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류 크리스천 : 레드 편 - 딱딱한 형식의 껍질 속에 불안한 속살을 감춘 갑각류 크리스천
옥성호 지음 / 테리토스(Teritos)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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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직설적인 문구가 처음엔 헛웃음 치게 만들고, 웃음 후엔 씁쓸하게 만든다.

- 성경 책을 손에 들고 다니지만, 중요한 건 말씀의 '의미'가 아니라 말씀의 '효과'다.

- 황당무계한 영적 무협지와 같은 간증집

- 목사가 교황이 되어 버린 일부 대형교회

 

이 책은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독교인과 목사님들을 갑각류 크리스천이라 정의한다. 그 근본직 원인으로 교회 중심에 신학이 없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역사나 문화적으로 그다지 깊이가 깊지 않은 우리네 기독교 문화에서 성장을 지향점으로 삼는, 그래서 겉모습과 양적 성장에만 치우친 교회를 경계한다. 그 원인으로 신학보다 목회학 학위로 배출되는 목회자들, 그 뒤엔 오직 축복만을 바라는 신자들이 있다. 

 

갑각류 크리스천은 믿음도 진실해 보이고, 신앙심도 깊어 보이지만, 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신자들을 말한다. 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너무도 쉽게 사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피부에 와 닿는다.

- 좋은 건 모두 갖다 껴다 맞추기 - 유명한 사람이 잘 된 것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링컨이 신자이다. 출세한 사람, 유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기 때문이고,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 나쁜 건 이단으로 몰기

- 불리한 건 덮기 - 무조건 아멘으로 넘어가기, 교회의 잘못한 것을 파고 드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위.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님. 혹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

 

특히 페이지 196~200에 나온 소설의 일부분으로 설교의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예화는 씁쓸하다. 실제로 그런 설교를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들의 극우/보수 논리를 가진 말씀도 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설교 도중에 소리지르면서 뛰어 나가고 싶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지, 목사님의 스스로 생각인지 의심이 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일개 신자로서 그 내용에 대해 물어 볼 수도 없고. 이 책에선 언급이 안되었지만, 록펠러가 십일조를 열심히 해서 거부가 되었다는, 교회가 돈 좋아한다는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헌금 이외에 가려진 록펠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선 설교 말씀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특히 내 개인적으로 갑각류 알러지가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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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글쓰기의 기본 - 리버스 북 시리즈 0
윌리엄 스트렁크 지음, 조서연.김지양 옮김, 곽중철 감수 / 인간희극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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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이야기.

그러나 막상 작문을 하거나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틀리기 쉬운 영어 문법을 담고 있다.

 

한쪽 면에서 한글로 된 책이고, 다른쪽 면에서 보면 같은 내용으로 영문으로 된 책이다. 다른 영어에 관한 책들보다 강점으로 꼽는 것이 영문으로 된 부분인데, 쉬운 영어로 해설을 해 놨으니 좋은 표현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영어를 너무 어렵게 가르치고 어렵게 배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몇몇(천재거나, 노력이 가상하거나, 언어적 재능이 있음이 틀림없다)이 아니라면, 어려운 영문은 어려워서 못 읽고, 기초적인 것도 간과하고 넘어가, 갑자기 들이닥친 영어 문장을 못 읽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문화'의 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영어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학문을 닦거나, 암기력을 연습하거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한 종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어는 다른 언어권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영어 교육법운 자동차 운전과 컴퓨터와 동일한 눈으로 봐야 한다. 꼭 자동차의 엔진을 설계 한다 던지,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짤 줄 알아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쉽게 이동을 하기 위해 운전을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계로 접근하는 것만으로 컴퓨터를 배우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영어도 마찬가지 이다. 언어는 다른 나라의 문화, 언론을 이해하고 즐기기 위한 도구 일 뿐이지, 세익스피어를 논할 필요는 없다. 물론 학문으로 하는 전문가들도 있겠지(자동차와 컴퓨터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 때는 특수한 상황으로 봐야 하고, 상황에 따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지, 우리 모두가 전문가가 될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동화책을 읽고 신문 기사를 읽고, 영화를 보는데 간단한 문법만 알면 된다. 심지어 논문을 읽을 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영문법을 쓴다. 그 문장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어려운 것이지, 문법이 어려워선 안 된다. 심지어 비비 꼬아 놓은 문장은 내용 전체를 잘 못 해석할 오해의 소지를 열어 둠으로써 나쁜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논문은 전문 논문은 지식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지, 내가 이만큼 고상한 단어를 활용할 줄 알고 암호문처럼 비비 꼬을 줄 안다를 알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문기사나 동화책도 작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내가 이만큼아니 암호를 풀어야 겠소 함정파는 도구가 아니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도 동일하다. 나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몇 가지 간단한 규정(=문법)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그 규정은 사실 몇 가지 안되어 우리가 고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영문법 책처럼 그리 두껍지 않다(중학교때 문법이면 충분할 것 같다). 특히 우리는 외국인임을 상대방도 뻔히 알기 때문에 문법이 어느 정도 틀려도 상대방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해해 줄 것이다. 우리도 한국말 서툰 외국인이 한국말로 이야기를 걸어 오면, 문법이나 단어 선택이 좀 이상해도 잘 들어 주지 않는가.

