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는 규칙이 없다. 인구의 유동성은 매우 크다.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사람을 만났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위아래도 없다.
전통사회에서 위아래는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지만
불안정한 사회란 기존 사회를 끌어오던 가치관 자체가 붕괴하는 것이라
나이 많은 자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삼국지는 그런 점에서 꽤 좋은 사례들을 보여준다.

어제까지도 충성을 바친 군주였지만 오늘은 엉뚱한 이유를 대며
부하에게 벌을 내리는 군주, (조조)
믿었지만 배신하는 부하들, (여포,맹달,허유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세객 등 갖가지 인물의 군상들이 나온다.

인물을 알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냐 없냐다.

가끔 허풍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역량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며 많은 돈을
달라고 한다. 그래놓고 안되면 주변탓만 한다. 같이 잘 해볼 것 처럼 이야기 하다가
안되면 자기 몸만 쏙 뺀다.

성실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경우는 대체로 이런 인간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보는 눈을 길러야 하는데 물론 직접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단 관계를 맺기 전에 관상, 주변의 평 듣기 등을 통해 그 인물을 두루 알기 위한 기법을 배우는 것이
꽤 유용하다.

삼국지를 읽을 때 그 관점에서 인물을 파악하고 다시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유사한 타입으로 정리하면서 이때 내가 어떻게 하는게 현명한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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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라는 주제를 다시 현대로 옮겨보면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일종의 줄서기를 한다. 대학입시에서 대학과 전공선택은 핵심이다. 거기서 별로 생각없이 점수에 맞추어 혹은 주변의 권고에 의해 선택한 전공은 이후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제약이 된다.
회사의 선택 또한 줄서기다. 대우를 선택한 경우와 삼성을 선택한 경우가 어떻게 엇가리는지는
잘 보고 느꼈다. 다시 회사안에서도 줄서기는 계속 된다.

내가 종사하는 IT 분야에서는 그런 줄서기가 개인에게 매우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개발할 경우 platform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낡아서 점차 쇠퇴해가는 platform에 매달리는
경우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가 어렵다.
반면 이제 막 한국에 들어온 새로운 기술을 선택했을 때는 종종 헤드헌터에게서 전화가 오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된다.
꼭 그 사람이 이쁘거나 미워서 줄을 잘 설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대외적인 조건과 유행에 따라 강제로 세워지는 경우도 많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 줄이 어떠한 것인지
잘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다.

앞서서 캐리어 부문에 열심히 하는 데 안풀리는 사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체로 그런 경우는 줄을 잘 못 서서 혹은 줄서기 능력이 부족해서
효율을 아무리 높여도 원하는 목표로 도달하는 효과성이 부족한 경우들이다.

그러므로 줄서기를 할 때는 남의 지혜를 빌려라. 특히 성공한 사람의. 그게 답이다.
섯불리 혼자서 쉽게 판단하고 나중에 안풀리면 운탓으로 돌리지 마라.
바보들이나 한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건성으로 살게 된다. 남탓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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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다.
거기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올리려고 한다.
많은 성원을 베풀어주시기를.
----

내가 갑자기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떨어졌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았다.

무수히 떠오르는 영웅들 사이를 누비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어보았지만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자기보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놓고 보면
이제 전란이 휩쓸고 갈터이니 우선 몸을 피해야 한다.

몇가지 선택이 있는데 싸움이 치열한 중원을 떠나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형주, 동오 혹은 익주로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선택은 중원의 패자가 될 조조나 원소의 수하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선택이 쉽지 않은데 조조나 원소, 유비 등을 주식시장으로 비교하면 어떻게 비유가 될까?
조조는 우량 성장주, 원소는 우량한 듯 보이지만 하락하는 부실주, 유비는 벤처, 손권은 안정적인 배당주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익주나 형주 또한 성장은 없지만 붕괴도 없는 공공투자 비슷한 형태가 된다.
삼국시대의 문제는 이 들 중 딱 하나만 사야하고 중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는 줄서기로 귀착된다.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바로 일할자리를 찾는 일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
경영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효율이 아니라 효과가 중시되는 것이다.
효율은 주어진 일을 적은 돈으로 빠르게 하는 것, 효과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뚜렷한 목표를
갖는 것이다. - 피터 드러커

줄 자체를 잘 못선 상태에서 노력만 열심히 한 사람은 억울해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난세란 바로 줄서기가 핵심인 것을.
이 당시 전략적으로 줄서기에 능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가후다. 처음에는 동탁의 무리에서
시작했지만 장수로 넘어왔다가도 후히 대접을 받았고 관도대전 직전에 장수의 무리를 조조에
항복시키는 역할을 했다. 일명 줄바꾸기다.
조조 진영에서도 높은 대접을 받으며 여생을 편안히 마무리했다.

