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구) 문지 스펙트럼 28
왕멍 지음, 이욱연.유경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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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작인 <봄의 소리(春之聲)>와 비교해 사회주의적 이상이 한 풀 꺾인 작품들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책-책에는 <견고한 죽>, <밤의 눈>, <나비>가 실려 있다-에 실려 있진 않지만,  <봄의 소리>를 잠깐 살펴보자. 이 작품은 중국현대문학에서 '의식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보여 준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의식의 흐름이 보이는 대표적인 장면은 이렇다. 위에즈펑(岳之峰)은 어두컴컴한 찜통차에서 공상에 빠진다. 프랑크푸르트의 아이들과 고향을 떠올린다. 베이핑(北平)으로 달리던 생각은 이내 베이하이(北海)로 향한다. “그는 그를 위해 불어오는 환희에 들뜬 바람을 맞이하였다. 그는 작은 소리로 그가 몰래 사랑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는 이처럼 숱한 이들로 들어찬 기차 안에서 홀로 봄의 소리를 듣는다. 의식의 흐름이 파편화된 단상들을 주절주절 내보이는 것은 이미 그 인물이 위에즈펑처럼 파편화된 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왕멍은 계속해 실험을 하는데, 89년작인 <신비로운 새(神鳥)>에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멍티라는 지휘자가 지휘하던 도중 공연장을 나는 새를 발견한다. 멍티는 새의 날갯짓에 맞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새의 날갯짓은 멍티의 눈에만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새를 보지 못했으며, 그들의 관심은 “새가 알은 낳을 수 있답니까? 편지는 전달할 수 있대요?”에 집중해 있다. 모더니즘 기법을 활용하는 중에도 왕멍은 체제에 대한 비판을 감행한다. 책에 실린 <견고한 죽(堅硬的稀粥)>을 보며 두 작품이 은연중 덩샤오핑 체제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 작품은 새가, 다른 작품은 죽이 매개가 되어 비판이 이루어진다.

  <봄의 소리>와 <신비로운 새>는 유사한 모습이다. 한 주인공은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고, 또 한 주인공은 지휘자이다. <봄의 소리>는 ‘꽝’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위에즈펑은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 미국의 추상파 음악, 경극의 징과 북소리, 프랑크푸르트 소년 합창단,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등 그는 음악에 관한 한 전방위적 지식을 갖췄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봄의 소리를 홀로 듣는다. 멍티가 보이지 않는 새를 홀로 보고, 위에즈펑이 봄의 소리를 홀로 듣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당대의 중국적 현실이 모든 이들의 의식과 사고를 동일화시켜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멍티와 위에즈펑은 감각으로 에둘러 가 개인의 독존을 말하고 있다. 감각이나마 홀로 있음을 인정해주라는 말은 아닌지? 위에즈펑의 말이다. “그가 당혹하였던 것은 설마 인간의 한평생이란 것이 검토를 받기 위해서였던가 하는 것이었다. 그가 중국에서 숨쉬고 살았던 것이 어떤 일당에게 검토를 받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왕멍이 펼치는 의식의 흐름은 비꼼 혹은 풍자와 닿아있다. “4대 현대화의 실현을 그리는 사람들 그런데 아직도 와트와 스티븐슨 시대나 있을 법한 찜통에 앉아 있다니!” 그러나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고향에 도착했을 때 위에즈펑은 이미 찜통차에서 듣던 봄의 소리를 생전 듣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음악‘이라 치켜세운다. 비판의 칼을 들이대던 그가 갑자기 긍정적 태도로 돌아서는 게 썩 개운치는 않다. 코피 터지도록 싸우다가 돌연 ’화해하자‘ 손을 내미는 꼴이다. 80년대의 정치 환경과 연관해 이해한다면 박대할 이유도 그다지 없겠지만 말이다.  