 

이 책을 또 다른 장점은 쉽게 쓰라는 이야기와 간결하게 표현하라는 이야기다. <- 안타깝게도(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한국의 학교와 학원 영어교육에서 수년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배운 적이 없다. Shall을 써야 하는지 Will을 써야 하는지, to 부정사를 써야 하는지 ~ing를 써야 하는지 배운 적은 많았다. 그리고 맞고 틀리는 기준에 따라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언어 학습을 학문의 영역으로 넘기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는 영문학과 학생 대상으로 충분한 교육이다.


 

실제 처음 미쿡에 갔을 때 간단한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중+고등+대학교 영어 과목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았고, 많은 시간을 영어 공부에 투자했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tutor(그 학교에선 외국인 학생들에게 원어민 개인선생을 붙였다)가 저녁 먹었냐? 물었을 때, 나는 머릿 속으로 supper를 쓸까 dinner를 쓸까, 다른 저녁식사란 말이 뭐지? Eat은 알겠는데 과거형 먹었다가 뭐지? 복잡한 머릿 속을 정리하느라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고, 간신히 머리만 끄덕였다. Oh, you ate. 툭 치며 지나갔다.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는데, 그 상황에서 ‘yes’ 란 단 한마디를 못하다니... 글 쓰는 것도 난감한 것이 간단한 에세이를 한편 써오라는데 갑자기 쓸 내용도 없고, 사전의 도움을 받아도 어디서 어떻게 찾아 시작할지. 결국 억지로 써간 반 페이지짜리 영문 글 한 조각에, 나중에 빨간 색연필로 피투성이 되어 돌아온 내 에세이. 말할 땐 심지어 be 동사도 틀리기 시작하는데, 말 그래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기초적인 것도 전달 못하는 상황에서 불완전타동사와 목적격관계대명사를 이해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내가 언어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나 만큼 영어 못하는 애도 첨 봤으니까) 영어를 의사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학문의 한가지로 공부하고 배워 왔던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 속의 영어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외국인과 자동적으로 의사소통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 말 것. 미쿡 가서 햄버거를 먹는 다고 해서 영어가 술술 나오리라 기대하지 말 것. 한국에서 제대로된 공부 시간을 갖지 목한다면, 미쿡 가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나와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도록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반드시 글쓰기 문법의 목적이 아니라, 독해의 목적, 소통의 목적으로도 이 책은 훌륭하다. 영어 공부를 학문의 목적이 아닌 소통의 목적으로 시작하는데도 이 책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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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순 - 2014년 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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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이라는 영예는 작가에게 유명도와 좋은 타이틀을 가져다 주겠지만 <몬순>은 약간 실망이었다. 아마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차라리 수상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 <타인의 삶>이 많은 것을 깨닫고, 주변을 다시 되돌아 보게 만드는 훨씬 좋은 단편 이었다. 아마 어쩌면 <이상문학상>은 노벨문학상 처럼,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는 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 만의 독특한 작품세계, 항상 불안으로 몰아가는 주변 상황과, 안 좋은 기억을 기여코 끄집어 내어 좋은 기분도 불쾌하게 만드는 도구, 중간 중간에 복선을 함정처럼 움푹 파놓고 나중에 보면 왜 거기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구성,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은 주목을 받을 만 하다. 주변 환경에 대한 설명은 단문으로 짤막하게 서술되고, 감정을 설명할 땐 무지 길어진다. 훨씬 잘 맞는 거 같다. 단문은 객관적으로 느껴지고, 속도감이 느껴진다. 문장의 길이가 길어지면 물리적인 숫자만큼이나 비슷하게 생각의 길이가 길어지고 넓이가 깊어진다.

 

개인적으로 다른 아홉 가지 우수상 수상작 중 손홍규씨의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와 조해진씨의 <빛의 호위>, 윤이형씨의 <쿤의 여행>도 대상만큼이나 좋았다. 특히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는 소재가 좋았다. 심사위원들에겐 평면적이라는 평이었지만, 다른 이야기 거리를 아주 많이 만들 수 있어 다른 작품에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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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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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스탈린시대 공산화되는 과정을 그린 대표적인 풍자 문학이다. 서수남 하청일 아저씨의 노래 <동물농장>, 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끼오~ 하는 노래와는 별 상관 없어 보인다.

