렇긴 한데 이해하기에는 제일 쉽다. 그래서 이 책을 소개하는 많은 기사들이 다루고 있는 바이다. 개인적으로도 4년전 체코에 가던 길에 경유했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역시 경험했던 바인데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파리 한마리가 그려져 있다. 소변을 보는 행위에 그 파리에 신경이 쓰이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그 파리를 정조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화장실이 전 보다 깨끗해졌다고 책에서는 소개한다. 바로 이 것이 넛지인데 소변을 보는 행위에 파리라는 목표를 제공하므로 어떤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넛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중에 하나가 선택설계자이다. 사실 선택설계자 개념은 자본주의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모두 자신이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택의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의 필요에 의해 제품 혹은 서비스가 생산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만들어진 제품 혹은 서비스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것을 선택하게 된다. 바로 이런 제공에 선택설계자가 개입하게 된다. 책에서는 미국의 급식을 사례로 들었지만 이는 우리 현실에서는 잘 맞지가 않는다. 식사의 체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의 급식처럼 한가지 혹은 두가지 식단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식단이 햄버거라면 햄버거에 들어가는 야채, 패티 등을 모두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여기에 선택설계자(영양사)가 개입할 공간이 생긴다. 햄버거에 들어갈 구성물들의 배치를 통해 학생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십여가지의 선택 옵션이 있을 때 영양적으로 바람직한 재료들을 눈에 잘 보이고 선택하기 쉬운 곳에 배치함으로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넛지의 한 예이다.

 

넛지가 가장 많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서비스 계약이다. 서비스 계약이라는 것은 핸드폰 요금제, 잡지의 정기구독, 보험가입시 특약 선택 등이 있다.예를 들어 3개월 혹은 6개월간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보통 무료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소비자 스스로 해지의사를 밝히지 않는 경우 자동으로(디폴트로) 가입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런 경우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서비스 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는 경우 자동으로 서비스가 중단되도록 규제하는 방안이 넛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넛지의 기본 개념에는 바로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경제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가정을 한다. 경제학적 인간 이콘(Econ)으로 보는 것인데 실제 인간은 합리적이 않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인간을 비합리성을 연구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경제학에 심리학, 소비자행동론등의 이론을 접합시킨 것이다. 넛지는 이 행동경제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넛지란 바로 이 책의 부제와 같은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언급하듯이 악한 의로도 넛지를 가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쁜 넛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넛지를 읽고 한 번 생각해본다면 기업들은 넛지를 기업의 이익을 최대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용할 것이다. 책에서 말한바와 같이 오히려 소비자의 똑똑한 선택을 방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나쁜 넛지의 가능성이 착한 넛지의 가능성 보다 무궁무진 할 것이다. 정치에서도 서로간의 이득을 위해 넛지를 가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4대강과 관련한 여론조사에 이런 넛지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4대강의 오염이 심각하다 이를 방치하면 회복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다며 방치할 것인가, 개선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신문 교육란에서 책 비교를 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 안광복은 넛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하지만 너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곱지 않다. 너지도 크게 보면 수사학(修辭學: rhetoric) 가운데 하나다. 수사학이란 사람들을 잘 설득하는 기술이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곳에서는 어디서나 수사학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대개 수사학은 궤변술이라며 비난받았다. 실제로 수사학이 절정에 다다르면 민주주의는 거꾸러지고 독재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수사학 교사들이던 소피스트가 판을 치던 옛 그리스의 아테네, 황제가 나타나기 전 키케로의 공화정 로마가 그랬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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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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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와 베토벤 교향곡 7번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클래식 보다는 바흐를 연주한 자끄 루시에의 연주를 듣고 나서 이 곡에 푹 빠져 버렸다. 한참을 자끄 루시에의 편곡을 듣다가 이 곡에 대한 관심을 늘렸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바로 글렌 굴드의 1955년 녹음과 1981년 버전이다. 그 후 한참을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CD 플레이어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지금은 다른 연주자들의 앨범을 갖춰놓기는 했지만 아직 누구의 연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초보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끄 루시에의 곡은 재즈로 해석이 되었기 때문에 쉽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글렌 굴드의 1955년판은 앨범재킷에서 부터 독특하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사진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심들 속에서 스치듯 살펴본 정보에 의하면 초기 연주를 제외하고는 대중앞에서 연주하지 않고 스튜디오 녹음만 했다는 그리고 행동이 조금은 독특했다는 점이다. 그 말은 마치 그가 피아노 연주의 절정을 위해 혼자만의 길을 걸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그를 책으로 만났다.

