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할 수 있는 장사로는 역시 먹는 장사가 주종을 이룬다.
프랜차이즈 박람회에서 먹는 장사는 늘 단골로 등장하는데
바뀌는 것은 재료다.
고기류로 놓고 보면 소,돼지,닭 이 세가지가 번갈아 나온다.
종류를 바꾸게 만드는 것은 소득 수준이 가장 핵심 변수다.
돈 많으면 소, 안되면 닭 그것도 아주 별로면 아예 매운 맛이 등장한다.
고통 받을 때 뇌에서 나오는 자가 치유 호르몬을 방출시키기 위해 일부러
매운 맛을 먹게 만든다나...
수년전에 유행했던 불닭이 딱 그런예인데 경기가 풀리니 그런 부문은 이제 쉽게
찾기 어렵다. 역시 맛의 본질은 맛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이번 전시회의 주류는 소 였다.
부동산, 주식 등이 올라서 소비 심리가 강화되었고 FTA를 통해
미국산 소고기가 값싸게 등장 할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하였다.

해산물 쪽을 보다 보니 신선한 아이디어로 냉장참치가 등장하였다.
참치의 소비 대국인 일본에서도 냉장참치는 주류가 아니다.
워낙 덩치가 크고 근해가 아니라 원양에서 잡히기 때문에 냉장하려면
공수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본의 초밥왕이나 맛의 달인을 보면 참치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애착
더해서 더 좋은 맛을 추구하기 위한 참치사랑이 정말 눈물 겨울 정도로 나온다.
험한 바다에서 폭풍 치는 사이를 뚫고 배를 조종하고 낚시 하는 쇼타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아마 먹는 재료에 대해 감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여간 냉장참치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같이 간 아들 녀석이 어 이건 보통 횟집에서 먹는 것과는 다르네요 참 맛있어요 할 수준이었다.

정말 한국사람들도 입맛이 급속히 고급화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확실히 갖게 해준다.

나머지 분야를 보면 잡다한 테마는 많이 줄었다고 보여진다.
한때 휩쓸었던 요구르트 등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레드망고 뒤를 따라 등장한
그 많은 브랜드는 다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다이얼패드의 후신인 인터넷 전화의 전시 부스에서 내가 던진 닷트는 휴지 한통으로 끝났고
아들이 던진 닷트는  USB 1GB를 건지게 되었다.

다양한 경품을 구경하면서 마케팅 비용도 점점 회복추세인 것을 보면
소비 하는 마음도 점점 커져가는 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주었다.

늘 같은 것 같지만 변화하는 프랜차이즈 산업, 흥미를 갖고 쳐다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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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낸시 랭과 탈승화의 예술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아티스트' 낸시 랭에 대해 몇 자 적는다. 그녀를 만나본 적도, 그녀의 전시회에 가본 적도 없지만,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눈에 띄는 (미혼의) '여성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코너를 우연히 본 적은 있다('콘트라 섹슈얼'이란 프로그램). 그리고,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세계를 목표로 한다는) 그녀는 (적어도) '전국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TV광고에 나오는 건 물론 토론프로그램 패널을 거쳐서 케이블채널의 진행자까지 되었다고 하니까 가히 연예인 뺨친다(혹은 예술의 연예화?). 

미술계에 계시는 분들의 말씀으론 작품 또한 최근에 가장 잘, 가장 많이 팔리는 축에 든다고 하니까(한편으론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겠다) 소위 '성공하는 예술가'의 한 전형으로서 손색이 없다. '문화현상으로서의 낸시 랭'에 미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이유이다. 여기서는 몇 개의 인터뷰/기사를 따라가면서 나의 의견을 보태도록 하겠다.    

