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니, 여기저기 만날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어제는 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봤다. '우리 ,대학다닐 때가 좋았지.. 이렇게 시간이 없진 않았는데..!'를 반복하며 우리는 이렇게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에 약간 우울해 하면서 극장안을 누볐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간다.
이 영화는 특히나 어떤 보잘 것없는 무능한. 그러나 음악을 꿈꾸는 한 남자. 무능력한 남자. 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이렇다할 직업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았으며, 돈도 없다. 그렇다고 연주를 뛰어나게 잘 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줄 만한 집안 형편도 안 된다.
그렇지만, 그는 꿈이 있다.
아니, 꿈만 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그는 그 여자를 잡을 용기도 없다. 그 여자는 떠나려 한다.
아니, 떠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울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도 우울한 현실 속에 코메디같은 일들이 또,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의 삶에도 쉴 새 없이 여기 저기에서 여러가지 폭탄들이 터져 웃음을 자아낸다.
문을 열고, TV를 크게 틀어놓고, 담배를 피우며 똥 누는 아들을 향해 어울리지 않는 배낭을 메고 들어와 잔소리를 끌어붓는 어머니, 결혼한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애꿎은 곳에 돌을 날리는 장면, 여자친구에게 폼잡으며 색소폰을 불어 주는 아이의 뒷 모습, 자신은 그렇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해대는 그의 모습. 다 큰 아들을 아직도 10살짜리 꼬마 대하듯 하는 어머니.
그러나 당연히 감동적인 장면도 있었으니,
관악부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탄광앞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할 때는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순간 울컥하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이 영화는 어른들의 성장 영화라고나 할까..
큰 꿈을 갖고 있었지만, 이룰 힘도, 뭔가를 시작할 만한 열정도 없는 어른 아이가, 깜깜한 현실 속에서 뭔가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는 영화이다.
극 중 '현우(최민식)'는 시골에 내려가서 엉망진창인 관악부를 연습시키지만, 그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그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영화 속에서 내내 말하고 있듯이, 결국 관악기 경연대회의 결과도, 그가 앞으로 뭘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결론도 영화는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지 않다.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한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강원도 산골 마을 아이들의 가슴에 '꿈'이 새겨졌다는 것과, 꿈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꿈을, 이제는 확실히 보이지 않아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서, 꽃 피는 봄이 오듯,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찾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꿈이 아들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픈 연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감과 앞으로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었다.
<홀랜드 오퍼스>를 연상시키는 배경과 설정이었지만, 그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또 다른, 일반적인 '교훈'을 넘어선 '삶'에 관한 이야기라서 공감이 갔다. 시골 약국의 약사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도시 여자보다도 훨씬 세련되고 예쁘고 하얀 약사와, 도저히 시골 카센타의 정비공으로는 보이지 않는 강한 인상의 정비공은 캐스팅이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반면에 최민식(말할 것도 없고...)과 그의 여자친구로 나온 여자는 좀 낯선 얼굴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감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현우가 꿈을 찾아가는 강원도 산골 마을 '도계'는 현실의 장소가 아니라 그가 꿈을 찾고, '삶'을 알아가는 가상의 공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렇다면 캐스팅도 괜찮다! 꿈속의 환상적인 공간이라면야 무언들 불가능할까!)
나에게도, '삶'을 알아가는 공간이 있다. ^^
지금,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