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한테 혼나면 나는 책상 밑에 몸을 구겨넣고 들어가 울었다.

방바닥에 앉아 책상 발판에 엎드리면 울기엔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되어주었다.

어린애가 울 일이라고한들 짜달스레 길게 짜부칠만한 게 없었던지 울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좁은 꼭 맞는 그 공간에서 나가기 싫어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살며시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종이를 내려 낙서하면 신통하게 재미있었다.

공주 그림도 그리고 주절주절 일기같은 낙서도 했다.

 

 

종이에 내 마음을 옮겨 적는다는 것이 적잖은 위로가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쓰면서 가라앉혔던 설움이 다시 북받혀 눈물이 돌았는데

그 눈물은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은 아니었다. 도리어 내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들어 곱게 어루만지는 눈물이었다.

 

 

울며 쓴 내 글을 다시 읽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좀 우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런 글, 낙서나부랑이부터 챙겨서

나만의 공간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엄마 자궁 속 같이 좁고도 아늑했던 책상 밑,

나는 지금 그곳을 여기라고 여기며 기어들어와 먼가 끄적이고 싶다.

어릴 적 울며 쓴 낙서뭉치라도 지금 좀 읽고 싶다. 

 

 

/20140304ㅎㅂㅊㅁ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2014-03-0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울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지칠 적에 읽으면서 새롭게 웃는 힘이 되고,
고단할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까마득할 적에 읽으면서 다시 눈을 뜨도록 하고,
아플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또 아플 적에 읽으면서 천천히 일어나도록 돕지 싶어요.
언제나 마음자리를 따사롭게 보듬는 이야기를 진주 님 스스로 남기시면서
하루하루 새 빛을 고운 씨앗으로 심으실 수 있기를 빌어요.

진주 2020-03-08 13: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2014-03-04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8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ng 2014-03-0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토닥토닥. 등을 쓸어 드리고 싶네요.

진주 2020-03-08 13:48   좋아요 0 | URL
몽 님 토닥토닥 감사해요~
노랑이 우드스탁 보니까 뭔가 기억의 냄새가 확~
그리워요...

2014-03-09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20-03-08 13:4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사람 기억력이 별거 아닌걸까요?
7~8년 전엔 너무나 또록또록했을 일들이 지금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치마나 기억상실증도 아닌데 말입니다^^
암튼...바람돌이 님 우리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세세히 다 기억 못해도
님은 무척 친밀한 닉네임이라고 오늘 이 순간 생각나요.
차츰차츰...생각이 더 많이 나겠죠?

진주 2020-03-08 19:36   좋아요 0 | URL
제가 천재인가 갑자기 생각들어요 ㅎㅎ
갑자기 해아라는 이름이 생각났지 뭐예요! ㅎㅎ
맞나???? 아니면 어떡하지??

2014-10-31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20-03-08 13:43   좋아요 0 | URL
감사드립니다~^^
자그마치 8년 전의 글이라,
8년 전에 제가 읽었다면 넘 좋아서 주시는 책을 받았을거 같네요.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책읽는나무 2015-07-05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문득 따스했던 님이 그리워 님을 찾아들어왔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깐 혼란스럽지만 야문콩 꼭꼭 잘 씹으시고 있으시리라 믿어요^^
늘 건강하시구요~~~♡

진주 2020-03-08 13:38   좋아요 0 | URL
지금부터 7년 전에 쓰신 댓글이네요...
이제사 읽지만...책나무 님의 마음이 느껴져요...
염려해주신 그 마음 때문에 제가 잘 견뎌냈나 봅니다.
책나무 님 서재에 찾아갈게요^^

2015-07-20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8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11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8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20-03-08 13:19   좋아요 0 | URL
실비 님 오랜만이예요~
네, 그래요..저는 큰일들을 겪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좀 지났다고 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2019-03-13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20-03-08 13:14   좋아요 0 | URL
혜덕화 님~
서재에 오기 전엔 아무 생각도 안 났는데
혜덕화 님 댓글 보는 순간 혜덕화 님이 생각나요~
작년 이 맘 때에 글 남겨주셨네요~
그토록 오래 서재를 비웠는데도 들러주셔서 거미줄 걷어주셔서 고마워요^^
 

 

 

 

 

 

 

 

 

 

1. 마음껏 울도록 나를 내버려 두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14-03-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들어왔다가 느닷없는 이 글을 보고 놀라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hnine 2014-03-0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진주님...무슨 일입니까, 설마....