먼저, "상큼한 매력의 요정 "세상의 권태여, 가라" 기분 좋은 파격과 긴장의 화신, 편견 깬 신세대 행위예술가"란 제하에 막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던 재작년(2004년) 5월 낸시 랭의 퍼포먼스를 취재한 주간한국의 소개기사. 자신을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전시할 줄 아는 이 '앙큼한' 아티스트에 대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YOU LOST! 내게 무릎을 꿇어! 나른한 봄날 오후, 식곤증에 시달리는 당신, 방심하다가는 이 앙큼한 고양이에게 당할지도 모른다. 당신 품에 와락 안겨 윤기 나는 하얀 털로 당신의 가슴을 간지럽히는 럭셔리한 고양이가 대뜸 하는 말, YOU LOST! 당신은 아직까지 근엄한 얼굴로 허허, 웃겠지만 이 고양이를 쉽게 보았다간 큰 코를 다칠지도 모른다. 온갖 끼와 잠재된 재주로 당신의 이성을 흔들어 놓을 애교의 메신저! 당신은 곧 그녀가 만드는 폭탄주를 마시고 견고한 이성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어둘 것이다. 큐티, 섹시, 키티, 낸시, 구호를 외치는 당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것이 낸시랭이다."

"아담한 키에 앳된 얼굴, 틴에이저로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섹시한 몸의 그녀는 이른바 ‘몸짱’, ‘얼짱’, ‘애교짱’이다. 벌써 다섯 번째 개인전을 가질 만큼 자신의 분야에서 신세대 유망주로 떠오른 아티스트다. 20대 후반의 이 행위예술가는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단박에 깨부순다. 타인을 만나자 금세라도 품에 안길 듯 달려와 자신의 소니 소형 캠코더에 인사를 시키는 그녀."(*요컨대, '큐티, 섹시, 키티, 낸시'가 그녀의 컨셉/구호이며, '몸짱' '얼짱' '애교짱'이 무기이다.)

-첫 대면부터가 그녀의 초미니 스커트만큼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낸시와 함께 있는 공간은 그녀가 만든 ‘이상한 나라’였다. 하늘의 구름이 갑자기 리라빛으로 변하고, 나무들이 춤을 추기도 하는 이 신기한 나라에서 호기심으로 가득찬 얼굴로 캠코더를 보며 인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안녕? 낸시! 난 오늘 널 만나러 왔단다. 낸시 랭이란 여자아이가 순진무구 애교 덩어리란 소문을 듣고 왔어. 넌 누구니. 후 아 유?”

-초록의 계절, 푸르른 숲이 주위를 뒤덮어 권태롭기까지 한 계절에 서프라이즈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위엄으로 가득찬 예술의 전당 지붕 아래, ‘SFAF(서울파인 아트 페스티벌) 한국 미술 열흘 장’ 오프닝에서 ‘싱싱 Sing’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낸시랭의 세 번째 퍼포먼스. 단발머리 낸시는 까만 선글라스에 발목까지 오는 버버리를 입고 한 손엔 잉글리시 콕스파니엘을 산책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여자로 분한다. 궁금증과 긴장으로 혼합된 그 순간에 버버리를 벗어 던지는 낸시. 그러자 비키니 차림의 싱싱한 몸이 노출되고, 순간 로비는 해변가로 변한다.

-베이비 오일을 바르고, 자신의 몸을 훔쳐보는 관객을 향해, 손을 뻗어 ‘오일을 발라 주세요’ 라고 애교를 떨다가, 성큼 다가오지 못하는 관객을 비웃기라고 하듯, 싱싱한 육체를 뽐내며 신문과 잡지로 도배된 기계 앞으로 다가간다. 언뜻 보아 권위와 보수로 똘똘 뭉친 신문과 잡지다. 껍질을 벗겨내듯, 옷을 벗듯, 훌러덩 벗겨내니, 노래방 기계가 나오고, 상큼한 요정처럼 ‘보랏빛 향기’ 를 부른다. 관객은 어느새 그녀에게 동화된다. 그녀의 하이힐과 빨간색 비키니 만큼이나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이 여자가 바로 낸시 랭. 미국 국적 취득 전 한국이름은 박혜령. 한국인이면서 미국 국적을 지닌 낸시는 18세까지 이중국적으로 두 가지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누가 보아도 낸시 랭이란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자다. 낸시의 퍼포먼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베니스의 비엔날레에서 낸시랭은 초대받지 않은 예술가였지만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개막식 날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은 가부키를 연상시킬 만큼 허옇게, 어릿광대 마냥 페인팅을 한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물론 낑깡 낑깡.(*내가 케이블 TV에서 본 프로그램에서도 이 퍼포먼스는 자세히 소개되었다.)

