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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재미있는 이 책은 인지과학 측면에서 지은이 자신의 학문인 인지언어학을 정치현실에 적용하여 나온 책이다. 2000년 미국 대선을 보면서 지은이는 사람들의 투표 성향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일까?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를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일까? 에 대한 의문에서 사람들을 살펴본 지은이는 프레임이라는 해석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로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양대정당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은 '엄격한 아버지' 그리고 민주당은 '자상한 아버지'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부분의 정책은 그러한 프레임과 맞아 떨어진다.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과 같이 사회속에 나타난다. 사회에는 도덕적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 도덕적 질서를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그런 도덕적 질서를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 즉, 사회적으로 능력(혹은 부)에 의한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 남녀간의 성차와 동성애, 낙태와 같은 부도덕한 현상은 용납할 수 없다. 부는 경쟁에 의한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위해 돕는 행위는 부도덕한 일이다. 정부의 역할은 규율을 따르는 모든 미국 국민들의 생명과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미국은 그런 엄격한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집단은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와달리 민주당은 '자상한 아버지의 프레임'이다.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 어머니와 함께 가족에 대해 상의하고 자녀를 보살피고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 바람직한 사회관계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다시말해,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해야 하고, 사회적 협의를 거쳐 교육, 의료보장 등의 혜택을 모든 국민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다른 나라들과 협력해야 한다.
지은이의 이런 프레임 분석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나의 처지가 사회적약자거나 그렇지 않거나 내가 추구하는 바가 '엄격한 아버지의 프레임'이라면 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과거 민주당이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정책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만 애썼지 이런 프레임의 틀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보수주의는 이런 프레임의 영향력을 오래전에 깨달았다. 3~40여년 전 부터 돈많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많은 돈을 들여 연구소 등을 설립하였고, 그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결과적으로 TV에 출연하는 지식인들의 80%이상이 이런 보수주의 학자들이다. 그들은 프레임의 영향력을 잘 이해하였고 몇 십년간 프레임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TV나 언론에 등장하여 그런 프레임을 전파하고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세금구제'라는 프레임이다. 세금은 누구나 기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프레임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그런 세금에서 구원해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세금이라는 고통에서 구원해줄 공화당이라는 프레임이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에 세금을 통해서 사회보장프로그램 등을 확충하겠다는 진실은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공화당은 그런 세금의 부족분을 모두 사회보장프로그램을 제거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국방 등의 예산을 더욱 늘리는데 사용된다는 사실은 프레임속에 은폐된다. 공화당은 '세금구제'라는 은유적인 언어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 '엄격한 아버지의 프레임'을 완벽하게 수행해 나간다.
지은이는 인지과학의 프레임이론을 통해 이런 정치적 현실에 뛰어든다. 아무리 민주당이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런 사실 보다는 자신의 프레임을 따른다. 미국사회에서 이런 보수주의 프레임은 9·11 테러를 겪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이라크에 관련된 수많은 진실들이 알려지고 있지만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국민들의 지지는 압도적이었지 않는가.
그래서 지은이는 바로 이런 프레임에 입각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이 세금구제라는 은유를 들고 나왔을 때 그 프레임안에서 대응해서는 상대방의 프레임만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세금에 대한 새로운 은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 부모들의 세금으로 도로가 만들어졌고, 인터넷이 개발되었고, 우주개발의 시대가 열렸다. 결국 우리의 세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라는 은유를 만들어야 하고 보수주의자들이 TV에 나와서 매일 말하는 것처럼 광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프레임이론은 여러면에서 생각해볼 만하다. 흔히 어떤 사실을 이야기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 만으로 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프레임이라는 생각의 틀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즉, 인지과학(비단 과학 뿐이 아니라 인지적 관점은 심리학 및 언어학에도 중요한 영역이다.)이라는 학문적은 차원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가 말하는 프레임은 각 정당의 정체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책이 아닌 프레임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과 신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프레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씽크탱크를 장악한 것 처럼 요즘의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모습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의 부도덕한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신문들은 비자금 등의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시 국가경제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태도와 삼성의 시시콜콜한 사회봉사까지도 기사화 하고 있다. 조중동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 보수주의 프레임이 삶 속에서 강화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 책은 약간의 한계를 갖는다. 일단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보수, 진보의 관점은 철저하게 미국내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지은이가 진보라고 이야기하는 민주당 조차 우리나라 민주노동당에 비교해보면 전혀 진보라고 할 수 없다. 북유럽에 비해보자면 오히려 보수에 해당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진실에 따라(때로는 왜곡된 진실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투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점차 보수주의 프레임이 확산되어 가고 있고, 진보연구단체들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리고 2007 대선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설득력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보수화과정 속에서 중도 혹은 진보세력이 어떤 방향으로 시민들에게 접근해야 할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