진주 2014-03-0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hnine 님~
두 분 오랜만에 불러보네요.
너무 불친절한 페이퍼, 죄송해요.
지금으로선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2014-03-04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3-04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마를 때까지 봄볕 같은 눈물로 마음을 적시며 달래시기를 빕니다..

2014-03-04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6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보, 잘 가~

 

잘 있어. 나중에 만나자. 사랑해,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관련 도서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사람의 공통된 심리 같은 건 살면서 닥치게 되면 하나씩 느끼며 배운다.

 

요즘 뼛속 깊이 사무치게 깨우친 사실 하나,

 

"상처 주는 사람은 자신이 상처를 주는지를 모른다, 전혀!"

 

 

 

자기가 찌른 비수에 상대방이 얼마나 피를 철철 흘리는지 그 정도까지는 모른다쳐도

최소한 자기가 남한테 칼 같은 걸로 찌른다는 정도는 알 줄 알았는데

전혀, 전혀, 도무지 모르는 것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자신만의 의로 가득해서 당당하더란 사실에 놀랐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지난 5년간 사사건건 우리를 괴롭힌 분이 있는데, 정말로 나는 그 분 때문에 사역을 접을까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거의 날마다 나를 울게 만들었던, 그 분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내 마음 평수를 넓히려 부단히 애쓰게 만든 그런 눈물나게 고마우신(!) 그런 분이 계시다.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 자기가 우리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계셨다. 오호 널라워라! 어떻게 자기가 한 짓을 모를 수 있는지. 놀랍다. 사람이 이다지도 뻔뻔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설마하니 정말 몰랐겠어? 하며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끝까지 해맑게 모르고 계신다........허을.

 

그..그래..나도 이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서 그 분이 밉지 않으니 그러면 됐지 뭐~하며 넘기게 된 이 싯점이 참 좋다. 그 분, 5년간 우리 속을 다 헤집었고 우리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눈물어린 도고의 결과로 많이 좋아지셨다-이젠 예전처럼 뛰어다니는 흉기가 아니다. 예전엔 여러사람 찌르며 뛰어다니는 살인병기 수준. 그..그러면 됐지-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펼친 부분 접기 ▲

 

 

 

사람에겐 저울 셋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이 자신을 재는 저울,

 

또 하나는 남이 나를 재는 저울,

 

그리고 절대자가 나를 재는 저울.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본성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재는 저울은 후하게 달며

남을 재는 저울로는 박하게 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남의 저울을 후하게 달도록 노력하는 건 해볼만한데 영 자신없는 건

내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작업. 상당히 어려운 숙제이다.120424ㅁㅂㅊㅁ.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극곰 2012-04-2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아는 척 하고 사라져요. ^---^

진주 2012-04-26 16:3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죠!
그간 많이 바빴어요. 이번엔 좋은 일로 많이 바빴어요^^*
아직 바쁜 일이 다 끝난 건 아니예요. 이사갈 일이 남았거든요^^
곰님은 어케 지내시나요? 불켜진 집으로 만드셨는지?

프레이야 2012-04-2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일로 바빴다니 다행이에요. 뭘까뭘까? ^^
상처를 의도적으로 준 게 아니란 말인데 그런 경우 정말 죽을 지경이죠.
의도적으로 준 거라면 어떻게 따져볼 수도 있지만 말에요.
진주님에게 일종의 고난을 준 거라 믿어져요. 나도 그런 경우 있지만요.
나아졌다니 또 다행이구요.