  

                  王蒙(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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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귀향 -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1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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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나웬에게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김두식 교수 때문이다. <세상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세상>에서 김두식은 헨리 나웬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하는데 나도 깜짝 놀랐다. 김두식이 위 책에서 세세하게 얘기하지만 나 역시 그를 보수적 기독교계와 같이 스펙 좋은 성직자로만 알았는데 그에게도 큰 슬픔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 작가 에드워드 포스터의 소설을 영화화한 <모리스>를 보고 오는 길에 내내 울던 나웬이었다. 영화는 동성애자 친구를 다룬 내용이고, 원작자 포스터 역시 동성애자였다. 영화 속 인물들과 작가에게 공감했던 나웬은 끝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대중에게 밝히지 않고 세상을 뜬다.

  책은 나웬이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에 펴낸 말년의 작품이다.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를 바탕으로 한 렘브란트의 그림을 나웬은 찬찬히 뜯어본다. 렘브란트에게도 이 그림은 말년의 힘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인데, 두 사람의 말년이 이 그림에서 마주친다. 일생 자신의 연약함과 운명의 냉혹함에 고통했던 화가 렘브란트가 이제는 귀향을 말하고 있다. 평생 성직자로 존경받으며 하버드와 예일대학에서 청년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던 나웬도 어느새 죽음을 가까이 느끼며 대학을 떠나 지체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쉬로 귀향한다. 사뭇 다른 인생을 살던 두 사람의 말년이 어쩜 이리 같단 말인가? 나웬의 결단 속에는 동성애자로서의 탕자 의식도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찬송가가 <나 주를 멀리 떠났다>이다. 가수 유승준이 불러 유명해지기도 한 곡인데, 가사가 이렇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이 찬송가도 '탕자의 비유'에 바탕한 곡이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탕자의 귀향> 속 아버지의 표정과 몸짓이 자애롭고 따스하다. 저 품에 안긴 렘브란트와 헨리 나웬은 무척이나 따스했을 것만 같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1666-1669)

             

         Henri Nowen(1932-1996)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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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7-2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승준이 찬송가 도 불렀군요~

지금 티브이에는 김남길이 군대 간다고 무릎팍도사에 나오네요~

한국에서의 군대문제가 너무 예민해서~

유승준이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쩝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2 10:11   좋아요 0 | URL
저는 유승준을 참 좋아했는데요. 중국과 동남아를 빙빙 돌며 공연하는 그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젠가 성시경이 '무릎팍 도사'에서 말했더랬는데, 별별 범죄자도 거리를 활보하는 이 나라에서 무슨 국가가 가수 하나를 입국금지 하는 지 모르겠어요. 사안이 다르긴 하지만 박재범도 들어오던데 말이죠.

Forgettable. 2010-07-22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스터가 동성애자였군요! 난 왜 몰랐지;;; 그 동안 미심쩍었던 모든 것이 다 설명이 되는 듯 합니다.
[모리스]를 보고 우는 스펙 좋은 성직자라니, 흐 왠지.. 마음이 싸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2 10:16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하네요.
혹시 포스터의 <기나긴 여행> 읽어 보셨어요?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는데, 읽어 볼 계획입니다. 포스터의 어떤 기억들이 떨어져 있는지 주워볼려구요.
<모리스>도 읽어봐야 할텐데요......

2010-07-22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2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학의 위기 - 인문의 새로운 길을 향한 중국 지식인의 성찰과 모색
백원담 엮음 / 푸른숲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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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이 거창한데, 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중국 문학계의 '인문정신논쟁'을 정리한 책이다. 논쟁은 1993년에 시작되는데, 이 무렵 중국은 안팎으로 큰 변화속에 있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정치적 체제 굳히기에 성공한 중국 지도부는 이어 1992년 덩샤오핑이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한다. 이후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에 급격히 통합되어간다. 중국의 사회불평등은 도농간, 계층간, 지역간 할 것 없이 커져만 간다.  

