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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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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리스본은 지리상 발견의 시대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스페인과 더불어 15,16세기 활발한 해외 탐험을 통해 교역로를 확보하고 신대륙의 많은 나라를 정복했다. 신대륙(브라질)에서 발견된 금광은 리스본을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리스본은 또한 가장 강력한 카톨릭 국가의 하나였다. 막대한 부로 로마 교황청의 최대 후원자였으며 유럽내 가장 독실한 카톨릭국가였다. 이는 제2차 십자군 원정당시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데 리스본의 종교재판소는 많은 이들을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화형에 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1755년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 불리던 만성절이었다. 리스본의 모든 이들이 미사를 보려던 시점 땅은 크게 요동쳤다. 저 멀리 스코틀랜드까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큰 지진은 90분 후 세차례의 큰 해일로 리스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처음 지진이 나고 사람들은 지진에서 안전해 보인 해안가로 몰려들었는데 이후 닥친 해일을 피할 수 없었다. 리스본의 모든 것들은 무너졌고 왕조차 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직자들은 리스본의 타락을 이야기했고 신의 징벌이라 외치며 회개를 강요했다. 무너져 버린 왕궁탓에 천막으로 된 임시처소에 머문 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도를 옮겨야 된다는 이 부터 회개를 이야기하는 성직자들 틈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한 카르발류라는 대신이 왕을 알현했다 그는 왕에게 " 죽은자를 묻고 산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답을 한 사람이었다. 카르발류는 곧 왕의 전권을 뒤에 엎고 지진 현장에 나타난다.

 

그는 곧 병력을 동원하고 피난한 건장한 남자들을 소집해 시신을 수습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는 전염병의 창궐을 막게 된 것이다. 이 후 무너진 리스본 재건에 나선다. 평민출신에서 리스본 도시 건설 최고 책임자가 된 마이아의 제안으로 수직으로 반듯한 도로, 대칭적인 건물, 거대한 광장으로 리스본을 재설계했다. 4층 높이의 건물과 넓은 도로를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둔 리스본 재건계획은 곧 귀족과 성직자들의 반발을 산다. 집으로 평민들과 차별을 두어야만 했던 귀족들은 건축의 통일성속에 전복적인 평등사상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리스본 재건계획은 더디어 갔지만 계몽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카르발류의 독재덕에 리스본은 새로운 세계를 맞게 된다.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리스본의 아름다운 도시미학은 바로 이때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카르발류는 곧 지진의 피해를 조사하게 되는데 지금의 시각으로야 아주 단순한 질문이지만 지진이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지진의 피해는 어떤지, 그리고 지진에 의해 어떤 구축물들이 피해를 입었는지와 인명피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여기에는 종교적인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리스본의 재건 과정까지 살펴봤을 때 카르발류는 근대 재난관리의 장을 열었다.

 

사실 이 리스본 대지진은 단순히 지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유럽의 지성들에게도 큰 사건이었고, 유럽인들에게도 큰 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도시가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된 것은 유럽에서는 처음 있는 일었다.  상식적이었던 유럽의 철학자들 눈에 신의 징벌이라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았다. 당시 리스본은 종교적인 도시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와의 갈등이 있었긴 하였지만 철학자들이 보기에 신의 징벌이 될만한 도시들은 따로 있었다. 즉시 볼테르는 그이 낙관주의 철학을 버렸고 루소 또한 지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지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리스본 대지진은 유럽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당시 낙관적 계몽주의는 인간이 얼마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냐며 이성과 신학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리스본 대지진으로 이런 낙관적 계몽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성인의 축제일에 일어난 이러한 사건은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왔다. 바로 볼테르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여전히 고집스러웠다. 개신교는 리스본 대지진을 카톨릭이 가지고 있던 무자비한 종교재판소와 종교적 차이에 의한 신의 징벌이라고 봤다는 점에서 카톨릭과 다름 없었다. 칼뱅파를 위시한 개신교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이런 비판에 앞장섰는데 근본적으로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종교적인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남아시아를 휩쓸었던 쓰나미에 이슬람은 그들이 코란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비기독교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해서 미국의 목사들은 신의 징벌임을 강조했다. 이번 일본 동북부지역의 지진에 대해서 한국의 대표적인 목사들 또한 신의 징벌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1755년과 지금의 종교가 과연 어떤 점에서 다른지 궁금하다.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 신의 징벌이라는 무지한 논리를 편 반면 영국성공회는 자연재해 보다 매일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오히려 더 놀랍다며 이런 광신도적인 접근에 우려를 표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접근을 보였다.

