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늘은 날씨도 춥고.. 게을러져서 연습도 하기 싫고...

괜히 집에 일찍 가야 할 것만 같다.. ㅡㅡ; 그냥 가서 일찍 자야겠다.

바이올린 연습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 손가락이 기형인가부다.

지판에 잡으면 음정도 이상하고.. 팔도 아프고..

손가락이 너무 짧아서 그런가.. 게다가 오늘은 턱도, 어깨뼈도, 목도.. (특히 왼쪽 목..) 아프다.

ㅡㅜ

뭐야..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떻게 하루종일 연습하지..

분명히 뭔가 자세가 잘못 된 것 같기는 한데.. 원인을 알길이 있나...

암튼.. 팔도 아프고..

피아노는 누르기만 하면 정확한 음정의 맑고 고운 소리가 쉽게 나는데.. 이놈에 바이올린은..

음정부터가 불안하니... 게다가 지판에서 요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팔을 꼬고, 손가락을 벌리고, 힘을 뺐다가, 줬다가.. 아주.. 매일 연습이 아니라 쇼하는 기분이다. ㅡㅡ;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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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밥헬퍼 > 불확정된 여행을 가는 신앙인이 준비하는 것

창12:1/벧전1;13-25 읽기-모리아를 향하여

1.사진작가 빌 콜만의 사진을 몇 점 보려고 합니다. 이 가을이 어떤 색으로 다가오는지 느껴보십시오.



여기는 아미쉬공동체라는 미국의 청교도 마을입니다. 옛날 그대로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진들을 가만히 보면 ‘길’과 여행이라는 주제가 담겨 있는 듯 합니다. 가을이 되면 하고 싶은 일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여행일 것입니다. 꼭 어디를 정하지는 않아도 발길 닿는대로 가고 싶은 그런 여행입니다. 하지만 이 여행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목적지와 준비가 없이 가는 길이 그리 간단하겠습니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야말로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하는 땅’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떻게 길을 떠나야 할지, 언제쯤 도착할지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한 채로 길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꼭 어떤 길을 보아야만 가겠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과 거리가 있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확정의 길을 걸어갔다는 데에 아브람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다만 이처럼 불확정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은 있습니다. 


2.

첫번째는 근신입니다. 근신은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음’을 굳게 하거나 흔들림이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신속함과 담대함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긴장상태를 항상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다름아닌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베푸심과 부르심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결국 모든 것이 가벼운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너무 무거운 상태로 있으면 안되는 것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불확정의 길을 가는 데에는 운동을 통해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몸이 무거운 사람들은 운동을 하십시오. 항상 몸을 가벼운 상태로 유지하십시오.  


두번째는 구별입니다. 구별은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을 닮지 않고,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가까이 하는 것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세상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닮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구별되어. 세상에 편만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별짓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는 일말입니다. 사회학에서는 ‘구별짓기’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유별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위축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모든 것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짓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유별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타인과 구별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별지으면서도 동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또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와같이 구별되나 동질감을 갖고 살아가는 삶의 단면이 바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친구의 존재는 자신과 구별되지만 동질감을 갖는 대상입니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좋은 친구 3명만 있으면 성공적인 삶이라고하는 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좋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좋은 친구란 자신을 늘 비춰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맨날 돈만 빌려가고 안갚거나 폐만끼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좋은 친구가 3명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그런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친구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다시 찾으십시오. 잊었다면 다시 친구를 사귀십시오. 아내와 남편이 좋은 친구로, 부모와 자식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좋은 예가 되는 것입니다.

  불확정한 길을 걸어가는 여행에서는 ‘친구’의 존재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걷는 여행은 홀로가면서 또 같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세 번째는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이란 무엇인가를 경외하는데서 오는 존경심입니다. 정말 존경할 수밖에 없는 존재는 우리의 내면을 꿰뚫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인 두려움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입견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행동과 내면의 동기를 통해 우리를 살펴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7절에서처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를 내면과 실제 삶으로 살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 삶이란 곧 ‘절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의바름’과 관계된 말입니다.  ‘절제’의 반대편에 있는 말은 ‘욕심’입니다. 성경에서 절제와 비슷한 말을 하나 고르라면 그것은 ‘자유함’입니다. 절제는 땅의 욕심을 버리고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금이나 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 곧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대신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한 방송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주제로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을 언급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이 있기 전에 방송국 앞에서 방송을 해서는 안된다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시위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막상 그 내용을 보고나니 이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오히려 그 내용을 통해 한국교회는 이 사회가 교회에 대하 갖고 있는 생각과 기대가 무엇인지를 더 잘 알 수 있으며 건강한 교회들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군중들이 시위하기 보다는 방송이 끝난 후 교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방송상의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개인적인 견해를 이 설교에 담아 말하는 것은  이 일을 보고 한국교회가 아직도 자기 절제의 훈련이 덜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절제는 사람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운 삶과 마음으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같이 권면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로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갑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더 많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 존재는 자신을 절제합니다. 자신을 절제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더욱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정’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정은 오히려 더 쉽게 끊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을 더욱 더 많이 내어주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훈련하고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불확정한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준비할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절제의 삶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신앙은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불확정한 길을 가는 삶입니다. 그러니 늘 자신을 가볍게 하여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차비를 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두고, 더욱 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절제하며 사랑하는 삶을 훈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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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2004-10-0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다. 특히 가볍게 살아야 한다는 점과,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신앙의 길은 확신과 자신감에 찬 화려하고 금빛 찬란한 길이 아니라 불확실한 길을 걸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담담히 일상적인 일을 감당하는 별다를 것 없는 가운데 특별한 지혜가 살아있는 길이다.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워낙에 이 때쯤 되면 감기를 심하게 한 번씩 앓긴 하는데...ㅡㅡ;

감기약을 두알 먹었더니 머리가 웅웅거리고 눈앞이 아른아른하다..