 

"손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피아노에 속해 있었다. 그가 건반 위로 쓰러질 듯 몸을 숙인 모습을 보면, 그는 마치 자신과 음악 사이에 더 이상 피아노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피아노 속에 자신을 지우고 융해시켜 버리려는 것 같다. '피아노 앞에 앉은 글렌 굴드'가 아니고,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인 것이다." (76쪽)

 

이렇게 글렌 굴드는 피아니스트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 자신이 피아노 솔로, 음악 그 자체로 말이다. 음악가에게 있어 이런 평가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이렇게 그는 전설이 되어 갔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그즌 청중과 결별하고 스튜디오에서 녹음만 하게 된다.

 

이런 전기를 통해 만나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사람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이다.

"우리는 흔히 그가 누구보다 좋아한 음악가는 바흐였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그가 좋아한 음악가는 올랜도 기번스였다. 정확히 말해 그의 간결성을 좋아했다. 그리고 시벨리우스를 좋아했던 것은 그 차가움에 있었다. 그러나 굴드의 바흐는,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우리가 갈망이나 기억을 지녔다고도 추정하지 않는 것들의 수수께끼 같은 명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음악은 우리가 듣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를 듣는 무엇이 된다."(179쪽)

 

역자 후기에서 지은이의 책 구성 방식이 골든베르크의 그것을 따랐다고 한다. 그제서야 나는 숫자들과 그리고 아리아라는 제목을 기억했다.

 

이 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보통의 전기물들이 보여주는 역경을 딛고 바로 서는(혹은 성공에 이르러는)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의 마음을 앗아가는 그런 일반적인 전기의 양식과는 다르다.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99쪽) 굴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지은이는 마치 이런 말을 하는 듯 하다. 아마도 이 책이 일반적인 전기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정신과 싸우고 육체적인 질병과 싸우는 동안 음악을 통해 해방감을 맛보았던 글렌 굴드가 그려졌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글렌 굴드를 왜곡하는 것이다. "굴드가 콘서트를 비난했던 가장 큰 이유는 청중의 존재로 인해 그의 연주가 왜곡된다는 점이다."(152쪽)  굴드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그가 연주회장을 버리고 스튜디오에 매진했던 것 처럼 그렇게 독자로써 전기를 읽는 즐거움을 버리고(즐거움이라는 왜곡) 끈기있게 읽어나가야 굴드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글렌 굴드의 연주는 독특한 미학을 가지고 있다. 바로 피아노와 거리두기이다. 그는 연주를 위해 수 없는 연습보다 연주를 생각했다.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 시토회 수도자 토마스 머튼의 개념과도 비슷한 후퇴의 미학. 사람들과 거리를두고, 피아노 자신과도 거리를 둘 것. 그는 녹음이 있기 며칠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주하는 것의 정신적인 형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의 손가락의 속박 사이에 일종의 투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손가락의속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99쪽)

 

손가락과 피아노라는 물리적 속박에서 음악을 해방시킨 글렌 굴드는 음악의 본연에 집중한다. "굴드의 미학은 발견을 돕는 미학이다. 본능적으로 연주가들은 제거하기보다는 첨가하는데, 그의 미학은 제거하는 편을 택한다. 영감이라든지 단숨에 해치우는 것을 경계하고, 오랫동안 해석이 있은 다음의 연주, 분명 이런 것이다. (101~102쪽)... 그는 우회를 통해 정수에 도달한다. 그리고 욕구의 긴장을 통해서가 아닌(그렇다고 긴박감도, 방법론도 제외시키지 않으면서)일종의 순화를 통해 미(美)를 건드린다.(102쪽)... 그래서 장식적인 기능을 삭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흐의 장식음들을 그는 마치 장식음이 아닌, 악절의 다른 음들과 똑같은 멜로디와 화음의 가치를 지닌 음들처럼 연주한다. 이들의 필연성과 절박함을 발견하기 위해서인양, 분해되어 나온 뚜렷한 음들로 천천히 연주한다. (103쪽)"

