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린다' 

이렇게 이쁜 말을 놔두고 황사비도 모자라 방사능비라고 불러야 한다. 

 

비에 젖은 꽃잎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알았다.
꼭 이맘 때였을 거다. 봄볕에 깜스럼하게 얼굴 그을린 조고만 가시내였던 나,
냉이는 이미 꽃이 폈을 테고 뽀얗고 통통한 쑥을 캐러 다니고 있었을 거다.
지금은 어딘지 가늠할 수도 없는 어느 들녘에서 이슬처럼 나리는 
봄비를 만났다.  이슬비에 젖은 복사꽃의 분홍빛!  
영롱하고 맑은 곱디 고운 빗방울에 굴절된 꽃잎.
꽃잎의 보드레한 솜털과 수술과 암술, 코끝에 아리는 향긋함....
나는 이 세상에서 보호해줘야할 가장 여린 것이 꽃잎이란 것을
비로소 알았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듯
봄비가 내리고
꽃이 핀다. 
올해는 비에 무서운 것이 섞여도 여전히 들녘마다 가득 메우고 있겠지. 
복사꽃, 매화꽃, 살구꽃, 사과꽃,자두꽃들아!  

20110408ㅌ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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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1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1-04-1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사비도 방사능비도 봄 꽃의 향연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요.
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삶의 구차스러움도 애틋해지는 봄입니다.
우리가 뿌린 것을 우리가 거두는 것에도 호들갑떠는 것을 보면서
봄 꽃이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네요.
야들아, 정신 차리래이 하구요.^^


진주 2011-04-16 11:59   좋아요 0 | URL
정신...차려야 할 텐데
인간의 오만함과 무지함이 어디까지 뻗칠지....
잘 지내시는거죠? 혜덕화님^^
신학기 지나고 애들이 학교에 좀 적응되면 여기 들리시려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름방학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언제나 강건하시고 행복하시길.

2011-04-28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2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2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4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1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 의  힘 
 

...황인숙...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찌릿하다. 후련하다.

     기분좋은 말을 소리내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만져보자. 햝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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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1-04-12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툭 내뱉는 말의 과보를 받으면서도
과보 받는 줄 모르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말의 힘을 느낍니다.
말이 곧 기도이고 진언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데......

진주 2011-04-16 11:57   좋아요 0 | URL
말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죠.
우리가 상대방의 내면세계까지 읽어낼 재주는 없어도
흘러나오는 말을 보면 그 속에 어떤 샘이 있는지 짐작은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가하면 말은 내면을 가꾸는 힘도 갖고 있나봐요.
입에 부정적이고 거친말을 담으면 마음도 황폐해지는데 비해
예쁜 말 좋은 말을 소리내어 발음하다보면 어느덧 마음도 정화되기도 하니까요...
 

양잠설



어느 촌 농가에서 하루 저녁 잔 적이 있었다. 달은 환히 밝은데, 어디서 비오는소리가 들린다. 주인더러 물었더니 옆방에서 누에가 뽕 먹는 소리였었다. 여러 누에가 어석어석 다투어서 뽕잎 먹는 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 같았다. 식욕이 왕성한 까닭이다. 이 때 뽕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며칠을 먹고 나면 누에 체내에 지방질이 충만해서 피부가 긴장되고 윤택하여 엿빛을 띠게 된다. 그 때 부터 식욕이 감퇴된다. 이것을 최면기라고 한다. 그러다가 아주 단념을 해 버린다. 그러고는 실을 토해서 제 몸을 고정시키고 고개만 들고 잔다. 이것을 누에가 한 잠 잔다고 한다. 얼마 후에 탈피를 하고 고개를 든다. 이것을 기잠(起蠶)이라고 한다. 이때에 누에의 체질은 극도로 쇠약해서 보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다시 뽕을 먹기 시작한다. 초잠 때와 같다.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서 최면, 탈피, 기잠이 된다. 이것을 일령(一齡), 이령 혹은 한 잠, 두 잠 잤다고 한다. 오령이 되면 집을 짓고 집 속에 들어앉는다. 성가(成家)된 것을 고치라고 한다. 이것이 공판장에 가서 특상, 1등, 2등, 3등, 등외품으로 평가된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사람이 글을 쓰는 것과 꼭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대개 한때는 문학 소년 시절을 거친다.
이 때가 가장 독서열이 왕성하다. 모든 것이 청신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이 때 독서를 많이 해야한다. 그의 포부는 부풀 대로 부풀고 재주는 빛날대로 빛난다. 이 때 우수한 작문들을 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는 사색에 잠기고 회의에 잠긴다. 문학 서적에서조차 그렇게 청신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혹은 현실에 눈떠서 제각각 제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철학이나 종교서적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직 침울한 사색에 잠긴다. 최면기에 들어선 것이다.