진주 2012-04-26 20:04   좋아요 0 | URL
앗~밥 먹고 잠시 들어왔는데 ㅎㄱ님 지금 들어오셨네요! 방가방가~
그 분은요, 다른 사람 전혀 배려하지 않아요. 자기가 말하고픈대로 다 쏟아내야 직성이 풀린대요. 그래놓고서는 자기는 뒤끝없노라고 자랑하죠 ㅋㅋ 말도 행동도 거칠고 무엇보다 마음씀씀이가 고약해서 정나미가 떨어져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상처를 줬다치더라도 자기는 금새 까먹어요. 참 이기적인 사람이죠? ㅎㅎ아무튼 기피대상1호.

아..좋은 일요, 우리 일이 잘 되었어요. 합병인수..뭐 이런거요^^ 행운이 왔죠^^
함께 기뻐해줘서 고맙!

숲노래 2012-04-2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자는 어느 누구도 저울로 재지 않으리라 느껴요.
오직 '내'가 나를 재는 저울만 있구나 싶어요.
다른 사람이 나를 재는 저울 또한 없구나 싶기도 해요.

진주 님도 잘 헤아려 보셔요.
참말 '다른 사람'은 '나'를 재지 않아요.
언제나 '나' 혼자서 '나'를 잴 뿐이에요..

진주 2012-04-29 16:20   좋아요 0 | URL
된장 님의 말씀도 옳으십니다^^

차트랑 2012-04-2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끝이 없는 건 좋은데....^^
기피대상 1호... ㅠ.ㅠ 는 좀^^

그너저나 오랫만에 뵙겠습니다 진주님,
하시는 일이 잘 되고 있다니 좋은 소식도 함께 왔군요.
좋은 봄날이랑 잘 지내시구요
건강하십시요~
반가웠습니다.

진주 2012-04-29 16:22   좋아요 0 | URL
할말못할말 다 쏟아내고나선 자신은 더 이상 그 일로 꽁해하진 않더라구요.
옆 사람이야 죽어나가건말건 본인 정신 건강엔 아주 좋은 성격이죠 ㅎㅎㅎ

반딧불,, 2012-04-2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새벽까지 잠도 못자고 고민했던 부분을 명쾌하게 해결해주시누만요.
그렇습니다.
결국은 그렇죠.
상처받지말자 다시 다짐하고요. 이것저것 다시금 챙깁니다.
서운해하지않기, 상처받지않기 참 힘들어요.
저처럼 남힘든 것 보면 꼭 해결해줘야 하는 사람은 더구나요..ㅠㅠ;;;

진주 2012-04-29 16:25   좋아요 0 | URL
앙~~반딧불님~~(전엔 반디님~이라고 불렀는데..ㅋ)
잘 지내시는거죠?
요즘은 문득 문득 친구가 그리워져요...ㅠ
벌써 이 세상 떠나버리는 친구도 있고,,,사느라 흩어져 소식 끊긴 친구들도 많아요.
다들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옛날처럼 밥 먹고 차 마시며 허물없이 수다 떨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소원이 생겼어요. 오랜 친구같은 반딧불님, 서재동네에 오면
그런 옛 친구같은 님들이 있어서 ㅇ작은 위안이 되네요....
우리 길~~~~게 봐요..^^

2012-04-27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4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11-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에 쓰신 글을 가을에 읽네요?^^
가을에 더 어울릴법한 글이에요.
저울 이야기에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이면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도 매번 저울질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이었던 듯해요.
전 특히나 속이 좁아 내가 나를 평가하는 저울과,
남이 나를 평가하는 저울을 더 중시하고 살고 있네요.ㅠ
변덕도 심해 나를 평가하는 저울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땅에 닿기도 했다가,
또 때론 너무 가벼워 접시가 튕겨지는 소리가 매번 들릴때도 있어요.ㅋ
대인관계에서 항상 혼자서 고민하는 스타일인데
요근래 모든 것이 서운하고,고깝게 들리고 그렇더라구요.
아마 가을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자책을 합니다만,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의 고요를 얻고 갑니다.^^;
감사드리고,
그리고 건강하세요.

