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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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유대민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다라고 배워왔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거둔 좋은 성적들, 기능 올림픽에서의 1등(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각종 음악회에서의 1등에다 요즘은 유럽의 영화제에서까지 1등을 하고 있다.(1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학문적인 분야에서는 아직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했다. 노벨상만 획득했어도 각 민족마다 노벨상 몇 개인지를 산출해 1등, 2등을 갈랐을텐데 말이다. 물론 요즘은 황우석교수로 인해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우리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줄 아주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만의 생각이겠지만) 

 

서열문화, 민족마저도 1등, 2등으로 가르는 문화는 우리 교육이 낳은 가장 큰 폐단이 아닐까? 독일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그런 의문에서 부터 우리 교육문화의 문제점에 접근한다. 서울대가 1등, 연대 혹은 고대가 2등,3등으로 쭈욱 순서 매김을 외국 대학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해대는 모습에서 저자는 우리 교육의 폐단을 읽어낸다. 각 대학마다 특성이 있고, 같은 학문이라고 하더라도... 학문에 중심을 두는 대학도 있고, 실용적인 면에 중심을 두는 대학이 있음에도 무조건 1등, 2등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이는 대학의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까지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우리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각 민족들을 1등, 2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과이다.

 

'위장된 학교'는 크게 세부분에서 교육의 문제에 접근한다. 첫째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서열문화이다. 결국 교육의 문제는 서열문제를 푸는 것이 핵심이다. 서열문제를 풀지 못하는 교육개혁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서열문화가 점점 확대재생산 되는데 있다. 예전과는 달리 대학 입학 후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 휴학 후 다시 수능시험에 도전한다던지,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학벌이 미치는 영향은 이미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둘째, 교육의 전근대성이다. 현대교육이 등장한 100여년 전부터 교육의 형식은 현대적이 되었다. 현대적인 교육이 되었다 함은 개인을 객채화시켰던 전근대적인 교육이 아니라 자아를 하나의 주체성있는 개인으로 교육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교육은 겉으로는 현대적인 교육의 방법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끊임없이 감시하고 처벌하는 규율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셋째, 경쟁력없는 대학의 문제이다. 교수와 학생의 사이가 위계질서로 잡혀져 있고, 각 교수들간에도 사제관계 혹은 선후배 관계로 묶여 있어 생산적인 논쟁은 ?을 수 없고 주례사 비평 수준의 토론만 있을 뿐이다.

 

비판의 소재들이 명확하고, 저자의 전공인 사회학이나 철학적인 측면에서 잘 짚어내고는 있지만, 사례를 적용하는 부분에서는 지나쳐 보인다. 때론 지나침의 본래 비판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분명한 약점이다.

 

저자의 서열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교육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교육문제의 핵심을 잘 짚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치열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은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짚어내는 문제는 이미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었더 왔던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를 갖는것은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제시는 줄기차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문제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똑같은 비판만 계속해 온다고 생각하면서, 한국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그 때야 말로 한국 교육에 희망이 없는 때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교육의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일지는 몰라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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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세트 - 전10권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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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읽은 소설중에 한권만 추천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주저없이 조정래의 [한강]을 꼽겠다. ^^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실제로 읽어보지는 못했다 -_-;; [태백산맥]의 경우는 집 책꽂이에 항상 꽂혀있는데도 말이다 ^^ - 일단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을 경우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개인적 성격도 한 몫 - 언젠가는 꼭 도전하리...

아마 조정래님의 대하소설을 시작하지 못했던 것은 조정래님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도 한 몫 작용했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듯한... 그럼에도 -게다가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한강]에 도전했던 것은 일종의 객기였다... ^^ 이렇게 시간보내다간 조정래님의 대하소설 한번 읽어보지 못할 것 같아서... -'04년, '05년 [태백산맥], [아리랑]에 한편씩 도전하겠다는 다짐 하나 - 결국 봄날의 두달반을 끙끙대어야만 했죠... ^^

[한강]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의 이르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시대의 역사를 보는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각각의 장소에 있는 한강의 기적에 발을 뻗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미시사가 뭉쳐져서 그 시대의 역사 전체를 보여주는..(개발논리시대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한강 10권을 띤다면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 )

지난해 봄에 읽은 내용이라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생각되지는 않지만 크게 저는 세가지의 시대적 배경이 생각난다.

첫째, 유일민과 유일표를 통해 보여지는 아직도 지속되는 남과 북의 문제. 유일민 가족은 아버지의 월북이라는 꼬리표를 단채 여러가지 사회적 제약들을 몸으로 버텨냈다. 남과 북의 이념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연좌제라는 사회적 억압의 기제를 사용하는 시대적 상황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 노무현 장인이 이북에 부역했다는 과거가 문제가 되었던 대선을 보면 -

둘째, 한인곤을 통해 보여준 군인 정치와 한강의 기적시대 때의 부동산 투기의 모습이다. 정치적 부패의 기본 틀이 잡히고 재산의 축적이라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되어버렸던 모습은 여전히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천두만과 천두만 가족에서 보여지는 일자리의 문제와 산업역군이라는 미명아래 착취당해야만 했던 노동자의 현실을 보면 먹고 자는 문제가 조금 나아졌다는 것은 빼놓고 경제적 구조의 문제는 여전한 것을 볼 수 있다.