한 잠 자고 나서 고개를 들 때, 구각(舊殼)을 벗는다.탈피다.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인생을 탐구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정신적으론 극도의 쇠약기다. 그의 작품은 오직 반항과 고민과 기벽에 몸부림친다. 혹은 그를 요사한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글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전에 읽었던 글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이제 이령에 들어선 것이다.

몇 번이고 이 고비를 거듭하는 속에 탈피에 탈피를 거듭하며 자기를 완성해 간다. 그 도중에는 무수한 탈락자들이 생긴다. 최후에 자기의 모든 역량을 뭉치고, 글 때를 벗고, 자기대로의 세계에 안주한다. 누에가 고치를 짓고 들어앉듯 성가한 작가다. 비로소 그의 작품이 그 대소에 따라 1등품, 3등품으로 후세의 평가의 대상이 된다.


대개 사람의 일생을 60을 1기로 한다면 20대가 1령기요, 30대가 2령기, 40대가 3령기요, 50대가 4령기요, 60대가 되면 이미 5령기다. 이제는 크든 작든 고치를 짓고 자기 세계에 안주할 때다.

이 때에 비로소 고치에서 명주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뽕을 먹고 삭이니만치 자기가 부단히 고무되고 고초하고 탈피해 가며 지어 논 고치[境地]만큼 실을 뽑는 것이다. 칠십이든 구십이든 가는 날까지 확고한 자기의 경지에서 자기의 글을 쓰고 자기의 말을 하다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20대~60대로 예를 들어 말한 것은 육체적인 연령을 말한 것은 물론 아니다. 육체적인 연령에 대비해 보는 것이 알기 쉽기 때문이다. 우수한 문학가는 생활의 농도와 정력의 신비가 일반을 초월한다. 그런 까닭에 이 연령은 천차만별로 단축된다. 우리가 남의 글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는 수가 가끔있다.

"그 사람은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
뽕을 덜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의 부족을 말함이다.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
잠을 덜 잤다는 말이다. 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리가 안 된 것을 말한다.

"그 사람 읽기는 많이 읽었는데, 어딘가 부족해."
뽕을 한 번만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기가 일회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 사람 아직 글 때를 못 벗은 것 같애."
5령기를 못 채웠다는 말이다. 자기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 참 꾸준한 노력이야. 대원로지. 그런데 별 수 없을 것 같다."
병든 누에다. 집 못 짓는 쭈그렁밤송이다.

"그 사람이야 대가지. 훌륭한 문장가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
고치를 못 지었다는 말이다. 일가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양잠가에게서 문장론을 배웠다.


/作 : 윤오영



...윤오영...
수필가, 호는 치옹 또는 동매실 주인.서울 출생(1907-1967)
보성고등학교 교사를 지냄. 한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하여 격과 아취를 소중히 여김. 수필집에는 <고독의 반추>과 있고 저서에는 <수필 문학 입문>이 있다. 특히 <수필 문학 입문>은 종전의 서구식 문학의 관점과 다른 전통적인 시각에서 설명한 귀중한 노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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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04-0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심비에 새기듯이 또박또박 타자쳤던 것이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양잠가에게서 문장론을 배웠다."
끄트머리 윤오영님의 말을 인용하여
"나는 윤오영의 양잠설에서 문장론을 배웠다."
라고 나중에 써먹으려고 했던 야심찬 작정도 기억도 난다.

십 년이 지난 오늘 아침, 오자 하나 없게 정성들여 타자한 이 글을 다시 마주한다. 십 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의 문장은 어떠한가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즈음 내가 상상했던 십 년 후의 나의 글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서 '쫠깃쫠깃한 손칼국수! 어머니의 손맛 손칼국수!' 라고 호객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쫄깃쫄깃도 아닌 쫠깃쫠깃이라니, 칼국수집 아저씨의 찰진 발음에 솔깃해져서 우리는 두말없이 끌려 들어갔다. 길바닥 나무의자에 앉아 먹는 것이 태반이 넘는데 그래도 지붕과 벽이 있는 가게였다. 어수룩해도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반들거리는 탁자하며 자외선 물컵 소독기까지 내부는 나름대로 정갈했다. 꽃병 대신 미나리 뿌리를 넙적한 도자기 그릇에 심은 데서 미나리싹이 파릇하게 돋아나 있었다.
 