 

굴드가 그렇게 음악의 미학에 빠져들고자 했던 것 처럼, 미셀 슈나이더는 글렌 굴드와 관련된 삶과 그에 대한 소문보다는 글렌 굴드의 음악에 빠져들고자 했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을 두 번 읽게 되었다. 여느 전기처럼 책을 읽으면서 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번째 천천히 읽어내며 미셀 슈나이더를 통해 글렌 굴드의 음악에 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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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 불멸의 음반 100 최악의 음반 20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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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번스타인 1990년대 최고의 지휘자 둘을 만난 것은 음악회나 CD가 아니라 가끔씩 보게 되는 사진에서였다. 어쩌다 방문한 집에는 크지 않은 흑백사진이 걸려 있곤 했다. 카라얀 혹은 번스타인의 사진이었다. 20대 후반에 들어 음악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히면서 발견한 클래식에서 그 때 그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그리고 연주회에 자주는 아니지만 발걸음을 하기 시작하면서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말고도 위대한 거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클래식에 관심을 두면서 클래식이라는 거대한 음악은 왠지 만만하게 보면 안 될 거리를 두고 봐야 할 무언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은 그렇게 견고하게만 보였던 클래식의 속살을 보여준다. 결국은 클래식이라는 것이 음악이라는 산업안에서 존재하고 또 발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클래식~'은 음반 산업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 음반 산업의 역사가 바로 클래식이다. 축음기가 발명되고 LP라고 불리던 커다란 레코드판이 생기면서 일반 대중들은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듣게 된다. 카루소부터 시작된 음반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의 음악부터 현재까지의 클래식을 연주회장을 찾지 않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노란색딱지의 DG, EMI 그리고 Philips는 그 이름만으로도 좋은 음반을 보증하고 있는 것 처럼 이 음반 레이블의 역사를 속속 들쳐내고 있다.

 

책을 읽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흥이 났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주회장에서 직접 본 에드가 마이어, ... 

 

부록처럼 붙어 있는 명반 100선과 최악의 음반 20선은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클래식 애호가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막 초보를 떼려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5,7번, 자크 뒤 프레의 엘가 협주곡 등 너댓개의 앨범을 찾아내곤 만족스러워했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고,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록, 팝 등의 대중음악을 거쳐 재즈와 클래식을 나눠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듣는 이들은 또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공부하듯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들을 섭렵하고 명반을 찾아 듣는 사람과 그냥 내키는 데로 듣는 사람. 첫번째 부류는 클래식에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고 숭상한다면 두번째 부류는 클래식 또한 음악의 한 부류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즐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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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얼마전 문학계에 흥미진진한 논쟁이 하나 있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소셜네트워크(SNS) 사회 답게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논쟁이 진행되었지만 나는 카페, 블로그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 물론 이런 논쟁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논쟁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끝나버렸지만,  논쟁이 끝나고 열흘이 넘어서야 이 논쟁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논쟁의 주역은 소설가 김영하와 비평가 조영일이다. 김영하는 2000년대 주목받던 신인작가였고, 지금은 중견작가라 할 만큼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조영일의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고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비평고원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소조라는 닉네임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적인 독자들에게는 김영하가 인문학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는 소조가 더 친근할 것이다.

 

논쟁의 시작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김영하의 신춘문예 비판에서 발단이 되었다. 김영하는 작가란 '타인이 아닌 자기자신의 긍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조영일은 작가세계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신춘문예에 목메기 보다 차라리 영민한 한 명의 독자가 되라고 권한다. 그리고 현 문학권력 제도내에서의 작가로써의 긍지는 불가능하다가 말한다. http://cafe.daum.net/9876/ExU/10234

 

이런 논쟁 와중에 최고은씨 사건이 불거지면서 둘의 논쟁은 조금 더 구체화된다. 본격적인 작가론, 작가와 세계와의 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김영하는 '작가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조영일은 예술가들의 실제적인 참여를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김영하는 조영일을 '예술을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삼으라고 선동하는 비평가'라고, 조영일은 김영하를 '낭만적 예술론에 빠져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한다.

http://cafe.daum.net/9876/ExU/10264

 