 

인간은 아직도 지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직 지진에 대한 완벽한 이론도 없다. 하지만 리스본 대지진 이후 더디지만 지진 연구의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단순히 지진에 대해서만 알아간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라는 인간에 대한 이성에 대한 노력이 있었지만 그 뒤에 리스본 대지진을 통해 신중심주의와 결별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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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왜 일어나는가
매티스 레비 외 / 기문당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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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11월 1일 리스본을 쑥더미로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지진이었다. 이 지진은 저 멀리 스코틀랜드에까지 충격이 있을정도였다. 특히 '성인의날(카톨릭종교의 날)'에 발생한 이 지진에 성직자들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신의 경고라 하였고, 많은 이들이 성직자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마르쿠에스데 폼발이라는 사람에 의해 건물들은 다시 수리되었고, 전염병이 돌기 전 죽은자들을 매장하도록 하였다. 신의 징벌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진은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강조한 그에 의해 리스본은 재건되었다. 그리고 이 때 부터 지진이 문서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진학의 시초가 되었다.


리스본 지진이 일어난 후 캠브리지대학의 지질학자에 의해 지진파가 제시되었고 이후 연구를 통해 지구과학시간에 배웠던 P파와 S파가 발견되었다. 지진파의 발견은 지구내부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지진의 신비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진원이 어디인지 지진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지진에 위험한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이다

 

판구조론. 일본의 경우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 그리고 작은 필리핀판의 경계에 있어 지진 및 화산에 취약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인지적한계 때문에, 지구과학시간에 배웠음에도 불구하고,지구는 멈춰있는것으로 지각은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무식하게도 일본동북부 지역의 지진에 대해서 신의 징벌 운운하는 목사들이 있다. (우스운 점은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라 하는 자들이 불법, 헌금횡령, 돈선거 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인데 신이 징벌하려고 했다면 과연 누구를 했을까.) 아직 지구에 대해서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은 일부분이다. 아직 지구 내부까지 관찰도 못했다. 그럼에도 여러 실험으로 지구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일단 지각은 핵과 맨틀위에 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지각에 대해서 대륙설, 대양설등이 있었는데 1950년대 태평양 및 대양에 해령(해저산맥)이 발견되면서 판구조론이 받아들여졌다. 판구조론으로 지진과 화산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판과 판이 마주하는 곳에서는 쉼없이 지각운동이 일어난다. 물론 인간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지만. 그 태평양판의 양쪽 끝에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가 존재한다. 지진에 의한 피해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지진의 예측에 많은 연구를 쏟아붇고 있지만 지구는 쉽게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은 지진을 경험하면서 지진에 대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진을 예측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지진과 건물의 진동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진시 건축물이 파손되지 않도록 내진설계를 하게 된다. 콘크리트 기초구축물을 강화해 튼튼한 건물을 지으려는 노력에 진동에 건물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지하를 이용하거나 인위적인 가력기를 통해 지진시 건물에도 동일한 진동을 강제하는 방법 등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여러 면진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그림. 미국의 경우 보통 1층을 차고로 사용하면서 약한 벽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지진 발생시 집이 그대로 주저앉게 되었는데 여기서 면진의 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1층이 찌그러지면서 2층 이상의 부분이 안정적인 형태로 그대로 주저 앉았는데 지하층에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건물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

지진은 왜 일어나는가 이렇게 지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지진학의 탄생, 지진 그리고 면진 및 대처방안까지 지진에 집중된 이야기를 한다.  특히 다양한 도표와 그림이 사용되어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L.A 지역의 지진의 위험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주변에는 3개의 단층과 숨겨진 1개의 단층이 있는데 1994년의 지진에 숨겨진 단층이 수평단층을 노출시켰는데 과거와는 다른 큰 지진피해를 나타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판되어서 도서관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후기를 남기며 조회해보니 다시 판매가 되고 있다.)