-낸시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비엔날레의 주제, ‘꿈과 갈등’과 딱 들어맞았다. 세계 여러 잡지에서는 이 어린 동양 여자아이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낸시의 데뷔작은 평범치 않게,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지나가는 서양인들이 낸시를 보고 하는 말, “You looks sad!"

-예사롭지 않은 낸시가 내뿜는 마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낸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기니가 이런 의문을 풀어준다. 요기니는 바로 낸시 랭 자신이다.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적 존재로 인간과 신 사이의 영적인 메신저 역할을 하는 요기니에 타부를 개입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요기니를 탄생시켰다. 낸시는 요기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상처와 극복을 보여준다.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함께 지닌 요기니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여서 어쩐지 슬퍼 보이고 고독해 보이지만, 잠재된 파워와 끈길긴 생명력을 지녀 끊임없이 부활하는 영적인 존재다. “호랑이는 강한 동물이지만,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 고독한 영웅이잖아. 강한 것 같지만 늘 혼자 있는 외로운 동물. 내가 그렇다니까!”

-낯선 이의 팔짱을 쉽게 끼고, 가벼운 스킨 십으로 벽을 허물고, 친근감 있게 말을 트고, 허스키 코맹맹이 소리로 언니, 오빠, 선생님을 부르는 낸시. 버릇없어 보이기보다 타인에게 쉽게 문을 열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순진해 보인다.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어머니를 둔덕에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던 유년시절, 용돈을 모아 산 천체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던 낸시는 공상의 나래를 꿈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낸시의 공상은 우주로 뻗어 나갔고, 자연스레 공상 과학 만화의 상상력은 그녀의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예술의 전당 지붕아래서 열리는 다섯 번째 개인전의 타부 요기니 시리즈는 기생의 가채머리를 한 동양 여성의 얼굴에 몸체는 로봇인 여전사가 등장한다. 낸시의 작품속 요기니는 대부분 잔다르크적 이미지의 여전사가 대부분이다. 여전사는 그녀와 닮은 그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낸시의 어머니는 낸시가 당신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기보다 영화관에 가면 중간 줄에 앉은 관객처럼 평범하고 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낸시에겐 꿈이 있다. 요기니를 통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과 이상이다.

-너,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묻는다. 응, 나는 꿈을 자주 꾸어. 하늘을 나는 꿈.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해. 마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같잖아.

-긴장이 풀어지는 봄날 오후, 꿈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이 여자를 조심하라. 자신의 분신 타부 요기니 시리즈로 낸시가 말하려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혼자놀던 외로운 아이는,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시켜줄 요기니를 탄생시켰지만, 결국 요기니를 통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리고 오늘자(2006. 04. 09) 인터넷판 세계일보의 기사(여타의 많은 기사들도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아티스트 낸시 랭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대통령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나누는 사람, 낸시 랭(27·한국명 박혜령). 연예인인지 디자이너인지 사람마다 아리송한 ‘답안’을 내놓는 이 사람, 요즘 TV만 틀면 여기저기 나온다. 초고속통신망 광고에서 머리에 깃털을 달고 고양이 캐릭터와 탭댄스를 추고, 패션브랜드 광고의 지폐뭉치 속에서 웃고 있다. KBS의 ‘파워 인터뷰’에 고정패널로 나와 몇 차례 돌출발언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슬며시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번엔 케이블 음악채널 M.net에서 지난 3일부터 월∼금요일 오후 6시30분 ‘낸시 랭의 트렌드 리포트 必’에 진행자로 매일 저녁 나오며 카메라 앞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는 이 사람의 정체는 무얼까.