감기는 약을 먹고 병원을 가도 2주는 아픈 것 같다.

병원가서 약먹느라 귀찮고, 기다리느니 귀찮으니 그냥 버텼으면 좋겠지만..

정신적인 위안을 위해.. 좀 아프면 그냥 병원에 가서 아프다고 엄살을 좀 피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병원가서 약을 지어 먹고 주사를 맞으면 진짜 많이 아픈가부다 하는 생각이 드니까...

요새는 병원 갈 틈도 없이 바쁘긴 하지만...

아~~

아프면 뭐든지 나쁘다.

옛날에  princess maker 할 때도 딸 키울 때 애를 너무 혹사시키면 병나는데, 그러면 기껏 쌓아놨던 능력치가 다 죽죽죽 떨어져서 가슴이 아프며 짜증이 났었다.

그냥 오늘만 조금 컨디션 나쁘고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살짝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다.

자야겠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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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peter 2004-10-04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많이들 감기에 걸리더라구요. 우리 교회 애들도 감기걸려서 못오기도 하고, 일찍들 들어가더라구요. 갑자기 쌀쌀해졌어요. 조심~

Hanna 2004-10-04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unpeter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갑자기 추워졌지요? 전 오늘 급기야 히터를 틀고야 말았다는... 생각보다 몸은 괜찮아요~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
 

오늘 아침에 레슨을 받으러 갔다.

소란을 떨며 연습했던 Bach의 영국 모음곡 2번 프렐류드...

지난 번 평균율 레슨 받을 때 선생님한테 하도 구박을 받아서 이번에도 긴장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습을 하면서도 항상 긴가민가 하면서 연습을 한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불안해 하면서 연습을 하면 항상 선생님이 칭찬을 하시고..

그래, 이렇게 치는 거야.. 좋아좋아 하면서 연습을 하면.. 항상 혼난다는 것이다. ㅡㅜ

그리고 대체로 랄랄라 연습을 하다가.. 낭패를 당하곤 한다.. 흐음..

암튼 그래도 소리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흐흣..

다음주에는 알라망드 연습해 가야 하는데.. 어려울 것 같다.

... 산넘어 산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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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노래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된다. 나는 주로 음악에 이야기를 많이 접목시키면서 레슨을 하는데, 이것은 바로 음악은 하나의 언어와도 같기 때문이다. 하나의 알파벳이 모여서 단어를 이루고,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되며, 문장들이 모여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글을 이루듯이 음악에도 하나하나의 음들이 모여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를 만들고, 프레이즈들이 모여 하나의 단락을 만들고, 단락 단락이 모여 하나의 곡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적인 언어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역시 악보를 보는 기술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도 쭉 국어 공부를 하다보면, 가나다라를 몰라서 글을 못 읽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음악도 꾸준히 연주를 하고 공부하다 보면, 악보를 읽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나 좀더 어려운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그 단위가 길어지고 음악적인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단순한 계이름의 파악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에 숨겨져 있는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연주를 하려면 조성의 변화와 임시표들, 악보에 그려져 있는 다이나믹, 음의 도약 등 악보의 깊숙한 곳까지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음악은 참으로 재미있어서 단순히 음악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좋은 소리'에 대한 이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원고지에 예쁜 글씨를 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좋은 소리에 대한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는 일단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방법이고 가장 편하게 음악적인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일차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갓난아이여서 걷지 못했을 때 누가 걷는 것을 일부러 말해 주지 않아도, 엄마, 아빠가 걷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걷기 위해서 다양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음악도 좋은 소리에 대한 이미지를 '듣기'라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일찍 시작한 사람, 그리고 (클래식컬한)음악적인 배경에서 자란 사람은 그마만큼 메리트가 있다 하겠다.

영어를 배울 때도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발음과 영어적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어릴 때부터 듣고, 몸으로 익힐 때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좋은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게 되고, 음악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적인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좋은 귀를 가진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하다. 아니, 이건 당연한 거라고 하겠다. 선생님을 잘 못 만나거나, 독학(?!)으로 잘못 닦여진 음악은 나중에 고치기가 참으로 힘이 들며, 아예 공부하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음악에서 배울 것이 많고, 공부할 것이 많은 학생이지만, 음악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언어이며 언어 그 이상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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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헬퍼 2004-10-0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에게 적합하고 올바른 소통 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뭘까,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Hanna 2004-10-0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으시잖아요. ^^ 오늘은 주일이었는데.. 바쁘셨겠네요~ 그런데 저도 바빴어요. 전 주일학교두 하구.. 예배 반주도 해야 하거든요.. 일요일이 제일 바빠요. 그래서 좀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지요? (그런데 오늘도 투덜댔답니다! ㅡㅜ 제가 이래요..) 나중에 그런 것에 관한 글도 올려주세요~ ^^ 예배와 예배준비/사역과 믿음/.. 뭐 그런 문제 있잖아요~ .. (음... 이미 올리신 거 아냐..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