남편은 잔치국수와 손칼국수를 두고 고르다가 손칼국수를 시켰다. 나는 고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먹을 줄 아는 밀수제비를 시켰다. 밀가루 음식 좋아하는 남편은 후루룩~후루룩 몇 번 하더니 그릇이 비워지는데 내 건 화수분인지 어떻게 먹을 수록 더 불어나는지..... 아저씨는 호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손님들의 그릇을 살피며 '더 드릴까요?'를 나긋하게 속삭였다. 이 무서운 물가에 리필을 하고도 삼천원이면 주인장은 그러고도 뭐가 남을까 싶은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더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그러고보니 이 남자 국수라면 사족을 못 썼지. 특히 집에서 만들어 먹는 손칼국수. 시어머님 살아계실 적 쉬는 날에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 민다고 온통 밀가루 분칠을 하고도 그렇게나 좋아하더니 국수 싫어하는 아내를 만나 국수 굶고 살고 있었구나. 손목 약해서 반죽도 못하고 밀지 못하는 건 그렇다고 쳐, 시장 가면 할머니들이 밀국수 썰어놓고 파는 데 왜 그것조차 야박하게 안 해줬는지,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했다. 

 

있잖아, 이제부터 내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손칼국수 해 줄게.
나(누가 들을세라 귓속말로) 이거보담 더 맛있게도 할 수 있다.
감자를 쑹덩쑹덩 썰어넣고 호박도 있음 좋지, 칼칼한 고추에 파 마늘 듬뿍..... 



남편은 서비스로 더 주는 것도 모자라 내가 남긴 수제비까지 욕심내더니, 내 말에 숟갈질을 멈추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니가 웬일?' 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눈을 뚱그렇게 떠보이는 것이 속으로 분명 그렇게 말하는 뽄새(본새)다. 
 

대신 약속해.
앞으로 최소한 20년은 나랑 같이 먹어줄거라고.  

 

이런 말을 요즘 애들이 옆에서 듣는다면 필시 손발이 다 오그라드네 어쩌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젖이 우리하게 아파 오는 걸 침 한 번 삼키고 제법 결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과부가 되더라도 65세면 남은 여생 어떻게든 보낼 수 있을거란 얄팍한 계산에서 20년을 잡았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내일의 일도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데 20년 후의 일이랴. 남편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대접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등따시고 배부르니'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그. 날.  슬퍼서 정신없던 날도 암씨랑토 않게 저물어 갔다. 20110330ㅅ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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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31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수제비'란 말이 낯설어서 찾아보니 수제비와 같은 말이네요. 밀가루로 만들어 밀수제비라고 하나봐요?
저런 손칼국수집을 어디 가면 볼수 있나 생각해보았더니 저 사는 곳에 아직도 오일장이 열리고 있으니 거기 가면 혹시 있을까 싶어요. 집에서 칼국수 가끔 해먹긴 해도 직접 밀가루 반죽해서 해먹은 건 아주 예전에 한번 해보고, 힘들인 것에 비해 먹을 땐 후루룩~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는 것 보고 다시 할 맘이 없어져 버렸지요.
그날 남편 분, 진주 님 말씀에 대답은 안하셨어도 마음도 무척 부르셨을 것 같아요.

진주 2011-03-31 10:29   좋아요 0 | URL
찹쌀수제비란 게 또 있으니까 구별되라고 그렇게 부르나봐요.
우리도 저 날은 큰 장에 가서 별미로 먹었지만 운 좋게 집근처 시장에도 손칼국수 따위 잘 한대요. 멀리서도 먹으러 오더군요. 저는 오로지 밥순이랍니다.

조선인 2011-03-3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이들에게 앞으로 15년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약조했어요. 작은애가 스물이 넘으면 어떻게든 살겠다 싶어서요. 그러고보니 옆지기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했네요. 아직은 실감이 안 나서일까요.

진주 2011-03-31 10:40   좋아요 0 | URL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실감을 못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겁니다.
공기 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기란 힘들잖아요.
조선인님,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셔야죠. 배 따숩게...^^

2011-04-01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1-04-1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치게 그립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문득 목이 메었습니다.
_()_

진주 2011-04-16 11:54   좋아요 0 | URL
저 날이요...
아주 힘들고,
슬픈 날이었거든요...
 