결국 김영하가 트위터와 블로그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하겠다며 이 논쟁은 끝났다. http://cafe.daum.net/9876/ExU/10265

 

 - 논쟁의 과정을 아주 잘 설명한 한국일보 기사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102/h2011021418362284210.htm  )

 - 트위터리안과 조영일의 인터뷰 : http://cafe.daum.net/9876/ExU/10271

 - 기타 기사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63516.html

 

이번 논쟁은 어떻게 애초부터 성립하기 힘들었다. 모호한 언어를 쓰는 작가와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비평가의 싸움은 언제나 비평가가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작가와 비평가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작가는 언제나 꿈을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대중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논쟁의 주제이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예술론에 입각했던 낭만주의 문학론과 한국문학권력 비판에서 시작한 현실주의 예술론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문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이 문제는 사실 많은 문인들이 달려들만한 논제였다. 그러나 문학논쟁은 곧 막을 내렸고 내노라 하는 작가, 비평가들은 그 논쟁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에는 21세기 소셜네트워트 사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기존 문인(비평가 포함)들은 트위터나 블로그에 취약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이번 논쟁은 의미가 있었다. 20세기 후반 불었던 문학권력 논쟁이후 처음 문학에 대한 논쟁 다운 논쟁이었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문학권력 논쟁 당시 문학권력 비판이 문학 밖에서 이루어졌던 점이고(강준만에서 시작) 이후 비주류 비평가들의 참여(이명원 등)가 있었을 뿐이다. 주류 문단에서 김정란이 유일하게 참여했었는데 김정란에 대한 사이버폭력까지 이루어졌었다. 

 

비평가 조영일은 한국문학비판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그의 비평을 손에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게 될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목표 중에 하나가 신인작가들의 소설집(혹은 시집)을 매월 한권씩 사는 것이었다. 이는 독서보다는 독자로써 한국문학의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실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못했다. 항상 몰려드는 독서목록 때문이었다.

한국문인들의 년간 평균 인세수입은 300만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영일의 분석을 빌리지만 문학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내외라는 것이다. 하루키의 IQ84의 선인세가 10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문학에 대한 한국출판사는 너무 인색하다.  이런 현실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독서 이외의 것을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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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는데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괜찮은 책들이 있었다. 위키리크스 2권, 동물과 관련된 3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함께 묶어 읽어볼 만 하다. 

 
2000년대 지식인으로 꼽히기도 한 우석훈의 책이 출간되었다. 1990년대 박노자, 홍세화, 진중권, 강준만 등에 의해 이루어진 논쟁과 비판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조국, 장하준, 우석훈 등으로 대변된다. 
 

<88만원 세대> 현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해 온 우석훈은 근래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토건주의가 바로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이야기한다.

 

디버블링
우석훈 지음/개마고원•2만7000원


 

"뭔가를 계속 짓고 부수면서 돈을 돌게 하고 경제를 지탱하겠다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요란한 포클레인 소리는 지금도 어디서나 들리는 익숙한 소음이다. 경제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집을 따뜻하게 하는 문제라면 대규모 공사만큼 방을 빨리 데우는 방식도 없다. 역사가 그랬다.
그러나 더는 삽이나 콘크리트 앞에서 경제란 놈이 꿈적도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규모 토목공사 벌인다고 수백만명의 백성들이 벽돌을 지어 나르고 품삯을 받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여전히 온통 공사판이다. 토건주의, 공사주의라는 두툼한 옷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제 그것이 거품만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멈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한국 토건 경제의 풍경은 애처롭다. ‘거품붕괴’(디버블링)의 공포를 안고서도 계속 거품 유지용 ‘군불’을 때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은 <디버블링>에서 “어렵더라도 빨리 탈토건 경제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거품이 터져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민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 처방부터 보면, 이런 것들이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재택근무 그리고 완전 연봉제 도입 △사교육 폐지 △주 4일제 수업 도입 △등록금 100만원.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방안은 이른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 개념이다. 삶이 불안하고 팍팍한 것은 버는 돈이 적어서가 아니라 미래의 막연한 불안 때문이다. 하여 종신고용을 약속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깎는 방안을 제안한다면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직원들이 죽어라 일해야 직성이 풀리는 토건 경제 시각으론 납득할 수 없겠지만, 발랄한 창의력의 시대에서 일주일에 5일 일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또 공장 일은 기계가 다 하고 그나마 있는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워 쥐어짜는 방식이 토건 경제라면, 생태 경제는 숙련가를 키우는 방식이다. 생산과 혁신의 바탕인 지식의 축적을, 언제 잘릴지 모를 비정규직에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67.html

 

2월에 소개된 책들 중에는 방대한 작업이 돋보이는 책이 있다. 철학자 이정우의 세계철학사와 역사문제연구소의 한국사 작업이 있다.

