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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 전6권 세트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왜 이 작품이 판타지소설의 효시가 되는지, 읽고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웅장한 전투 장면묘사, 각 종족의 언어까지 만들어낼 정도의 치밀한 설정,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종족들의 관계 등등, 실로 이 작품의 가치는 ‘처음’이라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 이를테면 작가의 상상력이나 세계관이라고 할 만한 부분에 있었다.
하지만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주인공들에게 부여된 임무의 고차원성이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탁월함이다. 절대적인 힘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파괴하려는 의지와 그 힘을 이용하여 눈앞의 난관을 회피하려는 욕망의 대립, 이것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갈등요소이며, 이 작품을 단순한 英雄騎士談에 그치지 않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파악하자면, 절대반지를 파괴하려는 행위는 고결함에 대한 욕망이고, 그것을 활용하여 난세를 평정하려는 행위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권력에 대한 욕망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은 자칫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다른 이들의 세상과 가치관을 무시하기 쉬운, 매우 위험한 욕망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작품은 이타성(利他)과 이기성(利己)의 대립을 근간에 깔고 있다. 거기에 이기적인 욕망에 대한 경고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작품의 주인공이 현명한 마법사인 간달프나 용맹한 요정인 레골라스가 아니라, 현명하지도 못하고 전투능력도 뛰어나지 못한 호빗족의 네 인물 ― 샘, 메리, 프로도, 피핀이라는 점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은 지극히 약한 자들로 쉽게 이기성, 고난을 회피하려는 욕망에 빠져버릴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이타성을 잃지 않고서 눈앞의 고난과 대적한다. 이들의 행동이야 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직접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잠깐, 나는 샘, 메리, 프로도, 피핀이라고 했다. 맞다. 이것이야 말로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서이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프로도가 가장 중요한 인물로 보이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비록 반지를 차지하려는 유혹에 흔들리고,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보다 강한 인물로 단련되지만, 그는 별로 성장하지 않았다. 그의 심성은 태초부터 고결했고, 마지막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았다. 그와 함께 했던 다른 친구들의 성장과 비교해본다면, 오히려 그는 종국에 허무적인 방랑벽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프로도야 말로 네 명의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자라지 못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샘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이다. 그는 아주 비천하고 능글맞은 하인에서, 주인을 보호하는 조력자로, 나아가 주인의 임무를 대신하는 대리자로, 끝내는 자신의 고향을 되살려내는 당당한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절대반지의 유혹을 받고, 각종 고난에 직면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이겨낸다(단순히 이겨냈다면 대단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주인까지 함께 이겨내도록 이끈다).
샘이라는 인물이야 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메리의 성장 역시 눈부시다. 그의 성장은 다소 단순한 단계를 밟고 있기 때문에 샘보다 앞서지 못했으나, 그 성장의 진실성으로 파악하자면, 다른 어떤 인물을 능가한다.
그는 겁쟁이이면서 무능력한 인물이다. 그런데 탁월한 점은 자신이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로부터 도망치려하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끝내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고난에 당당하게 맞선다. 비록 그에게 있어서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에 불과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가 칼을 들어 힘껏 내리찍은 것은 적장(敵將)이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이었기 때문이다.
성장, 이처럼 성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작품을 위대하게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