또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1923년 관동대지진 설명 말미에 지진과 화재 후의 공포상황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불을 질렀다 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체포되었지만 질서가 회복되어 풀려났다고 한 부분이다. 실제로는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에 대한 대학살이 있었는데 단순히 일본측 자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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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 지진과 해일은 예측이 가능한가 고정관념 Q 12
크리스토프 부아쟁 지음, 한정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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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각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지구상에는 하루에 수차례 지진이 발생한다고 한다. 거대한 지진 역시 며칠에 한번씩 발생하는데 지표면에서 멀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친다. 그러나 바로 얼마전 일본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발생은 해구형지진으로 대규모 쓰나미를 일으켰고 쓰나미에 의한 피해가 무엇보다 크다.


날씨도 예보를 하는데 지진은 왜 못할까? 여기에는 사실 결정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지진을 예측하는 방법에도 큰 문제가 있지만 과학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오류를 감안한 예측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진학자들은 언제든 특정 오류를 범한 채 지진을 예측할 수 있다. 주민들의 반응 역시 지진 자체보다 예측하기 쉽지 않다. 재난의 예고는 광범위한 불안을 유발하고 인간성 상실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학력이 높은 주민들은 군소리 없이 도시를 떠난다. 과학자들의 예측의 불확실성은 첫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 날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 마을로 다시 돌아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결정은 훨씬 어렵다."(100쪽~101쪽)

 

이와 관련된 중요한 예가 있다.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쓰나미 경보 시스템에 초점을 맞췄다. 커다란 지진이 쓰나미 상습 발생 지역에서 일어났음이 확인된 후 하와이에 지진이 예고되었다. 경보가 발령되었고 주민들은 대피했다.
많은 지진이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이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특히 1957년 북태평양 알레우티엔트 섬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희생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 칠레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하와이의 소규모 항구 힐로에서 희생자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미리 통고를 받았다. 하지만 1958년과 1959년에도 해일 경보가 발령되었지만 해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주민들이 대피하지 않았던 것이다."(90쪽~91쪽)

양치기소년의 거짓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지구를 멈춰있는 것으로 느끼지만 실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고, 그 정체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지구'는 고정관념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다. 지진과 해일은 지구의 활동이라는 3부에서 설명되는데 지진, 화산, 해일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한다. 이외에 지구의 생성과 변화 등 지구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판구조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 그냥 쉽게 읽어나가기에 괜찮은 책이다. 문제는 조금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책은 찾기가 힘들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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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5
박병상 지음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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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인 박병상의 책을 두권째 읽었다. 첫번째 책은 파우스트의 선택, 그리고 이번 책은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이다.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함의하는 바에 고민하게 되었다. 생명공학은 자신의 영혼을 메피스트에게 팔아버리는 것과 같이 위험할 수도 있고, 생명공학이 이야기하는 처럼 장밋빛 내일이 아니라 미래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하게 내비친다.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은 크게 세가지에 주목한다. 생명공학이 갖는 불평등, 생명복제로 인한 불평등, 유전자정보에 의한 불평등이다. 어린 시절 생명공학(유전공학)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축복이었다. 영양가 높은 동식물들이 나오고, 지금의 몇배가 되는 식량보급이 가능해지는 생명공학(유전공학). 생명공학(유전공학)은 모든 인류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식사에서 해방시켜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 생명공학은 그런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불과 10여년전에 이야기하던 일이 현실화 되었다. 동일한 면적에서 몇배를 생산할 수 있는 농작물이 나왔다. 그리고 프리미엄 우유, 저지방 우유들 모두 생명공학의 작품이다. 영양가 높은 우유가 생산되고 있다. 그런 식량혁명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류가 굶어죽고 있다. 이런데도 생명공학이 미래를 밝게 해준다고 생각하는가?