 

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


이정우 지음/길•3만8000원 


"철학자 이정우(52•사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을 펴냈다. 전체 3권으로 기획된 대작의 제1권이다. 지은이는 2000년 철학연구공동체인 철학아카데미를 세운 이래 줄곧 철학사 강의를 해 왔는데, 그 강의록이 이 저작의 바탕이 됐다. 전체 3권의 첫 권이라고는 해도, 이 한 권만으로도 200자 원고지 4000장, 840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지은이는 앞으로 2년에 한 권씩 ‘아시아 세계의 철학’(제2권)과 ‘근현대 세계의 철학’(제3권)을 펴낼 계획이다. 이 세 권이 모두 출간되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철학사 전체를 포괄하는 저작이 등장하게 된다. 지은이는 초국적 기업 중심의 비인간적 세계화를 넘어 보편성을 지닌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 과제를 해결할 비전을 찾아내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역으로 음미한 뒤 현재로 돌아오는 거시적인 지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세계철학사 집필은 과거를 경유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이 저작은 ‘세계철학사’라는 이름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기획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서구에서 나왔던 세계철학사 저작들은 사실상 서양철학사를 몸통으로 삼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도와 중국의 철학 전통에 지면을 할애하더라도, 서구 철학사의 ‘전사’(前史)로 배치할 뿐이었다. 이런 식의 구도는 옛소련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의 <세계철학사>에서도 반복됐는데, 지은이는 이런 배치가 ‘헤겔적 편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비서구 지역 철학 전통을 철학사의 전사(프리히스토리)로 보았으며, 그런 전통은 오늘날 탈근대철학의 기수인 들뢰즈 철학에서조차 엿보인다는 것이다. “근대 서구인들에게 비서구 지역들은 반드시 ‘전그리스적’이어야 했다.” 지은이는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인도와 동아시아 철학 전통을 제2권에서 ‘아시아 세계의 철학’으로 따로 서술한 뒤, 제3권 ‘근현대 세계의 철학’에서 다시 종합할 계획이다.

 

......

그런데 세계철학사를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것도 서구적 편견의 소산은 아닐까? 지은이는 그리스에서 철학사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철학’이라는 말도 그리스에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민주정과 철학이야말로 그리스 문명이 인류에게 선사한 두 가지 아름다운 선물이다.” 지은이는 철학이라는 독특한 사유양식이 민주주의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전제군주와 일부 귀족계층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사회에서는 철학이 탄생할 수 없다.” 그리스가 일찍이 민주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 문명이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양 문명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지로 직접 연결되지 않은, 조그만 나라들로 쪼개진 곳에서는 거대권력이 나타나기 어렵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72.html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5
역사문제연구소 기획/웅진하우스•각 권 1만8000원
  
 
"제대로 된 역사책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역사책엔 어느 쪽에서든 보는 자의 눈높이와 시선의 각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린 최소한 불리하다고 비틀고, 불편하다고 눈감지 않은 ‘착한 역사책’을 늘 만나고 싶어한다. 
 

역사문제연구소가 그런 책을 내보자고 기획을 했고, 17명의 학자가 뜻을 함께했다. 원시시대에서 남북국시대까지,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항에서 강제병합까지, 일제강점기 등 우리 역사를 다섯 권에 담았다. 전문 분야별로 팀을 쪼개 공동 작업을 했지만, 책을 완성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만큼 공이 많이 들어갔다. 
 

우선 시각의 건강성을 유지하려는 일관된 긴장이 책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남북국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신라 우위의 한국사 체계를 이어온 남한에서는 주저 없이 그 시대를 통일신라로 정의했고, 발해를 강조하는 북한에서는 발해와 후기신라시대로 구분했다. 발해와 신라가 200년 넘게 땅을 맞대고 융성하며 경쟁했던 시대는 당연히 남북국시대로 부르는 것이 온당한 시각일 것이라는 게 지은이들의 생각이다.