◆그녀에 대한 오해: 낸시 랭이 광장에 나온 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거리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가난한 아티스트 낸시 랭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란제리 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바이올린을 켰다. 이름하여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 터부 요기니 시리즈’. 이 파격적인 공연 이후 그는 2000년대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퍼포먼스를 한 건 단지 돈이 없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묻고 싶었던 말, 지난해 11월 KBS ‘파워 인터뷰’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을 때의 문제의 발언을 되짚었다. 당시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님도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보셨나요?” “저 엘리트 너무 좋아하거든요” 등은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낳았다. “엘리트는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많이 가진 만큼 베풀지 않는 한국 엘리트의 현실이 문제이지, 엘리트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전 명품도 좋아해요. 루이 뷔통부터 크리스천 디올까지, 좋아하는 순위별로 댈 수도 있죠. 누구나 원하는 걸 제가 굳이 숨기지 않은 게 잘못인가요.” 그녀는 ‘파워 인터뷰’에서도 “패널이 아닌 아티스트 낸시 랭으로 출연한 것뿐”이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튀어나오면 못박고 싶어하죠.”(*나중에 다시 지적하겠지만, '누구나 원하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 것', 그게 '낸시 랭'표 아트의 핵심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보낸 국제고등학교 시절 “전략적으로” 변호사를 사서 바꾼 이름이 낸시 랭(본명 박혜령)이다. ‘랭’은 그가 “비주얼과 타이포그래피, 국제성까지 감안해 만들었다”는 성이다.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 낸시 랭: 아티스트 낸시 랭은 요즘 매일 출근을 한다. 매일 그가 아트디렉터로 있는패션브랜드 쌈지에 출근을 하고 M. Net 아이디어 회의와 녹화도 병행한다. 4월 말 출간 준비중인 책과 개인전, 또 최근 쌈지가 후원하는 입주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돼 활동도 벌여야 한다. 도대체 언제 그 많은 일들을 수습할까. “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침대 머리맡, 화장실, 핸드백 곳곳에 노트를 놓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놓는 ‘기록광’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낸시 랭’ 상표의 옷과 가방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가 디자인한 핸드백 안쪽엔 ‘메이드 인 차이나’ 대신에 ‘메이드 인 헤븐’이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다. 드라마 ‘궁’에서 윤은혜가 들었던 알루미늄 하드케이스의 핸드백 ‘매직박스’도 그의 작품.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면서 아티스트 고유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국내에서 아티스트가 방송프로그램 진행을 통째로 맡는 건 처음이죠. 팝 아티스트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건 자연스런 작업인데도 말이죠. 방송을 통해 트렌드를 만들고 전달하며 재해석하는 아티스트 낸시 랭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줄 겁니다. ”

-“낸시 랭은 비즈니스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걸 즐기는 사람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미술가도 잘 되는 것 보여줘야 다른 분야처럼 관심과 투자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낸시 랭은 오는 6월 대대적으로 자선 기부파티를 벌일 계획도 털어놓는다. 작품 대신 계획서를 받아 13명의 젊은 예술가들을 뽑은 후 그들을 후원해 주겠다는 생각이 낸시 랭답다.

 

 

 



-그가 꿈꾸는 예술가는 피카소, 달리, 앤디 워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천재적 재능과 다작을 남겼다는 것. 그리고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렸다는 거죠. 고흐는 싫어요.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며 명작을 남겼지만, 사후에야 유명해졌잖아요?”

-작품보다 작가가 유명해지는 것에 불만은 없을까. “지난해 말 쌈지에서 낸시 랭 개인 전시회할 때 사람들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다 들어왔어요. 쌈지 전시장 개장 이후 그렇게 성황인 건 처음이라 그러던데요.” “나르시시즘이 내 작품 키워드 중 하나”라는 그녀의 무한한 자신감과 솔직함이 부러워졌다.

'우리시대의 팝아티스트' 낸시 랭의 '아트'에 대한 나의 의견은 간단하다. 그녀의 이런저런 '아트'가 보여주는 것은 '탈승화의 예술', 혹은 '예술 이후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예술 이후의 예술' 혹은 '탈역사 시대의 예술'에 대해서는 미국의 철학자/비평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는데, 단토의 '예술종말론'의 영감은 낸시 랭의 우상이기도 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에서 비롯됐었다. 