(잠시 사족을 붙이자면 인간생명의 태아, 배아(embryo)의 개념이 덧붙여지면서 10여년전 유전공학이라 불리던 학문이 생명공학으로 확장되었다. )


생명공학은 어떻게 사회를 불평등하게 하는가? 유전자조작으로 산출량이 많아지거나 특성환경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작물들은 사실 대규모 농업자본에 의해서 개발된다. 좋은 수확과 수입을 벌어다 주는 작물을 재배하게 되면서 농업이 특정 종자에 의존하게 된다. 고유의 작물들은 사라지게 되고 대규모 농업회사에서 제공하는 작물만이 재배되는 환경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개별 농가들이 무너지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IMF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종묘회사였던 홍농종묘가 다국적기업에 넘어가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종묘산업은 이미 다국적기업에 넘어간지 오래이다. FTA가 아니더라도 생명공학으로 인해 전통농가는 점점 발을 딛기 힘든 환경으로 옮겨갈 것이다. 또한 유전자조작된 젖소에 의해서 생산되는 우유는 일반 젖소에 비해 높은 단백질과 낮은 지방을 포함한다. 소규모로 산출되는 우유는 유전자조작된 젖소에 비해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유회사에 우유를 납품하기가 힘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소뮤고 낙농업은 대기업에 복속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심각한 윤리, 환경적 문제도 포함된다. 유전자조작된 소는 단순히 우유를 뽑아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3년 정도의 수명밖에 되지 않는다. 젖소들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양질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유전자조작된 곡물들을 섭취하고, 심지어는 단백질을 높이기 위해 육류사료를 섭취하기도 한다. 젖소가 육류를 섭취하는 것은 사실 인류에 해악을 끼칠수도 있다. (광우병의 예에서 보여지듯이)


둘째, 생명복제로 인한 불평들이다. 생명복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동물복제에는 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배아복제는 수정후 14일 이내에 한해서만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이말은 수정후 14일까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수정될 때 부터 생명으로 보는 인식에서 수정후 14일 이후로 생명을 인식하는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말은 생명공학연구자들의 장밋빛 환상이 생명으로 인식하는 시점을 늦출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에 따라서는 뇌사자를 생명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을 이용해 배아세포 때 뇌가 생성되지 않게 해 뇌 없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몇년내에는 실현불가능하겠지만 배아세포 연구가 14일까지 허용된 것을 보면 불가능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명공학은 엄청난 자본의 투입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자본에 의해 연구된 만큼 생명공학으로 인한 이득은 부유한 계층에만 한정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자본은 생명공학을 이용해 태아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설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아이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제안할 것이다.(예를 들어 부모가 신장이 나쁘다면 아이의 신장을 복제된 생명체의 신장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가정을 해 본 것이지만, 자본에 의해 연구되는 생명공학은 결국 자본의 입맛에 따라 연구를 할 것이고, 그 자본에 의해 사용처가 결정될 것이다.


셋째, 유전자정보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세계적으로 게놈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다. 유전자지도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유전자와 관련된 입지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각 나라마다 경쟁이 치열하고, 게놈프로젝트는 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전자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생명이 시작될 때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곧 누구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게놈 프로젝트는 만인의 소유인 유전자 정보를 어느 누군가가 독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정보에 대한 주인은 자본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세가지 비판을 읽으면서 생명공학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상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명공학이 보여주는 장밋빛은 대기업에서 벌이는 마케팅과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담보로 한 장사라.... 생명공학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후손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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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선택 - 생명공학의 위험과 비윤리성
박병상 지음 / 녹색평론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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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본적으로 녹색평론에서 나온 책들은 생명존중사상이 투철하다. 그 사상이 필요하다고는 인정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이 도시적 삶에 익숙해져 있어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계기는 '황우석'교수 사건 때문이다.

