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그는 '배우'다.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연예인은 많지만 진정한 의미의 배우를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최민식이라는 이름 석 자야말로 '배우'라는 보통명사와 가장 잘 등치되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보는 이를 지독하게 사로잡고 열광케 하며 길고 깊은 잔영을 남긴다. 

오래 전의 최민식을 기억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꾸숑'을 떠올린다. 1990년 출연한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 이름의 터프가이로 출연,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식의 연기생활은 그보다 훨씬 전 연극무대를 통해 시작됐다. 1982년 극단 '뿌리'의 [우리 읍내]로 연기자로 데뷔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4학년 때인 88년에는 선배의 추천으로 박종원 감독의 영화 [구로아리랑]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로 두 번이나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고, 기어이 [올드보이]가 올 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배우로 우뚝 서 있지만 최민식의 이런 오늘은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그에게도 결코 짧지 않은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야망의 세월] 이후 그의 존재는 대중의 뇌리에서 쉽게 잊혀졌다. [정든 님] [일월] 등에 출연했지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추락을 거듭했다.

그가 새로운 면모로 대중 앞에 선 것은 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다. 우직한 시골청년 '춘섭'으로 출연한 그는 눈과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뺀 채 자연스럽고 곰살맞은 연기를 펼쳐 주목을 끌었다. 그는 이때 알았을 것이다. 대중의 사랑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를. 배우가 자신을 지키는 일은 오직 탄탄한 연기력뿐이라는 사실을. 그의 이런 생각은 인터뷰 와중에도 자주 드러났다. 그는 "인기는 무슨 얼어 죽을 인기예요? 인기는 덧없어요"라고 되뇌었다.

"배우는 대중과 호흡하는 직업이지만 인기 유지를 위해 대중에 아부할 필요는 없어요. 전 작품으로 얘기할 뿐이에요. 어떤 작품에서 어떤 퀄리티의 연기를 펼쳤느냐가 배우의 생명력이거든요."

그는 말을 많이 한다. 스크린 안에서나 밖에서나 열정적이다. 어떤 질문이 던져지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이 최대한 정확히 인식하도록 열변을 토한다. 내용의 밀도도 높다. 특히 '배우'와 '연기'에 대한 철학은 견고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항아리 속에 채워진 물이 어느 순간 흐르고 넘치는 것마냥. 그는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하는 게 재미있냐구요? 취미로 하면 재미있겠죠. 그런데 전 이게 밥벌이거든요. 빵 굽는 아저씨도 철학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직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 사회의 고민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가 저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세익스피어가 '배우는 그 시대의 거울이다'라고 말했잖아요. 재미로 할 일은 아니에요.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배우는 그들 각각의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해가는 과정을 밟아야 해요. 때문에 죽을 때까지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지요."


[서울의 달]을 끝낸 후 주무대를 충무로로 옮긴 그는 스크린에서 시종 탄탄한 연기로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넘버3]에서 욕 잘하는 거친 검사로, [쉬리]에서 냉혹한 북한의 테러리스트로, [해피엔드]에서 아내 대신 딸을 돌보며 가사일을 하는 실직자로, [파이란]에서 오락실을 방황하는 3류 양아치 '이강재'로 분해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취화선]을 거쳐 출연한 [올드보이]는 최민식 연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을 15년 간이나 감금한 원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그의 구두를 핥으며 개짓는 소리를 하고, 스스로 혀를 깨물며 원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오열하는 '오대수'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충분히 전율케 했다. 

그런 그가 [올드보이] 직후 선택한 영화가 9월 23일 개봉하는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감독 류장하, 제작 씨즈엔터테인먼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서울생활에 지쳐 탄광촌 중학교에 내려가 관악부를 지도하는 트럼펫 연주자 '현우'로 분했다. 잔잔한 감동이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기분 좋은 영화이지만 '꼭 최민식이 아니어도' 될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그는 "쉬고 싶어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종전 출연작들이 하나같이 극한 상황까지 가는 캐릭터였잖아요. 그렇게 서슬퍼런 칼날같이 예민해지고 거칠어지고, 자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었어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연애의 상처를 가장 빨리 치유하는 방법은 또다른 남자 또는 여자와 연애하는 것이라고요. 마찬가지예요. 전 저를 지독히 달달 볶아댄 [올드보이]의 잔영을 없애기 위해 [꽃피는 봄이 오면]을 골랐어요. 특별한 메시지도 없고 제목부터 촌스러운 작품이지만 왠지 친구의 넋두리 같고, 빛바랜 앨범 같고, 꼭 내 얘기 같은 영화. 그래서 오히려 편안하고 진정성이 느껴지잖아요. 실제로 전 제 모든 각을 없애고 물 흐르듯하는 이 영화에 출연해서 푹 잘 쉬었어요."

배우마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최민식의 경우에는 철저한 시나리오 분석이 우선이라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은 후 감독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기본설계도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질퍽거릴 순 없다"고 했다. 
그의 앞에는 연일 수많은 시나리오가 쌓인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한 번에 읽히고,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시나리오다. 그는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작품도 감독이나 출연배우, 개런티 그런 걸로 '잔대가리' 굴리지 않고 처음에 시나리오를 딱 봤을 때 매혹돼야 내 것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것 계산하지 않다보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놓친 게 [공동경비구역 JSA]와 [친구]다.

"[쉬리] 끝난 지 얼마 안 돼 또 인민군이 되는 게 싫어서 [공동경비구역 JSA]는 안 했고요, [친구]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대신 제가 출연한 게 [파이란]이었죠. 당시 [친구]가 8백만 명 들었다고 전국이 들썩일 때 [파이란]은 1주일만에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어요. 완전히 추풍낙엽이었죠. 하하하. 그래도 전 후회하지 않아요.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모임이 자발적으로 결성됐고, 재상영운동도 일어났잖아요. 요즘 1백만 명, 2백만 명 하면서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그러는데요, 사실 10만 명이라는 숫자도 엄청난 거예요. 우리 영화와 10만 명의 관객이 소통을 했으니 전 그게 소중하고 행복해요."

<중략>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팬클럽의 골수 회원들을 만나 술 한 잔을 걸치기로 했단다. 특이하게도 그의 팬 대다수는 다양한 직업의 30대 직장인들이다. 그런 그에게 "배우 혹은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계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그다웠다.

"전 항상 여름이에요. 아직 나이도 젊고 할 일도 많기 때문에 지금은 뒤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가늠해볼 여유가 없어요. 그저 뜨거운 가슴으로 하루하루 일에 몰두할 때죠."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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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민식 씨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좋아해요. 이거 가져갈께요.^^

Hanna 2004-11-2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최민식의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참 많이 와 닿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