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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Mr. Know 세계문학 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에 대한 소개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혹자는 완벽한 자유인이라고도 하고 많은 예술가들에게 원초적인 자유의 영감을 주는 인물 조르바.
그런 조르바를 이제야 만났다. 조르바에 대해 건네 들은것이 벌써 스무해는 다되었을텐데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삶에 있어 새로운 시간을 갖고자 하는(새로운 깨달음 혹은 좀 더 깊은 생각을 위해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작가('두목')가 크레타 섬에 도착하면서 묘한 인물 '조르바'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해 그와 함께하며 나눈 일상과 대화, 그리고 헤어짐을 다룬다. 즉 조르바와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조르바로 가득찬 책이다.
지식과 생각을 통해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두목'에게 '조르바'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언제나 거침없는 행동속에 숨겨진 자유와 무엇에든 얽메이지 않는 원초적인 자유를 누리는 '조르바'를 통해 '두목'은 자유의 본질과 마주친다. 진리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가 바로 조르바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두목은 그 자유를 인정할 수 없어(자신이 추구해온 진리탐구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어서일까?) 사색과 글쓰기에 끈덕지게 매달린다.
'자유'란 무엇인가? 본질적인 자유란? '조르바'는 그 어떤 것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추구한다. 그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약, 국가라는 지리적 그리고 사상적 제약, 식욕과 성욕이라는 육체적 제약을 극복했다. 심지어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제약되는 손가락을 잘라버리므로 꿈의 제약마저 벗어났다. 그와 달리 진리를 통해 자유를 얻고자 하는 두목은 도덕과 사회적 제도라는 줄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두목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두목 "언젠가는 자를 거요"
조르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 (339쪽)
조르바는 진리를 통해 자유를 추구하는 두목이 바로 그 줄에 묶여 있음을 알고 있다. 진정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 줄을 잘라야 하는데 두목은 그렇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줄은 사회적 제약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제도속에서 안정하고자 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것은 바로 도박이니까. 본질적 인간이 아닌 사회적 인간(사회에 의해 제약되지만 한편으로는 보호받는)일 뿐이다.
조르바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 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두목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자유라는 거지!" (25쪽)
바로 본질적 인간은 자유 그 자체다.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줄을 잘라야 하지만 그 줄을 자를 생각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 자유속에 만족하며 산다. 조르바는 '박제된 자유인'일 뿐이다. 우리는 그의 자유를 부러워하지만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조르바를 끊임없이 꿈꾼다. 조르바를 구경꺼리 유명한 작품처럼 벽에 걸어놓고 그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꿈꾼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박제되었을 뿐이다.
더 이상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는 없다.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자유는 민주적 자유가 전부였다. 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겪은 후 이제 자유는 '경제적 자유'일 뿐이다. 자유에 대한 정의에서조차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더욱 조르바가 그리워진다. '인간은 자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