 

또 우리는 발해를 지배계급인 고구려 유민이 피지배 계급 말갈족을 복속시켜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고구려는 이미 말갈, 선비와 거란 같은 여러 유목민을 거느린 다민족국가였다. 발해 시조 대조영은 말갈족 출신으로 일찍 고구려 중앙정부에 진출해 무장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고구려인이었고 또 말갈족이었던 것이다. 발해를 세운 고구려 지배계층엔 고구려 왕족인 고씨 외에도, 말갈족 출신 관료, 말갈족 추장들까지 포함돼 있었다. 발해는 지배층, 피지배층 모두에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공존했던 다민족 융합국가였다. “한민족 형성사 속에서 말갈족이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할 때 고구려문화를 계승발전시킨 말갈족의 발해는 한국사의 일원으로 올바르게 자리잡을 것이다.” 

 

역사의 장면 장면은 스스로 다면적이고 중층적일 때가 많다. 그것을 잡아내느냐 마느냐는 보는 이의 몫일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외국자본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진출해 광산, 철도, 전기 등 각종 사업을 벌였다. 국사 교과서는 이권침탈로만 보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대한제국의 대외정책 전반을 놓고 볼 때 투자유치 방법으로 열강간 세력균형을 유도한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58.html 

 

 

 

 

 

 

 

 

2월에 소개된 책 중에 가장 관심있는 책은 바로 <음식과 요리>이다. 그러나 7만8천원이라는 가격대가 아무래도 걸린다. 하지만 책장 한쪽에 꼽아 두고 싶은 책이다. 

 

음식과 요리

해럴드 맥기 지음•이희건 옮김/백년후•7만8000원


"이 책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이씨는 “음식과 요리에 대해 우리가 빠뜨리고 있던, ‘왜’와 ‘어떻게’를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과학자들은 요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고 요리사들은 과학적 이해 없이 음식을 만든다. 그러나 ‘왜’와 ‘어떻게’를 통해 그 둘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다. 이를테면, ‘왜 어떤 고기는 흰색인데, 어떤 고기는 붉은색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해답은 근섬유의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갑작스럽고 빠른 운동을 하는 근섬유와 달리, 오랫동안 지속적인 운동을 하는 근섬유는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소를 전달해주는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단백질이 고기를 붉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음식을 ‘어떻게’ 만드느냐와 연결되게 된다. 결국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의 맛과 영양을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인간 아기의 몸무게가 갑절로 늘어나는 데에는 100일이 걸린다. 그러나 송아지의 경우엔 50일 걸린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뭘까? “소젖은 모유보다 단백질과 미네랄 비중이 갑절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세상의 음식들을 들여다본 이 책에는 이러한 깨달음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들만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씨는 “보편성을 근거로 한 ‘통찰’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문화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지식이 깔려 있어, 음식과 요리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좋은 고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마블링’ 기준에 대해, 지은이는 “미국 소농장주협회가 농무성에 로비를 펼쳐 도입된 기준이며,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소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밝힌다. 또 그 뒤에는 경제적 요구에 따라 고기의 맛을 단순•표준화하는 ‘도시형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것을 먹기 위한 유럽의 사탕수수 대량재배는 식민지 경영과 노예노동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농장 소유주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부는 산업혁명 초기의 돈줄이 됐다. 농업혁명은 관개시스템을 장악한 극소수가 다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위계사회의 시작이었으며, 곡물을 중심으로 한 식단의 단순화를 낳은 “편식의 주범”이기도 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64.html 

 

번역가로 유명한 이윤기의 유고집이 두권 출간되었다. 번역가로 유명하지만 실력있는 소설가였던 만큼 그의 소설집과 산문집은 반가운 일이다. 

 
유리 그림자 이윤기 지음/민음사•1만원
위대한 침묵 이윤기 지음/민음사•1만원 

 

"지난해 8월 예순넷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뜬 이윤기의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이 나왔다. 소설집 <유리 그림자>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단편 넷이 실렸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에는 다섯 묶음에 모두 37편이 수습됐다.