- 지금 기억나는 부분만 적었답지만. 한국현대사의 큰 줄기를 짚어나간 대작이었다.

2003년 읽은 소설 중 이 한권의 소설로 [한강]을 꼽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6-70년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사회적 모습을 보여주기에... 현재의 삶의 부조리들이 바로 그 시대로 부터 형성되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우리네 삶의 모습도 제공해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정래의 문학이 뛰어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작가들에게 정말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 시대적 삶을 보여주면서 보편적인 역사로 승화시키는 능력, 그래서 조정래님의 명성은 단순히 대작을 남겨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의식을 갖게 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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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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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칫솟는 듯한 높은 빌딩 숲의 서울은 병원조차도 훌륭한 곳이 많다. 게다가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개인 병원들은 예전과는 다른 질과 서비스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돈 없이 치료받는, 혹은 치료해 준 것이 고맙다고 더덕을 사례로 놓고 가는 그런 풍경을 꿈꿀 수 있을까? 철저하게 돈으로 관계가 맺어지고, 돈에 의해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는 그런 서울에서...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서울과는 대비된다. 시골의사.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병원은 우리가 꿈꾸지 않으면서 꿈꾸는 병원일 것이다. 아무래도 서비스 차원에서 의료가 제공되지 않는 곳일테니 자본에 물든 이들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병원일 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금전에 대한 값어치만큼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닌 그 뒤에 품고 있는, 의료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런 병원일 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 않으며 꿈꿔 보는 그런 병원일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 정말 아름다운 단어다. 사실 책에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책은 우리사회의 사회문제에 대해 아주 복합적인 모습을 제공한다. 노인의 문제, 빈곤의 문제, 지방의 문제(의료혜택에서 벗어난), 장애인문제 등.

책을 읽으면서 시골의사의 의사다운 행동에 많은 감동을 가진 것이 사실이고, 또한 시골의사가 겪은 환경들 속에서 많은 사회문제를 보며 이런 사회문제가 여전하다는 것, 그리고 별다른 개선의 여지가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찜찜한 기분을 낳게 한다.

시골의사는 점점 돈으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금전에 따라 의료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는 21세기에 의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속에서 의사의 자리매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해 준다. 시골의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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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역류
김정란 지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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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주소 http://www.rannie.net 을 치고 들어가면 샛파란 하늘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슬며시 땅이 나타나고 두 그루의 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오른쪽 한 켠을 보면 삶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부유하는 듯한 "허공의 집"이라는 네 글자가 흐멀거리고 "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 영혼들이 모여 만든 집 . . . " 이라는 표현이 써 있다. 이 곳은 시인, 문학평론가, 불문학 번역가 등의 이름이 붙여진 김정란의 홈페이지다.

우연히 찾아든 홈피에서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이라는 표현에 잠시 멈칫거릴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을 꼬깃꼬깃 한켠에 간직하고 있었다.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 것은 바로 내 영혼이었으니까....

김정란이라는 이름이 내게 익숙해 진 것은 시인으로의 김정란이 아니라 논쟁의 한가운데 휘말려버린 김정란 때문이었다. 90년 대 후반 '문단이 문학성보다는 언론 플레이를 통한 상업성 확보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하며 문학권력 논쟁의 포문을 연 김정란은 문학권력 논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시인 박남철은 창비 게시판에서 성폭행적인 비방글을 남겼다.(이 사건은 문학권력 논쟁만큼 큰 이슈였다.) 김정란으로 시작된 문학권력 논쟁은, 결국 논쟁의 핵심과는상관없이 김정란에 대한 비방(문학권력 논쟁을 상업정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비방)과 그의 평론에 대한 악의적인 비평까지 계속되었다. 그 문학권력 논쟁에서 그의 우군이 되었던 것은 기득권을 가진 평론가가 아닌, 이명원 등(현재 비평과 전망 동인 들) 의 젊은 평론가와 진중권, 강준만 등이었다는 점도 아이러니 했다. 그런 김정란은 안티조선 운동이 본격적이었던 90년 대 末 그 운동의 한켠에 강하게 서 있었다. 그가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안티조선운동으로도 그는 큰 상처를 입었다. 조선일보와의 유착관계를 의심받는 '문학동네'(요즘은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가 그녀의 시집 출간을 거부한 사건까지...