  이 때 일군의 문학비평가들이 인문정신의 회복을 말하며 논쟁을 시작한다. 이들이 말하는 인문정신은 도학적 개념인데, 이에 반하는 일부 작가들-여기엔 영화감독 장이머우도 속한다-의 상업성, 선정성을 거론하며 비판한다. 문학적 지성의 지식인으로서 본래 모습을 찾자는 주장에 얼마전까지 문화부장(장관)을 지낸 작가 왕멍이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논쟁은 격렬해진다. 왕멍은 상업작가로 비판 받는 작가들을 두둔하며 상업화가 아닌 다원화라 주장한다. 논쟁을 일으킨 비평가들을 향해 그들이 주장하는 인문정신이란 문학에서 도학적 가치만을 따지는 또다른 전제주의라 비판한다. 소장 비평가들이 원로 작가와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 논쟁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으로까지 번지다 끝나게 된다.  

  이 논쟁도 인문학을 이야기하지만 기실 정치적이다. 문화대혁명의 상흔이 깊지 않은 젊은 비평가들이 톈안먼의 소요가 잠잠해지자 중국 지식인의 전통을 꺼내며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는데, 문혁의 상흔이 깊은 작가 왕멍은 다시금 그 때로 돌아가자는 얘기냐며 반대를 한다. 왕멍은 고래로 그 위상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 루쉰을 거론하며 "지금 시대에 왜 루쉰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루쉰의 강한 정치성을 부담스레 여기는 대목인데, 문혁과 톈안먼 사태를 겪은 노작가로서는 문학의 정치성 복원을 주장하는 젊은 비평가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실제 왕멍은 문혁 때 16년 간 위구르로 하방되었고, 문화부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톈안먼 사태의 책임을 지고-실은 쫓겨나는 것이지만-부장직을 그만둔다.  

  이 논쟁에서 승자 같은 건 없었다. 이들은 제각각 중국 문학의 한 부분씩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왕멍 쪽으로 기운 듯 한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며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감독한 장이머우를 보며 "그대가 승자군!"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사실 왕멍과 장이머우 사이의 거리는 꽤나 먼 편인데 열심히 싸우지도 않았던 이가 승리한 격이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무어라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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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VS역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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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 두 사람은 독일의 언론인이다. 서지사항을 살펴보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은 편집자, 또 한 사람은 저자이겠다. 역사 이래 역사를 만든 50권의 책을 갈무리 하는데, 삽화 및 자료들이 50권의 책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불만은 '왜 이 책 뿐인가?'이다. 저자들이 꼽은 책들은 대체로 서양의 사상과 역사를 만든 책들이다. 폭을 좀 더 좁히면 독일의 지금을 있게 한 책들이다. 서양과 그 안에서의 독일의 역할과 위상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일종의 선집으로서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는다. 동양의 책이라면 <사자의 서>(이집트), <논어>(중국), <꾸란>, <벽암록>(중국), <마오쩌둥 어록>(중국)이 전부다. 다섯 권 중의 네 권이 종교와 관련한 책이니 그저 동양은 종교만 있는 곳이라는 건가? 오리엔탈리즘을 꺼낼 수 밖에 없는데, 이런 모습은 좀체로 변하질 않는다. 서양이 자랑하는 지성인 러디야드 키플링(<킴>)과 에드워드 포스터(<인도로 가는 길>)가 동양을 그저 종교만 아는 곳으로 서양에 소개한 이래로 여태 변하질 않는다.  

  49번째 책으로 꼽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저자들의 서양 편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게 헌팅턴은 그저 백인중심 서구문명의 옹호자일 뿐인데, 저자들이 헌팅턴을 비판적으로 본다지만 싸움에 기름을 끼얹는 이 책을 왜 꼽았는지 모르겠다. 미국과 유럽이 손을 맞잡고 세계 평화를 지키자는 주장에 저자들이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어권의 책은 왜 이리 많나? 꼽은 책만 놓고 보면 인류 사상의 삼분의 일은 독일인이 만든 듯 하다.  