 

이윤기(사진)의 소설은 교양과 지혜를 큰 특징으로 한다. 그의 주인공들은 교양과 지혜를 갖춘 현자이거나 그것들을 좇는 ‘학생’이기 십상이다. <‘소리’와 ‘하리’>라는 작품에는 “우리 사는 데가 온통 학교가 아니냐”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말은 삶과 세계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  이윤기의 소설은 유머와 지성으로 무장한 에세이적 특성을 강하게 내비친다. 유고 소설집 속 작품들에서 그런 면모는 한결 두드러지는데, 네 작품 모두에서 작가 자신이 실물대로 등장한다는 사실과 그 점은 무관하지 않다. 소설 <‘소리’와 ‘하리’>의 뒷이야기가 산문집 <위대한 침묵>에 실린 ‘오, 소리’에 나오는 데에서 보듯 소설과 산문의 구분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 산문집은 양평 시골집 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얻은 자연의 지혜,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던 그의 주변 인물들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작가의 개인사, 그리고 그의 전공인 신화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미시간주립대 학장이었던 고 임길진 박사를 기리는 작가의 추모글을 작가 자신에게 되돌려준다.


“죽음은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렇듯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 떠난 자리가 참 아름답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3002.html



이외에도 가짜논리와 정치의발견 역시 읽어봄직하다.

 

가짜 논리
줄리언 바지니•강수정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붕어빵 장사도, 뻥튀기 장사도, 청소부도, 막일도 모두 해봤다고 말한다. 노점상도, 실업청년도 열심히 살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통령의 대표적 화법이다. 이는 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권위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내 경우엔 그랬으니까…’라며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는 매우 흔하다.

“그 얘길 또 해야겠습니까?” 이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토론회에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과거의 잘못을 들추면 이 말을 한다. “논쟁을 흘러간 옛 노래 수준으로 전락시켜 피로를 유발하는 전략”이다. “선거 때는 이걸 하고 저걸 하겠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설로 일관하면서, 자기가 곤란할 땐 가설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에 활발하게 글을 쓰는 줄리언 바지니는 <가짜 논리>에서 부제처럼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을 풀어놨다. 터무니없이 공포를 부풀리는 언론 기사, 책임을 회피하거나 입에 발린 말을 주로 하는 정치인의 말, 통계의 오류를 범하는 국책기관의 분석 등을 실례로 들고 논리의 약점을 짚었다. 지은이는 “부실한 논리를 들먹이는 건 적들만이 아니며, 우리가 찬성하는 주장의 근거 역시 함량미달일 때가 있다”며 “부지런히 묻고 의심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강수정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2993.html

 


정치의 발견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1만1000원


"이 책은 꼭 정치에 입문할 사람만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정치혐오증을 버리지 못한 사람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이념적 선명성이나 순결성을 외치면서 정치의 가능성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이 답답한 양반들아 제발 제대로 알고서 말하라는 심정으로 쓰인 듯한 책이라는 뜻이다. “운동이 강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나쁘다는 것을 말해주는 지표는 되겠지만 운동으로 정치제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라든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상훈의 정치학은 다분히 최장집의 이론적 자장권에 머물러 있다. 정당과 갈등의 중요성을 표나게 강조하는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최장집의 글을 꾸준히 읽어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정치학 고전에 드는 책을 인용해 정치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는지라 설득력도 높다. 그 가운데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며 논리를 펼치는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가 가장 호소력 높다. “선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면서도 그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악마적 수단’을 회피할 수 없는 정치의 현실을 이해하지 않고 정치의 길을 나서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빈민운동가인 사울 알린스키의 말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익히 예상하겠지만,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체제 내부에서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오바마에 관한 내용도 많이 나오는데, 집권 과정에서는 배울 바가 두루 있겠지만, 최근의 통치 내용으로 보건대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의 평균적 한계 위에서 서로 협력하고 나날이 진보하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이다. 이 한 구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이만이 참된 정치가가 될 터다.

 

얇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여전히 운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라면 상당히 논쟁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정치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싶은 이라면 든든한 이론적 지원군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성싶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대에 정치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공부하는 차원에서 읽어보자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야 누구나 정치를 알고 있는 듯 호기를 부리지만, 정작 이 정도 수준의 학습도 없이 함부로 정치를 말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30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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