 

 

 

 

단토가 워홀의 작품에서 끌어내는 문제의식은 상품으로서의 '브릴로 박스'와 지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과연 어떻게 (여전히) 예술일 수 있을까였다. 그러니까 예술과 비예술간의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의 문제가 '예술(시대)의 종언'을 이끌어낸 화두였다(덧붙이자면, 단토에게서 '예술의 종말'은 비극적인 음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예술 다원주의'의 개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는 낸시 랭의 '아트' 또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고 할 때, 우리는 겉으로 봐서는 그녀가 아티스트인지 연예인인지 식별하기 어렵다(그녀에겐 매일 출근하는 '직장'도 있다). 즉, 여기서도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이 개입하는 것.  

 

 

자본주의/대중문화 시대의 아티스트/연예인은 다 같이 대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각자의 장기와 재능을 상품화함으로써 인기와 부를 획득한다. 애교와 끼가 '예술'인 낸시 랭은 노래와 댄스가 '예술'인 채연, 혹은 연기가 '예술'인 한고은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모두가 팝(pop)에 호소하는, 그럼으로써 한몫잡는 아티스트들 아닌가?(요즘은 '돈벌이'도 아트에 속한다.) 그렇다면, 단토가 앤디 워홀과 더불어 예술(미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낸시 랭과 더불어 예술가의 종말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예술가의 종말' 이후에도 고흐처럼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면서 명작을 남"기는 예술가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가는 '예술가 다원주의' 시대의 한 유형 정도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탈승화의 예술'인가? 프로이트를 참조하자면, 예술은 기본적은 '승화'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 할 포스터의 정리를 따라가보자: "프로이트는 예술을 승화의 과정이며 본능을 포기하는 협상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예술이 탈승화의 프로젝트라거나 문화가 금지하는 사항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보는 입장을 단호히 거부했다."(<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31쪽, 번역 일부 수정) 승화(Sublimation)라는 건 리비도의 (비사회적) 욕망을 예술적 창조행위처럼 사회적으로 수용할 만한 양태로 치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낸시 랭의 기원이라 할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은 승화의 전형적인 예이다. 다시 옮기면, "개막식 날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은 가부키를 연상시킬 만큼 허옇게, 어릿광대 마냥 페인팅을 한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물론 낑깡 낑깡. 낸시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비엔날레의 주제, ‘꿈과 갈등’과 딱 들어맞았다."

거기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어릿광대의 불협화음 바이얼린 연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승화이다(그러니까 낸시 랭은 적어도 베니스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가'였다). 혹은 낸시 랭의 이러한 말: "너,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묻는다. 응, 나는 꿈을 자주 꾸어. 하늘을 나는 꿈.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해. 마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같잖아."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혹은 현실과 타협해 가는 과정, 그런 게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예술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예술을 탈승화의 프로젝트로 보는 입장에 반대했던 것이다. '탈승화(Desublimation)'란 자아의 중개/제약 없이 리비도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낸시는 요기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상처와 극복을 보여준다"라고 할 때 그 '극복'은 억압되지 않은 리비도의 자기 분출/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탈승화는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어머니를 둔덕에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의 유산이기도 할 것인데,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녀의 '낑깡 낑깡'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 한시적인 모습이었을 뿐이겠다).

가령, 이런 기사는 어떠한가? 데일리 서프라이즈(2006. 01. 01): "한국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해 이미 그녀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화 되어버린 아티스트 낸시랭(한국명 박혜령)의 파격 행보는 지금껏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온 전통적 아티스트의 단상을 지극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술 잡지나 공모전, 아트페어가 아닌 <바자>나 <엘르> 같은 패션지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낸시랭은 누구보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솔직한 아티스트다."

여기서, 전통적 아티스트에 대한 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그녀가 '예술가 종말' 시대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며, '솔직한 아티스트'라는 것은 이 '나르시시즘의 예술가', 혹은 '공주병 예술가'가 자신의 욕망과 따로 타협하지 않는 '탈승화의 예술가'라는 걸 암시해준다. 예컨대, 그녀는 명품중독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퍼포먼스의 주제로 삼는다.