  전집이나 선집을 보며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균형감각이다. 균형감각이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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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 2010-07-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무슨놈의 독일어권 책이 그렇게 많은지...세계사를 모두 독일이 만든것도 아니고 솔직히 굉장히 아니꼬웠습니다. 중국의 수많은 문인, 지식인들을 억압한 문화대혁명의 배경이 된 <마오쩌둥 어록> 들어있는것도 기분나빴는데...
협찬받은 책이라 싫은소리를 많이 쓰기가 좀 어려웠는데, 앞으로는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옳은건 옳고 그른건 그르다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6: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자들이 대체로 사회주의에 대해 반감이 있는 것 같더군요.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그런 분위기로 독해하구요. <마오쩌둥 어록>과 문혁만 놓고 보면 마오는 '죽일 놈'이지만 글쎄요, 마오의 전생애를 놓고 보면 평가가 다르리라 봅니다. 중문학도 입장에선 생각이 좀 다르네요.
보기 좋게 잘 만들어진 책인데, 한 쪽으로 치우친 감이 많아서요.
재일문학을 공부하시나 보죠? 앞으로 도움 좀 구할게요^^

교고쿠 2010-07-16 16:11   좋아요 0 | URL
앗, 네 '_' 재일교포문학...저의 숙명(?)입니다. 제 네이버블로그에 오시면 재일문학에 대한 많은 서평 등의 자료가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satsukinovel 비에도 지지 않고

다이조부 2010-07-1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몇 글자 적어보면, 50권의 책 을 추렸는데 기계적으로 서양 25권 동양 25권

으로 구성되길 바라는것은 아니겠지만, 동양에 관한 책의 비중이 너무 적은걸

문제로 지적한것 같네요. 제 짧은 생각인데, 이 책을 쓴 사람들이 동양에 관하여

몰라서 불가피하게 책의 모양새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요? 물론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이나 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죠. 비트겐슈타인 이

그런 말을 했다죠. 말 할수 없는것에 관하여 침묵하라고~

그리고 이 책의 독자를 설정했을때도 우선 독일사람을 타깃으로 여겼을것 같은데 말이죠.

사소한 문제지기 인데요. 주인장이 이야기 하는 서양과 동양의 구별도 서양에서

만들어진 개념 아닌가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동양은

아닌거 같은데 말이죠. 이집트가 동양으로 분류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7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 잘 보았습니다^^ 개념 정리부터 해 볼게요. 우선 동양이라 말하는 'the east'는 본디 유럽을 중심으로 한 동쪽을 말한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하면 말이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아메리카를 발견하곤, 미국이 들어서며 미대륙도 서양에 포함되게 된거죠. 어찌됐든 아메리카는 유럽편에서 볼 땐 서쪽이니까 문제는 없구요. 이집트는 동양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300>에도 등장하는 페르시아도 그리스 쪽에선 동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꽤 역사가 길죠?
사실 東洋이란 말은 교토학파가 만들었다고 하죠. 제국주의가 물씬 풍기는 말인데, 마땅한 번역어가 없으니 그대로 쓰고 있구요. 개인적으론 서양이 만들었든 일본이 만들었든 기만적인 용어인 건 마찬가지지만 대안이 없을 땐 사용해야한다는 생각이구요.
책에 대해 얘기하자면 동양의 책으로 꼽은 5권의 책을 보면 이들이 동양을 잘 모르는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그 책들이 종교와 고대로만 편향돼 있어 불만인 거죠. 그 후 동양은 마치 아무 것도 안 하다가 뜬금없이 마오쩌둥이 등장해 학살을 한 것처럼 서양의 독자들이 받아 들일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 저는 오리엔탈리즘을 본 거구요.
독일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그런 의미에서 저는 더 문제라는 생각이구요. 책의 원제가 '책이 만든 역사'정도가 될 듯 한데 역사란 말이 너무 커다랗죠? 서양이나 유럽역사라면 모를까......

