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제갈량이 싸움의 재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같다. 우선 상대방이었던 사마의가 쉽게 제갈량과 승부를 겨루려고 하지 않았다. 대치 상태에서 오래 머물다가 제갈량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마의의 전략이 얄밉다고 느껴지지만 이것 또한 사마의로서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버티면 제갈량이 군량이 떨어져 스스로 돌아갈 밖에 없고 보면 굳이 목숨을 걸고 확률이 낮은 싸움의 길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다.

 

원래 사마의가 싸움을 못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필요하면 엄청난 속도를 내서 싸움의 승부를 내버린다. 맹달을 기습할 때나 요동에서 공손연을 격파할 때도 속전속결로 승부를 결정짓는 명장이었다. 그런 사마의가 계속 대전을 회피한 보면 제갈량과 사마의의 실력을 쉽게 가름하기는 어렵다.

실제 제갈량은 퇴각하는 과정에서 복병을 배치했다가 성급히 추격해오는 위나라 군대를 여러 차례 격파하였다. 명장 장합이나 왕쌍과 같은 위나라 장수들이 이런식으로 죽어버렸다.

마지막 원정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죽자 촉군이 물러갔지만 사마의가 함부로 쫓지 못했던 것도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로 인해 위나라 조정에서 비판을 받았고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죽은 공명이 사마의를 쫓았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머쓱해진 사마의는 여기에 대해서 나는 산사람과 싸워서는 이겨도 죽은사람에게는 어찌 해보지 못한다는 투로 대꾸를 했다고 한다.

 

어쨌든 북벌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이미 나라의 역량이 전선에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위나라로서는 사회가 안정이 되면서 영토가 넓고 물산이 풍부하다는 장점으로 변방의 촉과 오에 대해 누리는 우위가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따라서 제갈량이 한두번 전투에서 이겼다 해도 계속 앞으로 나가서 끝까지 이길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물론 과거 조조는 그런식으로 거의 모든 전투를 이겨서 위나라를 세웠지만 제갈량의 군사적 역량은 아쉽게도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