이런 사회적 이슈들의 한 가운데서 큰 상처를 입었던 김정란이 새 책을 내었다. '분노의 역류''촛불집회의 촛불은 조용히 타고 있지만, 그 밑에서 흐르는 것은 분노의 역류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국민은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내가 내 몸을 역사의 필기구로 사용하지 않으면, 또 다시 3공화국의 비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근심 때문에 아이들을 동반하고 저항의 장소로 나가고 있다.촛불은 따라서 각성한 시민 각자의 인식의 불이다' (18쪽) 책은 1부 '희망이라는 반찬'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김정란의 칼럼들이 실려있다. 지난 대선과 관련되었던 그리고 탄핵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그 들의 몰상식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 자신의 말했듯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한 물 간 내용들로 평가받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한쪽만 비판하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김정란의 글들에서는 어떤 상식이라는 부분에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전에 누군가(얼추 몇 명의 이름만 떠오를 뿐)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이라고 이야기 한 것 처럼, 김정란의 몰상식한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있다. 상식의 관점에서..

2부 '부러진 칼 조각 사이의 길'은 김정란의 에세이들이다. 김정란의 고정희에 대한 추억, 김현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인문학자의 삶을 사는 자신의 의지 등이 담겨 있다. 혹은 김정란의 어린 시절까지... 김정란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2부를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투사처럼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김정란의 유약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인문학에 거는 희망도 엿볼 수 있다.

3부 '더 이상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은 외출'에서는 문학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화속에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로 부터 시작해서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살며시 흘러나온다. 여러부문에서 문학의 위상이 약화되고는 있지만, 진정한 문학이야말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해 주는 영성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몰가치적이고 표면적인 삶의 방식에 지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을 문학이라고 본다.

'분노의 역류'는 그의 정치적 내용들을 읽으려고 들면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다. 홍세화, 고종석, 박노자 처럼 예리하게 지적해내지 못하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점이 강점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김정란에 대해서 조금의 관심이 있고 그를 조금더 알고 싶다면 '분노의 역류'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정란에 대한 첫 독서이기는 하지만 사실 첫 책은 아니다. 책꽂이 한 구석을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두 권의 평론집 "영혼의 역사", "연두색 글쓰기"를 이미 3년전에 사다 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김정란은 사실 좋은 시인이고, 평론가이다. 이제 그의 문학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시간의 타래를 한 올 한 올 앞질러 가다보면 그의 시와 평론에 빠져들 날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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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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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쓰기에 빠져들던 문학청년 시절,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름씩, 한 달 씩 지낸 시간들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세 달 쯤 말을 않고 지낸 적이 있다. 내 몸 안의 가장 든든한 기둥 위에 '묵언' 이라는 패찰을 드리워놓고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들.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서만 위해서만 열려져 있던 시간들. 타인의 꿈과 욕망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던 시간들.

한 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시들이 천천히 날개짓하는 것을 보았고 가능한 그 날개짓이 더욱 격렬해지기를, 세상에 대한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지니기를 나는 바랐다. 그리하여 내 시가 어떤 사랑스럽고 순전한 광기의 언덕에 이르러 고단한 날개짓을 멈추기를, 그곳에서 여유롭게 비행하며 새로운 언덕을 다시 꿈꾸길 바랐던 것이다. 그 무렵의 내게 침묵은 날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
(책 119쪽)

여행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어떤 여행은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쫓아가고, 어떤 여행은 그 곳에 묻어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쫓고(아마 답사가 그렇겠지), 또 어떤 여행은 사람과의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여행은 여행지가 배경이 되어 자신을 한 없이 열어 자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자신을 비우기 위한 여행이 될 것이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기행문이다. 그러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여행지에 대한 찬사가 나오지도 않는다.(물론 아름다움은 표현하긴 하지만..)
곽재구의 포구는 세상과 만나는 공간이자, 자기 자신과 만나는 공간,
그리고 자연과 대화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어나간다는 것이 어느 멋진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글들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저자와 만나가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듣기도 하고, 저자와 대화를 해 나가기도 하고,,
그래서 한켠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름답고 좋은 책이다.

포구라는 곳,,, 현대 산업사회에서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지금은 점차 하나둘 씩 사라지고 있는
그 포구속으로 저자는 음악씨디와 책 몇권과 동행한다.
그 곳에서 저자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혹은 모르는 사람 사진을 찍다가 욕을 먹기도 하고
가만히 자기자신속으로 침잠하기도 한다.
기행문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함께 한다는 것...

문득 책을 읽으면서 곽재구의 포구기행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책이 많이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정한 마음들이 많다는 뜻을 게다.
그리고 거기엔 MBC 느낌표의 역할 또한 한자리 차지한다.
(그런면에서 느낌표의 긍정적인 역할에 찬사 한마디... )

아마 시간의 흐름속에 간간히 포구를 지나가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그곳의 세상과 만나고,, 또 나 자신과 마주치는 행복한 일들이 생길 것만 같다.

" 준임씨의 팥죽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으로 불리울 수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생 유전. 세상살이의 험하고 깊은 애환을 팥죽을 먹는 동안 얻어듣는 것이 그것이다. 너무 착하고, 순하고, 남에게 나쁜 짓이라고는 어린 고춧잎 하나만큰도 하지 않은, 그가 겪은 세상살이의 난삽함이 술술술 흘러나온다" (책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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