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먼저 고백하자. 나는 연애에 대해서는 젬병이고, 연애소설에 대해서는 더더욱 젬병이다.
솔직히 나는 '연애'를 전면에 내세우는 소설, 그리고 그런 소설이 주는 낯간지러운 느낌을 잘 견디지 못한다. 남자 작가와 여자 작가가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썼다는, 매혹적인 기획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을 이제야 읽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러한 기획이야 말로 참신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법한 시도이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이런 시도를 통해서 독자들이 문학에 조금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작품의 내용이었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물 때문이다. 물론 사물이란, 그중에서도 인물이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상이한 평가가 가능한 것이지만, 소설 속의 인물성격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심각한 심리적 변화를 거치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상처에 의해서 굴절되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변화는 일관된 흐름을 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래의 인용을 보자.

쥰세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웃는다. 떠든다. 걷는다. 생각한다. 먹는다. 그린다. 찾는다. 쳐다본다. 달린다. 노래한다. 그린다. 배운다. / 쥰세이는 동사의 보고였다. 만진다. 사랑한다. 가르친다. 외출한다. 본다. 사랑한다. 느낀다. 슬퍼한다. 사랑한다. 화를 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욱 사랑한다. 운다. 상처 입는다. 상처 입힌다. - 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 사이:Rosso>, pp.108-109.

위의 인용에서 여자주인공 아오이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남자를 활동적인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남자의 시각으로 되어 있는 [Blu]편에 등장하는 쥰세이는 그리 활동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는 복원사이고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를 회복시키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오이의 회상처럼 그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감각은 과거를 향해서만 열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인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경, 혹은 일본에 대한 혐오감/두려움은 아오이보다 쥰세이의 감정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과거를 지향하는 인물인 그가, 미래를 향해서 쉼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러한 인물 성격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무엇보다 두 작가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일런지도 모른다. 두 작가는 각각 아오이와 쥰세이라는 인물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랑했던 또 다른 쥰세이와 아오이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출판기획의 문제점이 나타난다.
두 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이렇게 나누어 출판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권으로 붙어있어야 했을 책이다. 아오이의 이야기와 쥰세이의 이야기로 나누어질 것이 아니라,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가 되었어야 했을,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만일 지금의 형태처럼, 두 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려면, 이 두 사람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설령 만났다고 해도 스쳐지나갔어야 했다. 스쳐지나갔더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어야 했다. 그들의 시각은 과거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움직였어야 했다.

이번 독서를 통해서 다시 한번 여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생활이 없는 사랑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히, 생활이라는 것은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만큼 우리의 인생을 압도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사랑에만 빠져있는 이들의 애정행각은 차라리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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