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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하루키를 보면서 솔직히 부럽다.
노벨문학상에 매번 강력한 후보로 오르고, 스웨덴 한림원은 문학성이 낮다고 까지만..
그의 작품은 전세계로 번역된다. 아주 아주 작은 나라 가령 이 책에 나오는데로 인구 30만의 아이슬란드 말로도 번역된다.
하루키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울러 일본 문학평론가이지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에 의해 <문학의 죽음>이 선언된 일본에서 왜 하루키는 출중하게 대성공을 거두고 있을까?
세세한 이유를 파악하기 전에 내 눈에 휙 들어오는 일감만 정리해보았다.
우선 하루키의 문학에는 문화가 녹아 있다.
오랜 여행을 통해 캡쳐 된 세계 곳곳의 풍광과 삶, 재즈바 운영자 답게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 술이나 음식을 다룰 때도 나오는 깊은 조예.
삶의 풍성함이 바탕에 깔리고 그 위에서 배출된 문학작품의 여유로움이 들어있다. 삶의 순간순간을 더 잘 즐기려는 교양미가 배어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정말 부러운 건 여행이다.
지금 대문호가 된 상태에서야 여유있는 세계여행을 하겠지만, 퍼스트클래스에 초일류호텔로 초대받아가서 연설 잠시 해주면 돈이 들어온..
젊어서 그의 여행은 알뜰한 문학도의 배낭여행이었다.
그렇게 그는 이탈리아의 와이너리를 돌고 다시 로마를 거쳐 그리스의 아주 작은 섬으로 기어들어가 작품들을 써내려갔다. 이국적인 정취는 그냥 쉽게 나오는게 아니다.
치열한 전공투가 마감이 되고 공허해진 일본사회에 유럽의 바람을 실어와 속을 채워주면서 작가는 성공해간다.
한국은? 가능한가?
최근 알뜰신잡에 김영하가 출연했다.
작가를 티비에 불러내는 게 좋은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왜냐면 작가는 사색과 고독을 통해 세상에서 포착한 일감을 언어로 져며내어 오래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티비에 나타난 작가가 반갑기는 하지만 솔직히 걱정된다.
아마도 신작을 내면서 티비와의 옴니채널 마케팅을 해보자는 누군가의 기획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특히 인터넷 글쓰기를 보면서 이모티콘 세대에게 실망한다. 한줄 띡 하고 감정을 예의없이 배출하고 자족하는 모티즌들이 많아진다.
문화는 웹소설을 거쳐 스택화 되고, 영상도 5분짜리 짤짤이가 되어간다.
누군가 억지스럽게 만들어낸 인스타영상을 보면서 감탄과 자괴를 동시에 느껴가고 자기 또한 그 짓거리에 동참한다.
개인의 우행이 아니라 사회적 트렌드로 더 깊어질것이라 더 우려가 된다.
하루키의 긴 여행을 가능하게 한 건 독자들의 책구입에서 나오는 인세다. 작은 작가라도 책을 제대로 내면 생존해서 그 길을 곧게 갈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다. 그 오랜 투자에 의해 최근작 기사단장까지 나오게 된다.
소셜시대 짧은 감상과의 투쟁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싸워봤다는 하루키의 고백이 진중하게 다가온다.
혹자는 하루키 문학의 야함을 비판한다. 그대목에서는 최근 세상을 떠난 마광수 교수가 떠올랐다. 그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하루키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을까?
일본문학의 한국 대공습에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까?
하루키의 작품 중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는데
문인을 잃어버린 한국이라는 아주 우울한 상상을 해본다.
그런 날이 오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