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시 쓰기에 빠져들던 문학청년 시절,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름씩, 한 달 씩 지낸 시간들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세 달 쯤 말을 않고 지낸 적이 있다. 내 몸 안의 가장 든든한 기둥 위에 '묵언' 이라는 패찰을 드리워놓고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들.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서만 위해서만 열려져 있던 시간들. 타인의 꿈과 욕망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던 시간들.

한 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시들이 천천히 날개짓하는 것을 보았고 가능한 그 날개짓이 더욱 격렬해지기를, 세상에 대한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지니기를 나는 바랐다. 그리하여 내 시가 어떤 사랑스럽고 순전한 광기의 언덕에 이르러 고단한 날개짓을 멈추기를, 그곳에서 여유롭게 비행하며 새로운 언덕을 다시 꿈꾸길 바랐던 것이다. 그 무렵의 내게 침묵은 날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
(책 119쪽)

여행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어떤 여행은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쫓아가고, 어떤 여행은 그 곳에 묻어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쫓고(아마 답사가 그렇겠지), 또 어떤 여행은 사람과의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여행은 여행지가 배경이 되어 자신을 한 없이 열어 자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자신을 비우기 위한 여행이 될 것이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기행문이다. 그러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여행지에 대한 찬사가 나오지도 않는다.(물론 아름다움은 표현하긴 하지만..)
곽재구의 포구는 세상과 만나는 공간이자, 자기 자신과 만나는 공간,
그리고 자연과 대화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어나간다는 것이 어느 멋진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글들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저자와 만나가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듣기도 하고, 저자와 대화를 해 나가기도 하고,,
그래서 한켠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름답고 좋은 책이다.

포구라는 곳,,, 현대 산업사회에서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지금은 점차 하나둘 씩 사라지고 있는
그 포구속으로 저자는 음악씨디와 책 몇권과 동행한다.
그 곳에서 저자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혹은 모르는 사람 사진을 찍다가 욕을 먹기도 하고
가만히 자기자신속으로 침잠하기도 한다.
기행문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함께 한다는 것...

문득 책을 읽으면서 곽재구의 포구기행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책이 많이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정한 마음들이 많다는 뜻을 게다.
그리고 거기엔 MBC 느낌표의 역할 또한 한자리 차지한다.
(그런면에서 느낌표의 긍정적인 역할에 찬사 한마디... )

아마 시간의 흐름속에 간간히 포구를 지나가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그곳의 세상과 만나고,, 또 나 자신과 마주치는 행복한 일들이 생길 것만 같다.

" 준임씨의 팥죽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으로 불리울 수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생 유전. 세상살이의 험하고 깊은 애환을 팥죽을 먹는 동안 얻어듣는 것이 그것이다. 너무 착하고, 순하고, 남에게 나쁜 짓이라고는 어린 고춧잎 하나만큰도 하지 않은, 그가 겪은 세상살이의 난삽함이 술술술 흘러나온다" (책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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