다시 데일리 서프라이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한 예외적 상황들을 끌어내며 한 해 동안 대한민국 현대미술계의 이슈 메이커가 되었던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극단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미술계의 핵심부로 다가서고 있다. ‘아이 러브 루이비통’을 외치며 예일 로고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철저한 세속성과 싱싱한 육체를 이용한 섹스어필한 퍼포먼스는 이중성을 벗어던진 홑겹의 재현 방식으로 음습하지 않은 경쾌함 마저 전해 준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고립감에 빠져 무게에 짓눌린 현대미술계의 핵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건드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중성을 벗어던진 홑겹의 재현방식'이 암시적으로 뜻하는 것 또한 그녀가 리비도(이드)와 자아 간의 타협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그녀는 우리시대의 초현실주의 아티스트이다. 혹은 그녀의 예술적 주체는 초현실적 주체이다. 대부분 잔다르크적 이미지의 로봇 여전사인 그녀의 대표 아이템 '타부 요기니'처럼. 나는 그녀의 로봇-요기니가 욕망과 타협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가 대놓고 말하는 자신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다작"을 통해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리는 것"이다. 우리시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런 걸 바란다고 해도, 적어도 '현실'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대놓고 돈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낸시 랭의 '현실'은 우리의 '초현실'이다(혹은 우리시대는 이미 '탈승화의 시대'인가? 하긴 '부자되세요!'라고 인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06.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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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에서 열림.

작년 여름에 관람한 프랜차이즈 박람회와 비교해서 확연히 다른 점은
먹는 장사가 줄었고 그 중에서도 닭과 돼지를 이용한 사업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각기 하나씩만 보임)
작년에는 수십개의 업체가 나와서 먹어보라고 권하기에
정말 온갖 종류의 요리를 한점씩 맛 보았는데...

저번에 음식점주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솥뚜껑 뒤업는 시위를 했다고 하더니
역시나 음식업이 안된다는게 확연하게 보임.

반면 레드망고의 히트에 뒤이어 요구르트 관련해서는 프랜차이즈를 네개나 보았음.
이탈리아에서 들여오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해서
대체로 맛도 괜찮고 커다란 의미의 웰빙 트렌드가 여기서도 나타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음.

저가형 건강,몸매 관리 사업은 늘어가는 추세임.
피부관리 3000원 등등 매력적인 가격을 내걸고 사업을 전개함.

그외에 100엔샵으로 유명한 다이소아성 등 저가형 사업이 눈에 많이 보임.

보드게임 카페에서 진화해 아예 카지노 카페라고 내건 사업체도 있음.
화려한 모습은 눈에 확들어왔지만 자세히 이야기는 못해봄. 과연 허가가 날까?

사회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 한번씩 가볼만한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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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보고나서 우선 머리에 떠오른 것은 작품들이 미국인의 시각을 뚜렷이 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퓰리처상의 다른 부문에는 "가급적 미국적 주제를 담은 최고의 소설", "애국심을 주제로 한 최상의 전기 또는 자서전" 등이 있을 정도니까 보도 분야 또한 창설자의 이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퓰리처상에 보도사진 부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2년이라고 한다. 이때는 2차대전의 중반 무렵으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 병사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담은 사진이 전시회의 시작을 장식하고 있다. 어쨌든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올라서서 냉전의 한축을 유지하게 된다. 나라밖으로 볼 때 국가의 위신이 크게 올라갔지만 산업화와 성장의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전시회의 시작 부분에 놓여있는 또 다른 사진 하나는 포드사에서 벌어졌던 파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던 폭력을 담고있었다. 산업사회의 풍요를 표현하는 예로서 전국민에게 차한대씩을 주게 만든 포드사의 위업이 종종 거론된다. 그 이면에는 이렇게 치열한 노와 사간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한 사회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진들은 이제 막 종결되려는 2차대전에 이어서 발생하는 한국전쟁을 담는다.

부서진 다리에 피란민이 가득 매달려 있는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밑에는 평양 대동강이라는 사진 찍은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전쟁의 비극은 무엇보다 모두가 생존의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등에 봇짐을 지고 손에 아이를 붙들고 하나는 또 등에 업고 그렇게 그 험난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은 전쟁이 남긴 비극에 대해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사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컷이다.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사진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쪽 편에 서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한컷으로 표현되는 사진을 통해 얼마나 공정한 입장을 견지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때도 있기 마련이다.

