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옆에서 '쫠깃쫠깃한 손칼국수! 어머니의 손맛 손칼국수!' 라고 호객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쫄깃쫄깃도 아닌 쫠깃쫠깃이라니, 칼국수집 아저씨의 찰진 발음에 솔깃해져서 우리는 두말없이 끌려 들어갔다. 길바닥 나무의자에 앉아 먹는 것이 태반이 넘는데 그래도 지붕과 벽이 있는 가게였다. 어수룩해도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반들거리는 탁자하며 자외선 물컵 소독기까지 내부는 나름대로 정갈했다. 꽃병 대신 미나리 뿌리를 넙적한 도자기 그릇에 심은 데서 미나리싹이 파릇하게 돋아나 있었다.
 


남편은 잔치국수와 손칼국수를 두고 고르다가 손칼국수를 시켰다. 나는 고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먹을 줄 아는 밀수제비를 시켰다. 밀가루 음식 좋아하는 남편은 후루룩~후루룩 몇 번 하더니 그릇이 비워지는데 내 건 화수분인지 어떻게 먹을 수록 더 불어나는지..... 아저씨는 호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손님들의 그릇을 살피며 '더 드릴까요?'를 나긋하게 속삭였다. 이 무서운 물가에 리필을 하고도 삼천원이면 주인장은 그러고도 뭐가 남을까 싶은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더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그러고보니 이 남자 국수라면 사족을 못 썼지. 특히 집에서 만들어 먹는 손칼국수. 시어머님 살아계실 적 쉬는 날에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 민다고 온통 밀가루 분칠을 하고도 그렇게나 좋아하더니 국수 싫어하는 아내를 만나 국수 굶고 살고 있었구나. 손목 약해서 반죽도 못하고 밀지 못하는 건 그렇다고 쳐, 시장 가면 할머니들이 밀국수 썰어놓고 파는 데 왜 그것조차 야박하게 안 해줬는지,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했다. 

 

있잖아, 이제부터 내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손칼국수 해 줄게.
나(누가 들을세라 귓속말로) 이거보담 더 맛있게도 할 수 있다.
감자를 쑹덩쑹덩 썰어넣고 호박도 있음 좋지, 칼칼한 고추에 파 마늘 듬뿍..... 



남편은 서비스로 더 주는 것도 모자라 내가 남긴 수제비까지 욕심내더니, 내 말에 숟갈질을 멈추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니가 웬일?' 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눈을 뚱그렇게 떠보이는 것이 속으로 분명 그렇게 말하는 뽄새(본새)다. 
 

대신 약속해.
앞으로 최소한 20년은 나랑 같이 먹어줄거라고.  

 

이런 말을 요즘 애들이 옆에서 듣는다면 필시 손발이 다 오그라드네 어쩌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젖이 우리하게 아파 오는 걸 침 한 번 삼키고 제법 결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과부가 되더라도 65세면 남은 여생 어떻게든 보낼 수 있을거란 얄팍한 계산에서 20년을 잡았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내일의 일도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데 20년 후의 일이랴. 남편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대접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등따시고 배부르니'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그. 날.  슬퍼서 정신없던 날도 암씨랑토 않게 저물어 갔다. 20110330ㅅ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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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31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수제비'란 말이 낯설어서 찾아보니 수제비와 같은 말이네요. 밀가루로 만들어 밀수제비라고 하나봐요?
저런 손칼국수집을 어디 가면 볼수 있나 생각해보았더니 저 사는 곳에 아직도 오일장이 열리고 있으니 거기 가면 혹시 있을까 싶어요. 집에서 칼국수 가끔 해먹긴 해도 직접 밀가루 반죽해서 해먹은 건 아주 예전에 한번 해보고, 힘들인 것에 비해 먹을 땐 후루룩~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는 것 보고 다시 할 맘이 없어져 버렸지요.
그날 남편 분, 진주 님 말씀에 대답은 안하셨어도 마음도 무척 부르셨을 것 같아요.

진주 2011-03-31 10:29   좋아요 0 | URL
찹쌀수제비란 게 또 있으니까 구별되라고 그렇게 부르나봐요.
우리도 저 날은 큰 장에 가서 별미로 먹었지만 운 좋게 집근처 시장에도 손칼국수 따위 잘 한대요. 멀리서도 먹으러 오더군요. 저는 오로지 밥순이랍니다.

조선인 2011-03-3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이들에게 앞으로 15년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약조했어요. 작은애가 스물이 넘으면 어떻게든 살겠다 싶어서요. 그러고보니 옆지기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했네요. 아직은 실감이 안 나서일까요.

진주 2011-03-31 10:40   좋아요 0 | URL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실감을 못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겁니다.
공기 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기란 힘들잖아요.
조선인님,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셔야죠. 배 따숩게...^^

2011-04-01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1-04-1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치게 그립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문득 목이 메었습니다.
_()_

진주 2011-04-16 11:54   좋아요 0 | URL
저 날이요...
아주 힘들고,
슬픈 날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