진주 2012-12-10 19:51   좋아요 0 | URL
가을 쓰신 댓글에 저는 또 겨울에 답하네요...^^;
한 해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한 해가 저무는 이 달엔 참말로 생각할 것도 많고...몸도 바쁘고 그러네요.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니 아프지 마시고 아이들과 행복하세요^^

2014-01-15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

 

천리향이 피었어요.

작년, 아버지 보내드리고 우리 집에 가족들 다 모였잖아요. 아버지 생전에 우리 교회에 그렇게 와보고 싶어하신 걸 끝내 걸음 못하셨다고 엄마가 우리라도 가보자고 하셔서요. 대전 현충원 갔다 온 다음 날 새벽에 거실에 나갔더니 무슨 좋은 향기가 난다 싶어 불 켜고 보니까 글쎄 천리향 쬐그만 한 송이가 팝콘처럼 벌어져 있는거예요. 꽃 봉우리가 입 다물고 있을 땐 쌀알만큼 조그만한데 그게 벌어졌다고 그렇게 막강한 향기를 내뿜다니 정말 신기했죠. 낮에 엄마가 오셔서 '느그 아부지 보셨으면 좋아 하셨겠다.'라고 하셨죠. 마음이 짠했어요. 아버지가 꽃나무를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그러고보니 어릴 적 우리집 마당에 천리향 한 포기가 있었던 게 생각나요. 학교 갔다 돌아올 때 우리집 들어오는 골목 모퉁이만 돌아도 그 향기가 진동했거든요. 오죽하면 큰언니는 치자나 마찬가지로 천리향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요. 향기가 너무 진하다고요. 꽃 향기는 은은해야 고상한데 너무 대놓고 진하게 향기 내뿜는다고 천하다고 하던걸요. 그런데 아버지 요즘은 세상이 변하니까 꽃 향기도 변하나봐요. 예전같으면 이 좁은 거실에 천리향 화분을 넣고 살 생각도 못 했을걸요. 큰언니가 아니더라도 꽃향기가 너무 진해 실내에 가둬두기엔 향기가 너무 진해요. 머리가 아플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꽃향기가 예전만큼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제 코가 둔해진건 아닐거예요. 꽃향기가 옅어졌다는 학계 보고가 없을까요?

 

 

 

 

 

꽃나무가 없는 친정은 상상이 잘 안 되지만........지금은 없어요.

아버지 하루 시작이 나무에 물 주는 일이었지요. 저는요, 부엌에서 엄마가 밥 하는 소리 들리고 마당에선 아버지가 나무 가꾼다고 부산하게 다니시는 소리에 부시시 눈 뜨던 어린 시절이 내 기억엔 아주 평화로운 풍경으로 박혀 있어요.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시니까 나무 돌봐줄 사람 없다고 엄마가 여기저기 입양 보내셨어요. 화원에서 삼백 만원에 사들이고 싶다고 했던 그 황금소철 말예요. 그건 지금 생각해도 속상해요. 우리 딸들은 그 큰 화분을 들여놓을 곳이 없어서 종* 아지아 집으로 보냈대요. 아지아가 그 즈음에 큰 평수 아파트로 이사했잖아요. 핏덩이 키워준 은혜 모르고 아버지 가슴에 못 박은 사람에게 아버지가 그토록 아꼈던 나무를 보냈다니 화 날 일이죠. 그래도 엄마는 "화원에 돈 주고 파는 것보다야 낫지" 그렇게 말해요. 도대체 뭐가 더 낫다는건지. 화원에 팔면 그 돈으로 엄마 맛있는 거라도 사먹지라면서 우리가 앙앙거리니까, 아부지가 아침마다 쳐다보고 좋아하신 걸 어떻게 돈을 받고 파냐고 엄마가 되려 역정을 내시는 거예요. 엄마 논리가 다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황금소철은 돈 받고 파는 존재는 아닌가보다하는 정도로 이해해요. 그래도 종*아지아 형제는 미워요. 그 아지아들 보면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라는 옛말이 그러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니까요. 그래도 장래 일정 내내 휴가 내서 우리랑 같이 하더라구요. 그러면 뭐해요.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슴에 못이나 박지 말지. 

