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5
박병상 지음 / 책세상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환경운동가인 박병상의 책을 두권째 읽었다. 첫번째 책은 파우스트의 선택, 그리고 이번 책은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이다.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함의하는 바에 고민하게 되었다. 생명공학은 자신의 영혼을 메피스트에게 팔아버리는 것과 같이 위험할 수도 있고, 생명공학이 이야기하는 처럼 장밋빛 내일이 아니라 미래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하게 내비친다.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은 크게 세가지에 주목한다. 생명공학이 갖는 불평등, 생명복제로 인한 불평등, 유전자정보에 의한 불평등이다. 어린 시절 생명공학(유전공학)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축복이었다. 영양가 높은 동식물들이 나오고, 지금의 몇배가 되는 식량보급이 가능해지는 생명공학(유전공학). 생명공학(유전공학)은 모든 인류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식사에서 해방시켜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 생명공학은 그런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불과 10여년전에 이야기하던 일이 현실화 되었다. 동일한 면적에서 몇배를 생산할 수 있는 농작물이 나왔다. 그리고 프리미엄 우유, 저지방 우유들 모두 생명공학의 작품이다. 영양가 높은 우유가 생산되고 있다. 그런 식량혁명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류가 굶어죽고 있다. 이런데도 생명공학이 미래를 밝게 해준다고 생각하는가?


(잠시 사족을 붙이자면 인간생명의 태아, 배아(embryo)의 개념이 덧붙여지면서 10여년전 유전공학이라 불리던 학문이 생명공학으로 확장되었다. )


생명공학은 어떻게 사회를 불평등하게 하는가? 유전자조작으로 산출량이 많아지거나 특성환경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작물들은 사실 대규모 농업자본에 의해서 개발된다. 좋은 수확과 수입을 벌어다 주는 작물을 재배하게 되면서 농업이 특정 종자에 의존하게 된다. 고유의 작물들은 사라지게 되고 대규모 농업회사에서 제공하는 작물만이 재배되는 환경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개별 농가들이 무너지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IMF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종묘회사였던 홍농종묘가 다국적기업에 넘어가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종묘산업은 이미 다국적기업에 넘어간지 오래이다. FTA가 아니더라도 생명공학으로 인해 전통농가는 점점 발을 딛기 힘든 환경으로 옮겨갈 것이다. 또한 유전자조작된 젖소에 의해서 생산되는 우유는 일반 젖소에 비해 높은 단백질과 낮은 지방을 포함한다. 소규모로 산출되는 우유는 유전자조작된 젖소에 비해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유회사에 우유를 납품하기가 힘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소뮤고 낙농업은 대기업에 복속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심각한 윤리, 환경적 문제도 포함된다. 유전자조작된 소는 단순히 우유를 뽑아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3년 정도의 수명밖에 되지 않는다. 젖소들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양질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유전자조작된 곡물들을 섭취하고, 심지어는 단백질을 높이기 위해 육류사료를 섭취하기도 한다. 젖소가 육류를 섭취하는 것은 사실 인류에 해악을 끼칠수도 있다. (광우병의 예에서 보여지듯이)


둘째, 생명복제로 인한 불평들이다. 생명복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동물복제에는 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배아복제는 수정후 14일 이내에 한해서만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이말은 수정후 14일까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수정될 때 부터 생명으로 보는 인식에서 수정후 14일 이후로 생명을 인식하는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말은 생명공학연구자들의 장밋빛 환상이 생명으로 인식하는 시점을 늦출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에 따라서는 뇌사자를 생명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을 이용해 배아세포 때 뇌가 생성되지 않게 해 뇌 없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몇년내에는 실현불가능하겠지만 배아세포 연구가 14일까지 허용된 것을 보면 불가능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명공학은 엄청난 자본의 투입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자본에 의해 연구된 만큼 생명공학으로 인한 이득은 부유한 계층에만 한정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자본은 생명공학을 이용해 태아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설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아이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제안할 것이다.(예를 들어 부모가 신장이 나쁘다면 아이의 신장을 복제된 생명체의 신장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가정을 해 본 것이지만, 자본에 의해 연구되는 생명공학은 결국 자본의 입맛에 따라 연구를 할 것이고, 그 자본에 의해 사용처가 결정될 것이다.


셋째, 유전자정보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세계적으로 게놈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다. 유전자지도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유전자와 관련된 입지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각 나라마다 경쟁이 치열하고, 게놈프로젝트는 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전자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생명이 시작될 때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곧 누구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게놈 프로젝트는 만인의 소유인 유전자 정보를 어느 누군가가 독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정보에 대한 주인은 자본이라는 점이다.

 

저자의 세가지 비판을 읽으면서 생명공학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상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명공학이 보여주는 장밋빛은 대기업에서 벌이는 마케팅과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담보로 한 장사라.... 생명공학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후손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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