같은 시기에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미군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미군병사들이 한국양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여러 증언을 취합한 기록물도 나와있다. 이 그림은 한폭의 화면에 작가의 기준에 따라 간명한 주장을 상징이라는 형식을 통해 담고 있다.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시기에 전쟁의 미군측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아버지의 기도라는 감동적인 내용의 기도문을 만들어냈다. 이 문장들을 읽어보면 진실로 아들을 사랑하고 신앞에서 겸손한 인간의 애원이 절실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똑 같은 인간 맥아더는 중국 본토의 여러 도시에 핵폭탄을 사용할 것을 여러 차례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파면되었다. 당시 그의 핵투하 주장 또한 기도문을 만들던 것과 같은 심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한 생명을 위한 더할나와이 없는 진지함과 수백만의 목숨을 끊는 단호한 결정과의 모순은 없었을까?

이러한 모순은 2차대전을 통해 절대강자로 올라선 미국사회 전반이 고스란히 안고 있었던 것이다. 밋밋한 사진 한장이 이런 복합적인 문제까지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모순에의 탐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게 된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가 벌인 전쟁 중에서 국민 전체의 동의를 받지 못했던 최초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에 관한 보도가 일방적인 자국민 중심의 것이었다면 베트남전쟁이나 그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서는 자기비판적인 보도가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피난민이나 참전군인들의 고충에 대한 사진은 이전의 전쟁과 다들바 없지만 여기에 더해서 보도는 전쟁터보다는 홍역을 앓고 있는 국내의 사회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 당시는 직접 전쟁에 참전해야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반발이 가장 강했다. 사진에 나온 코넬대의 시위대는 직접 총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켄트대에서는 군인들이 직접 총을 쏘아 4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는 사건이 담겨있다.

반면 전쟁에서 돌아온 귀향군인들의 아픔도 적지 않았다. 기념일에 쓿쓿이 앉아있는 한 흑인 부상병의 모습도 애처롭고 더해서 한 귀향군인과 가족에 대한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정복을 입고 걸어오는 귀향포로를 맞이하기위해 가족이 환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실은 매우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다. 무려 5년 동안 고된 포로 생활을 했고 그 사이 가정은 아내의 불륜으로 파탄직전에 놓여 있었던 상태에서 누가 얼굴을 활짝 필수있을까? 기껏해야 <25시>에 나오는 안쏘니 퀸의 얼굴 정도가 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작가는 그의 얼굴을 가린채 뒤에서 앵글을 잡게되었고 결국 환히 웃는 가족들의 모습만 보도되었다.