반면 재주가 많아도 줄을 잘 못 선 경우는 여포에게 줄 선 진궁이 떠올르고 원소에게 직간하다가
목숨을 잃은 많은 참모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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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5-3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료 만세-.-/ (글 잘 보고 갑니다...;;)

sayonara 2005-05-3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지'와 피터 드러커... 역시 위대한 작품과 위대한 학자는 통하는 면이 있나 봅니다.
감명깊었습니다. 원츄~

사마천 2005-06-0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명을 받으셨다는 말에 저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
계속 성원 받도록 열심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제갈량의 약점 하나는 쉽게 위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정사 삼국지에는 사마의가 촉의 사신에게 물어서 얻은 정보로 제갈량을 비판하면서 사소한 일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 수행하기까지 한다면 어찌 몸을 오래 보전할 있을까.”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일을 지나치게 손수 처리하려고 노력하여 스스로 부담을 많아졌고 이것이 단명하게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결국 사람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우선 촉이라는 땅이 좁다 보니 배출되는 인재의 수가 많지 않아 믿고 맡기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일차 원인이다. 그가 가정전투에서 마음먹고 일을 맡겼던 마속 또한 개인의 과실과 역량의 부족으로 패배하는데 일조하였다. 이것 또한 한편으로는 인재 부족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발탁하여 일을 맡긴 제갈량에게 부분적인 책임을 물을 밖에 없다.

 

마지막 오장원의 싸움을 보면 제갈량의 죽음으로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퇴각한 것으로 묘사된다. 상식적으로 자신의 수명이 거의 했다는 안다면 굳이 대병력을 이끌고 위험한 전쟁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갈량 스스로도 자신의 죽음을 의외로 생각했고 충분한 대비도 하지 같다. 후퇴하는 과정에서의 위연의 죽음도 배신이라기 보다는 사후에 대한 준비의 부족함이 지도부의 혼선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갈량의 뜻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굳어진 세력구조를 쉽게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종합적인 평가를 하자면 후세에 길이 남을 모범적 재상이었지만 군사적으로는 조조보다 분명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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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제갈량이 싸움의 재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같다. 우선 상대방이었던 사마의가 쉽게 제갈량과 승부를 겨루려고 하지 않았다. 대치 상태에서 오래 머물다가 제갈량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마의의 전략이 얄밉다고 느껴지지만 이것 또한 사마의로서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버티면 제갈량이 군량이 떨어져 스스로 돌아갈 밖에 없고 보면 굳이 목숨을 걸고 확률이 낮은 싸움의 길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원래 사마의가 싸움을 못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필요하면 엄청난 속도를 내서 싸움의 승부를 내버린다. 맹달을 기습할 때나 요동에서 공손연을 격파할 때도 속전속결로 승부를 결정짓는 명장이었다. 그런 사마의가 계속 대전을 회피한 보면 제갈량과 사마의의 실력을 쉽게 가름하기는 어렵다.

실제 제갈량은 퇴각하는 과정에서 복병을 배치했다가 성급히 추격해오는 위나라 군대를 여러 차례 격파하였다. 명장 장합이나 왕쌍과 같은 위나라 장수들이 이런식으로 죽어버렸다.

마지막 원정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죽자 촉군이 물러갔지만 사마의가 함부로 쫓지 못했던 것도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로 인해 위나라 조정에서 비판을 받았고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죽은 공명이 사마의를 쫓았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머쓱해진 사마의는 여기에 대해서 나는 산사람과 싸워서는 이겨도 죽은사람에게는 어찌 해보지 못한다는 투로 대꾸를 했다고 한다.

 

어쨌든 북벌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이미 나라의 역량이 전선에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위나라로서는 사회가 안정이 되면서 영토가 넓고 물산이 풍부하다는 장점으로 변방의 촉과 오에 대해 누리는 우위가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따라서 제갈량이 한두번 전투에서 이겼다 해도 계속 앞으로 나가서 끝까지 이길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물론 과거 조조는 그런식으로 거의 모든 전투를 이겨서 위나라를 세웠지만 제갈량의 군사적 역량은 아쉽게도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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