미지 2010-07-1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네상스 이후 세계사는 서양사다'라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고대 그리스로까지 소급하죠...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지식의 체계라는 것이 그런 전제 위에서 수립된 것임을 생각하면 참 ... 머리 쥐어뜯을 수박에 없는... 한국의 경우 중화에 일제에 미제에 글로벌자본으로... 자신의 역사나 자기 삶의 이야기의 화자가 거의 언제나 타자였던 것 같습니다(세종 때와 영정조 때는 제외하구요)... 크게는 동양이 서양에 대해 영원한 타자이지만, 동양에서도... 또... 현재 한국이 동남아를 착취하듯이...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9 10:4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론 서구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식민주의를 꼼꼼하게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동양의 모습은 어떤지도 보고 있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젠 우리가 동남아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에 어떤 모습일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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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작이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이다. 소설 제목의 무서움에 이끌려 책을 집었는데 역시나 내용도 무섭고 슬프다. 작가인 타데우쉬 보로프스키는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아우슈비츠를 체험했는데 소설엔 그 경험이 녹아있다. 작가는 같은 열차에 실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을 사살하는 작업을 하는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어느새 그 작업을 그저 귀찮고 피곤한 일로 여기게 됨을 슬프게 고발한다. 작가는 폴란드 문학의 기대주로 주목받다, 수용소 귀향 6년 만에 돌연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0년 만에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봤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걸 몇 가지 발견했는데 레싱 박사의 상징성이 그 중 하나이다. 시종일관 수수께끼에 골몰하는 레싱 박사는 휴머니티가 말소된 기능적 지식인의 한 상징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의 안위에 애가 탄 주인공 귀도에게 수용소에서도 심각한 모습으로 수수께끼를 내는 레싱의 모습은 유대인 시체를 태우며 베토벤 교향악을 들었다는 독일 병사의 일화처럼 슬펐다. 베토벤 음악의 본질은 무얼까? 그 음악과 유대인들의 비명 사이엔 무엇이 놓여져 있을까? 유대인을 실은 숱한 열차를 아우슈비츠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이 전범 재판에서 가장 즐겨 읽는 책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라 답했다는데(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칸트는 그 책에서 무엇을 말했나?  

  또 한 가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은 도라-귀도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갈지가 궁금했다. 10년 전 영화를 본 이후로 아우슈비츠 작가들이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걸 알게 되었다.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가 대표적일 듯 한데, 이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까지 포함해야겠다. 도라와 조슈아의 생환을 즐겁게만 받아들일 일이 아닌게 되었다.

    

         Tadeusz Borowski(1922-1951)

 

着語 : 책엔 표제작 말고도 좋은 소설이 많다. <파문은 되돌아온다>(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중편은 종교에 대한 비판과 긍정을 동시에 해내는 수작이다. <쿠오바디스>의 작가로 유명한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단편 <등대지기>는 약소국 폴란드의 현대사를 비추며 등대의 빛처럼 아련한 아름다움을 던져준다. 보석 같은 소설이 이리 많은데 여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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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7-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다소 억지로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키려는 데 비해 '등대지기'는 굉장히 자연스럽지요.모국어가 그리운 사나이의 심정도 이해되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7:30   좋아요 0 | URL
<마지막 수업>에 대해선 서경식 교수가 날선 비판을 하죠. 소설의 배경인 당대 알자스 지방에선 프랑스어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뚱딴지 같이 불어 수업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냐구요. 알자스 지방은 알자스어를 사용했고, 독일이 점령하자 할 수 없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하죠. 일종의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합니다.
알퐁스 도데의 황당한 민족주의입니다.

다이조부 2010-07-1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서경식 아저씨가 쓴 글 읽어보고 싶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9:17   좋아요 0 | URL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 원고가 실려 있습니다. <별>의 작가가 이토록 기만적인 소설을 쓸 줄 몰랐습니다.