 

 

 

 

 

아버지 가시고 이내 엄마가 입원하더니 아직도 퇴원을 못하시네요. 아버지 서운하시겠지만 집은 부동산에 내놓았어요. 덩치가 큰 집이라 매매가 쉽지 않다고 하네요. 어떤 세입자들은 통장에 꼬박꼬박 세를 넣어주지만 골통 세입자들도 있어요. 몇 달치 밀려서 동생이 찾아가니까 정말로 "배 째라~"라고 했대요. 우리 집안에도 억센 사람이 있어서 저런 사람 상대 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입자 관리도 힘든데 하물며 꽃나무는....... 웬만한 건 엄마가 분양시켜 보내서 모진 겨울을 살아 남았겠지요. 우리 딸들은 각자 자기 살림하면서 엄마 병원 시중드는 것도 힘겨워 친정 꽃나무까지는 손이 닿질 않아요. 아버지 죄송해요. 얼마 전에 집에 잠시 들렀더니 땅에 심겨져 있는 것들은 이웃 집에서 간간이 물을 줘서 살아 있더라구요. 지금쯤 주인 없는 집에서 그 나무들은 홀로 싹을 틔우고 있을까요.  

 

 

 

 

 

아버지,

꽃이 피니까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요.

작년에 딸기만 봐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는데 지금은 천리향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지, 사람도 꽃나무 같아요. 나무는 제 자리에 붙박이로 가만히 서 있어도 향기로 주변을 물들이잖아요. 아버지께서 우리 곁에 오시지 못해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사소한 것도 지나고나면 이토록 간절히 그리워지는 것인지를요. 제가 어릴 적엔 오만불손하게도 부모님보다 더 멋지게 살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버지만큼도 살 자신이 없어요. 훗날에 저도 아버지처럼 향기로운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요. 그저 하루 눈 뜨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요. 엄마도 많이 좋아지셨고요, 우린 다들 잘 사니까 걱정 마시고....평안히 지내세요. 아버지 설마 그곳에서도 꽃나무를 가꾸시나요? 나중에 때가 되서 가 보면 알겠지요. 평안히 잘 지내세요.

 

 

 

 

120303ㅌㅂㅊㅁ.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2012-03-04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꽃내음 잘 물려받으며 누리시리라 믿어요.

집주인이든 세입자이든, 어느 한쪽이 제대로 안 할 때에는
내용증명부터 내면 돼요.
월세를 못 내면, 보증금에서 까면 되지요.
월세를 못 내며 살 때에는 보증금에서 갚으면 되고요.

진주 2012-03-06 22:39   좋아요 0 | URL
그 사람들은 이미 보증금을 다 까먹었대요.
동생이 내용증명인지 무슨 조치를 취했다고 하네요.
동생이 친정 가까이 사니까 귀찮은 일은 도맡아 하는 형편이예요^^;

책읽는나무 2012-03-0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분명 꽃나무에 물을 주고 계시겠네요.
더군다나 한 송이 핀 천리향 미리 맡아보고 가셨을지도요.^^

전 어머님 돌아가시고 가져온 치자나무 화분을 칠 년이 되도록 꽃을 못피우고 있어 그화분을 볼적마다 참 송구스럽더라구요.통도사에 이사간 첫 해랑 어머님 돌아가신 그해 딱 두 번 꽃을 피우고 그후론~~ㅠ
제게 있어 화분에 꽃을 피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그런지 전 치자나 천리향 같은 꽃향기가 참 황홀하고 신기하여 간절한 향기가 되어버렸어요.님의 천리향 한 번 맡아보고 싶네요.