 

하룻밤 자고 나니 어제 나를 가득 채웠던 그것은 우울이 아니라 슬픔의 일종이란 걸 알았다.   



어제, 허기를 못 느꼈지만 먹어야 한다는 권유 때문에 마지못해 국화빵을 입속에 구겨 넣는데 침샘과 눈물샘은 동시에 자극되는 것인지 씹기와 함께 눈물도 났다. 새가 고단한 날개를 쉬게 할 나뭇가지 하나를 찾는 것처럼 마음 둘 데 하나 없는 나는 휘적거리며 복도를 지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꽂히는 데가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장. 무슨 사생대회라도 했는지 아마추어의 서투르면서도 순수한 터치가 뚝뚝 듣는 서양화 몇 점이 복도 벽을 따라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어느 그림 한 장 건너편에 우뚝 섰다.  


그림 속은 청명한 초하의 농촌 풍경이었다. 그림의 삼분의 이쯤은 야트막한 야산이고 그 아래 산 모롱이를 따라 논이 보였다. 논에는 모 심기한 벼들이 땅 냄새를 맡고 초록으로 자릴 잡아가고 있었다. 자세히 볼 수록 햇빛을 받는 벼의 녹색 톤이 싱그러웠다. 초록에 청록을 섞었는데 희뿌윰하게 빛이 반사하는 느낌이 들도록 흰색을 적절히 잘 배합한 것 같았다. 그림에서 논은 그다지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벼를 저렇게 세심하게, 생명력 있게 표현하는 걸로 봐서 저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자기 논에 벼농사가 있던 사람일거란 막연한 추측을 했다. 소나무와 잡풀 사이로 난 산길에도 마음이 갔다. 저곳이 내 고향도 아니고 내 논도 아닐지라도 저 길을 따라 발목이 시도록 걷는다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저 맘 때 찔레꽃이 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 길을 따라 걷는다면 달근한 들꽃 향기와 풀 냄새가 가득하겠지....지금 그림에선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빛살도 성가셔서 챙 넓은 모자가 필요할지도..... 


"후~우~아......" 


나는 폐를 한껏 부풀려 들숨을 마시고 천천히 날숨을 내쉬고 아쉽게 발걸음을 뗐다. 그림을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남들보기 이상하게 보일까봐'하는 멋쩍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서 있었던 건 뭐란 말인가. 사람들은 각기 제 일에 바빠 내가 서 있던 말던 관심도 없었는데. 그때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고즈늑한 어느 시골 풍경에 고달프고 슬픈 내 마음을 걸어놓고 버거워도 현실로 돌아올 힘을 얻은 것이다. 20110329ㅇ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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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2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슬픔의 차이는 뭘까요.
그림 속의 시골 풍경을 말씀하셨는데 마치 그곳에 직접 다녀오셨다는 말씀처럼 읽혔어요. 그 그림이 제 눈 앞에도 어른거리는 것만 같아요.
저도 요즘 아무때나 눈물샘이 자극되어 스스로 꾸짖고 있는데 진주님 글을 읽으니 그게 꼭 꾸짖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침샘 자극될 때 눈물샘은 좀 멈춰주었으면 좋겠어요 ^^

진주 2011-03-30 12:00   좋아요 0 | URL
우울과 슬픔의 차이..
제 경우엔 말이죠,
평소보다 달콤한 음식이나 밥이 더 먹히면 그건 우울이고요,
목구멍이 자물쇠를 채우고 도무지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슬픔이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3-30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착하셨다니 다행이로군요. 봄이 빨리 와서 개나리도 보고 목련도 봤으면 좋겠네요. 무엇보다 그 화사한 햇살이 고프지만 말예요..

진주 2011-03-30 12:12   좋아요 0 | URL
그 그림이 입상작으로 뽑혔던 이유를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어요. 전체적으로 환하게 쏟아지는 빛을 묘사하면서도 손길이 좀 더 필요한 벼는 세심하게 어루만졌고, 신록의 싱그러움 중 일부는 약간의 음영을 넣는 등의 빛 조절을 잘 했다 싶어요. 태양빛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모체이죠. 어머니 마음은 한결같아서 전체적으론 공평하지만 약한 자식에게 한번더 쓰다듬어 주는 법이니까요.
아..그리고 여긴 벌써 개나리 목련 다 폈어요. 노란 등을 켠 것 같이 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