뭐랄까? 황우석교수 사건 황색저널리즘에 빠져들면서 매일 보여지는 기사는 여성지(여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지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빗대어서)에 나오는 기사 제목만큼이나 선정적이다. 이건 아닌데 말이다. 이 기회를 계기로 생명공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고,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건 영 아닌 듯 싶다. 

'파우스트의 선택'은 생태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병상이라는 분이 쓴 생명공학에 대한 글이다. 황금빛 미래가 그려지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책임질 대표적인 학문인 생명공학. 그 생명공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드문 책이다. 저자는 과학적인 업적뒤에 버려진 실패의 가능성과 실패물들, 성과라는 과학자의 욕심속에 무시되는 생명윤리, 식량증산에 대한 오해, 생명공학이 갖는 남성주의 과학문화와 함께 자본에 결속된 생명공학의 폐해에 대해 종합적으로 짚어낸다. 

도대체 태아는 언제부터 사람일까? 그 경위야 어찌되었건 지금 현재는 14일 이전의 배아는 생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곧 14일 이전의 배아는 실험대상이 될 수 있다. 생명공학이 갖고 있는 바로 근본적인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과연 언제부터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과학자는 윤리학자들과 교묘한 타협을 한다. 그래서 현재의 14일이 기준이 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과학적 성과가 장밋빛으로 보기 시작하면 완전한 성체의 모습을 갖기 전까지로 후퇴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14일 이전에 실험된 사용된 배아들은 어떨까? 14일 이전의 배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에 실패해도 상관없을까? 9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실험에 쓰이던 14일 이전의 배아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있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복제양 돌리가 나타났고, 우리나라에서도 복제소와 더불어 복제개 스너피까지 있다. 우리는 그 성공한 복제물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복제물을 위해 실패한 개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나 실험이 잘못되어 돌연변이가 생길 가능성은 없을까?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슈퍼호박, 슈퍼돼지들과 관련된 기사들을 읽었다. 어렸던 나에게 그런 거대한 식물, 동물이 나오면 굶주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은 어떤가? 여전히 제3세계의 아이들은 굶어죽고 있다. 식량생산은 거의 혁명적인 수준으로 증가했는데 왜 굶주리는 사람은 줄지 않는 것일까? 결론은 단순하다. 생명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하는 연구비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에서 나온다. 간혹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은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자본을 증식할 수단으로 볼 뿐. 식량혁명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자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3세계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 굶주려 죽는 사람을 모두 배불리게 먹일 수 있는 곡물들이 사료로 변환되는 현실.. 생명공학은 장밋빛이 아니라 자본의 또 다른 얼굴뿐이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을 때 누구보다도 감격했던 것은 난치병 환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치의 병을 고쳐줄 그런 세상을 뒤흔들만한 사건. 하지만 생명공학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학의 발전은 인류의 건강에 이바지했던 시대를 넘어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의학의 발전이 인류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지 않는다.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수익이 나는 곳에만 의학의 혜택이 돌아간다. 그런 상황은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불과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는 제약회사가 의료보험수가 인상을 요구하면 신장병환자들에게 필수적인 혈액투석제(?)의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과학적 지식을 요하는 생명공학의 경우, 어려운 말들을 쓰며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내지만, 사실 천박한 자본주의와 같다. 경제논리속에 인권이나 윤리가 배제되는 것처럼, 생명공학의 논리속에 생명에 대한 인식과 생명윤리가 쓰레기취급 받고 있다. 경제논리속에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생명공학도 돈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된다. '파우스트의 선택'은 생명공학이 멤피스트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생명윤리, 생태환경에서 점점 멀어지는 생명공학은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기 보다는 사람다운 삶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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