반딧불이 2010-07-1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틀러가 바그너를 스토커처럼 좋아해서 행진할때나 모든 행사, 그리고 유태인을 가스실에 넣을 때도 바그너 음악을 틀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병사들을 휴가보낼 때도 바그너 작품을 감상하고 귀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던데 베이토벤은 금시초문이에요.

미지 2010-07-16 03:37   좋아요 0 | URL
최고의 베토벤 해석가 푸르트벵글러(그는 당대 최고의 바그너 해석가이기도 했죠. 이른바 독일적 정신 구현에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지휘자)의 친나치(하이데거를 연상케 하는) 행적은 베토벤애호가들에게 언제나 주어지는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한국에선 특히 서정주,,,,가 그 몫을 하죠. 한때 많은 시인들이 처녀 시집의 자서에 서정주에 대한 애증을 토로했더랬습니다...) 어찌 보면 베토벤이 근대 음악의 효용을 자신의 고통-직관을 통해 선취했다 싶습니다. 나치가 써먹었다 해도 베토벤은 멋집니다.(사실 몸소 친일하고 전두환지지한 서정주의 '천재적 유연함'과는 구별해서 얘기해야 합니다) 특히 후기 현악곡들은...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3:21   좋아요 0 | URL
서경식 교수의 어느 글귀에 그 내용이 있는데 말이죠. 이젠 이 분의 책도 꽤 많아 찾는 게 일이 되었네요^^
근래 예스24에 연재하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기'를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음악에 관한 책을 따로 내진 않았는데, 연재가 마무리 되면 서양음악에 대한 좋은 책이 될 듯 합니다.

미지 2010-07-1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나무님 문학전집 수집하시는 소식을 꾸준히 듣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3:27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사 간 '오늘의 세계문학'은 전 30권인데, 이제 절반 모았어요. 요사이 문학동네와 민음사에서 펴내는 세계문학전집과 중복되는 작품도 있네요. 아주 생소한 작품도 눈에 띄구요. 독문학과 불문학 중심인데 출간된 당시에는 상당히 이채로웠을 듯 합니다. 제겐 지금도 이채롭지만요^^
전공이 중문학인데 중앙일보사에서 90년에 펴낸 '중국현대문학전집'을 구하려 합니다. 몇 권은 공부하며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도 했는데요. 인터넷까지 뒤지면 어렵지 않게 구할 듯도 하구요.
이리 보면 <중앙일보>가 참 좋은 신문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07-16 16:31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의 세계문학과 중국현대문학전집 다 있습니다.헌책방에서 구했지요(오늘의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선 조셉 콘라드<서구인의 눈으로>가 재미있었습니다.드릴러물로도 그만이더군요).토지개혁에 관심이 많아 주립파의 <폭풍취우>는 따로 구했습니다.소설 자체보다는 국공내전에 관심이 많아서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7:14   좋아요 0 | URL
후, 부럽네요^^ 콘라드의 <서구인의 눈으로>는 좋은 작품이죠. 콘라드의 정체성이 당대 정치 현실과 맞물려 잘 드러나지요. 그 극렬한 자기 부인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높게 사구요. 한길사에서 펴냈던 콘라드의 <노스트로모>는 제국 미합중국의 모습을 예견한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구요. 번역이 다시 되었으면 합니다만......
중국현대문학 번역은 유명 작가 위주라, 전집에 실린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니 아쉬운 게 많아요. 말씀하신 저우리보도 그렇구요. 왕멍의 <변신하는 인형>은 번역자인 전형준 교수가 다시 살렸습니다만. 번역자와 연구자들의 몫이겠죠.

다이조부 2010-07-1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프가 중앙일보에서 근무합니다. 만나면 한 번 그 책 물어봐야겠네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7 11:52   좋아요 0 | URL
90년에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소련.동구현대문학전집도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 책이죠. 동유럽 쪽은 이후에도 번역이 잘 안됐으니까요. 이 책도 물어봐 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