아재한테 간 황금소철은 님과 형제분들이 생각하면 정말 한없이 속상하시겠지만 어쩌면 아버님은 흡족해 하시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모진 소릴 했어도 내피붙이...더군다나 동생이었다면 그게 맘이 완전히 돌아서진 않았을껩니다.특히 어렸을적부터 걷어 키워주셨다면 속마음엔 더한 애착이 많으셨을꺼에요.미운정이 더 무섭다잖아요.^^
장녀나 장남은 좀 그러한 면이 있더라구요.아버님이 장남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재도 황금소철을 보면서 분명 형님을 대하듯 잘 키워주실 것같구요.화분을 보면서 속으로나마 속죄하시지 않으실까 싶네요.좋게 생각하셔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의 생각은 좀 많이 다르시더라구요.
그래서 어른이시긴 것같구요.

전 군자란꽃이 필때가 되었는데 한참 기다리고 있네요.요즘 화분에 영양이 덜한지 몇 년전부터 풍성하던 꽃대가 영 시들하던데 올해는 얼마나 더 시들해서 피어날지 좀 안쓰럽기도 하구요.군자란을 볼때면 만두님이 생각 많이 나요.
봄마다 군자란 꽃이 핀 사진을 올리면서 꽃 감상을 했었던 기억이 나던지라~~
꽃을 보면서 되려 심란했을 님의 모습이 떠올라 쬐끔 마음이 그렇네요.그래도 힘 내시고 다가오고 있을 봄을 생각하면서 쉼호흡 한 번 해보세요.^^

책읽는나무 2012-03-04 08:24   좋아요 0 | URL
근데 성님!
저기 자음 이니셜 배춘몽? 맞죠?ㅋㅋ
헌데 배춘몽 앞에 ㅌ이 뭐였었죠?
갑자기 기억이 얼키고 설켜 잘안나네요.
한때 배춘몽이라고 하면서 킥킥거린 기억은 나는데 그것도 생각해보니
성님이 그냥 그래~ 그렇게 부르자고 했었던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ㅋ

icaru 2012-03-06 16:44   좋아요 0 | URL
저도 항상 ㅌ 이 궁금한 1인이었답니다.

진주 2012-03-06 22:46   좋아요 0 | URL
여기선 촌수로 삼촌은 아지아로 말하지 않고요,
아지아는 5촌 이상 넘어가야 하는데..
종*아지아는 저랑 7촌 되거든요. 요즘엔 친척 촌수에도 안 넣죠.
우리 아버지,어머니께서 오갈데 없는 아지아 3남매를 어릴 적부터 키워 줬는데
음...아무튼...용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아..그리고 배춘몽은요..ㅎㅎ
예전에 야클님께서 ㅂㅊㅁ 을 억지로 끼워맞춘거예요 ㅋㅋㅋ
(앜..근데 갑자기 헷갈려요. 야클님이 아니라 메피님이셨나? @@)
ㅌ 은 비밀~ 알아맞히는 날까지 비밀 ㅋㅋㅋㅋ

2012-11-15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0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3-04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이 지났군요. 아버님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글이에요.
남겨진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는데 진주님의 글까지 울컥하네요.

진주 2012-03-06 22:47   좋아요 0 | URL
세월이 정말 빠르죠.....
일년이 금방 지나네요...

차트랑 2012-03-0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진주 2012-03-06 22:4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icaru 2012-03-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 님이 돌아가신 아버지 닮으셔서, 향기로운 삶을 사시는 거군요..
늙으신 우리 아버지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요 에구...

진주 2012-03-06 22:48   좋아요 0 | URL
그래요, 부모님 살아계실적에 잘 해야 효도예요.
늙으시니까 더욱 세심하게 마음을 써줘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엄마 홀로 남으시니까 여러모로 신경 쓰이네요..

2012-03-27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3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1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