이 당시 클린턴은 교묘한 수단으로 ROTC 징집을 기피하였고 나중에 대통령 선거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 원래 미국사람들은 세금을 빼먹거나 병역의무를 기피했다고 하면 무조건 탈락시키는 것이 투표관행이었다. 하지만 이 때 클린턴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투표성향을 보였던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동으로 이를 통해 우리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사회의 사후평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클린턴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는 통치기간 중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임기 초반에 소말리아의 내전을 해결하고자 직접 투입했던 군부대가 공격을 받아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때 소말리아의 성난 군중들은 미군시체를 줄에 묶어 거리를 끌고 다녔는데 이 장면을 잡은 사진이 크게 보도되었다. 자기는 베트남에 나가지 않아놓고 마찬가지로 그리 큰 명분이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행동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결국 이 보도는 미군의 조기철수를 유도해내었다.
얼마전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한 특집기사가 <한겨레21>에 실린적이 있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이 굳이 외인부대를 두는 이유도 국내여론과 무관하게 위험지역에 군사적 개입을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긴 보도가 만들어내는 논란과 더불어 미국의 국내문제도 많은 양의 사진과 보도, 논란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흑백차별은 미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퓰리처상도 여기에 대해서 적지 않은 할애가 있었다. 시작은 법률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는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흑인미식축구 선수가 경기장에서 의도적인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모습을 드러낸 사진이 첫작품이고 조금 지나면 흑백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도보행진을 하던 흑인젊은이가 거리에서 총을 맞는 모습이 그 다음이었다. 미시시피 주 최초의 흑인대학생이었다는 이 젊은이는 비록 쓰러져서 계속 걸음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가 내딛은 첫발은 곧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었다.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백인사회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백인들은 자신의 피부색말고 내놓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차별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학교가는 버스에 흑백 어린이들을 같이 태우자는 정부의 결정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경찰이 직접 개입해서야 질서가 잡혔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나 흑과백 사이의 긴장은 이어졌다. 보스톤에서 발생한 한 흑인 변호사에 대한 백인들의 집단린치를 담은 사진은 이런 단면을 잘 드러내 준 작품이었다. 특히 손에 자유를 상징하는 성조기가 달린 깃대로 흑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백인 젊은이의 모습은 뭔가 묘한 모순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투쟁은 순교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루터킹 목사의 장례식에 대한 사진을 통해 우리는 흑인들이 분노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같은 의지를 보게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통해 사회는 한발씩 움직여간다. 서구사회는 개인대 개인의 문제를 약속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계약을 통해 해결해나간다.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유태교에서도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통행적인 아니었으니까 이런 방식의 해결은 꽤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들을 통해 계속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들이 정당성을 갖게되면서 미국사회는 오늘의 모습으로 변화해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흑과백의 문제 말고도 소외와 가난에 대한 보도도 제법 많았다.
한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여자 노동자의 지친 모습은 아무리 일해도 그날의 삶을 연명하는 것이외에 돌아오는 것 없는 애처로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기회의 땅 미국으로 넘어오기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멕시코 노동자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보여준다.
장면이 조금 바뀌어 필라델피아의 홈리스(집없는 사람들)들이 사진에 나온다. 한남자가 따뜻한 가게안에서 식사를 하다가 창밖을 보니 길거리에는 또 다른 사람이 앉아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창을 사이에 놓고 서로 마주치는 두사람의 시선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외에도 값싼 마약에 푹빠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진도 사회적으로 마약퇴치 운동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보도는 종종 윤리의 문제를 야기시키곤 한다.
수단의 기아를 다룬 사진 중에 인상적인 것으로 굶주린 어린아이가 쓰러지려 하는 것을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대머리 독수리가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작가는 사진 촬영을 하고 아이를 구했다고 한다. 이때 보다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일정 시간을 지체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이를 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나 하는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여류 사진작가였던 당시 수상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비슷한 우려가 드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쿠데타와 혁명에 대한 보도다. 보통 이런 보도사진에 담긴 처형장면들은 대부분 이를 자행하는 사람들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전쟁이 두 주체가 맞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공간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양쪽 모두에게서 저질러질 수 있는 폭력을 어느 한쪽의 것만 끄집어내 공개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수 있을 것이다. 이란혁명 이나 엘살바도르 등에 대한 보도들은 이런 우려를 가지게 만든다.

미국적인 관행 덕분에 사진 중에서 유럽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뚱뚱한 옐친이 락밴드와 같이 춤추면서 지어낸 듯한 웃음을 보이는 것이나 무너진 동상에 모여있는 동구권 사람들의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작가들 중에 아마추어도 꽤 많았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꼭 전문가들에게만 이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 중에 일본 사람이 몇 있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자기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보도 이외에도 멀리 베트남의 밀림을 누비다가 포화의 와중에서 희생되었던 작가도 있었다 한다. 물론 한국사람은 없다. 오랜 식민지 생활에 눌려있다 잘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한민족에게는 아직 세계인들의 보편적 가치에 호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만한 여유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여기 나왔던 작품들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에는 역시 영화라는 텍스트가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올리버 스톤이 만들어낸 일련의 작품들은 사진이 가진 한사람의 시각이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것이다. 다른 작품을 젖혀놓고도 최소한 <7월4일생>과 <살바도르>, <하늘과 땅>은 꼭 보아야할 작품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진들이 담고 있는 갈등, 생각, 욕망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포드사의 노동자가 두들겨 맞는 장면이 노사정위원회가 깨져나가려는 지금 이순간의 우리사회와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흑백의 처절한 갈등도 외면적인 봉합으로 이끌어내는 미국인들의 정치기술은 동서간의 치열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민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동서화합도 못하고 남북통일을 꿈꾼다는 것이 우스운 것처럼 남과북이 함께하지 않고서야 공멸을 맞을 것이라는 것도 자명한 이치다. 그런 상념들을 안고서 천천히 전시장에서 발길을 돌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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