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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평점 :
서울은 600여년이나 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역사를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시청, 광화문 주변에서야 경복궁, 덕수궁 등을 만날 뿐, 이 마저도 없다면 청계천, 강남 등으로 대변되는 서울은 고작 20년 정도의 젊은 도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주의 깊게 돌아다녀본다면야 종로, 시청, 숭례문 등지에서는 무슨무슨터라는 표석을 많이 만나게 되지만, 표석이 있다고 해서 눈앞에 역사가 보이는 것은 아니니 서울의 역사를 알기는 너무 어렵다.
이런 현실속에서 만난 서울은 깊다는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하나하나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서울의 전부가 아니라 서울은 역사와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서울은 사실 우리의 생활과 많은 관계가 있다. 한 때 많이 사용하던 서울깍쟁이, 시골뜨기라는 말이 있다. 경제위기이후 노숙자들이 거리에 많아졌지만 90년대 전반까지는 노숙자들 보다는 거지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거지들이 깍쟁이로 불리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거지들은 누가 부자인지 누가 후한 사람인지를 금방 알아차려야 했다. 그말이 지금에 이르러 '지나치게 잇속을 챙기는사람들'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촌뜨기,시골뜨기는 또 어떤 의미일까? 지은이는 시골뜨기와 서울내기를 들어 조선후기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급제해 서울로 올라오고, 관직을 마치고 낙향하던 조선초기와는 달리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은 점차 자리잡기가 어려워지면서 서울사람들은 시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을 걸어잠근채 서울만의 유행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서울과 시골사이에 시간이라는 벽이 생겼다. 시골출신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버렸고, 이는 촌스러움이 되었다. 내기는 출생지를, 뜨기는 출신지를 의미하는데 이제 서울에는 서울출생의 서울내기와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뜨기로 나뉘어 불리며 시골출신은 서울에 들어오더라도 온전한 서울사람이 되지 못했다.
조선중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청계천의 잦은 범람으로 주민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조시대에는 준천(하천정비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청계천의 잦은 범람은 높아진 하천수위가 문제였다. 지은이는 청계천의 하천수위가 높아진 원인을 바로 급격한 인구증가에서 찾는다. 양란이후 서울은 무서운 인구증가를 경험한다. 이는 많은 공간이 주거공간으로 사용되고 급격한 오물증가를 뜻한다. 난방재나 오물등은 시골에서는 귀한 거름으로 만들어지지만 서울에서는 처리할 수 없었고 청계천으로 흘러보낸 오물들은 수십년 사이에 청계천 수위를 수미터나 올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등따습고 배부르게살고자 한 도시민들의 욕망과 그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준 늘어난 부가 바로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똥돼지, 똥개 등 에서 다리밑에서 주어 왔다는 말 부터 덕수궁 돌담길에 얽힌 이야기까지 지은이는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들 속에 숨어있는 서울의 역사성을 캐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조선에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 전차가 놓여질 조선말, 일제강점기를 지나 지하철1호선이 생기는 시기까지 다루어낸다.
이렇게 우리 삶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서울은 여타 도시와는 다는 출발을 보였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도시들의 시작과 달리 서울은 종교와 분리된채 유교적 바탕위에 공적인 공간 기능이 강화된 채 세워진다. 서울의 또 다른 특징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도시 중 유일하게 한글로 된 도시이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한다. 끊임없이 농촌으로 부터 물자를 빨아들이고, 소비하는 곳이다. 조선의서울 역시 이런 역할을 해냈다. 특히나 조선에서의 서울은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으로 구분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이는 지금의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 경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서울은 모든 재화와 자원을 끌어들일 뿐이다.
전우용의 서울은 깊다를 읽어나가면 시간적으로 서울을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유교적 이상이 깃든 서울의 탄생에서 부터 시작해서 전차가 다니고, 서양식 건물이 들어선 구한말까지 서울이 담고있는 내용을 알게된다. 공간적으로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기능과 그 사회성을 보게 된다. 서울의 역사라는 뼈대위에 도시기능의 서울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서울이라는 공간과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고 또 서울이라는 특수한 도시와 도시의 특성을 씨줄로 날줄로 엮어내어 복합적인 시각과 지식을 선사한다.
전우용의 서울은깊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대의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사성과 사회성을 더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