 

책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있지만 직접 읽어 본건 처음이었다. 책은 특성상 문학성 보단 당시 시대의 풍자와 상징성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상징성을 지닌 등장 인물은 읽으면서 감이 오지만, 정리는 위키백과가 제일 잘 되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F%99%EB%AC%BC%EB%86%8D%EC%9E%A5

 

풍자 문학은 문학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상징성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문학은 허구를 바탕으로 하기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처벌을 받을 만한 내용을,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특성상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을 제공함으로써, 만일 문제가 생겼을 경우 둘러 댈 수 있다는 핑게로,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나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것으로 자위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풍자 문학에게 면죄부를 쥐어 지는 것은 아니다. 금서로 묶인다던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은 다분하다.

 

중요하지만 모르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이 책<동물농장>은 스탈린 주의에 대한 풍자이지, 공산주의에 대한 풍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만 있으면 평안한 이데롤로기 안에서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 많은 부분 실제로 작품을 접한다던가, 알고 보면 겉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데, 마치 예고편만 보고 영화 전체를 판단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이 책의 작가 조지 오웰은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자로서, 볼세비키 혁명이후 스탈린에 대한 비판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러시아 사회주의는 독재와 전체주의로 타락했고, 그 타락을 막지 못한 체제로 부터의 사회주의는 다시는 회생할 수 없다'가 그의 본래 주장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제체로 넘어 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한다던가, 제정시대의 회복을 원한다던가, 서유렵 방식의 시민혁명을 지지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건설할 기회를 잃은 것을 대해 스탈린을 비난하기 위해, 풍자한 책이 바로 이 <동물농장>인 것이다. 차라리 트로츠키와 멘세비키 쪽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소설인 것이다. 그 근거로 책 마지막에 나폴레옹과 돼지들이 술과 카드놀이 하며 인간들과 어울리는 장면, <누가 누구이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 할 수 없었다> 라는 장면에서 사회주의의 소멸상태를 보여 준다. 다른 한가지는, 많은 동물들이 나폴레옹에게 학살 당한 후에, 남은 동물들이 농장 뒤켠에 올라가 <우리가 이럴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데>라며, 슬픔과 회의에 잠기는 대목에서 다른 목적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목적을 성취해 내지 못했다는 것을 표출하는 것이다. 작가는 1940년대에 이미 소비에트 체제의 소멸을 본 것이다.

 

갑자기 러시아 혁명이 궁금해 찾아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누구이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 할 수 없었다 - 나폴레옹과 돼지들이 술과 카드놀이 하며 인간들과 어울리는 장면

우리가 이럴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데 - 많은 동물들이 나폴레옹에게 학살 당한 후에, 남은 동물들이 농장 뒤켠에 올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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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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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이지만 '독립적'인 지식인 조국 교수의 책이다.

책의 성격이 모호하다. 책 표지의 사진 만큼 모호하다. 자서전 비슷하지만 아니고,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가 기본 맥락을 이루니 아주 아니라곤 할 수 없을 것 같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책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회주의, 사회 정의 및 법에 대한 관점도 설명되어 있다.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의 문장도 인용되고 있다. 붉은색 혹은 푸른색 필터를 눈에 대고, 이념의 잣대로 종북으로 모는 시대에, 사회주의에 대한 설명과 사노맹, 국가보안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 책이 나오고, 팔리고, 심지어 잘 팔리고, 필자가 더이상 잡혀 들어가지 않아도 된 것 자체가 사회의 기초적이지만, 성숙도의 한 예로 볼 수 있겠다. 즉 저자가 '조성민'이 안되도 되는 시대이다. 그런데 또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신봉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대학 법학과 나왔지, 미쿡에 건너가 일류 대학에서 석박사 했지, 지금 서울대 법대 교수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까. 그런데 또 7평의 연구실에서 하루종일, 일년내내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학자의 삶은 그리 닮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조국 교수의 글을 읽어 가면서 강준만, 진중권, 장하준 같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생각을 했다. 변희재, 하태경 같은 변질된 보수꼴통들의 생각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밖에서 보는 이미지처럼 조국 교수는 학자로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더 좋은 것을 추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그것도 성실히.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 노력은 그만두지 않는다. 사회정의를 위해 살고 싶은 생각, 세상을 바꾸고 싶다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법의 정신 '힘이 강하든 약하든, 돈이 많든 적든 간에 법 앞에서 평등'을 되새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창조경제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었다.(p172~185) 몇일전 창조경제에 대해서 전화를 받고 설문에 응한 적이 있었다. 사실 창조경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이 책에서 그 아이디어를 여럿 얻었다. 창조 경제는 바로 헌번 119조 2항에서 말하는 경제 민주화에서 찾으면 될 것 같다. 대기업-중소기업간의 갑을 관계 해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 많이 내는 세제개혁, 최저임금 두배 인상, 어린이집 대폭 확대, 선행학습에 세금 매기기, 노조의 경영권 참여 등. 역시 '진보'와 '지식인'에겐 배울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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