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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ㅣ (구) 문지 스펙트럼 28
왕멍 지음, 이욱연.유경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평점 :
1980년 작인 <봄의 소리(春之聲)>와 비교해 사회주의적 이상이 한 풀 꺾인 작품들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책-책에는 <견고한 죽>, <밤의 눈>, <나비>가 실려 있다-에 실려 있진 않지만, <봄의 소리>를 잠깐 살펴보자. 이 작품은 중국현대문학에서 '의식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보여 준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의식의 흐름이 보이는 대표적인 장면은 이렇다. 위에즈펑(岳之峰)은 어두컴컴한 찜통차에서 공상에 빠진다. 프랑크푸르트의 아이들과 고향을 떠올린다. 베이핑(北平)으로 달리던 생각은 이내 베이하이(北海)로 향한다. “그는 그를 위해 불어오는 환희에 들뜬 바람을 맞이하였다. 그는 작은 소리로 그가 몰래 사랑하고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는 이처럼 숱한 이들로 들어찬 기차 안에서 홀로 봄의 소리를 듣는다. 의식의 흐름이 파편화된 단상들을 주절주절 내보이는 것은 이미 그 인물이 위에즈펑처럼 파편화된 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왕멍은 계속해 실험을 하는데, 89년작인 <신비로운 새(神鳥)>에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멍티라는 지휘자가 지휘하던 도중 공연장을 나는 새를 발견한다. 멍티는 새의 날갯짓에 맞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새의 날갯짓은 멍티의 눈에만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새를 보지 못했으며, 그들의 관심은 “새가 알은 낳을 수 있답니까? 편지는 전달할 수 있대요?”에 집중해 있다. 모더니즘 기법을 활용하는 중에도 왕멍은 체제에 대한 비판을 감행한다. 책에 실린 <견고한 죽(堅硬的稀粥)>을 보며 두 작품이 은연중 덩샤오핑 체제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 작품은 새가, 다른 작품은 죽이 매개가 되어 비판이 이루어진다.
<봄의 소리>와 <신비로운 새>는 유사한 모습이다. 한 주인공은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고, 또 한 주인공은 지휘자이다. <봄의 소리>는 ‘꽝’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위에즈펑은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 미국의 추상파 음악, 경극의 징과 북소리, 프랑크푸르트 소년 합창단,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등 그는 음악에 관한 한 전방위적 지식을 갖췄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봄의 소리를 홀로 듣는다. 멍티가 보이지 않는 새를 홀로 보고, 위에즈펑이 봄의 소리를 홀로 듣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당대의 중국적 현실이 모든 이들의 의식과 사고를 동일화시켜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멍티와 위에즈펑은 감각으로 에둘러 가 개인의 독존을 말하고 있다. 감각이나마 홀로 있음을 인정해주라는 말은 아닌지? 위에즈펑의 말이다. “그가 당혹하였던 것은 설마 인간의 한평생이란 것이 검토를 받기 위해서였던가 하는 것이었다. 그가 중국에서 숨쉬고 살았던 것이 어떤 일당에게 검토를 받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왕멍이 펼치는 의식의 흐름은 비꼼 혹은 풍자와 닿아있다. “4대 현대화의 실현을 그리는 사람들 그런데 아직도 와트와 스티븐슨 시대나 있을 법한 찜통에 앉아 있다니!” 그러나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고향에 도착했을 때 위에즈펑은 이미 찜통차에서 듣던 봄의 소리를 생전 듣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음악‘이라 치켜세운다. 비판의 칼을 들이대던 그가 갑자기 긍정적 태도로 돌아서는 게 썩 개운치는 않다. 코피 터지도록 싸우다가 돌연 ’화해하자‘ 손을 내미는 꼴이다. 80년대의 정치 환경과 연관해 이해한다면 박대할 이유도 그다지 없겠지만 말이다.
王蒙(1934-)